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우

崔承祐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삼국시대의 인물. 후백제의 문인 겸 관료.

통일신라 말기 최치원, 최언위와 더불어 신라삼최로 불리며 빼어난 문장력과 학식을 지닌 인물로 알려졌다. 본관은 경주다. 890년 중국 당나라에서 빈공과에 응시해 급제, 관직에 있다가 귀국하였고 한반도에서 후삼국시대가 열리자 후백제에 임관한다. 그가 어떻게 후백제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는 않으나, 아마도 망해가는 신라를 보고 대안으로서 후백제의 견훤을 생각하고 그의 밑에 들어간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저서로는 《호본집》이라는 아마도 최승우 본인의 문집으로 추정되는 책 5권을 지었다고 하나, 오늘날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의외로 조선시대의 일부 기록에서는 중국에서 도술을 배워 신라에 퍼뜨린, 한국 도맥의 시조격 인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2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태조 왕건에서는 배우 전무송이 연기하였다. 여기에서는 견훤책사로 등장한다. 태조 왕건의 견훤을 항우라고 한다면 최승우는 항우의 모사인 범증 포지션이면서 한편으로는 제갈량의 포지션이기도 하다. 애시당초 견훤이 모셔올 때도 삼고초려로 모셔왔고, 조물성 전투에서 수세에 몰린 왕건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사자로 파견되었을 때 수레를 타고 깃털 부채를 들면서 고려군의 진중으로 이동하는 장면은 영락없는 제갈량의 모습이다.

사실 최승우의 출신을 생각해보면 실제로는 문신 관료였을 가능성이 높아보이지만, 태조 왕건에선 견훤이 전형적인 저돌형 맹장으로 등장하는 바람에 누군가가 책사의 역할을 해야 했는데, 최승우를 여기에 배정한 것으로 보인다. 직책이 파진찬[1]이라서 그런지 본명보다 파진찬으로 자주 불리운다. 이보시게 파진찬~~~

본래 초탈한 신선같은 성격으로 높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당나라에서 돌아온 뒤 백계산 옥룡사에 은거하며 살고 있었다. 작중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도선대사와 만나 앞일을 묻는 장면이었는데, 이 때 도선은 그에게 '그대가 모시게 될 주인에겐 주인의 의자가 없다'라고 하며, 어두운 앞날이 예정되어 있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한편으로 최승우를 만나기 전에는 자신의 제자인 경보스님에게 '현자가 땅을 잘못 찾아왔다'라고 매우 안타까워 했다. 아 도선님 스포일러 쩌네여

이후 견훤이 그의 인물됨을 알고 직접 찾아가 책사로 등용하였고, 죽을 때까지 견훤과 함께 한다. 처음에는 능환이 최승우의 인물됨을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성미 급한 추허조를 보냈고, 그 뒤 견훤이 직접 찾아간다. 재주가 비범하고 성품도 부드러운 뛰어난 책사였으며, 태봉고려에 타격을 주는 계책을 내놓아 상당한 성공을 거뒀는데, 궁예에게 자객을 보내 상처를 입히면서 궁예의 병이 악화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실제로 서서히 타락의 기미를 보이던 궁예는 이 자객들의 공격을 받은 이후로 정신질환이 더 악화되어서 태봉국을 그야말로 막장으로 몰아넣는다. 실제로 최승우는 도우를 고려로 파견하기 이전에 도우에게 "비록 태봉국의 황제를 죽이지는 못했으나 지금까지도 그 일로 어마어마한 이득을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도우'라는 승려를 첩자로 파견하여 태봉 조정을 교란시키면서 왕건을 제거 직전까지 몰아넣은 것, 송악에 대한 기습공격으로 고려의 수군을 전멸시키다시피 한 것 등 지략에 능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훗날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신라에게는 유화책을 쓰고 후백제와는 격전을 벌이는 대외정책을 채택했던 것처럼, 최승우 역시도 신라와는 손을 잡고 고려를 쳐야한다는 전략을 내세운다.후삼국판 新나제동맹? 하지만 이찬 능환 등 후백제 신료들과 장수들이 이미 병약해질대로 병약해진 신라를 먼저 먹고 고려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최승우와 대립한다. 최승우는 신라가 망국의 징조가 뚜렷하긴 하지만 천년의 사직을 지켜온 나라이며 아직까지 출중한 인재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능환은 최승우에게 '한때 신라의 왕경인 서라벌 출신이라서 그런 것 아니냐'면서 지역감정까지 놓는다. 이 때 최승우는 몹시 당황스러워하는데(...) 고심 끝에 견훤이 신라를 먼저 치는 노선에 손을 들어주게 된다.

