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날 그 후

1 개요

핵전쟁이 일어난 이후의 세계를 모티브로 한 여러 SF 작가들의 단편 모음집. 에코의서재 출판사에서 나왔으며, 2007년에 출간되었다. 여러모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앓던 시대의 자화상을 떠올려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많다.

2 단편 목록

2.1 세상을 파는 가게

작가는 로버트 셰클리. 막대한 비용과 10년의 수명을 대가로 1년동안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 세상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가게. 주인공은 말도 안된다는 식으로 그 가게를 나와 가족과의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그리고 1년 후 주인공은 만족스럽게 환상에서 깨어나고 구두 한 켤레와 약간의 식료품이라는 '엄청난 비용'을 지불한 후 황폐한 감자를 배급받기 위해 지상을 지나 지하 벙커로 돌아간다.[1].

2.2 거대한 섬광

작가는 노먼 스핀래드. 핵폭탄이 터지기 몇 달 전부터 그 직전까지의 상황을 다룬 단편. 절정 부분에서 주인공이 해저 기지에서 광기스러운 락 음악을 듣다 결국 핵폭탄 발사 버튼을 누른다. 중반부터 절정까지 이어지는 정신이 나갈 듯한 묘사의 압박감과 상승감이 무시무시한 작품. 하지만 이게 대체 무슨 내용인지,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건지 읽어도 이해가 안 간다는 사람들이 많은 편. 이는 도중에 락 밴드를 발굴하고 후원한 기획자에서, 락을 즐기는 어느 장교로 1인칭 주인공이 바뀌는데 독자가 이를 파악하기 어렵게 지어져서 그렇다.

2.3 현대판 롯

작가는 워드 무어. 성경의 패러디 & 현대판 소돔고모라. 미국이 핵공격을 받게 되고 주인공은 그것을 미리 파악하고 철저히 준비하나 아내와 두 철부지 아들은 [2] 그럴리가 없다고 주인공을 나무라고 계속해서 터무니 없고 배부른 요구를 해대는 등 계속해서 가족의 생존을 위해 노력하려는 주인공의 속을 박박 긁는다. 단지 하나 있는 딸만이 주인공을 믿었고 지칠대로 지친 주인공은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우다가 아내와 두 아들을 은근슬쩍 외딴 곳으로 꾀어낸 후 몰래 딸만 데리고 미국을 떠난다. 가족들의 답 없는 태도를 보고 있으면 주인공의 답답하고 애끓는 심정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다.

2.4 바퀴

작가는 존 윈덤. 유명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 트리피드의 날의 작가이다. 핵전쟁 이후 기술이 전쟁을 불러왔다는 생각에 빠진 인류는 모든 기술을 거부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소년이 혼자서 바퀴를 다시 발명하게 되고. 이 것을 본 마을 사람들이 소년을 헛간에 가두고 사제를 부르기로 한다. 소년이 헛간에 갇혀있을 때 소년의 할아버지는 소년에게 찾아가 옛날 이야기를 해준 다음 소년에게 사악한 것은 오직 두려움이라는 교훈을 소년에게 남기고 대신 죽음을 맞이하기로 결심한다. 성직자와 마을 사람들이 몰려왔을 때 할아버지는 수레에 바퀴를 만들어 달면서 "어제는 멍청했지. 바퀴를 2개 밖에 안 달다니. 이젠 4개를 달았으니 더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수레를 빼앗아 불태워버리고 할아버지를 끌고 간다. 이 때 소년은 마을쪽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연기를 보다 얼굴을 두손에 파묻고 할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교훈을 울면서 중얼거린다.

2.5 터미널 해변

작가는 제임스 G. 발라드. 이 책에 수록된 다른 소설들이 직접적으로 핵전쟁을 언급하는 것과는 달리 이 소설은 폐허가 된 섬에서 미친듯이 방황하는 주인공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주인공의 심리묘사를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아스트랄하게(...) 서술한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자 단점. 부연설명은 물론이고 인과와 전후관계, 상상과 현실이 뒤섞여 처음에 읽을때는 무슨 소리인지 알기 힘들다.

