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전

태평천국의 역대 천왕
태평천국 건국초대 홍수전2대 홍천귀복
묘호없음
시호없음
홍(洪)
수전(秀全)
생몰기간1814년 1월 1일 ~ 1864년 6월 1일
재위기간1851년 ~ 1864년

중국 말기의 인물. 태평천국의 난을 주도했다. 본명은 홍인곤.

객가 출신으로 가난한 농촌에서 한미한 집안의 인물로 태어났기에 자세한 생년연도가 없다. 1813년생이 가장 알려졌으며 1814년 생이란 말도 있다. 과거에 계속 응시했으나 낙방하였다고 한다. 난징(남경)에 갔다가 서양 선교사에게 전도지를 받은걸로 보인다. 이후 과거에서 미끄러진뒤 집에 돌아왔는데 그만 병이나서 앓아 눕고 만다.

그런데 병중에 그는 꿈속에서 하얀 머리에 금빛 수염의 노인을 만났는데, 이 노인은 바로 야훼였다. 그가 말하길 홍수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동생이라는것. 그리고 야훼가 악마를 멸하는 검을 내려줬다고 한다.

이 꿈을 꾸고 병이 나은 홍수전은 집안 사람들과 마을 주민들에게 자신이 만난 이 도를 설파하면서 성서에 나온대로 우상을 없애야 한다면서 유교, 불교, 도교의 사당, 사원들을 마구 파괴하고 다녔다. 이때문에 고향 마을에서는 홍수전에게 찬동하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이후 금전촌이라는 마을로 옮겨가서 소수의 찬동자중 한명이었던 풍운산의 헌신적인 포교에 힘입어 가난한 농민, 광산 노동자, 객가 등의 하층 민중들이 홍수전에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3천여명의 추종자를 확보한 홍수전은 이들과 함께 배상제회를 조직했다. 풍운산이 성공했던 배경에는 홍수전처럼 과격하게 우상파괴한다고 돌아다니지 않고, 상제를 믿으면 현세에서 복을 누린다는 기복사상을 퍼뜨린것이 컸다고 한다.

당초 홍수전의 배상제회는 종교운동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풍운산을 비롯한 추종자들이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체포되자 홍수전은 정치혁명을 일으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마침내 1851년, 홍수전은 금전촌에서 태평천국의 건국을 선포하고 스스로를 천왕으로 칭했다. 그리고 석달개를 익왕으로, 양수청을 동왕으로, 소조귀를 서왕으로, 풍운산을 남왕으로, 위창휘를 북왕으로 임명했다. 그런데 양수청과 소조귀가 각각 스스로 야훼예수 그리스도에게 계시를 받는다면서 설치자 홍수전의 입지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보통 사이비 종교는 교주 외의 인물이 신의 계시를 받는다고 설치면 교주가 제거하거나 분리독립하는 경우가 많은데, 홍수전은 특이하게도 양수청과 소조귀가 신의 계시를 받는다는 것을 공인하고 스스로도 따랐다. 이런 걸로 보면 역시 군주가 되기는 싹수부터 글렀던 인물.

어쨌든 청나라군과 비교할 수 없던 전력이었던 태평천국군이 청나라군에 승리하면서 태평천국의 명성이 널리 알려졌고 수많은 민중들과 장강 이남의 반청세력들이 하나둘씩 홍수전에게로 모여들었다. 홍수전은 본격적으로 태평천국의 체계를 갖추려면 남경을 점령해야 한다는 위창휘의 간언에 따라서 남경 방면으로 진출을 시도한다.

