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내셔널 리그 와일드카드 타이브레이커 게임


환호의 순간.

1 개요

2007년 10월 1일에 열린 콜로라도 로키스샌디에이고 파드레스간의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타이브레이크 게임을 다루고 있다. 와일드 카드제도가 94년에 생긴 이래로 현 2013년까지 와일드 카드를 둘러싼 타이브레이크 경기는 총 4번 있었다. 각각 98년, 99년, 13년[1], 그리고 이 항목에서 이야기할 07년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결정 단판승부.

이 경기는 두 팀의 예측불가능한, 그리고 경기 내내 치열했던 공방전으로 인해 지금도 명승부로 회자되곤 하는 경기이며, Rocktober로 상징되는 2007년 시즌 후반기 콜로라도의 기세를 명확하게 상징해주는 경기이기도 하다.

2 Wild Wild West

2007년 내셔널리그 서부지구는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Wild Wild West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매우 치열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일찌감치 떨어져 나갔지만, 4팀이 가열차게 순위경쟁을 펼쳐 나갔는데, 그 중에서도 샌디에이고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1위 싸움이 볼만 했다.

샌디에이고는 평균자책점, 승, 삼진 1위 달성이라는 소위 트리플 크라운과 사이영상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던 제이크 피비와 마지막 노년을 불태우던 그렉 매덕스를 주축으로 선발진과, 트레버 호프먼으로 대표되는 우월한 불펜진이 팀 승리를 견인했다. 타선도 팀의 완전한 중심타자로 부상한 애드리안 곤잘레스와 1라운더 출신으로 장타 포텐이 만개했던 유격수 칼리어 그린, 그리고 사고뭉치로 소문난 밀튼 브래들리가 트레이드되어 온 이후 3-4-5 라인을 찍으면서 약한 타선을 받쳐주고 있었다.

애리조나 역시 샌디에이고처럼 전년도 사이영 위너 브랜든 웹이 중심이 된 투수진이 주축이었다. 타선도 한방이 있는 중심타자는 없었으나, 막 자리를 잡고 있던 유망주들과 기존의 베테랑들이 골고루 장타를 쳐주는, 신구의 조화가 매우 인상적인 팀이었다.

콜로라도는 맷 홀리데이 - 개럿 앳킨스 - 브래드 호프 라는 강력한 중심 타선과, 홈런개수는 줄고 있었으나 여전히 장타는 살아있던 팀의 정신적 지주인 베테랑 토드 헬튼, 그리고 새롭게 떠오르던 신성 트로이 툴로위츠키 등으로 상징되는 강력한 타선이 장점이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빈약한 선발진 때문인지 전반기를 44승 44패로 마치며 간신히 5할을 유지하였고, 시즌 내내 샌디에이고과 애리조나가 벌이던 1위 싸움과는 다소 거리가 있던 상황이었다.

3 Rocktober의 시작

하지만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콜로라도는 마치 단체로 야구 자극제 도핑이라도 해먹은 양 미칠듯한 기세로 승수를 따내기 시작했다. 후반기에만 무려 46승 29패라는 어마어마한 승률을 자랑했고, 특히 9월 16일 이래 11연승을 달성하며 팀 최다 연승 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콜로라도의 후반기는 말 그대로 역발산 기개세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한편 샌디에이고와 애리조나 양 팀은 1위를 둘러싸고 시즌 막판까지 치열하게 다퉜지만, 결국 지구 우승은 90승 72패의 애리조나가 가져갔다. 이때 애리조나는 팀 득점이 실점보다 20점이나 적었는데, 이는 플레이오프 진출팀 역사상 5번밖에 없는 기록이다.

내셔널리그 중부지구에서는 카를로스 잠브라노테드 릴리 원투펀치의 시카고 컵스가 50홈런을 친 프린스 필더라이언 브론이 버티던 밀워키 브루어스의 추격을 따돌리고 지구 우승을 따내면서 2003년 바트만이 망쳐버린 염소의 저주를 해소하려 4년만에 다시 한번 도전에 나섰다.

한편,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에서는 시즌 17경기을 남겨놓은 상황까지 7경기 차 1위를 고수하고 있던 뉴욕 메츠가 갑자기 삽질을 거듭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필라델피아 필리스에게 덜미를 잡히며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플레이오프 탈락을 맞이하고 말았다. 뉴욕 타임즈야구 역사상 가장 엄청난 부진으로 평하기도 한 이때의 메츠는 결국 88승 74패로 지구 2위로 내려앉았을 뿐아니라 1승 차이로 와일드카드 레이스에도 탈락하면서 자신들이 왜 어메이징으로 불리우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4년 뒤, 두개의 명문 구단이 장면을 다시 한번 훌륭하게 재현해냈다.