2.6 내일의 아이들

작가는 폴 앤더슨. 핵전쟁 이후, 잔존한 미국 정부의 생존자인 한 군인은 명령을 받아 핵동력 비행기를 타고 전세계를 돌아다닌다. 하지만 어디를 가나 방사능 후유증으로 인해 태어나는 아이들이 대부분 기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나마 지능이 정상이고, 활동이 가능하기만 하면 상당히 양호한 수준. 심지어 몇 안되는 청정지역에 거주하던, 사실상의 미국 대통령인[3] 자신의 직속상관의 아이마저도 기형아로 태어나고[4] , 군인은 이제 정상적인 유전자를 가진 인류는 존재하지 않으며 기형아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인류 사회를 존속시킬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2.7 누가 상속자인가

작가는 로버트 애버나시. 소련인 공산주의자와 미국인 자본주의자의 대립이 주제. 3차대전에서 소련은 한동안 아프리카유럽을 전차로 신나게 누비며 승승장구하지만 결국 핵전쟁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한때 미국 농무부에서 일해 농업과 수의학 기술을 가진 어느 미국인이 감독하던 러시아의 한 마을에 정처 없이 떠돌던 소련인 군인이 도착. 이후 소련인의 감독을 받게 되나 미국인과 의견사상차이로 인해 티격태격한다[5]. 하지만 이내 유목민들의 습격을 받게 되고 몇번의 공방전 끝에 마을은 함락당하고 자신들에게 합류하든가 죽음을 택하라는 유목민들의 요구를 받으며, 소련인은 그 와중에 전사(?)하고 만다. 결국 미국인은 도시문명의 시대가 끝나고 유목문명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고 독백하며, 크림 반도코카서스 지방으로 이주하기로 결심. 미국인이 왜 러시아에 있었는지는 작중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2.8 바빌론의 물가에서

작가는 스티븐 배네. 현대판 롯처럼 성경의 오마주로, 제목은 시편 137장 1절의 구절에서 따 왔다.[6] 대전쟁 이후로 문명이 후퇴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전쟁 전 사람들을 신이라 부른다. 그리고 사제만이 고철조각을 얻기 위해 옛 도시가 있는 곳 근처까지(도시 자체는 금지구역) 갈 수 있다. 하지만 사제의 아들인 주인공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고철조각을 얻으러 처음으로 혼자 간 길에 도시까지 들어가 보는데[7], 한 집에서 전쟁 전 사람의 시신을 발견한다. 이 시신의 얼굴에서 고뇌와 절망을 느낀 주인공은 이들도 자기와 같은 사람이며 이들이 이루었던 문명을 재건하겠다고 다짐한다.

핵전쟁의 공포가 엄습하기 한참 이전인 1937년에 발표되었는데도[8] 핵전쟁 이후의 황량한 폐허, 그를 숭상하는 종말 이후의 주민들의 모습을 생생히 담아냈기 때문에 최초의 뉴클리어 아포칼립스 소설로 평가받는다. 다만 각주에서와 같이 게르니카 폭격에 영감을 받았으며, 소설에 등장하는 끔찍한 안개는 제1차 세계대전에 등장한 독가스와 비슷하기도 하니 완전히 예언이라고만 보기도 애매한 듯?

2.9 부드러운 비가 올 거야

작가는 레이 브래드버리. 본래는 화성 연대기에 수록된 단편 중 하나다. 생명체만을 제거하는 폭탄의 폭발로 아무도 존재하지 않게 된 집. 그러나 그 집의 시스템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어서 그 집에 살던 가족의 생활 패턴에 맞게 요리/청소/오락 등등을 해주다가 외부 오류로 인해 집이 불타버린다는 내용이다. 제목인 '부드러운 비가 올 거야' 는 가정 로봇이 그곳에 있지도 않은 부인에게 읽어주는 시의 내용이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적막한 분위기와 그 이유를 짐작케 하는 배경과는 정 반대로 평온한 분위기의 시이다.

