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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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Hi FC No.31
홍순학 (洪淳學 / Hong Soon-Hak)
생년월일1980년 9월 19일
국적대한민국
포지션MF, SB
신체조건179cm / 72kg
프로입단2003년 대구 FC 입단
소속팀대구 FC (2003~2005)
그라츠 AK (2006)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7~2014)
고양 Hi FC (2015~)
국가대표1경기
2004년 K리그 도움상
에드밀손(전북 현대 모터스)홍순학(대구 FC)히칼도(FC 서울)

1 클럽

고양 Hi FC의 축구선수.

처음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K리그에 데뷔할 때는 특별히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선수였다. 그러나 대학 시절부터 홍순학을 눈여겨 보고 있던 당시 대구 FC의 창단 감독인 박종환 감독의 오퍼를 받고 2003년에 대학 졸업 후 대구 FC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대구에서 겨울 전지훈련기간 동안 박종환 감독의 독한 지옥훈련을 거쳐내는 데 성공하며 2003년부터 얇은 대구의 선수진 속에서 출장기회를 잡게 된다. 첫 시즌에는 부상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2004년에 포텐셜이 갑작스럽게 터져서 27경기 7도움으로 도움왕을 차지하게 된다.

2004년의 대구 FC빠따축구기동력있는 축구를 구사했고, 당시 노나또와 훼이종이라는 대박 용병을 영입하여 전방위압박과 역습축구를 잘 구사했다. 그리고 미드필더에서 노나또, 훼이종 투톱에게 공을 배달해주는 역할을 홍순학이 소화해줬는데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했던 약팀인 대구 FC에서 도움왕이 나오게 되자 당시 K리그 팬들도 누구인가 하면서 상당히 의아해 했을 정도.

이 활약으로 홍순학의 가치가 갑작스럽게 폭등했고, K리그 팬들에게 주목해야 할 신인으로 눈에 띄게 되었다. 그러나 2005년에는 2골 4어시로 작년만큼의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1] 2005시즌이 끝나갈 때 즈음에 해외이적을 선언하며 노병준, 이정운 선수와 함께 오스트리아로 이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이적은 완전한 실패였다. 당시 홍순학의 에이전트는 홍이삭 에이전트[2]였는데, 당시 홍이삭 씨는 2002 월드컵 이후 무조건적인 해외진출 분위기에 편승해서 '꼭 바로 빅리그를 가지 않더라도 타 유럽 리그에서 경험을 쌓으면 언젠가 빅리그로 갈 수 있음'이라는 분위기를 조성하였고[3], 해외진출이라는 말만 나오면 대승적 차원드립을 치던 당시 축구팬들도 홍순학의 해외진출을 밀어주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진출 당시 에이전트는 원 소속팀인 대구와의 협의는 전혀 없이 먼저 오스트리아 그라츠 AK와 먼저 협의를 해 버렸고 이에 분노한 대구는 국제이적동의서를 써 주지 않으며 파워게임을 벌여 버렸다. 그러다 결국 대구는 대승적 차원으로 홍순학을 오스트리아로 보내게 되었고, 2006시즌부터 그라츠 AK에서 뛰게 된다.

그러나 선수나 에이전트 모두 오스트리아 리그에 대한 명확한 이해도 없었고, 준비도 없었고, 더더구나 도착하고 나서 알게 된 홍순학과 그라츠 AK와의 계약이 전임 계약인 것도 아닌 연습생 계약이었던 터라 팀에서도 그냥 쩌리 자원 수준 정도로만 취급했고, 홍순학 스스로도 팀에 적응하지 못하며 오스트리아에서 3경기 출장에 그치며 1년만에 한국으로 유턴을 하게 된다.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수원과 계약을 맺고 2007년부터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수원의 두터운 미드필더 자원에서 경쟁을 하면서 출장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았고, 또한 매 시즌마다 부상을 달고 살아서 2007년 이후부터는 한 시즌에 20경기 이상 출장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2010시즌 중반에 감독이 윤성효 감독으로 바뀌면서 팀에서 방출될 뻔한 위기도 있었다.

2015년 고양 Hi FC로 이적하였다.

2 플레이스타일

팀내에서 가지는 역할은 멀티 플레이어이자 훌륭한 백업선수로, 원래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미드필더였음에도 팀에서 필요하다 싶을 시에는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도 소화하고, 수비수들이 단체로 드러누웠을 때에는 중앙 수비수로 뛴 적도 있고, 2011년에는 아예 오른쪽 풀백으로 나오며 다양한 포지션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구 시절 별명은 미드필더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활약한다고 해서 '홍반장'. 수원에서는 '수원 박지성' '순학신' 등의 별명이 있긴 하지만 정착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멀티 플레이 능력에 꽤 종종 터지는 택배 크로스 및 패스로 인해 스타가 즐비한 수원에서 튀지는 않지만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 백지훈과 함께 매 시즌 이적설이 나돌고 팬들은 안된다고 울부짖게 했던 선수
  1. 대구의 득점을 책임지던 노나또와 훼이종 투톱이 각각 서울, 성남으로 팔려간 게 컸다.
  2. 유럽 변방리그 이적 전문가로, 이호진 선수의 라리가 이적, 권정혁 선수의 핀란드 리그 진출 등을 주선했다.
  3. 설기현의 벨기에 주필러리그 진출 - 챔피언스리그 경험 - 챔피언쉽리그 진출의 사례가 있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