대진은 애리조나 대 시카고, 필라델피아 대 와일드 카드 팀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의 행방은 89승 73패로 동률을 이룬 샌디에이고와 콜로라도 중 한팀에게로 돌아가게 되었다. 콜로라도가 샌디에이고와의 상대전적에서 11대 8로 앞섰기에 경기장이 콜로라도의 홈구장인 쿠어스 필드로 결정된 가운데, 샌디에이고는 에이스 제이크 피비를, 콜로라도는 3선발인 조쉬 포그를 각각 선발로 내세우며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4 10월 1일, 쿠어스필드

2007년 10월 1일, 쿠어스 필드에서 마침내 경기는 시작되었다.

많은 이들은 경기 전 샌디에이고의 우위를 예상했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당시 사이영 0순위였던 샌디에이고의 에이스 제이크 피비와 콜로라도의 허약한 3선발인 조쉬 포그와의 맞대결은 누가 봐도 뻔했다. 팀 동료인 맷 할러데이가 당시 조쉬 포그가 에이스를 상대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것 때문에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고는 하지만,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때 무게추는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콜로라도가 믿을 것은 포스트시즌 2번 선발에 9이닝 12실점을 기록할만큼 큰 경기에 유독 약했던 피비의 이른바 새가슴 기질과 팀이 자랑하는 강력한 타선 뿐이었다.

그리고 경기는 시작과 함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1회초를 잘 넘어간 조쉬 포그와는 달리 1회 피비는 첫 타자인 마쓰이 가즈오에게 2루타를, 트로이 툴로위츠키에게 안타를, 맷 할러데이에게 볼넷을 내주며 만루를 자초했고, 결국 토드 헬튼의 희생플라이와 개럿 앳킨스에게 안타를 얻어맞으며 2실점하는 등 새가슴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회에는 요빗 토레알바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하면서 당초 예상과 다르게 샌디에이고는 3 - 0까지 밀렸다.

하지만 2회까지 잘 던지던 조쉬 포그도 갑자기 난조를 보이기 시작한다. 3회 제이크 피비, 스캇 헤어스톤의 연속 안타, 브라이언 자일스의 볼넷으로 만든 만루기회를 애드리안 곤잘레스가 만루홈런으로 화답하며, 경기를 4 - 3으로 뒤집는데 성공한다. 이 만루홈런은 애드리안 곤잘레스의 커리어 첫 만루홈런이었다. 그리고 후속타자 칼리어 그린의 안타와 조쉬 바드의 2루타에 이은 브래디 클락의 땅볼로 1점을 더냈고 경기는 5 - 3으로 샌디에이고가 다시 우위를 잡게 되었다. 3회말 토드 헬튼이 솔로포를 쏘아올리며 한점을 추격하였지만, 여전히 경기는 5 - 4로 샌디에이고가 앞서고 있었다.

5회초 애드리안 곤잘레스가 2루타를 때리며 조쉬 포그를 기어이 강판시켰지만, 후속 투수인 테일러 벅홀츠가 잘 막아냈다. 반격에 나선 콜로라도는 5회말 선두타자 트로이 툴로위츠키가 얻어낸 2루타 기회를 후속타자인 맷 할러데이가 안타로 살려내며 다시 경기는 5 - 5로 균형추를 맞추었다.

6회말에는 투수 타석에 대타로 등장한 세스 스미스의 3루타를 마쓰이 가즈오가 희생플라이로 연결시키며 6 - 5로 콜로라도가 다시 경기를 뒤집어냈다.

7회말 개럿 앳킨스가 제이크 피비를 강판시키는 홈런성 타구를 쳐냈지만, 인정 2루타가 되고 말았다. 콜로라도가 다시 한번 멀리 앞서나갈 기회를 잡았지만, 이를 후속 투수인 히스 벨이 잘 막아내며 샌디에이고는 위기를 겨우 벗어났다.

위기 뒤엔 기회라고 했던가. 8회초 올라온 콜로라도 마무리 브라이언 푸엔테스에게 샌디에이고는 제프 블럼의 안타와 연이은 폭투, 그리고 브라이언 자일스의 2루타로 다시 한번 동점을 이뤄낸다. 푸엔테스는 시즌 7번째 블론을 기록했다. 경기는 다시 6 - 6.

콜로라도는 선발 강판 이후 무려 7명의 불펜투수를 가동한 반면, 샌디에이고는 히스 벨의 2.2이닝, 덕 브로케일[2]의 1.2이닝 등 불펜을 길게 가져가고 있었다. 어찌 됐든 양 불펜진의 호투는 계속 되어 8회 이후는 양쪽 모두 실점을 허용하질 않았고, 불펜들의 역투 속에 경기는 13회로 접어들고 있었다.

5 경기는 파드레스쪽으로 기울고...

