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왕

75px
신라의 역대 국왕
32대 효소왕 김이홍33대 성덕왕 김흥광34대 효성왕 김승경
시호성덕왕(聖德王)
김(金)
융기(隆基) / 흥광(興光)[1] / 지성(志誠)[2]
생몰년도음력691년? [3] ~ 737년 2월 (47세?)
재위기간음력702년 7월 28일 ~ 737년 2월 (36년)

1 개요

신라의 제33대 왕

고려문종대왕, 조선세종대왕이 있다면 신라에는 성덕왕이 있다.

신문왕(神文王)의 둘째 아들이자 효소왕의 동복 아우로, 효소왕이 요절하자 국인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형 효소왕이 16세의 어린 나이로 죽은 것을 감안하면 이 왕도 12세 가량의 소년기에 즉위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재위기간이 길기는 했지만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길어야 40대 후반 정도.

이 시기에는 왕권이 강화되어 집사부의 중시[4]가 정치의 중심이 되었으며, 상대적으로 귀족들의 화백회의의장이었던 상대등의 권한은 약화되었다.

장남 김중경은 출가해 당나라에서 출세했고, 차남과 삼남이 각각 34대 효성왕, 35대 경덕왕이 되었다.

2 업적

당나라에 빈번하게 사신을 파견했으며 714년에는 통문박사라는 대당 외교 문서 담당 기관을 만들기도 하였다. 722년에 정전제도를 실시하였는데, 이는 실제로 국가가 토지를 수여한 것이 아니라 자영농민의 토지소유를 인정했다는 뜻으로 이를 바탕으로 국가는 많은 세를 거둬들일 수 있게 되어서 국가재정의 안정을 가져와주었다. 율령제와 조용조 조세방식이 본 궤도에 오른 것이다.

3 전쟁

731년, 일본이 후지와라 나카마로의 지휘 아래 300척의 군함을 이끌고 쳐들어왔으나 고래밥이 되었격퇴하였다. 일본의 신라 침공 계획의 원인이 된 '왕성국 사건'도 734년인 이 때 벌어졌는데, 이는 일본의 침공을 격퇴했다는 자부심 때문으로 보인다.

733년 당나라의 요청을 받고 발해(무왕 때)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으나[5], 이 결과로 735년 당으로부터 패강(대동강)이남의 지배권을 인정받게 되었다.[6]

4 명군

그의 치세는 태종 무열왕 때부터 상승하던 신라의 국력이 정점에 이르렀던 시대였다고 평가받는다. 아버지나 형에 비해서 35년이나 재위했고 그 덕에 《삼국사기》의 기록이 상대적으로 다른 삼국시대 왕들에 비해 기록이 상당히 많으며, 신라의 태평성대를 완성시킨 왕이었으나 인지도는 낮은 편. 고려 문종이 그렇듯 큰 정치적 격변 없이 태평한 나라를 통치했기 때문인 모양이다.

또 성덕왕의 치세에는 으레 사면이 이루어졌는데, 안정복동사강목에서 왕이 백성을 위한답시고 사면을 자주 했지만 이런 식으로 자주 사면하면 범죄자를 제대로 처벌할 수 없고 상습범이나 중죄인(역적 제외)까지 덕을 베푼다고 사면하다가는 사람들이 범법행위를 우습게 알게 된다고 비판했다.

