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

1 개요

興夫.

흥부 : 하아하아 형수님 저 흥분데요

아이고 성님 동상을 나가라고하니 어느곳으로 가오리요

- 육각수, 흥보가 기가 막혀

흥부전주인공으로 부친 사후 형 놀부에게 전재산을 모두 털리고 쫓겨나서 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다가 구렁이에게 공격받는 제비를 구해주고 다리를 치료한 보답으로 그 제비가 물고 온 박씨를 키워 그 박을 갈라보았더니 보물이 나와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자식들의 숫자가 상당히 오락가락한다. 아들 9명, 아들 25명(??!!), 아들 30명(...), 아들 6명 딸 6명... 흥부전이 본래 구전되어오던 거라 오락가락하는 것인 듯. 다만 이 많은 수의 자녀들이 전부 친자식은 아니고 흥부의 마음이 어질어 떠돌아다니는 고아들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 보는 대로 거둬들였기 때문이다. 근데 흥부 경제력에 저러면 휴먼 호딩 아닌가 판본마다 다르지만 친자식만 셀 경우 일단은 한자리 수... 그러니까 흥부는 섹스왕이 아니다

그래도 자식이 많은 것을 보면 형과는 달리 고자는 아닌 듯... 아니, 정력가인 듯하다. 흥부도 대단하지만 이걸 다 낳은 흥부 마누라가 더 대단하다(...) 흥부는 마지막 박을 탄 후에야 첩을 얻었다. 한마디로 그 많은 자식을 혼자서 다 낳았다는 이야기.[1]

몰락한 양반이나 조선 후기 발생하는 초기적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예전보다 가난해진 소작농의 자화상과 꿈이 만들어낸 캐릭터라는 설이 있다. 소설상에서 흥부가 박을 탔을 때 나오는 물건 중 하나가 흥부 자식들이 공부할 책이었다. 물론 시대상으로는 그 때 가장 대표적인 꿈은 벼슬하는 거였다. 조선시대에 공부해서 출세를 할 수 있었던 일의 99.9%가 과거시험 혹은 하급 관리에서 시작하는 것들이라서 그 당시에 공부를 하는 것은 모두 벼슬을 하는 것이 목적이다. 애당초 지금처럼 직업이 세분화가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사농공상에 의해서 직업이 천대를 받았기 때문. 그리고 양반의 경우 3대에 걸쳐 과거에 한 명도 급제하지 못하면 양반의 신분이 박탈됐다. 출세 뿐만 아니라 양반의 작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과거는 어쩔 수 없는 통과의례였던 것.

흥부가의 버전 중엔 놀부가 흥부를 쫒아낸 땅으로 온갖 작물들을 키우는데 그게 고추, 담배, 인삼 등이었다는 것도 있다. 당시 이런 상품 작물을 키우기 위해 그동안 밭 갈던 빈농들의 땅을 빼앗거나 소작하는 자를 쫓아내는 경우도 많아서 흥부는 그런 상업 발달의 과정에서 소외된 자들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전북 남원시 아영면과 동면이 서로 흥부의 고향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아영면은 정조때 만들어진 절충장군임세강지묘라는 비석의 내용을 근거로, 동면은 판소리 흥보가에서 제비가 박씨를 물고 흥부네 집 찾아오는 대목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2 비판과 반론