13회 초, 3이닝을 던진 맷 허지스의 뒤를 이어받아 호르헤 훌리오가 올라왔다. 호르헤 훌리오는 시즌 초 김병현과의 맞트레이드로 한국팬들에게 알려진 선수. 하지만 훌리오는 올라오자마자 브라이언 자일스에게 볼넷을 허용하더니, 후속타자인 스캇 헤어스톤에게 2점 홈런을 허용하며 쿠어스 필드를 순식간에 도서관으로 만들어버렸다. 경기는 8 - 6으로 샌디에이고의 재역전. 투수 타석 대타인 체이스 헤들리에게 안타를 맞으며, 재차 위기를 맞았으나 후속 투수인 라몬 오티즈가 막아내며 후속 실점은 다행히 없었다. 하지만 가라앉은 분위기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아보였고, 가장 큰 문제는 샌디에이고에는 아끼고 아껴둔 Hells Bells 트레버 호프만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2점차 우위를 지키며 와일드카드를 가져다 주리라 믿었던 수호신 호프만은 첫타자인 마쓰이 가즈오에게 2루타를, 트로이 툴로위츠키에게 3루타를, 맷 할러데이에게 다시 3루타를 연속으로 얻어맞으며 순식간에 2점을 헌납했다. 경기는 다시 8 - 8 동점. 토드 헬튼을 고의사구로 내보낸 호프만은, 그러나 제이미 캐롤에게 우익수 쪽 깊은 플라이를 허용했고, 맷 할러데이가 홈 쇄도에 성공함으로서 희생플라이가 되었다. 호프만이 블론 세이브를 저지른 것이다.

최종 스코어 9 - 8로 게임의 승자는 콜로라도가 되었다.

12345678910111213RHE
샌디에이고05000010000028150
콜로라도21101100000039141

승리투수 : 라몬 오티즈
패전투수 : 트레버 호프만

6 후일담

맷 할러데이가 마지막 홈 쇄도때 홈플레이트를 터치했가를 두고 경기 후 가벼운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1루심과 샌디에이고 감독이었던 버드 블랙이 세이프콜을 인정했기 때문에 크게 부각되지 않고, 조용히 사그러들었다[3].

이 경기를 통해 콜로라도는 프랜차이즈 역사상 2번째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되었다. 특히 이전까지 플레이오프 경험이 없었던 선수 중 3번째로 긴 커리어를 지니고 있던 토드 헬튼은 첫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경사를 맞기도 했다. 동부지구 우승팀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대진을 가지게 된 콜로라도는 그 기세를 이어받아 필라델피아를 가볍게 스윕하고, 시카고를 이기고 올라온 애리조나 역시 스윕, 시즌 말의 성적까지 합하여 무려 22전 21승 1패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이뤄냈다. 이는 1936년 뉴욕 자이언츠 이후로 처음이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이뤄낸 7연승도 Big Red Machine이라 불리던 76년 신시내티 레즈가 달성한 이후 두번째이다.

하지만 이렇게 기세좋게 올라가며 야심차게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렸던 콜로라도는 LA 에인절스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차례로 물리치고 올라온 보스턴 레드삭스를 끝내 이겨내진 못했다. 투수진에서 완벽하게 압도당한 콜로라도는 결국 월드 시리즈 4 - 0으로 스윕당하며 파란만장한 여행기의 종착역을 맞이하였다.

한편 다시 한번 염소의 저주를 깨보고자 했던 시카고는 애리조나에게 3 - 0으로 완벽히 셧아웃을 당하면서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됐다. 참고로 08년에도 지구 1위로 진출하였으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게 역시 3-0 스윕을 당하고 만다.

이 경기도 정규시즌 경기도 들어가기 때문에 개인 스탯에도 영향을 주었다. 맷 할러데이가 이 경기에서 5타수 무안타를 쳤을 경우 치퍼 존스에게 타율 1위를 내줄수 있었지만, 6타수 2안타를 기록하며 .340으로 타율 1위를 고수하는데 성공한다. 타점도 한개 더하며 타점왕도 라이언 하워드를 1개차로 제쳤다. 그리고 제이크 피비 역시 이 경기로 인해 평균자책점이 2.36에서 2.54로 약간 상승하긴 했지만,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대세에는 지장이 없었으며, 만장일치로 1위표를 따내며 사이영상을 수상하였다.

이 경기는 당시 MLB 중계 주관이었던 엑스포츠에서 연장에도 끊지 않고 끝까지 중계했기 때문에 많은 MLB 팬들이 시청했던 경기였다.
  1. 12년부터 와일드카드 자리가 리그당 두장으로 늘어나서 그 팀들끼리 단판승부로 디비전시리즈 진출팀을 가리는데, 이 해엔 AL 와일드카드 두번째 자리였다.
  2. 박찬호의 텍사스, 샌디에이고 시절 동료로 잘 알려진 불펜투수이다. 2013년 현재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투수 코치.
  3. 다만 SI는 이걸 대표적인 오심 사례 중 하나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