비록 그의 진언을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최승우는 견훤의 신라 공격을 적극 돕고 또 전략을 기획한다. 견훤이 왕건을 위기로 몰아 넣었던 조물성 전투, 공산 전투, 송악 기습작전 등의 계책들도 모두 최승우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게 무섭다던 유금필도 최승우의 계략에 말려 사로잡힐 뻔 했다. 특히 작중에서 궁예가 미쳐가는 계기가 암살자의 독화살에 맞은 탓으로 설정되어 있고, 그 암살계획을 최승우가 주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태봉의 멸망에 회심의 일격을 날린 숨은 공로자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최승우의 복안은 국력이 쇠약해진 태봉을 백제가 도모하려는 것이었으나, 그 전에 왕건이 선수를 쳐서 고려를 세운다. 이전에는 최승우가 고려 건국이라는 소식을 듣고 당황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오히려 극중에서 최승우는 견훤에게 고려의 건국을 알리는 것으로 묘사되며, 당황하는 것은 견훤 혼자.

하지만 내놓은 계책이 100% 성공한 것은 아니라 종종 실패하는 모습도 나오는 편이며, 견훤이 놀랄 때 같이 놀라는 역할 또한 자주 담당하기도 했다(...). 다만 최승우의 계책이 실패하는 장면의 대부분이 견훤이나 후백제의 장수 및 신료들이 최승우의 조언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실제로 작중 견훤과 장수들이 전투에 실패한 뒤 "파진찬의 말을 들을걸..."이라고 후회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어쨌든 최승우는 후백제의 앞날이 어둡다는 것을 직감하는 가운데서도 신하의 도리로 견훤을 충성스럽게 보필하였는데, 견훤이 늙어가면서 슬슬 말도 안 듣는데다 이후의 전투에서 고려에게 점점 밀리면서 등창까지 난 노구를 이끌고 열심히 도망만 치던 와중에도 최승우는 군졸복으로 갈아입고 이곳저곳 뛰어 다니면서 그런 견훤을 끝까지 보필하려 하였다. 여러모로 능력도 출중한데, 운이 없는 케이스라 할 만하다. 애초에 견훤이 최승우의 비범한 인물됨을 알고 직접 찾아가서 무릎까지 꿇는 정성을 다해 데려온 인물이건만 후반부로 갈수록 "파진찬도 늙었구만.."이라며 최승우의 조언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도 최승우의 조언에 대해선 늘 관심을 가지고 아낀다. 이찬 능환이 후반부엔 매사 무시당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며, 견훤이 최승우의 간언대로 시행하지는 않더라도, 경청하거나 혹은 견훤 자신이 먼저 의견을 묻는다.

견훤의 후계 구도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했는데, 금강신검보다 왕의 재목임은 알지만 국가 내부의 갈등과 혼란을 피하기 위해 적장자인 신검을 지지하였다. 하지만 견훤이 여러 차례 신검에게 실망하면서 신검이 아닌 금강을 후계자로 삼기로 마음을 굳히자, 최승우는 견훤에게 "기왕 금강을 세우겠다고 결정하셨다면, 혼란을 피하기 위해 신검과 그 형제들과 그 지지자들을 죽여야 한다." 라고 조언을 한다. 아자개 귀부 사건이 발생했을 때 능환은 빨리 아자개를 쳐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최승우는 아무리 급해도 어버이를 치는 자식은 없다며 반대한다. 그렇게 인륜을 중시하던 최승우가 이렇게 1명도 아니고 3명씩이나 자식을 죽이라는 계책을 올리는 걸 보면 그만큼 택도 없는 상황이라는 걸 돌려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실제로 그렇게 되었고

