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핵

오서 「왕누하위화전(王樓賀韋華傳)」
왕번누현하소위소화핵

華覈
(219 ~ 278)[1]

1 개요

삼국시대 오나라의 정치가로 자는 영선(永先).

생애 자체가 손호의 폭정을 막기 위해 상소만 올리다가 죽은 충신. 손호의 행위를 말리려고 올린 상소가 수백장이 넘었다고 한다.

2 정사

2.1 손호 즉위 전

오군 무진 사람으로 처음에는 상우위, 전농도위로 임명되었으며, 문학적 재능이 있어 조정으로 들어가 비부랑에 임명되었다가 중서승으로 승진한다.

252년에 손량이 즉위하자 위소, 설영, 주소, 양광과 함께 오서를 편찬하기 시작했으며, 258년에 육윤의 활약을 보고 그를 황제에게 추천한다. 263년에 촉이 멸망하자 방비를 두텁게 할 것을 건의했으며, 손휴의 대에 같이 오서를 편집한 주소가 어떤 일에 휘말려 옥에 갇히자 이 행위를 막고자 표를 올리지만 손휴는 듣지 않고 그를 처형한다.

2.2 손호 즉위 후

264년에 손호가 즉위하자 서릉정후로 임명되었으며, 267년에 손호가 새 궁전을 만들면서 규모를 방대하게 해 진주와 옥으로 장식했는데, 이 때가 또 성하 계절로 이로 인해 농업과 수비가 동시에 황폐해졌다. 화핵은 이 행위를 막겠다고 표를 올리지만 손호는 듣지 않고 화핵에게 동관령 우국사의 벼슬을 내렸으며, 또 국고가 바닥나는데도 사치를 부리자 상소문을 올렸지만 손호는 화핵이 늙어서 그렇다면서 자신의 앞에서 상소문을 다시 쓰라고 명하자 화핵은 거기서도 듣지 않는 깡을 보여준다.

269년에 육개가 죽자 육개의 아들 육위를 추천하며[2], 271년에 손호가 어머니와 모든 비첩을 거느리고 화리로 나오려고 하자 화핵은 이 행위를 막으려고 나와서 막는 것을 성공한다. 271년에 하정이라는 자가 주장한 성계를 뚫어 회수와 장강을 연결시키자는 명령설영이 맡았다가 큰 돌이 너무 많으니 돌아갔는데, 272년에 하정이 비리가 드러나 주살되자 손호는 엉뚱하게 설영의 일을 문제삼아 옥에 가둔다.

화핵은 이 행위를 막기 위해 상소를 올려 설영은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오나라가 망할 때까지 직책을 이어가는데 덕분에 후대인들한테 악독한 조정에서 죽지 않고 높은 자리를 유지했다고 비판받았다(…), 273년에 위소가 손호가 주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사형에 처하려고 하자 이 행위를 말리려고 상소를 올리지만 받아들이지 않아 위소는 처형된다.

275년에는 소인배가 하소라는 자와 누현이 만나서 손호를 비방했다고 누명을 씌우자 손호는 누현을 광주로 귀양을 보냈는데, 화핵은 이 행위를 막기 위해 표를 올리지만 오히려 손호는 그의 아들 누거까지 함께 교지로 유배를 보내 결국 누현과 누거은 죽는다. 하소 또한 중풍 때문에 잠시 관직을 떠난 것을 핑계로 사형되었는데, 이어서 화핵도 면직되었다가 몇 년 후에 죽는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촉이 망하자 손휴에게 방어를 강화할 것을 건의하고 손호가 진을 공격하려고 하는 것을 막는 역할로 나온다. 이후 면직되어 "이 아름다운 국토가 남의 것이 된다니" 하며 탄식하면서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4 미디어 믹스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는 지력, 정치,매력이 70대의 문관형의 능력치를 가지고 나온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17/26/72/78. 병법은 정란, 조영뿐이라 전장에 들고 갈 병법이 없다. 내정이나 시키자.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19/22/75/75/72에 특기는 꼴랑 2개. 그나마 하나는 농업이라 정치 능력치를 살릴 수는 있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20/24/71/78/68로 위소보다 능력치가 높다. 수명이 길고 지력이 71이상이기 때문에 원한다면 발전시킬 여지는 충분하다.

후반기의 인물이기 때문에 삼국지 12에서는 당연히 짤렸거니 했건만 PK에서 군사 특기를 가지고 등장. 내정 관련 비책을 많이 지니고 있다. 일러스트는 본인의 주특기인 손호에게 상소를 올리는 모습인 듯 하다.

삼국전투기에서 소년탐정 김전일의 주인공 김전일으로 등장한다. 자기는 옳은 말을 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죽기 때문이라고...
  1. 건강실록을 따랐을 때의 생몰년도. 그 이외의 사서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2. 그가 추천한 인재는 육윤과 육위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