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대기

The Martian Chronicles

1 개요

미국 SF 문호 레이 브래드버리의 1950년작 단편집. 제목대로 화성에 관한 단편만을 모아서 시간순으로 배열한 것이 특징이다. 브래드베리 특유의 차분하면서도 몽환적인 문장이 일품으로, SF 문학 역사상 손꼽히는 걸작. 국내에서도 훌륭한 번역으로 소개된 적이 있다.

브래드베리가 상상한 화성인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중점을 둔 문명을 향유하였다는 점에서 지구인과 차이가 있으며, 과학기술보다는 문학, 음악, 연극 등을 고도로 발달시킨 문화적인 문명이었다. 또한 화성인들은 강력한 텔레파시 능력을 갖고 있어 스스로 상상하는 것을 타인에게 이미지로 보여주는 능력도 있었다.

화성인들은 지구인보다 키가 작고 모래색이나 금색의 피부를 가진 인간형의 생물이었으며, 느슨한 옷이나 몸에 두르는 망토 비슷한 의류, 그리고 금속판을 두들겨 만든 가면을 즐겨 사용한 듯 하다.

작중에서 화성인들이 보여주는 원초적이면서도 고결한 모습은 극중 많은 지구인들이 보여주는 야만적이고 추한 작태와 비교되는데, 브래드베리는 유럽 이민들이 미대륙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미국 원주민들과 유럽인들의 모습을 화성인과 지구인으로 은유하여 그려낸 듯 하다.

물론 과학적 고증에 기반한 하드 SF는 전혀 아니다. 작중에서 화성은 지구인도 숨이 좀 가빠서 그렇지 충분히 맨몸으로 생존할 수 있는 행성으로 그려지며, 퍼시벌 로웰이 언급한 화성 운하가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비현실적 설정이 이 작품의 결점이라고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애당초 레이 브래드베리는 아시모프나 클라크같은 정통파 SF 작가가 아니였으며, 보네굿, 젤라즈니 [1]등으로 이어지는 인문학파 작가였다. 요새 식으로 분류하자면 SF보다는 판타지 작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화성에 대한 조사가 미흡한 시대에 출판된 작품이었음을 감안하고 읽으면, 특유의 낭만적인 분위기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는 소설이다.

2 수록된 단편 및 요약

각 단편의 제목과 그 배경이 되는 시간은 다음과 같다.

2.1 로켓의 여름(Rocket Summer)

1999년 1월이 배경. 최초의 로켓 발사로 인해 미국 한 시골 마을이 시끌벅적해지는 이야기를 다룬 아주 짧은 단편이다.
여담으로 일본 SF 만화가인 아사리 요시토의 작품 중에 여름의 로켓이라는 것이 있다. 이 제목의 오마쥬인 듯.

2.2 일라(Ylla)

1999년 2월. 화성인 부부에 대한 이야기. 일라는 화성인 주부로서, 지구로부터 찾아오는 우주비행사들에 대해 꿈을 꾸고(화성인들은 텔레파시가 있다), 그들에 대해 동경하는 모습을 보이자 남편이 질투가 나서 우주비행사들을 전부 죽여 버린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에서 화성인이 사용하는 무기는 일종의 총인데, 탄환 대신 말벌 비슷한 독충을 넣어 고속으로 발사하는 무기이다. 하프 라이프에 등장하는 외계인의 무기에 영감을 주지 않았나 싶은 부분.

2.3 여름밤(The Summer Night)

1999년 8월. 머지 않아 도래할 지구인들을 화성인들이 텔레파시로 감지하며 화성 사회에 번지는 혼란과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2.4 지구인들(The Earth Men)

1999년 8월. 지구로부터 화성에 찾아온 두번째 탐사대의 이야기이다. 우주비행사들은 자기들이 지구에서 찾아온 우주비행사임을 화성인들에게 설득하려 애써 보지만, 모두들 정신병자 취급할 뿐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화성인 정신병자들은 텔레파시를 통해 자신의 망상을 구현화할 수 있기 때문). 결국 화성인 정신과 의사가 치료랍시고 우주비행사들을 전부 "안락사"시켜버리는 것으로 결말.

2.5 납세자(The Taxpayer)

2000년 3월. 어떤 남자가 자기도 세금을 내니까 화성행 로켓에 태워 달라고 우기다가 경찰에게 끌려가는 이야기.

2.6 세번째 탐험대(Third Expedition)

2000년 4월. 지구로부터 세번째 탐험대가 도착하지만, 이번에는 화성인들이 텔레파시를 이용해 조직적으로 이들을 해치운다는 내용. 화성인들은 탐험대원들의 죽은 가족과 친지로 위장하고 화성은 죽은 사람이 가는 천국이라며 탐험대원들을 속이는데, 은근 섬짓하다.