워낙 유명한 캐릭터인지라 그 유명세 때문인지 흥부에 대해 비판론이(아울러 놀부에 대한 옹호론도) 종종 제기되곤 했다. 특히 7~90년대의 비판은 자식만 많이 낳고 형제에게 손이나 벌리는 게으른 인물이라는 식의 비판이었는데 이는 당시 여전히 남아있었던 산아제한 논리와 자본주의적 사고 방식의 일환이었던 것.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 가족을 늘린 것에 대한 비판도 있다. 가난의 대물림을 통한 고통의 확산이라는 것. 하지만 해당 비판은 당대 사회상과 가치관을 고려하지 않은 비판으로 농사가 국가의 주력산업이자 개인의 생존수단인 그 때, 가족의 숫자는 즉각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노동력이자 재산이며 경쟁력이었다. 아이가 태어날 때 평생 먹을 숟가락을 타고 난다는 인식은 이러한 환경에서 비롯된 것. 또한 아직 피임이라는 개념이 분명하게 정립되지 않았던 그때는 다산은 곧 가정의 화목을 의미했고[2], 이는 다복으로 이어졌다. 애초에 흥부와 놀부 자체가 이러한 당대의 의식을 설화한 것들로 자식이 많은 흥부는 결국 복을 받고, 자식이 없는 놀부는 벌을 받게 된다는 인식이 녹아 있는 것이다. 현대적인 관점에서도 한계에 부딪힌 비판이기도 한데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애 낳는 것이 민폐이므로 애를 낳지 말라는 식의 황당한 이야기로 읽힐 수 있기 때문. [3] 당장 대한민국에서도 20세기 산아제한정책으로 21세기에는 저출산이라는 더 큰 문제를 낳았기 때문이다

혹자는 흥부는 자기가 부자가 되었으면서 정작 빈민에게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판하기도 했지만 실제 흥부전에서는 그동안 자기에게 쌀쌀맞게 굴던 형을 불러오라 그러고 가난한 사람도 식량을 나누어 줄테니 자기를 찾아오라는 말을 할 정도라면 빈민을 박대할 리는 없었을 것이고, 이런 선행은 앞 이야기에서 언급해서 굳이 더 언급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판소리꾼의 퇴근본능 때문에 그랬다 카더라.

3 알고보면 흥부가 놀부보다 더 부지런했다

놀부를 옹호하는 이들이 흥부는 게을러서 가난하고 놀부는 부지런해서 부자라는 주장을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놀부는 그냥 자기가 장남이라는 것을 이용해서[4] 흥부를 땡전한푼 없는 빈털털이로 만들고 내쫓은 후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을 독식한 뒤로는 온갖 민폐를 끼치며 살았을 뿐이지 노력이란 것을 한 적이 일절 없다. 반면 흥부는 형이 내쫓는다고 군말없이 쫓겨나 줬고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온갖 궂은 일을 다 했다. 편지배달, 항구 노가다, 식모에 심지어는 곤장 대신맞는 일까지 했다.

비록 양반이지만 애초에 놀부에게 유산도 다 뺏기고 쫓겨났으니 몰락양반이나 다름없이 이렇다 할 경작지도 없었고 자기가 직접 집을 짓고 밭을 개간해서 먹고 살면서 가족 부양하려고 부두에서 막노동을 하는 것에서부터 기생들 편지 심부름(...)[5] 심지어는 곤장을 대신 맞아주기에 이른다. 이 곤장대행업(?)은 실제 조선 빈민들의 주요 수집원중 하나로 당시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인데 이 매품은 학교에서 맞는 사랑의 매하고는 차원이 다른 문제로 진짜 목숨을 걸고 맞아야하는 일이였다. 그나마 불행인지 다행인지 중간에 조정에서 사면령이 내려와서 혹 다른 버전에서는 흥부가 매품 팔러 간다는 얘기를 들은 이웃 사람이 흥부인 척 하고 매품을 가로채서(또 다른 버전에서는 곤장을 맞을 사람이 그래도 나서줘서 고맙다고 일부 사례금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야말로 현실은 시궁창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즉, 일도 안하면서 형에게 빌붙어 산 인물이라는 것은 잘못된 인식으로 진짜 목숨걸고 가족을 부양했던 인물이다.