어쨌거나 견훤이 조금은 남아있던 부자의 정 때문에 망설이면서 그 제안을 거부하자, 차선책으로서 최대한 빨리 신검과 그 형제들을 지방으로 내려보낼 것을 제안했고 견훤도 이 제안은 수용한다. 하지만 애초에 신검 형제들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금강에게 보위를 넘겨준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기에 최승우는 나라의 앞날이 어두워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이후 최승우는 직접 금강을 찾아가 나라의 앞날을 위해 신검에게 후계자 자리를 양보해줄 것을 간청하지만, 이미 왕위 계승 여부가 자신의 목숨과 직결된 문제라고 판단한 금강은 이를 완강히 거부한다. 이 최후의 설득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최승우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하는데, 하인을 시켜 자신이 쓴 글들을 태우게 하면서 일부 족자 등을 선물로 주고 자신을 섬기던 사람들을 내보내는 등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신검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최승우의 예감은 현실이 되었고, 군사들을 이끌고 집으로 쳐들어 온 능환의 앞에서 독이 들어있는 차를 마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런데 마시기 전에 그 차를 능환에게 권했다 그리고 그 목이 잘려 금강의 목과 함께 저잣거리에 내걸리게 되었다.

죽기 전에 능환과 대담을 하는 씬은 명장면. 능환은 최승우와 극중 내내 의견차를 보여주고 라이벌 구도를 세우긴 했으나, 능환 역시 최승우의 능력을 높게 사고 있었다. 공적인 일로 대립하며 섭섭함과 원망을 토로하는 장면이 있긴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죽일 정도로 증오심을 품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애초에 최승우를 견훤에게 소개하고 등용을 권유했던 사람이 능환 자신이었다. 같은 주인 옆을 가장 함께 오래 지킨 최측근으로서, 결국 이념차로 최승우를 죽이게 된 안타까운 처지를 보며 슬퍼하는 장면이 백미.

극중에서 최승우는 최응의 라이벌 구도를 세우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실제로 극중에서 조물성 전투, 백제 수군의 송악 기습전 등에서 최응이나 최승우의 말대로 "우리 같은 책사들은 멀리 있어도 서로 잘 알 수 있고 그 인연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특히 최응이 불치병에 걸려 사망하기 얼마 전, 송악 기습전을 통해 예성강 근처에 진을 쳤을 때 최승우는 편지를 보내 최응을 초대했고 최응도 응하여 최지몽을 데리고 초대에 응했다. 이 때 최승우도 본의 아니게 백제 내부의 후계자 구도에 휩쓸려 슬슬 자신의 최후를 예상하고 있던 차라 최응과 대화하며 그 스스로도 어디에 뼈를 묻어야 할 것인지를 쓸쓸하고 담담하게 이야기 하는 장면은 그 두 사람 간의 사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견훤은 최승우를 끝까지 신뢰하며 매우 아꼈는데, 똑같은 말을 해도 다른 신료들이 하면 흘려 듣거나 심하면 역정을 낸 것에 반해 최승우가 하면 귀담아 듣곤 했다. 일례로 다음 보위에 관한 논의를 능환, 능애(견훤의 아우) 등이 꺼내는 족족 견훤에게 무안을 당하거나 때로는 격노를 샀던 것에 반해 최승우가 나중에 조용히 간하면 한층 누그러진 태도로 "그래, 그 친구들 말도 일리가 있긴 한데..."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 것을 들 수 있다. 최승우가 견훤에게 출사한 이래, 견훤은 평생토록 극중에서 최승우에게 언성을 높이거나 모욕을 주는 행위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굳이 따지자면 아자개가 고려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출병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조회에서 논하는데, 최승우가 군사를 일으키는 것에 대해 "실리가 적으며 자식이 부모를 군사로 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계속해서 만류하자 견훤이 "그만하게 파진찬! 이미 군대를 보내기로 하였어!"라며 매우 화를 내며 말을 끊은 게 있긴 한데, 결론적으로 일단 출병시켰음에도 결국 최승우의 만류대로 공격 명령은 내리지 않았고 견훤도 "파진찬의 말이 맞다."며 쓴 눈물을 삼켰다. 어쨌든 견훤이 격노한 상황에서도 최승우가 일단 말을 하면 일단 듣고 화를 누그러뜨리거나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물론 최승우가 사심없이 항상 담백하고 차분한 태도로 처신을 잘한 것도 한몫 했겠지만. 게다가 견훤은 말년에는 금강을 후계자로 세우면서 "날 도와줬던 것처럼 금강이를 도와주게. 난 그저 자네만 있으면 든든하이", "자네하고 내가 세운 나라일세"라 말했을 정도. 이후 쿠데타를 일으킨 신검 일행이 금강과 최승우를 죽였다는 말을 듣고는 불같이 화를 냈다. 아끼던 아들과 같은 급으로 그를 생각했다는 이야기다. 금산사에 유폐된 뒤에 경보대사의 조언으로 금강과 최승우의 천도제를 지내던 견훤은 원통하다는 금강과 최승우의 절규를 환청으로 들을 정도. 다만 금강이라면 모를까, 최승우에 대해선 100% 견훤 혼자만의 생각일 가능성이 높다. 최승우는 일찍 자신의 최후를 예상했고, 그에 대한 준비를 했으니까. 억울한 점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절규를 지를 정도는 아닐 것이다.