5 삼국사기 기록

一年秋七月 성덕왕이 즉위하다
一年秋九月 사면하다
一年秋九月 관작을 한 급씩 올려주다
一年秋九月 일년간 조세를 면제해주다
一年秋九月 원훈을 중시로 삼다
一年冬十月 상수리나무 열매가 밤으로 변하다
二年春一月 신궁에 제사지내다
二年春一月 당나라에 방물을 바치다
二年秋七月 영묘사에 불이 나다
二年 도읍에 홍수가 일어나다
二年 원훈이 물러나자 원문을 중시로 삼다
二年 일본국 사신이 오다
二年 김사양을 당에 보내다
三年春一月 웅천주에서 영지를 바치다
三年春三月 김사양이 돌아와 《금광명최승왕경》을 바치다
四年夏五月 김원태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다
四年春一月 원문이 죽자 신정을 중시로 삼다
四年春三月 당에 방물을 바치다
四年夏五月 가뭄이 들다
四年秋八月 노인들에게 술과 음식을 하사하다
四年秋九月 살생을 금지하다
四年秋九月 당에 방물을 바치다
四年冬十月 동쪽 주군에 기근이 들어 진휼하다
五年春一月 인품을 상대승으로 삼다
五年春一月 기근이 들어 진휼하다
五年春三月 뭇별이 떨어지다
五年夏四月 당에 공물을 바치다
五年秋八月 신정이 물러나자 문량을 중시로 삼다
五年秋八月 당에 공물을 바치다
五年秋八月 곡식이 익지 않다
五年冬十月 당에 공물을 바치다
五年冬十二月 사면하다
六年春一月 백성들이 굶어 죽어 곡식을 나눠주다
六年春二月 사면하다
六年 백성들에게 오곡의 종자를 하사하다
六年冬十二月 당에 공물을 바치다
七年春一月 사벌주에서 영지를 바치다
七年春二月 지진이 일어나다
七年夏四月 토성이 달을 범하다
八年春三月 청주에서 흰 매를 바치다
八年夏五月 가뭄이 들다
八年夏六月 당에 방물을 바치다
八年夏六月 죄수를 사면하다
八年春一月 천구 별이 떨어지다
八年 당에 방물을 바치다
八年 지진이 일어나다
十年春三月 봄에 눈이 내리다
十年夏五月 도살을 금지하다
十年冬十月 왕이 남쪽을 순수하다
十年冬十月 중시 문량이 죽다
十年冬十一月 왕이 백관의 잠계을 짓다
十年冬十二月 당에 방물을 바치다
十一年春二月 당에 방물을 바치다
十一年春三月 위문을 중시로 삼다
十一年春三月 당에서 노원민을 사신으로 보내다
十一年夏四月 온수에 행차하다
十一年秋八月 김유신의 아내를 부인으로 봉하다
十二年春二月 전사서를 설치하다
十二年 당에 방물을 바치다
十二年冬十月 당에서 김헌종이 돌아오다
十二年冬十月 당 현종이 성덕왕을 책봉하다
十二年冬十月 위문이 물러나다
十二年冬十二月 사면하다
十二年冬十二月 개성을 쌓다
十三年春一月 효정을 중시로 삼다
十三年春二月 상문사를 통문박사로 고치다
十三年春二月 김수충이 당에서 숙위하다
十三年春閏二月 박유가 당에 가서 정월을 축하하다
十三年 가뭄이 들어 전염병이 돌다
十三年 상수리나무 열매가 밤으로 변하다
十三年冬十月 당 현종이 신라사신들에게 연회를 베풀다
十四年春三月 김풍후가 당에 가서 공물을 바치다
十四年夏四月 청주에서 흰 참새를 바치다
十四年夏五月 사면하다
十四年夏六月 가뭄이 들어 거사 이효가 비를 빌다
十四年秋九月 금성이 서자성을 가리다
十四年冬十月 유성이 자미원을 침범하다
十四年冬十二月 유성이 태미원에 들어가서 죄인을 풀어주다
十四年冬十二月 왕자 중경을 태자로 봉하다
十五年春一月 유성이 달을 침범하다
十五年春三月 당에 방물을 바치다
十五年 성정 왕후를 궁에서 내쫓다
十五年 태풍이 불어 숭례전이 무너지다
十五年 김풍후가 신라로 돌아오다
十五年夏六月 가뭄이 들어 거사 이효가 비를 빌다
十六年春二月 의박사·산박사를 두다
十六年春三月 새 궁을 세우다
十六年夏四月 지진이 일어나다
十七年夏六月 황룡사탑에 벼락이 치다
十七年 물시계를 만들다
十七年 당에 공물을 바치다
十七年冬十月 유성이 묘성에서 규성으로 들어가다
十七年 천구가 간방에 떨어지다
十七年 한산주에 여러 성을 쌓다
十八年春一月 당에 하정사를 보내다
十八年秋九月 미륵사에 벼락이 치다
十九年春一月 지진이 일어나다
十九年 배부를 상대등으로 삼다
十九年春三月 김순원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다
十九年夏四月 큰 비가 내리다
十九年夏五月 해골을 묻다
十九年夏五月 완산주에서 흰 까치를 바치다
十九年夏六月 왕비를 왕후로 책봉하다
十九年秋七月 웅천주에서 흰 까치를 바치다
十九年 누리 떼가 곡식을 해치다
十九年 사공이 물러나자 문림을 중시로 삼다
二十年秋七月 정인을 시켜 북쪽 경계에 성을 쌓다
二十年 겨울에 눈이 내리지 않다
二十一年春一月 선종을 중시로 삼다
二十一年春二月 도읍에 지진이 일어나다
二十一年秋八月 백성들에게 정전을 나누어주다
二十一年冬十月 김인일을 당에 보내다
二十一年 모벌군에 성을 쌓다
二十二年春三月 당에 미녀를 바치다
二十二年夏四月 당에 방물을 바치다
二十二年 지진이 일어나다
二十三年春一月 왕자 승경을 태자로 세우다
二十三年春一月 사면하다
二十三年春一月 웅천주에서 영지를 바치다
二十三年春二月 김무훈을 당에 보내 정월을 축하하다
二十三年冬十二月 당에 방물을 바치다
二十三年冬十二月 소덕왕비가 사망하다
二十四年春一月 흰 무지개가 나타나다
二十四年春三月 3월에 눈이 내리다
二十四年夏四月 우박이 내리다
二十四年 선종이 물러나자 윤충을 중시로 삼다
二十四年冬十月 땅이 움직이다
二十五年夏四月 김충신을 당에 보내 정월을 축하하다
二十五年夏五月 김근질을 당에 보내 조공하다
二十六年春一月 죄수를 사면하다
二十六年 당에 하정사를 보내다
二十六年夏四月 위원을 대아찬으로 삼다
二十六年夏四月 대양을 사찬으로 삼다
二十六年冬十二月 수창궁을 수리하다
二十六年冬十二月 배부에게 궤장을 하사하다
二十七年秋七月 김사종을 당에 보내 방물을 바치다
二十七年秋七月 당에 자제들의 국학 입학을 청하다
二十七年 김사종이 숙위하다
二十七年 배부가 물러남을 수락하다
二十七年 사공을 상대등으로 삼다
二十八年春一月 당에 하정사를 보내다
二十八年秋九月 당에 방물을 바치다
二十九年春二月 김지만을 당에 보내 조회하게 하다
二十九年冬十月 당에 방물을 바치다
三十年春二月 당 현종이 김지량을 태복소경원외치에 제수하다
三十年夏四月 사면하다
三十年 늙은이에게 술과 음식을 하사하다
三十年 일본군이 습격하다
三十年 백관이 거노를 쏘는 것을 보다
三十一年冬十二月 사공 등을 장군으로 삼다
三十二年秋七月 당 현종이 군대를 요청하다
三十二年冬十二月 김지렴을 당에 보내 사례하다
三十三年春一月 김충신이 당 황제에게 부사로 삼아줄 것을 요구하다
三十三年夏四月 김단갈단을 당에 보내 정월을 축하하다
三十三年 당 황제가 김지렴에게 홍려소경원외치의 관작을 주다
三十四年春一月 형혹이 달을 범하다
三十四年春一月 김의충을 당에 보내 정월을 축하하다
三十四年春二月 김영이 당에서 죽다
三十四年 당 현종이 패강 이남의 땅을 주다
三十五年夏六月 패강 이남의 땅을 준 것을 사례하는 표문을 올리다
三十五年冬十一月 김상을 당에 보냈는데 도중에 죽다
三十五年 평양주와 우두주의 지세를 살펴보다
三十五年 개가 사흘 동안 짖다
三十六年春二月 김포질을 당에 보내 정월을 축하하고, 방물을 바치다
一年 성덕왕이 죽다

