太陽花運動, (영어)Sunflower Student Movement (2014년)
1 개요
해바라기 운동(太陽花運動, 태양화운동)은 2014년 3월 18일부터 4월 10일까지 23일 동안 대만의 대학생과 사회운동세력이 대만의 국회인 입법원(立法院)을 점령한 사건이다. 대만에서는 318學運(3.18 학생운동) 또는 佔領國會事件('국회를 점령하라'사건)[1] 등으로도 알려졌으며 이 외에도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2 진행과정
(해바라기 운동의 상징적 모습인 입법원 점거 모습)
(시위의 상징이 된 해바라기 꽃을 들고 있는 시위대)
해바라기 운동을 다룬 대만 다큐멘터리
2014년 3월 17일 오후 내정원 의원회의 회의중 중국 국민당 입법위원(국회의원) 장칭충(張慶忠)이 30초 만에 ECFA의 부속협정인 "양안서비스무역협정(海峽兩岸服務貿易協議, CSSTA)"을 선언하여, 대학생들과 대학원생, 사회인사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대 시위로 18일 6시, 입법원(국회) 밖에서 "민주주의 수호의 밤" 집회를 열고, 졸속처리한 양안서비스무역협정에 대해 항의 활동을 벌였다. 이후 400여 명의 학생들이 경찰의 경비가 느슨해진 틈을 타 입법원 내로 진입하여 입법원을 점령, 항의 의사표시를 내기 시작했으며, 이날 21시에는 경찰 측이 입법원을 포위, 돌연 입법원의 모든 문을 잠그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26시간동안 학생위주의 1만 명의 민중들은 국회 외부에서 이들 시위학생들을 지지하는 집회를 가졌다. 국회를 점령한 주요 주도자들은 황궈창(黃國昌) 등의 "헤이써다오 궈칭년연선(암흑섬나라의 청년전선, 黑色島國青年陣線, 간칭 黑島青)"의 구성원들과, 국립대만대학 정치대학원의 린페이판(林飛帆), 국립청화대학 사회대학원의 천웨이팅(陳為廷), 웨이양(魏揚), 그리고 세신대학 사회발전대학원의 천팅하오(陳廷豪)등이 있다. 외부의 지지군중은 반 날치기 서비스법 민주전선(反黑箱服貿民主陣線), 공민1985행동연맹(公民1985行動聯盟) 및 각종 사회운동단체와 시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당 중에는 민진당 대변인이 태양화 운동에 대하여 전력을 다하여 협조할 것을 약속하였다.
(입법원을 점거한 시위대의 주도 인사들. 맨 왼쪽의 검은 셔츠를 입은 인물은 현재 시대역량의 주석인 황궈창)
국회를 점령한 이후, 내정부 경찰서는 경찰병력을 긴급하게 국회로 투입하였다. 항의하는 학생들이 지속해서 입법위원의 좌석을 이용 문을 막고 경찰이 들어오는 것을 막자, 경찰은 회의장 내의 인터넷을 끊고, 전기를 끊었으며 화장실을 점거하고 에어컨을 끄는 등 국회내에서 학생들을 내쫓고자 하였으나 결국 실패하였다. 이 점령 기간동안 양측의 충돌로 부상자가 나왔는데 이후 대치상태가 지속되고 기자들과 다른 인사들이 다른 방법으로 입법원에 진입하여 언론에 보도된 이후부터는 화장실 사용 및 입법원 내 전기 사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대만 주요 일간지들에 보도된 시위대의 입법원 점거)
3월 23일 저녁 7시에는, 다른 시위대들이 부근의 행정원 까지 점거하기 위해 나섰으나 24일 전경들에 의하여 강제 진압되었다.(이를 323 행정원 점령 사건이라고 한다.) 이후, "양안서비스무역협정(海峽兩岸服務貿易協議, CSSTA)"에 항의하는 전국의 대만국민들은 3월30일 타이베이 대로에서 퍼레이드를 벌였으며 약 10만 명이 검은 옷을 입은 것으로 이 법안에 대한 반대의사와 국회안 학생들에 대한 지지표시를 하였다.
4월6일, 입법원장 왕진핑(王金平)이 직접 국회로 가서 학생들을 만났으며, 양안협의감동조례 초안이 완성되어 입법되기 전에는 "양안서비스무역협정(海峽兩岸服務貿易協議, CSSTA)"과 관련된 각 협의 단체와 협의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이러한 합의 이후, 국회를 점령한 항의자들은 7일 저녁 10일 저녁 6시에 국회를 정리하고 나갈 것을 선언하였다.
3 의의
이 사건은 중화민국(대만)의 역사상 처음있는 국회점령 사건이며, 주류 언론의 보도 외에 항의 학생들과 장외의 지지자들은 인터넷의 각종 매체들을 이용하여 현장을 실시간으로 알렸다. 또한 이 사회운동은 1990년대 야백합운동(野百合學運)이후의 가장 큰 학생운동이었다.
이 사건에 대만의 청년층 다수가 참여한 것은 발단이 된 중국, 대만의 양안서비스무역협정 체결 및 비준에 따른 위기감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해당 협정으로 인해 대만이 일반 상품뿐만 아니라 노동 시장까지 중국에 개방, 통합되고, 중국의 저가 노동력이 대만으로 직접 유입되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라고 인식하여 현실적인 절박감을 갖고 시위에 적극 가담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마잉주 총통, 국민당 정부가 2008년 집권 이래 추진해 온 중국과의 관계 개선, 협력 강화가 중국에 대한 종속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대만인들의 경계를 극도로 표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마잉주와 국민당 정부의 정국 주도권은 급속도로 약화되었고, 같은 해 하반기 홍콩의 반중 민주화 시위까지 겹치면서 전국 지방선거에서 민진당 등 야권의 대승으로 이어졌다. 이후 2016년 1월 민진당의 재집권을 촉진시킨 계기로 평가된다.
더불어 이 사회운동의 주역세력들은 2015년 1월 25일 진보인사들이 규합하여 만든 시대역량(時代力量, New Power Party)에 참여하였으며, 2015년 9월 13일 당 주석에는 황궈창이 선출되었다.
4 그 외
이 운동과 맞물려 대만 교육부의 교과 과정 내용의 변경에 항의하는 운동인 反高中課綱微調運動(반고중과강미조운동)[2]이 벌어졌다. 여기에 참여한 학생 한명이 "종군 위안부는 중국세력과 국민당의 날조교육이다.", "자원한 사람도 존재하니 모든 종군 위안부가 강제 동원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나중에 해당 학생은 나중에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했다.[3]
이번 운동으로 '해바라기 여왕'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진 류차오안은 훗날 성매매 의혹에 말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