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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인 신풍루에서 바라본 화성행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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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水原 華城行宮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舊 남창동 6-2번지)에 위치해 있는 행궁으로, 사적 제478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세운 수원화성 내부에 건립된 행궁으로, 건립 당시는 21개의 건물 576칸 규모로 지어졌다.
2 용도
주로 조선의 국왕이 머물던 임시 처소로서, 정조 이외에도 순조, 헌종, 고종 등 역대 왕들이 화성행궁을 찾아 이곳에 머물렀다. 평소에는 수원 부사 또는 유수가 집무하던 관아로서도 활용되던 곳이다. 화성 행궁은 조선시대에 건립된 행궁 중 규모가 가장 크며, 수원 화성과 함께 정치적, 군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축물이다.
화성행궁은 조선 후기 정치와 군사 및 사회문화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산이며 발굴조사 및 복원정비사업을 통해 조선시대 행궁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게 된 중요한 문화유적으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
3 역사
화성행궁은 처음부터 별도의 독립된 건물로 일시에 건축된 것이 아니라 행궁과 수원부 신읍치의 관아건물을 확장·증측하는 가운데 조성되었다. 주로 수원화성을 건설하는데 관심을 기울이던 정조 시기에 많이 증축되었다. 이 때문에 각 건물마다 지어진 시기가 다른데, 그 과정이 화성성역의궤에 잘 기록되어 있다.
정조 사망 직후인 순조 1년(1801)에는 행궁 옆에 화령전을 건립하여 정조의 진영을 봉안했다.
일제강점기동안 화성 행궁의 건물들은 무참히 헐려나갔으며, 그 부지에는 신풍초등학교를 비롯한 많은 근대 건물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1997년에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로는 수원시에서 1999년부터 복원사업을 펼쳤고, 꾸준하게 화성 행궁지의 건물들을 매입하여 철거한 뒤 행궁 건물들을 복원해 나갔다. 이미 1차적으로 복원이 완료되어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관람료는 1,500원정도다. 2007년 6월 8일에 사적 제478호로 지정되었다.
4 훼손 및 복원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엄청난 훼손을 당했지만 지금은 복원사업을 통해 옛 모습을 상당부분 되찾았다. 현재도 복원이 진행중이며 2003년 7월 말 봉수당, 득중정, 궁녀와 군인들의 숙소 등 482칸의 복원을 완료한 1단계 공사가 끝났다. 수원시나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의 복원 지원도 적극적인 편이라 조만간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4.1 복원 논란
수원시와 수원교육지원청은 행궁 복원 2단계 사업을 2014년까지 완료하려고 계획을 잡았다. 이를 위해 신풍초등학교를 2013년까지 광교신도시로 폐교 후 재신설이전하겠다고 한 것. [1] 그러나 신풍초등학교 역시 2014년 기준 117년이나 이어진 학교인데다[2] 사실상 학교 이전이라기보다는 폐교나 다름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학교 관계자 및 동문들은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아.. 역사의 비극... [3]
그러다가 2012년 12월 28일 수원시와 신풍초등학교 간의 합의가 이루어져 수원교육지원청에서 171억원 가량의 신풍초등학교 분할납부방식의 토지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올 5월까지 계약금과 매매대금 86억 7200만원을 지급하면서 늦게나마 2차 복원을 잡았고, 2013년 3월부로 신풍초등학교는 광교신도시로 이전, 기존 교사(校舍)는 더 이상 신입생을 받지 않고 재학생들이 졸업하는 2018년 2월까지 분교장으로 운영된 뒤 폐지된다. # 기사참조
이에 맞춰 화성행궁 2단계 복원사업은 2020년 12월 우화관 복원과 함께 끝난다.
5 기타
무예24기 보존회의 공연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하며 대장금 등의 사극 촬영지로서 자주 쓰이고 있다.
화령전의 정문은 닫아놓은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닫든지 말든지 화성행궁을 통해 화령전까지 갈 수 있다.
화성행궁에 큰 행사가 있어 종로가 통제되면 심각한 헬게이트가 열린다. [4] 인근 도로도 헬게이트겠지만로 우회하자.
- ↑ 일제강점기때에 관아지, 객사지, 향교지를 학교로 전용하거나 면사무소를 올려버리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유지인데다가 대다수의 관아, 객사, 향교는 마을의 중심지에 소재했기 때문이다.
- ↑ 즉 신풍초등학교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건물을 보면 일제강점기의 양식이 모르는 사람이 봐도 강하게 풍겨온다.
- ↑ 물론 이전 명분에는 도심 공동화로 인해 이 학교 및 주변 학교들이 텅텅 비어간다는 이유도 포함된다. 실제로 행궁동, 장안동 일대의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있기도 하다.
- ↑ 장안동장류장에서 팔달문정류장까지 30분 가까이 걸린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