마침내 1853년 남경을 점령하고 그곳을 천경으로 이름을 고친 뒤 홍수전은 본격적으로 황제 행세를 하게 된다. 그러나 남경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소조귀와 풍운산이 전사하면서 양수청과 위창휘는 홍수전을 능가하는 권력을 가지려고 암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홍수전이 유능했다면 나름대로 이들을 견제했었다. 그러나 양수청은 야훼가 자기 입을 빌려 말한다면서 홍수전을 신하들 면전에서 무릎 꿇리고 면박을 주기까지 했고, 위창휘는 홍수전이 석달개를 총애하자 남경에 있던 석달개의 일가를 습격해서 몰살시키기까지 하는 사태가 있었을 정도였다. 결국 홍수전은 자신의 권위를 위협하는 양수청과 위창휘를 석달개를 통해 제거하기에 이른다.

이후 홍수전은 자신의 형인 홍인발과 홍인달을 왕으로 세웠다. 그런데 문제는 홍인발과 홍인달은 욕심많고 사악하고 무능했다는 점. 이들은 석달개를 물고 늘어지다가 빡친 석달개가 환멸을 느끼며 남경을 떠나 쓰촨성으로 가게 만들어 버렸다. 태평천국 지도부 중에서 그나마 군사적 재능이 있던 석달개는 이렇게 무모한 원정을 강요받고 결국 전사하고 만다. 형들이 대들자 홍수전은 홍콩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동생 홍인간을 왕으로 임명해 두 형을 견제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홍인간이 지나치게 근대적이었던 탓으로 결국 실패했다.

한때 밀리던 청나라는 1862년 증국번이 전력을 재정비하고 태평천국을 조이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홍수전의 태평천국에 흥미를 가지고 이걸 이용해볼까 접근했던 서양 각국들은 초기에는 관전했으나 홍수전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동생이라고 주장하난 것이 알려지자 이단이라 생각했고 어른의 사정으로 청나라 편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사실 이것은 태평천국이 반제국주의적인 성격을 가진 탓도 있었다.

초기에는 워드와 서양인 탈영병, 모험가들을 동원한 용병부대 상승군을 조직했으나 이후 영국인 찰스 조지 고든(1833~1885)에 의해서 체계화된 상승군으로 재편되어 토벌에 나선다. 한편 홍수전은 상하이를 공략했으나 되려 서양각국의 청나라 지원군이 남경으로 쳐들어오고 증국번도 남경을 향해 진군해오자 1864년 6월 1일 스스로 자결했다고 한다. 다만 홍수전의 최후는 확실치 않은데 천경(남경)이 함락후 증국번의 공술에 의하면 수만명이 최후까지 저항하였고 홍수전은 힘이 다하여 자살했다고 한다. 하지만 체포되어 처형된 부하들의 공술서나 당시 목격담에 의하면 부족한 식량을 위해 천로(하늘의 이슬, 성서의 만나)가 내린 풀을 으로 먹던 홍수전이 그것이 원인이 되어 사망했다고도 하니 안습.

증국번은 홍수전이 자살(혹은 병사)한 무덤을 파해쳐 홍수전의 시체를 검시하고 현장에서 소각했다고 한다.

고든은 이때의 공으로 청 황실의 총애를 받아 일명 "차이니즈"라는 별명을 얻는다. 하지만 그는 21년 뒤에 영화 카르툼에서 묘사된바 대로 나중에 수단 카르툼에서 마흐디가 이끄는 이슬람군에게 참패해 효수당하게 된다.(영화에서도 중국에서 받은 관복을 이슬람 지도자에게 선물로 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일부 청인들은 그가 효수당한 걸 알고 매우 통쾌하게 여겼다고 한다. 파쇼다 사건을 참고할 것.

황건적의 난, 백련교도의 난과 더불어 중국에서 있었던 독특한 종교집단의 반란인 태평천국의 난을 이끈 인물로서 여러가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특이하게도 중국역사상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반란을 일으킨 인물은 홍수전이 유일무이하다.

여담으로 중국의 악습인 전족을 매우 싫어하였다고한다. 실제로 전족한 여인들을 보기만 하면 발을 끓는 물에 집어 넣어 억지로 발을 펴게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그러면서 처첩을 잔뜩 들이고 환관을 만들었기에 이런 점으로 그도 어쩔 수 없는 전제군주라는 비난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