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래리 웨인 "치퍼" 존스 주니어 (Larry Wayne "Chipper" Jones Jr.) |
생년월일 | 1972년 4월 24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플로리다 주, 디랜드 |
포지션 | 3루수 |
투타 | 우투양타 |
프로입단 | 1990년 1라운드 1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지명 |
소속팀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1993~2012)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영구결번 | |||||
3 | 6 | 10 | 21 | 29 | 31 |
데일 머피 | 바비 콕스 | 치퍼 존스 | 워렌 스판 | 존 스몰츠 | 그렉 매덕스 |
35 | 41 | 42 | 44 | 47 | |
필 니크로 | 에디 매튜스 | 재키 로빈슨 | 행크 애런 | 톰 글래빈 |
1999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 |||||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 → | 치퍼 존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 | 제프 켄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2008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타격왕 | |||||
맷 홀리데이 (콜로라도 로키스) | → | 치퍼 존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 | 핸리 라미레즈 (플로리다 말린스) |
1 개요
미국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활동했던 야구선수. 스위치 히터이다. 원래는 유격수였지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는 주로 3루수로 뛰었으며, 잠깐 좌익수로 뛰기도 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도 손꼽히는 프랜차이즈 스타 중 하나. 본명은 래리 웨인 존스 주니어 (Larry Wayne Jones Jr.) 이며, 치퍼는 아버지를 똑같이 빼닮았다는 뜻에서 가족 중 하나가 Chip-off-the-old-block (닮았다는 뜻) 이라는 말에서 따와 붙여준 별명이다. 치퍼의 아버지인 래리 웨인 존스 시니어는 치퍼의 경기에도 자주 참석했었는데, 부자지간이 정말 놀랄 만큼 닮아서 화제가 되었다. 팀의 핵심이자 중심타자 역할을 도맡아 했을 정도이니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프랜차이즈 스타, 꾸준한 성적과 인기 덕분에 팬들에게는 대장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통산 성적은 타율 .303, 468홈런, 2726안타, 출루율 .401, 장타율 .529, OPS .930, 순장타율 .226, BB/K 1.07, wRC+ 141, 1623타점이며 이런 성적을 스위치히터로서 기록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이 유력한 선수.
2 커리어
고등학교 졸업후 1990년 드래프트에서 애틀랜타에 전체 1순위로 지명된다. 이후 마이너리그에서 실력을 닦은후 93년 부상당한 좌익수 론 갠트 대신 콜업되어 본격적인 빅리그 생활을 시작하나 싶었지만 얼마안되어 왼쪽 무릎의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이 발생하여 다음시즌을 통째로 쉬었다.
하지만 95년부터 본격적인 출장을 시작해 타점, 출장수를 높이며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공헌하지만 아쉽게도 신인상은 LA 다저스의 노모 히데오에게 밀려 2위를 기록한다. 이후 꾸준히 20홈런 이상과 3할 이상의 타격, 리그 탑 클래스 수준의 3루 수비를 보이며 99년 MVP를 차지한다. 이후 2002년과 2003년은 3루를 떠나 좌익수로 포지션을 변경하였지만 폭풍에러를 선보이며 2004년부터 다시 3루로 복귀하였다. 일단은 에러도 원인이긴 하지만 존스가 3루를 떠나있을 동안 3루를 맡았던 비니 카스티야나 마크 데로사가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것도 원인이라면 원인.
2008년에는 전반기 끝나기 한 달 전까지 4할 타율을 유지하면서 타격 3할6푼과 출루율 4할 7푼으로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지만 2009년과 2010년에는 예년에 비해 부진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절륜한 클러치 능력은 여전, 출루율은 4할에 근접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애틀랜타 타선 자체가 전반적으로 지지부진했었고 시즌에 시즌을 거쳐가며 점점 타력 자체가 하향세인 와중에서도 꾸준하게 성적을 유지한 것 자체가 대단하다.
2009년엔 영 시원찮은 성적을 기록한뒤에 "2010년에도 이런 성적을 기록한다면 은퇴하겠다." 라는 말을 꺼낸적이 있다. 2010년에도 계속 부진한 성적을 보이자 은퇴하기로 마음을 굳힌 듯 했다. 구단과 잔여 연봉 문제에 대한 협의를 마치면 구체적인 발표를 할 예정이었으나 일단 2010년에는 은퇴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기로 하였다. 치퍼 본인의 입을 빌리자면, 'R' 로 시작하는 그 단어 -은퇴, retirement- 는 이번 시즌 끝나기까지는 꺼내지 맙시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2010년 8월 12일, 휴스턴에서의 원정경기에서 3루로 온 타구를 잡고 점프해서 1루로 송구하는 과정을 단 한 번의 동작으로 해내는 멋진 수비를 보여주다가 그만 16년 전에 부상당했던 왼쪽 무릎의 십자인대가 다시 파열되는 사건을 겪어, 2010년의 시즌을 날리게 되었다. 그 때는 나이가 젊었지만 이때는 무려 38세. 팬들은 치퍼가 무릎을 감싸쥐고 그라운드에 뒹굴 때 은퇴를 직감했으나, 8월 13일에 터너필드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팬들이 기억할 나의 마지막 이미지가 구장에서 부상당하는 것으로 굳어지기 싫다는 발언을 하며 2011년 시즌에도 돌아올 것임을 예고하였다. 그 이틀 후인 8월 14일, 두 시간 동안의 성공적인 수술을 끝냈다는 소식을 전했다.