2.10 시카고 어비스 역으로

작가는 레이 브래드버리. 주변 사람들에게 현대 문명의 이기를 끊임없이 언급하면서 염장을 지르는[9] 노인이 주인공으로, 그의 이야기를 듣기를 원해서 모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아직 현대 문물이 남아있다고 언급되는 시카고 어비스 역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는 것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한글판에 달린 서문 주석에서는 '부드러운 비가 올 거야'가 '인간이 없는 현대 문명'을 묘사한다면, 이 작품은 '현대 문명이 없는 인간'을 묘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2.11 루시퍼

작가는 로저 젤라즈니. 사회가 돌아가게 하는 어떤 빛을 내는 장치를 고치기 위해서 한 남자가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그 장치는 잠시 움직였으나 다시 멈췄고 남자는 다시 산맥으로 돌아가버린다. 이 단편의 설정은 젤라즈니가 12월의 열쇠, 이 죽음의 산에서, 그림자 잭에서 성경 비판식으로 재탕한다.

루시퍼는 악마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본래 '빛을 밝히는 자'라는 뜻이다. 여기에서는 빛을 밝히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을 나타낸 것.

2.12 동쪽으로 출발!

작가는 윌리엄 텐. 북미가 부족생활시대로 돌아갔지만 기술력은 현미경을 제작하고 총기를 만들어낼 정도로 발전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의해 지배받으며, 백인흑인들이 옛날 개척시대 원주민들의 포지션으로 돌아갔다는 단편. 미국은 몇 개로 분열되고 그나마도 서로 연락이 두절된 상태로 원주민들의 공세에 무너지거나 고사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 문명을 상실한 이들을 배경으로 원주민 추장의 가스램프, 권총 하사품에 굽실굽실 하는 남부 미국의 사신, 상원의원의 일장 연설과 이면지로 한 번밖에 안 쓴 문서, 전투 무기라고 해 봐야 인디언에게 얻은 권총으로 싸우는 시대에 존재하는 공군참모총장 등을 그려내어 여러모로 풍자성이 짙은 작품.

워싱턴이 원주믹들의 공세에 의해 망실된 상태에서 최후의 미해군 기지로 가서 범선을 타고 백인이 자유를 누린다는 꿈의 대륙 유럽으로 돌아오지 않을 항해를 떠나는 결말이 인상적이다. 유럽이라고 멀쩡할까 소련은 "누가 상속자인가"와 비슷하게 된 모양.

2.13 성 재니스의 향연

작가는 마이클 스완익. 전쟁 후, 미국은 사회적 쇠퇴를 겪고 아프리카가 새로운 선진국이 된다. 여기서 미국은 낮은 출산률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지원자를 선발. 락스타 제니스 조플린의 클론을 만들어 내 미국 전역을 돌며 순회공연을 열게 하고, 그녀의 콘서트를 듣는 관객들을 난교하게 만든다.[10]. 그러나 클론은 1년마다 관객들의 폭동에 휘말려 몸이 찢어져 죽게 된다.

2.14 "그대를 어찌 잊으리, 오 지구여..."

작가는 아서 클라크. 달에 이주민들을 보냈는데 지구가 핵전쟁으로 멸망. 고로 이주민들은 하루하루 생존과의 투쟁을 해나가면서 핵구름과 폭발으로 뒤덮힌 지구를 보면서 언젠가 지구로 다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이다. 전반적으로 잔잔하면서도 마지막의 결말로 인해 아련한 느낌을 주는 소설.