2.7 달은 아직도 밝건만(And the Moon Be Still as Bright)

2001년 6월. 지구에서 찾아온 네번째 탐험대의 이야기. 이들이 발견한 것은 화성인들이 이미 죽어버리고 텅 빈 폐허 뿐이었으며, 조사 결과 화성인들은 앞선 세차례의 탐험대 중 누군가가 옮긴 수두로 인해 전멸하였음이 밝혀진다.

2.8 정착민들(The Settlers)

7장의 후편. 4차 탐험대의 일원인 고고학자 스펜더가 자신이 화성인이라며 동료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지구인들이 화성을 더 이상 더럽히는 것을 막겠다는 것. 탐험대장인 와일더와 부하인 파크힐과 헤서웨이는 스펜더를 추적하여 결국 사살한다.

2.9 초록빛 아침(The Green Morning)

2001년 12월. 화성의 테라포밍에 대한 이야기. 벤자민 드리스콜이라는 사람이 화성의 흙에 나무를 심자 하루아침에 거대한 숲이 자라난다는 환상적인 이야기다.

2.10 메뚜기들(The Locusts)

2002년 2월. 지구로부터 찾아온 이민들이 화성을 뒤덮는 이야기이다.

2.11 밤의 만남(Night Meeting)

2002년 8월. 화성에 이민온 지구인 청년이 시공을 뛰어넘어 화성인을 만난다. 지구인 청년에게는 현재의 황량한 폐허만이 보이지만 화성인의 눈에는 아름다운 도시가 보일 뿐이다. 두 사람은 자기들 중 누가 미래의 사람일까 궁금해하며 작별한다.[2]

2.12 물가(The Shore)

2002년 10월. 화성 이민자들의 물결이 화성을 뒤덮으며 퍼져나가는 모습을 그린 단편.

2.13 불타는 풍선들 (The Fire Balloons)

2002년 11월. 화성이 죄악이 가득할 것이라 생각하고 지구에서 선교사들이 찾아가지만, 그들이 화성에서 만난 생명체들은 물질 세계를 등진 푸른 수정 구체들로 세상의 죄악과는 거리가 먼 존재들이었다.

2.14 중간 (Interim)

2003년 2월. 이민자들이 화성에 미국 시골 마을과 꼭 닮은 마을을 세우는 이야기.

2.15 음악가들 (The Musicians)

2003년 4월. 화성 도시의 폐허에서 노는 아이들의 이야기. 얘들은 화성인의 갈비뼈를 실로폰이라며 두들기고 놀지만, 머지 않아 이 폐허에도 방화수들이 와서 화성인들의 잔해를 모두 불태워버릴 것이다.

2.16 황야 (The Wilderness)

2003년 5월. 곧 로켓을 타고 화성으로 떠날 두 사람의 여성이 나누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

2.17 허공의 길 (Way in the Middle of the Air)

2003년 6월. 미국 남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미국의 흑인들이 인종 탄압을 피해 모두 화성으로 떠나버리는 날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3]

2.18 이름 짓기 (The Naming of Names)

2004년~2005년. 화성 이민들이 화성의 여러 지역에 이름을 지을 때 1~4차 화성 탐사대의 대원들의 이름을 따서 붙인다는 이야기.

2.19 어셔 가 2호 (Usher II)

2005년 4월. 정부의 도서 검열로 인해 사랑하던 장서를 모두 잃은 윌리엄 스텐달이라는 사람이 화성에 이민을 와서 포의 작품에 나오는 괴저택을 본딴 저택을 짓는다는 이야기. 화성에도 검열관이 찾아오자 스텐달은 저택의 공포스런 장치들을 이용해 통쾌한 복수를 한다. [4]

2.20 늙은 자들 (The Old Ones)

2005년 8월. 화성에 이민오는 노인들의 이야기.

2.21 화성인 (The Martian)

2005년 9월. 한 지구인 노부부에게 화성인이 찾아오는데, 이 화성인 역시 텔레파시 능력이 있어 부부의 아들 톰(옛날에 죽었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2.22 여행가방 가게 (The Luggage Store)

2005년 11월. 가방가게 주인과 신부가 지구에 곧 닥칠 핵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신부는 지구에 핵전쟁이 나면 화성에 이민온 사람들이 전부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지구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2.23 비수기 (The Off Season)

2005년 11월. 4차 탐험대의 일원이었던 샘 파크힐과 그 부인에게 화성인들이 찾아오는 이야기. 파크힐은 핫도그 가게를 열어놓고 지구에서 찾아올 이민들을 기다리지만, 오라는 이민들은 안오고 화성인들이 찾아온다. 파크힐은 겁에 질려 화성인들 중 하나를 살해하지만, 화성인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파크힐에게 화성 절반에 해당하는 토지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문서를 건네주고는 사라진다. 파크힐이 기뻐 날뛰는 것도 잠시, 그의 부인이 망원경을 통해 지구 표면이 핵전쟁불꽃에 휩싸이는 것을 본다. 이제 화성에 찾아올 지구인은 없는 것이다.

