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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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역대 국왕
33대 성덕왕 김흥광34대 효성왕 김승경35대 경덕왕 김헌영
시호효성왕(孝成王)
김(金)
승경(承慶)
생몰년도음력? [1] ~ 742년 5월 (21세 ~ 22세)
재위기간음력737년 ~ 742년 5월 (5년)

1 개요

효성그룹의 왕이 아니다. 물론 모 아이돌과도 전혀 상관없다.
신라의 제34대 왕. 성덕왕의 차남. 어머니는 성덕왕의 계비인 소덕왕후炤德王后, 비는 739년 맞이한 이찬(伊飡) 김순원順元의 딸 혜명惠明이다.

성덕왕의 둘째 아들로 형이었던 중경이 717년에 죽었으므로, 724년에 태자로 책봉되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생년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추정 가능한데, 소덕왕후는 720년 3월에 성덕왕과 혼인하여 724년 12월에 죽었다. 이로 미뤄 보면 721년~724년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동생인 경덕왕이 있으므로 721년~722년 사이에 출생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리고는 재위 5년만에 승하했으니 22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안습.

즉위 직후 선대왕 때 보낸 사자의 답신으로 738년 당나라에게 "개부의동삼사 신라왕(開府儀同三司 新羅王)"에 책봉되고 도덕경을 받았다. (당의 국교는 도교였다.) 다음해에는 동복 아우인 김헌영을 파진찬[2]으로 삼았다. 이 사람이 바로 후의 경덕왕.

그런데 효성왕이 그 해인 739년 3월에 혼인을 했는데 동년 5월에 파진찬으로 임명한 동생 김헌영을 태제로 책봉한다. 혼인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데다가 효성왕의 나이가 혈기왕성한 청년기였으므로 후계자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한 나이였는데도 지나치게 빨리 동생을 후계자로 책봉한 것은 좀 석연치 않은 부분. 정치적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수명이 짧았던 것을 보아 효성왕이 병약했기 때문일지도 혹은 생식능력에 뭔가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진실은 저 너머에.

740년 파진찬 영종의 반란이 있었는데,[3] 반란의 원인은 영종의 딸이 효성왕의 후궁이 되어 왕의 총애를 받았는데 왕비가 이를 시기하여, 그의 족당과 함께 후궁을 모살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단순히 투기싸움에 의한 난으로 치부될 수 있으나 이 때부터 태종 무열왕계가 이룩한 전제왕권이 약화되기 시작했다는 연구경향이 있다.

742년 왕이 젊은 나이에 죽자 왕의 유언에 따라 유해를 법류사 남쪽에서 화장하여 동해에 뿌렸다.

2 삼국사기 기록

一年春二月 효성왕이 즉위하다
一年春二月 죄수를 사면하다
一年春三月 사정부의 승을 좌로 바꾸다
一年春三月 정종을 상대등으로 삼고 김의충을 중시로 삼다
一年夏五月 지진이 일어나다
一年秋九月 유성이 태미에 들어가다
一年冬十月 당에 갔던 사신 사찬 포질이 돌아오다
一年冬十二月 당에 사신을 보내다
二年春二月 당 현종이 성덕왕의 죽음을 조문하는 사신을 보내고 관작을 추증하다
二年春二月 당 현종이 사신 형숙을 보내 효성왕을 책봉하다
二年春二月 당 현종이 양계응을 부사로 삼아 신라에 보내다
二年春二月 효성왕이 당의 사신 형숙 등에게 보물과 약품을 주다
二年春二月 당에서 사신을 보내 왕비 박씨를 책봉하다
二年春三月 사신 김원현을 당에 보내 새해를 축하하다
二年夏四月 당의 사신 형숙이 《도덕경》 등의 책을 왕에게 바치다
二年夏四月 흰무지개가 나타나고 강물이 핏빛으로 변하다
三年春一月 효성왕이 사당에 참배하다
三年春一月 신충을 중시로 삼다
三年春一月 선천궁이 완성되다
三年春一月 당 사신 형숙에게 선물을 주다
三年春二月 김헌영을 파진찬으로 삼다
三年春三月 김순원의 딸 혜명을 효성왕비로 삼다
三年夏五月 김헌영을 태자로 책봉하다
三年秋九月 완산주에서 흰까치를 바치다
三年秋九月 여우가 월성 궁안에서 울다
四年春三月 당에서 사신을 보내 왕비를 책봉하다
四年夏五月 진성이 헌원대성을 침범하다
四年秋七月 여인이 정치를 비방하다가 사라지다
四年秋八月 파진찬 영종이 반역을 꾀하다 죽임을 당하다
五年夏四月 정종과 사인이 노병을 사열하다
六年春二月 동북쪽에 지진이 일어나다
六年夏五月 유성이 삼대를 침범하다
一年夏五月 효성왕이 죽다

효성왕부터 삼국사기 9권이 시작된다.
  1. 추측 년도는 721년 혹은 722년. 이유는 후술
  2. 4등위 관위로, 해양 업무, 특히 교역을 관장하는 벼슬. 역시 가장 유명한건 태조 왕건최승우.
  3. 이를 보면 파진찬이 여럿이거나 아니면 영종이 뒤를 이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