어째 견훤의 백제 건국 때부터 백제의 모든 주요 전략은 최승우가 입안하는 연출이 잦다보니, 고려측에선 태평최응이라는 걸출한 참모들이 후백제를 이리 저리 뒤흔드는데 백제측에선 최승우 혼자 머리굴리는 데 바쁘단 느낌까지 든다. 더구나 태평과 최응의 제안이나 전략에 대해 고려의 장수들과 중신들이 대부분 수용하고 잘 따르는데 비하여, 최승우의 제안은 상대적으로 장수들과 중신들의 반발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은 편인데, 후반부로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면서 더 처지가 안습한 편이다.

이는 특히 작중에서 최승우가 제안하는 전략이 신중한 무력사용이나 현재 상황이 불리하여 후일을 기약하자는 것인 경우에 자주 나타났다. 그래서인지 수달, 추허조, 애술과 같은 강골 성향의 무장들은 싸워야 한다며 반발하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또한 호전적인 견훤의 성격으로 인하여 그의 건의가 수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로 인하여 후백제가 입는 피해가 더 커지게 되면서 더욱 안습해진다. 대표적인 예로 김효종이 지키고 있는 대야성을 처음으로 공략할 때 최승우는 신중한 전투를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나주전투에서 수달이 포로로 끌려가 처형당하면서 복수전을 하려는 견훤을 말리지만, 견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공격을 밀어붙이다가 오히려 여러 차례 패배하였던 것이 있다. 후반부의 운주 전투에서도 다음 기회를 노리자는 제안을 하지만 견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갔다가 견훤 자신의 병, 추위, 고려군의 기습 등으로 또다시 패전하는 모습이 나온다.

견훤이 거병할 때부터 보좌했던 능환은 견훤 말대로 늙은 건지 가면 갈수록 입안하는 전략들이 시원찮아 신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마저 들게 하고 뿐만 아니라 가면 갈수록 견훤 못지않게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다. 그중에서 최승우의 의견을 어떻게든 묵살하려는 모습도 자주 보여서 답답한 느낌을 들게 한다. 또 다른 참모인 종훈[2]은 능환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아무래도 최승우나 최응보다는 뒤떨어지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나마 극 후반부의 운주 전투에서 등에 화살을 맞고 사로잡히면서 리타이어. 게다가 운주 전투 이후, 극중에서 최승우는 "어찌해 볼 방책이 없구나. 먹이를 찾는 이리떼만 들끓고, 조정에는 사람이 보이질 않으니.. 오오.. 이를 어이할꼬?"하며 독백하는 모습을 보면...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신검에게 죽는것으로 묘사되었지만 실제론 그의 죽음에 대해선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 고려군에게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후백제가 멸망한 뒤 왕건의 등용 요청을 거절하고 초야로 들어가 여생을 보냈다는 설도 있다.
  1. 신라 관위 17등급 중 4등급에 해당하는 관위이다. 후백제는 신라의 관위체계를 가져오되 개량했기 때문에 극중에서는 이찬이 첫 번째 관등, 파진찬이 두 번째 관등으로 언급된다.
  2. 사서에 기록이 적어서 그렇지, 실존 인물이다. 술사(術士)라고 하는데, 술사라고 하면 점쟁이라는 뜻도 있지만 술책(術策). 그러니까 책략을 꾸미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즉, 실제로는 책사가 아닌 최승우와는 달리 정말로 책사일 가능성도 있다는 소리. 다만 사서의 기록이라는 것이, 운주 전투 때 고려의 소드 마스터에게 사로잡혀 항복했다는 것밖에 없다. 여담으로 극중에서는 살해당하는 것으로 묘사된 백제의 군의(軍醫) 훈겸도 이때 같이 사로잡혀 항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