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반 명사
- 呼訴, 억울한 사정을 남에게 알림.
- 號召, 불러내는 것.
- 號召, 어떤 일에 참여하도록 마음을 이끌게 하는 것.
- 放送(ほうそう), 방송이란 뜻의 일본어.
2 후한 말과 삼국시대의 서예가
胡昭
(162 ~ 250)
영천 출신으로 어려서 널리 배우고 영달과 이익을 바라지 않아 백이[1]와 사호[2]의 절개가 있어 벼슬하지 않았다고 한다. 종요와 함께 호비종수(胡肥鍾瘦)라고 일컬어졌으며, 종요와 함께 유덕승이라는 사람에게 글씨를 배웠다고 한다.
처음에 기주 땅으로 피했다가 원소가 그를 불렀지만 사양했다. 조조가 예를 다 해 자꾸 부르자 조조에게 가서 자신은 한낱 시골 사람이라 나라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했으며, 조조가 부르는 것을 취소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했다.
사마의가 벼슬이 없을 때부터 친구로 같은 군에 사는 주생이 황제를 시해하려고 하자 눈물을 흘리면서 만류했으며, 대추나무를 도끼로 찍어 함께 맹세하면서 이별했다. 황제로부터 음덕을 받았지만 죽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으며, 그에 대한 신뢰는 고향 사람들이 누구도 따르지 못했다.
211년에 백성들이 마초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백성들이 산으로 피했다가 1천여 가구가 식량이 떨어져 서로 포악한 짓을 했는데, 그들을 좋은 말로 설득해 문제를 해결했다. 도둑들도 그 소문을 듣고 존경했으며, 그가 사는 곳을 중심으로 300여리에는 누구도 포악한 짓을 하지 않았다.
호소는 육혼산으로 들어가 농사를 하고 경서를 즐기면서 사니 온 마을이 공경해 사랑했다고 하며, 218년에 육혼현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육혼장 장고가 호소가 있는 곳으로 왔다. 반란이 진압된 후에도 손랑이 촉나라에 귀순했다가 육혼을 다시 공격했는데, 이들은 호소가 사는 부락은 공격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후 의양으로 이사했다가 두서와 만나면 윤리에 대해 토론했는데, 겸손하게 대하면서 호소를 존경했다. 태위 장제는 그를 불렀지만 관직에 나가지 않았으며, 정시 연간(240 ~ 249년)에 표기장군 조엄, 상서 황휴, 곽이, 산기상시 순의, 종요, 태복 유의, 홍농태수 하정 등이 호소를 추천했다.
그를 추천했지만 조정에서 군사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끊임없이 발생해 문제를 해결된 후에 실행했기 때문에 부르지 않았는데, 문제들이 해결되자 호소가 추천되어 250년에 호소를 불렀지만 마침 세상을 떠났다. 사서에 밝아 종요, 한단순, 위기, 위탄 등과 함께 명성을 날렸으며, 그가 남긴 척독은 대개 해서로 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