2.15 소년과 개

작가는 할란 엘리슨. 엔솔로지 작품들 중 핵전쟁 이후의 '막장성'에 가장 중심을 맞춘 작품. 오죽하면 서문에도 미성년자 및 임산부는 읽지 마시길 이라고 적혀있을 정도다.

3 평가

아무래도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루는 문학들이 현재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 성찰하고 더 평화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길 소망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일단 이 작품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검색해 보면 다양한 서평과 독자리뷰가 있고 그만큼 마이너하지도 않은 책.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모른다 이 분야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입문서 정도로 꼽히며, 이후 각 작가의 문체를 느끼며 선호하는 작품을 고르다가 특정 작가에게 꽂히는 방식으로 작품 취향이 옮겨가는 경우가 많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보면 알겠지만 핵전쟁 이후의 세계관을 다루므로 사람들마다 받아들이는 차이가 있으니, 거부감이 들 정도로 추천하지는 말 것.

게다가 큰 범주는 SF 혹은 전쟁소설이므로 여러모로 지위가 불투명한 부분이 있다. 크게 보면 양판소처럼 장르문학도 아닌 것이 SF+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이유로 SF에도 비주류로 취급받고, 정석에 가까운 문학도 아니라서 내세우긴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러나 국내의 문학 풍토와 대중의 인식이 그렇단 거고, 실제로는 문학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읽을 만하다. 그야말로 핵전쟁으로 인해 발생하게 될 상상의 재미를 안겨줄 수 있는 작품집. [11] 만약 "심각하게 문학에 파고들 기분은 아니고, 그렇다고 라이트노벨이나 다른 상업소설에 지배받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든다면 주저없이 읽을 만하다.

현대에서는 점점 잊혀 가는 방사능의 공포를 일깨운다는 1차원적인 해석이 있는가 하면, 과연 기술이 없는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2차원적인 3차원적인 건 뭔데? 해석도 있다. 어느 해석이든 참고할 만하지만, 세련되고 모더니즘 혹은 포스트 모더니즘에 치우치거나 일상스러운 작품은 아니므로 약간은 읽는 사람 본인의 주변 환경과 거리를 두고 읽자.

  1. 여담으로 가게 주인은 환상이 1년이 아닌 영구히 지속되도록 기계를 손보는 중이며, 1년간의 환상을 위해 기계를 사용하는 고객은 실험대상인 셈. 그리고 고객이 가져다주는 물건들로 생활하고 있다. 참고로 가게 주인은, 기계를 사용하기 전에 왜 환상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느냐는 주인공의 물음에 당신들은 실험대상이라는 말을 대놓고 했다.
  2. 하나는 초딩, 하나는 중2병. 주인공은 사실 이 둘이 정말 자신의 친자식이 맞는지에 대해서도 의심하고 있다.
  3. 장관이었으나 수뇌부가 전멸해 자동으로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는 설정. 실제 법에 규정되어 있는 절차이기도 하다.
  4. 돌연변이를 억제하며 제거 내지는 격리수용해 '정상인'에게 유전적 오염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순혈주의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5. 주로 소련인이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고, 미국인은 정 그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만 당신은 이러저러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고 조용히 반박하는 형식.
  6. 바빌론 강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우네.
  7. 한 조각상의 깨어진 받침대에 쓰여있는 '아싱(ASHING)' 이라는 단어를 신의 이름으로 생각하는데, 이 AHSING은 워싱턴(WASHINGTON)의 일부.
  8. 게르니카 폭격에 영감을 받아 쓰였다고 한다.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같은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것.
  9. 초콜릿이나 맥주 등을 말만 들어도 입에 침이 고이게 묘사한다. 짜증날 만하지...
  10. 작중에 등장하는 클론의 여자친구 말에 따르면, 태어나자마자 사망하는 경우를 제외하고서도 현재 미국의 평균 수명은 40세 정도밖에 안 된다고.
  11. 문학의 가장 근본이 되는 이해와 상상, 그리고 그로부터 우러나오는 심상을 통해 재미를 주는 작품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