형에게 빌붙어 산다는 오해는 흥부가 놀부에게 도와달라고 찾아간 것 때문인데 땡전 한 푼 없이 혼자 많은 자식을 양육하려면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오히려 놀부를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하기 전까지 흥부는 온갖 일을 하면 했지 놀부에게 빌붙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물론 놀부는 역시 놀부답게 거절하고 놀부 마누라 역시 주걱으로 흥부의 따귀를 때린다. 흥부는 그것도 고맙다고 하는게 주걱에 붙은 밥알이 흥부의 뺨에 붙었기 때문이다.여기서 우리는 놀부 마누라가 츤데레인 것을 알 수 있다. 흐, 흥 딱히 너줄려고 밥주걱에 밥알 묻힌 거 아니니깐[6][7] 그리고 생각해보면 이런상황에서도 10명에 가까운 가족들을 부양하면서 한명도 굶어 죽거나 노비로 파는 일이 없었다. 또한 제비 다리를 고치는 것도 생각해보면 가족 부양하기도 버거운 흥부가 제비가 완쾌할 때까지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따진다면 진짜 능력자는 흥부가 아닐까.

아니, 오히려 남에게 피해를 넘어서 범죄자인 놀부 그저 돈만 많다고[8][9] 긍정적으로 보려 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과정은 깡그리 무시한 채 나쁜짓하면 어떠냐 돈만벌면 그만이지라는 사고 방식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다. 즉, 단순히 돈이 많다고 근면성실한 것은 아니며 단순히 돈이 없다고 게으른 것 역시 아니다.

4 현대판 흥부

인간극장에 현대판 흥부가족이 소개 된적이 있어 화제가 된적이 있다.경기도 용인에 사는 김정수(54), 함은주(43) 부부가 그 주인공으로 (2014년 기준) 좁은 집에 현재 무려 13남매가 살고있어서 화제가 되었다.ㅎㄷㄷ

첫방송이 나간뒤 몇년후 장남은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아서 식구수가 더 늘었고, 나머지 형제들도 동생들의 생활비, 교육비를 위해 다들 일찍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생업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환생했다고 한다.
  1. 판본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판본에서는 흥부 아내가 마지막 박은 어쩐지 느낌이 안좋다고 타지 말자고 했지만 결국 타게된다. 거기서 첩이 나오자 아내 하는 말이 '아이고, 그래서 내가 저 박은 타지 말자고 했는데'(......) 그러자 입이 쭉 째진 흥부가 하는 말이 가관으로 "여보 걱정마오, 설마하니 조강지처 박대할까?"
  2. 반대로 아이가 없는 건 이기적인 것으로 보았다. 당장 놀부가 그렇다.
  3. 현대사회에서 가족의 형성과 자녀의 탄생 및 양육은 지극히 근원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아이가 힘드니까 낳지 말라고 비판할 수 있는 타인은 존재치 않는다. 오직 선택에 대한 존중만 있을 뿐.
  4. 조선 중후기에 들어서는 주자가례가 일상 생활을 지배하게 되면서 제사를 지내야하는 장남이 우선적으로 상속받았다. 그러나 이렇게 단독 상속을 받을시 상속 받지 못한 동생을 장남이 보살펴주는 것이 의무였다.
  5. 비슷한 행동을 현대에서 찾는다면 룸살롱 아가씨들 밑에서 삐끼로 일하는 것으로 스타킹이나 생리대를 사다주는 심부름을 하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
  6. 물론 농담이다. 이 미친년은 흥부가 고맙다고 하자 부지깽이를 들고와서 흥부를 두들겨패서 내쫓았다.
  7. 그런데 이게 요상하게 변질되어 흥부와 놀부마누라의 커플링이 있다.
  8. 그나마 놀부의 재산은 자기가 일하거나 투자해서 번 것도 아니고 전부 상속받은 것 뿐이다.
  9. 다만 유념할 것은 놀부에 대한 재해석의 근원은 황금만능주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보다는 시작은 부자였던 이가 말미에 몰락하는 과정에서 당시 시대와는 달리 현재 시각에서 보며 일말의 동정심을 느낀 이들이 놀부를 재해석한 것이 발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