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카페얀

20100220090907539.jpeg
왠지 오랑캐와 닮은 것 같기도

이름호세 프란시스코 카페얀(José Francisco Capellán)
생몰년도1981년 1월 30일 ~ 2015년 4월 7일(34세)
국적도미니카 공화국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4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소속팀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04)
밀워키 브루어스 (2005 ~ 2007)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2007)[1]
콜로라도 로키스 (2008)
캔자스시티 로열스 (2008)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9)
한화 이글스 (2010)
한화 이글스 등번호 26번(2010)
브래드 토마스(2008 ~ 2009)호세 카페얀(2010)오넬리 페레즈(2011)

2010년 한화 이글스외국인 관광객 외국인 선수. 별명은 필패얀, 십패얀(…), 칰션, 초반 몇 경기까지는 흑딸.(…)

사실 이런 말 다 필요없고…,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사람이 한번 꼬이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꼬일 수 있나 잘 보여주는 표본.

2010년 한화에 새로 들어온 2명의 투수 중 한 명으로써 많은 한화팬들의 기대를 받았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꽤 유망한 유망주였으며, 경력도 괜찮았다. 특히 한때 같은 리그 소속이었던 봉중근은 카페얀이 한국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내가 신시내티 레즈 트리플A에서 뛸 때 밀워키 산하 트리플A 선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당시 카페얀은 트리플A 최고의 투수였다. 의욕과 투지가 대단한 투수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화의 용병명단에서 카페얀을 보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고. 성격으로도 그렇고 노력하는 모습으로도 그렇고. 성실한 모습으로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그러니까 칰레발은 그만둬야 합니다

15경기 0승 11패 방어율 9.15라는 톰 션 뺨치는 무서운 성적을 보인 채 시즌 중 방출되었다.

하지만 이런 막장성적 그 자체를 거두고도 의외로 까이기 보다는 동정표를 받은 독특한 케이스. 그 이유중 가장 큰 이유는 한화의 막장 팀사정으로 거둔 패전과 날라간 승수가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사실 카페얀의 4월 성적은 5점대정도였다. 이것만 봐도 이미 싹이 누렇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때 카페얀의 5점대 방어율은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제대로 돌아가는 팀에서 던졌으면 3점대 방어율도 노려볼 수 있을법한 방어율이었다.그러나 넥센이나 KIA였으면 안 내려갔을지도 모른다.

초반에 경기 패턴들이 정말 한결같이 일관되었는데 5~6회까지 잘 던진다 → 타선의 삽질로 승리투수 조건충족이 안된다. → 다음 회까지 좀더 무리해서라도 던지다가 두들겨맞고 강판 이런 패턴 아니면 잘 던지고 팀은 1~2점정도 리드. → 갑자기 흔들리며 주자를 쌓아놓고 내려옴. → 불펜진의 분식회계로 실점도 늘고 패전투수 요건도 갖춤.

타선의 비협조적(?!)인 득점 지원과 답이 없는 한화의 수비 [2] 등이 겹치면서 선수의 멘탈이 급격히 붕괴되었고, 5월 초쯤 한두경기 이런 패턴이 더 지속되다가 5월 중반쯤부터는 나올 때마다 그냥 쳐맞기만 했다. 그 이후부터는 정말 톰 션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결국 6월 11일 롯데의 마산구장 저주[3]까지 끊어주며 십일패얀을 찍은 후 곧바로 방출.[4]

물론 그랬다고 이 선수가 잘했던 건 더더욱 아니다. 4월 겉보기 ERA 성적은 괜찮았을지 모르지만 세부 스탯을 살펴보면,

  • 4월 2일 - 5이닝 3실점 2자책 6피안타 5볼넷(2루타 2개 + 3루타 1개)
  • 4월 8일 - 5.1이닝 3실점 2자책 8피안타 3볼넷(2루타 1개)
  • 4월 14일 - 6.2이닝 5실점 5자책 10피안타 2볼넷(2루타 3개)
  • 4월 20일 - 2이닝 9실점 9자책 6피안타 6볼넷(2홈런, 2루타 1개)
  • 4월 25일 - 6이닝 2실점 2자책 5피안타 2볼넷(2루타 1개)

물론 8일 경기를 제외하고 카페얀은 전패했다. 이 중 호투했던 25일 성적을 제외하면 나머지 경기에서의 WHIP는 2에 육박한다. 그렇다고 그게 다 단타였냐면 그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못했다. 다만 못한건 감안하더라도 어느 정도 승수는 쌓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멘탈이 무너진 것 어쨌든 선수의 책임이긴 하지만 애초에 한화의 다른 선수들이 멘탈이 안 무너지게 조금만이라도 잘 했으면[5] 어떻게 되었을지 다소 아쉬운 감이 드는 선수긴 하지만 용병이라면 개인의 마인드 컨트롤이 그 누구보다도 중요하고 그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야구에 만약이란 없다.

여담으로 같이 온 외국인 투수 훌리오 데폴라도 초반 마무리 보직에서 헤매면서 블론 세이브를 하면서 털리는 일이 좀 있었지만 중계로 1승을 찍은 뒤 선발로 재전환되고 날씨가 풀리고 적응을 하면서 나름대로 준수한 성적을 내주면서 재계약에 성공했다.

데폴라는 카페얀을 영입하는 김에 카페얀과 평소에 사이가 좋았기에 덤으로 데려온 것이었는데 카페얀은 십패얀으로 전락하여 방출되고 데폴라만 한국에 남았다.(…)

여담으로 합류 첫날에 자신의 등번호 26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받고 "선발 26승을 올리면 되는건가? 개막전 선발을 준비하겠다."라는 드립을 쳤다.링크

야갤이나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선 '쟤 톰 션이나 숀 헤어처럼 설레발 떨다 좆망하는거 아니냐?'라고 우려했는데 결론적으로는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3년 후, 백인에 왼손잡이인 후계자가 한화에 입단하는데...

2015년 4월 7일,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링크
  1. 이때부터 한국에 온 용병들이 그러하듯 얄짤없는 마이너리그행이었다.
  2. 2010 시즌 개막전에서 잘 던지다가 최진행의 뇌수비이후 급격히 흔들렸으며, 그 이후에도 카페얀이 나온 경기에서 최진행은 유난히 자주 에러를 하거나 적절하게 흐름을 잘라먹는 공격을 보여줬다. 그러나 최진행의 시즌 성적 때문에 순식간에 묻혔다.
  3. 해당 경기 전까지 롯데는 마산구장 10연패 중이었다.(...)
  4. 당시 변화구가 밋밋하다는 의견이 많았으며, 변화구가 공략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멘탈에다가 공략까지 당하니…….
  5. 적어도 4~5월 제대로된 타선지원,불펜지원이 있었더라면 못해도 4승은 해줄 수 있었다. 패전이 줄었을 거란 것도 당연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