2011시즌 복귀했는데, 아무래도 나이를 속일 수는 없는지 다소 평범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그냥저냥 팀에 민폐는 끼치지 않는 정도의 타격. 나이 39세인 선수에게 3할과 준수한 3루 수비까지 요구하는 것은 솔직히 노인 학대다(...) 그래도 통산 450홈런을 돌파하여 .275 .344 .470라는 준수한 스탯으로 건재를 과시하며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2012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지만 세 번째로 시술받았던 왼쪽 무릎 관절경의 회복이 잘 되면서 2012시즌에도 다시 뛰게 되었다. 그리고 치퍼가 있는 날과 없는 날의 타력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면서 브레이브스팬들은 기쁨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 일단 치퍼 존스가 뛰는거야 팬들은 당연히 기뻐할 일이지만, 뒤집어 말하면 치퍼의 빈자리를 지금 당장 채워줄 선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 포지션으로만 따지면 3루수 자리는 2012년 좌익수로 간 마틴 프라도[1]가 대신하거나 FA를 영입할 수 있었지만, 40세 나이에 팀내 OPS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활약한 중심타자 치퍼 무게감을 대체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 제이슨 헤이워드나 프레디 프리먼 같은 루키 타자들의 성장이 더딘 것이 가장 큰 문제.
그 해 올스타전에 부상으로 불참한 맷 켐프를 대신해 커리어 사상 마지막이자 통산 8번째로 출전, 6회 대타로 등장했다. 결과는 이렇다.
시즌이 9월로 접어들면서 갖게되는 원정경기들이 치퍼의 커리어 마지막 원정경기가 되었는데, 각 팀에서 치퍼를 위한 다채로운 선물들을 준비해서 증정했다. 3루 베이스나 영상같은 평범한 것에서부터 서핑보드나 낚시 세트같은 특이한 것들도.... 선물목록 사실 커리어 내내 호구잡았던 어느 팀이나 자기 팀 선수들도 안 챙겨주는 팬들로 유명한 뻘건 팀에서 주는 선물들은 이거 먹었으니 은퇴 번복하면 가만 안두겠다는 반 협박이다(...)
2012시즌 최종성적은 40세의 나이를 감안하면 매우 준수한 .287-.377-.455 14홈런 62타점을 기록했고 이로써 통산 3-4-5의 비율스탯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터너 필드에서 열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선 치퍼 본인의 송구에러를 필두로 내야진의 실책과 심판의 석연치 않은 인필드 플라이 판정이 겹치며 치퍼의 커리어 마지막 경기는 6-3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유일한 위안거리는 9회말 2아웃 마지막 타석에서 내야안타를 기록했다는 점.
"
치퍼 존스의 마지막 타석. 이 내야안타가 오심처럼 보이지만 그 보다는 이전에 나온 석연찮은 인필드 플라이에 대한 보상판정이라고 보는게 더 적절하다.
2013년 6월 28일 홈구장 터너 필드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구단 명예의 전당 헌액 및 치퍼의 번호 10번 영구결번식을 거행했다.
3 이모저모
- 그 외에 팀의 대형 FA 영입을 위해 자신의 연봉을 자진 삭감하고 오프시즌에는 팀 동료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고 08년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와인 브랜드를 론칭해서 수익금 100%를 장애인 야구 지원에 쓰게 하는등 대인배적인 기질이 있다.
- 이와는 별개로 사생활적인 측면으로 보면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등의 오점이 있긴 하다. 첫 아들이 결혼 이후 후터스의 웨이트리스와
합법혼외정사로 낳은 아들이다. 은퇴시즌인 2012년에 두번째 이혼을 했다.
- 2013년 NLDS 1차전에서 시구할 예정이었으나 지역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디비전 시리즈 승자 예측을 상대인 LA 다저스가 승리한다고 대답해서 브레이브스 선수단이 이에 항의하여
선배님 너무하십니다그의 공을 받는 것을 거부, 결국 시구때 선수들이 아닌 구단 마스코트가 공을 받게 되었다. 이후 구단과 다소 서먹서먹한 관계를 유지하는가 싶었지만, 2014년 1월 눈폭풍우 속에 갇혔던 팀 후배 프레디 프리먼을 구해주는 훈훈한 일면도 보여주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김형준기자의 스타포커스 참고.
- 위에 결혼과 이혼 관련 사생활적 측면에서 비판도 비판이지만 소위 트인낭의 모습도 비판받고 있다. 예를 들면 리오그란데 강에 악어를 풀면 불법이민을 막을 수 있다는 개드립을 하여 인종차별 논란 물의를 빚었다가 황급히 사과한 적이 있다. 그리고 2015년 2월 무렵에는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트윗을 남겼다. 이 사건으로 미국 총기협회 NRA가 된통 당했기 때문에, 정부가 총기를 규제하기 위해서 조작한 사건이다 라는 음모론이 있는데, 치퍼 존스가 FBI에 의해서 이 사건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라고 트윗을 올린 것이다[2]. 당연히 말도 안되는 소리기 때문에 비난이 봇물터지듯 쏟아졌고, 치퍼존스는 해당 트윗을 지운 다음에 '아는 사람 말 들은거임. 그럴 의도 없었음'이라는 내용의 사과 트윗을 올려야 했다. 이전의 인종차별 문제에 이어서 이번에는 NRA와 연결된 것이기 때문에 '정치라도 하려는거냐 아니면 단순히 꼴통 레드넥인거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3].
덕분에 한국내 브레이브스 팬들과 치퍼 존스 팬들은 이게 명전 투표에 영향을 줄까봐 노심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