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玹
(1855.12.11~1910.9.10)
파일:Attachment/황현/황현.jpg |
1 개요
나는 조정에 벼슬하지 않았으므로 사직을 위해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허나 나라가 오백 년간 사대부를 길렀으니, 이제 망국의 날을 맞아 죽는 선비 한 명이 없다면 그 또한 애통한 노릇 아니겠는가? 나는 위로 황천에서 받은 올바른 마음씨를 저버린 적이 없고 아래로는 평생 읽던 좋은 글을 저버리지 아니하려 한다. 길이 잠들려 하니 통쾌하지 아니한가. 너희들은 내가 죽는 것을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라.(吾無可死之義 但國家養士五百年 國亡之日 無一人死難者 寧不痛哉? 吾上不負皇天秉彝之懿, 下不負平日所讀之書. 冥然長寢, 良覺痛快. 汝曹勿過悲.)
-자결에 앞서 남긴 유서 中-
매천야록으로 유명한 구한 말의 재야 문인, 호는 매천, 자는 운경이다.
2 생애
철종 6년 전라도 광양현 봉강면 서석촌에서 황시묵과 풍천 노씨 부부 사이에서 출생했다. 장수 황씨 가문 출신인데 조상 중에 유명한 인물로는 세종조의 명재상 황희 정승과 임진왜란의 명장 황진이 있다. 그러나 그의 가문은 인조반정 이후에 쇠락해 당시 시골 유생 정도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황현은 11세부터 천사 왕석보(川社 王錫輔)(1816~1868)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그의 동문으로는 대종교로 유명한 나철, 계몽운동가 이기 등이 있다.
황현은 1888년 34세로 성균관 생원이 되었는데 이는 그가 상당한 재능을 가진 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승만이나 김구조차도 과거에 응시해서 떨어진 전력이 있다. 하지만 황현은 과거장의 부패에 실망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조선의 대표적인 재야 인사가 된다. 그는 추금(秋琴) 강위(姜瑋)를 스승으로 하여 영재(寧齋) 이건창(李建昌), 창강(滄江) 김택영(金擇榮) 등과 교유하며 학문을 쌓았고 특히 다산 정약용의 저서를 연구하며 이를 크게 고평가했다.
전라도 구례군 간전면 만수동[1]으로 이주한 황현은 그곳에서 16년을 살면서 많은 저술활동을 했는데 이중에서 대표적인 것들이 매천야록과 오하기문이다. 매천야록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 참조.
1902년 구례군 광의면 월곡리로 다시 이주한 황현은 을사조약 이후 자결한 조병세, 민영환 등의 애국지사들에 대한 추모 시를 지어 그들의 혼을 애도했다. 아래는 조병세의 죽음을 듣고 지은 시다.
대신이 국난에 죽는 것은 여러 벼슬어치들 죽음과는 다르네 큰 소리내며 지축을 흔드니 산악이 무너지는 것 같아라 (…) 인생은 늦은 절개를 중히 여기고 수립하는 일은 진실로 어렵고 삼가야 한다 낙락장송은 오래된 돌무더기에서 송진 향기 천 년을 가리라 |
민영환의 죽음에는 혈죽이란 시를 지어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또한 일제에 빌붙은 친일파들을 조롱하는 시들을 지어 그들의 행태를 풍자하기도 했다. 이후 황현은 1907년부터 구례군 광의면 지천리에 호양학교를 지어 신학문을 가르쳐 인재들을 양성하려 했지만 기울어가는 대세를 막을 수는 없었다.
1910년 8월 29일, 이른바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의 주권이 박탈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자 황현은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소주에 아편을 섞어 마셔 목숨을 끊었다. 향년 56세였다.
난리 통에 어느새 머리만 희어졌구나 몇 번 목숨을 버리려 하였건만 그러질 못하였네 하지만 오늘만은 진정 어쩔 수가 없으니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만이 아득한 하늘을 비추는구나. 요사한 기운 뒤덮어 천제성(天帝星)도 자리를 옮기니 구중궁궐 침침해라 낮 누수(漏水)소리만 길고나 상감 조서(詔書) 이제부턴 다시 없을 테지 아름다운 한 장 글에 눈물만 하염없구나. 새 짐승도 슬피 울고 산악 해수 다 찡기는 듯 무궁화 삼천리가 이미 영락되다니 가을 밤 등불아래 책을 덮고서 옛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승에서 지식인 노릇하기 정히 어렵구나. 일찍이 조정을 버틸만한 하찮은 공도 없었으니 그저 내 마음 차마 말 수 없어 죽을 뿐 충성하려는 건 아니라 기껏 겨우 윤곡(尹穀)을 뒤따름에 그칠 뿐 당시 진동(陳東)의 뒤를 밟지 못함이 부끄러워라. |
경재(耕齋) 이건승(李建昇)은 황현의 자결을 듣고 시를 지어 황현의 죽음을 애도했다.
의를 이룸이 예로부터 전공보다 높거니와/이 시(詩)야말로 겨레의 충성심을 깨우쳤다네/과연 벌족들은 너무도 잠잠한데/한 포의(布衣) 마침내 해동(海東) 이름 드높였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