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의

진서 「왕침등전(王沈等傳)」
왕침순의순욱풍담

荀顗
(? ~ 274)

1 개요

삼국시대의 위나라와 서진의 문관. 자는 경천(景倩). 순욱(荀彧)의 6남, 순찬(荀粲)의 형, 진태(陳泰)의 외숙부.

매부 진군(陳羣)으로부터 특이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다양한 학문을 해 배운 것을 모두 흡수했다. 자신의 생각을 나타낼 때는 신중하고 치밀했으며, 사마의(司馬懿)가 그를 보고 기이한 인재라 하며 이렇게 말했다.

과연 순령군의 아들이로구나. 근래에 원간을 만났더니 역시 효경의 아들이라 할만했다.

그리고 그를 발탁해 산기시랑으로 삼았다.

이후 종회(鐘會)를 "역경에는 호체가 없다."고 꾸짖으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정시 연간[1]에는 호소(胡昭)를 조엄(趙儼), 황휴(黃休), 곽이(郭彛), 종육(鍾毓), 유애(庾嶷), 하정(何楨)과 함께 천거했다. 260년에 조모(曹髦)가 살해됐을 때는 진태가 오지 않자 사마소(司馬昭)의 명으로 진태를 불러 왔다. 당시 사마소의 앞잡이가 된 순의를 보고 진태는 "외숙부는 이제 저보다 못난 인간입니다." 라고 디스했다고.

264년 3월 17일 상서좌복야에서 사공으로 승진했는데, 나이 60을 넘어서도 효성이 극진하여, 같은 해 어머니의 상을 당하자 관직을 내려놓고 거의 실성할 듯했으므로, 나라에서 이를 칭찬했다.

이에 사마소가 황제에게 아뢰어, 한의 태부였던 호광(胡廣)의 고사에 따라 사공으로 복귀했고, 7월에 사마소의 명을 받아 양호(羊祜), 임개(任愷), 경준(庚峻), 응정(應貞), 공호(孔顥)와 함께 예의를 제정한다.

사마충(司馬衷)의 아내를 결정할 때 행태자태부로 있던 순의는 271년에 가충(賈充)의 아내 곽괴(郭槐)에게 돈을 받고 가남풍(賈南風)이 사마충과 결혼하는 것에 큰 역할을 하며, 시중, 상서령, 거기장군을 지내던 가충, 시중, 중서감을 지내던 순욱(荀勖), 월기교위 풍담(馮紞)과 더불어 서로 한 무리의 벗이 되자 조정이나 민간에서 그들을 미워했다고 한다.

274년 4월 28일 임회공으로 있다가 죽으니 시호는 강공(康公)이다.

아버지 순욱이 일생을 바쳐 충성한 주군과 척을 지면서까지 한 왕조를 지키려 했던반면 아들은 아버지의 피땀이 녹아든 위 왕조를 무너뜨리는데 앞장섰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걸 두고 빈 찬합 받고 죽은 아버지의 복수로 아버지가 끝까지 막으려 했던 위 제국을 아들이 무너뜨린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사료적인 근거는 당연히 없지만 극적으로 보면 굉장히 재미난 소재감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죽어서 삐뚤어진 아들

2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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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9~11
삼국지 13

삼국지 시리즈에도 등장하며 아버지와 비교하자면, 모든 능력치를 한 20씩 줄여 놓은 게 순의. 그래도 아버지가 워낙 먼치킨이라(순욱의 지력,정치,매력은 거의 90대에서 논다) 내정쪽으론 순의도 굴릴 수 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16/11/70/72. 혼란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16/11/73/75/74에 명사 특기를 가지고 있다. 『진서』를 참고하지 않았는지, 생몰년이 207~281로 설정되어 있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16/13/70/74/69.

삼국지 12에서는 삭제되었다가 삼국지 13에서 부활했는데, 시리즈 특성 상 매력이 삭제된 것을 제외하면 능력치는 11 때와 완전히 같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순욱 때문인지 순찬처럼 순욱의 헤어스타일을 이어받아서 나왔다. 단 순찬과는 달리 뒷머리는 없다.

창천항로에서는 순찬에게 사색만 하면 배움에 이르지 못한다면서 육경 전부를 통달하게 되면 하늘의 법칙이나 인간의 본성 등 그 진의를 알 수 있다고 하면서 순찬이 노장 사상에 빠진 것을 못마땅해한다.
  1. 240 ~ 249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