문무왕급으로 기록이 많다.

삼국사기 8권은 신문왕부터 시작하여 성덕왕에서 끝난다.

  1. 원래 융기를 사용했다가 흥광으로 개명했다. 이는 동시대의 당나라 황제였던 당현종 이융기(唐玄宗 李隆基)의 이름과 같았기 때문에 피휘한 것.
  2. 《구당서》에 등장하는 이름이다. 김지성(金志誠)이라는 이름은 성덕왕의 신하인 중아찬 김지성의 이름이다. 김지성이 사신으로 갔는데 중국측 사관이 성덕왕의 이름으로 잘못 기록된것 같다.
  3. 삼국유사 탑상 오대산 오만진신조에는 효소왕이 26세에 사망했다고 하였고, 효소왕의 동생인 성덕왕이 22세에 즉위하였다고 한다. 실제로는 16세에 사망했으니, 성덕왕은 실제로는 12세로 즉위한걸로 추정되어, 그래서 추측 년도는 691년이다.
  4. 시중
  5. 이때 대장으로 참전한 사람이 김유신의 손자인 김윤중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당나라에서 신라에 파병을 요구할 때 '듣건대 신라에 김유신의 손자 김윤중이 있다고 하니 그 사람을 보내시오'라고 김윤중을 콕 찍어서 언급했다고 한다. 다만 이는 김유신 열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고, 기사에는 태복원외경 김사란이 갔다고 한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귀환했다고 한다.
  6. 물론 이전에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