2.24 지켜보는 사람들(The Watchers)

2005년 11월. 지구에서 일어난 대규모 핵전쟁을 바라보던 화성 정착민들은 지구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을 걱정하며 모두 로켓에 올라타고 지구로 향한다. 덕분에 여행가방 가게는 완전 품절.

2.25 침묵하는 마을들(The Silent Towns)

2005년 12월. 광맥을 찾아다니는 외톨이 화성 정착민인 월터 그립은 오랫만에 정착민촌에 와보고서야 모두들 지구로 떠나버렸음을 알게 된다. 사람들이 남겨두고 간 음식 덕분에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지만, 점점 사람이 그리워지자 화성에 남아있는 다른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며 인간을 찾아 전화기 다이얼을 돌리기 시작한다.
결국 제네비브라는 여성을 찾아내는 데 성공하지만 그녀는 소탈한 월터와는 성격이 너무나 맞지 않는 여성이었고, 월터는 결국 그녀로부터 도망쳐 혼자만의 생활을 즐겁게 계속하게 된다.

2.26 말년(The Long Years)

4차 탐험대의 고고학자였던 해서웨이에 탐험대장이었던 와일더가 찾아오는 이야기. 해서웨이는 화성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태양계 외행성을 탐사하다가 돌아온 와일더 대장을 반갑게 맞이한다. 그러나 헤서웨이의 가족은 사실 병으로 죽은 지 오래였으며 지금 가족의 정체는 그가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만들어낸 정교한 로봇들이었다.

2.27 부드러운 비가 내리리(There Will Come Soft Rains)

2026년 8월. 핵전쟁으로 인간이 전멸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집이 무대이다. 핵폭발의 섬광으로 집에 살던 가족은 순식간에 몰살당했지만, 집은 인공지능을 가진 스마트 주택이라서 아직도 작동을 하고 있다. 집에 살던 가족들이 모두 죽어버린 것도 모르고 인간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음악을 연주하고, 시를 낭송하다가 결국 폭풍으로 인해 발생한 화재로 전소되어버리는 집의 모습이 처량하기도 하고 섬짓하기도 하다. [5]

2.28 백만년의 소풍(The Million-Year Picnic)

2026년 10월. 지구의 핵전쟁에서 모든 지구인이 멸망한 것은 아니었다. 핵전쟁에 사용할 로켓을 몰래 빼돌려 지구를 탈출한 일가가, 화성으로 피난와서 화성인들이 만든 운하 옆에서 피크닉을 한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화성인을 만나게 해 준다고 하는데,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보여준 것은 운하의 물에 비친 아이들의 얼굴이었다.

3 영상화

이 작품은 의외로 영상화된 적이 있다. 미국 NBC 방송국이 1980년에 미니시리즈로 각색하여 방영을 했다. 주연은 록 허드슨인데, 와일더 대장으로 나온다. 그런데 미니시리즈에 등장하는 와일더 대장은 원작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를 짬뽕시킨 캐릭터인지라, 시공간을 거슬러 화성인을 직접 만나기도 하고 아이들과 화성 운하에서 피크닉을 하기도 하는 등 원판 와일더보다 훨씬 활약(?)이 많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원작을 좀더 본격적인 SF로 각색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 작품이다 보니, 화성 탐사 미션은 NASANATO가 공동 추진하는 것으로 그려지며 바이킹 탐사선도 등장하는 등 원작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다시 말해 원작의 장점을 대부분 깎아먹고 어중간한 스페이스 오페라로 만들어진 작품. 원작자인 브래드배리가 "그냥 지루할 뿐"이라고 평했을 정도다.

국내에서도 80년대에 MBC에서 방영된 적 있다.
  1. 로저 젤라즈니의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라는 단편에 등장하는 화성과 화성인의 모습에서 화성 연대기의 영향이 확연히 드러난다.
  2. 독자는 당연히 화성인 쪽이 과거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맨 마지막 장인 '백만년의 소풍' 참조.
  3. 1950년에 쓰여진 소설인데, 브래드베리는 2000년대가 되어도 흑인들의 사회적 지위가 1950년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듯 하다. 역사가 그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4. 레이 브레드배리의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 문화 검열을 다룬 작품이다. 작가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매카시즘의 여파로 문화 탄압이 자주 일어났기 때문.
  5. 이 작품은 단편선 최후의 날 그 후에 '부드러운 비가 올 거야'라는 제목으로 수록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