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기의 이탈리아군 화포 |
곡사포 | 105/28 Mod. 1916, 149/19 Mod. 37, 149/35 Mod. 1901. 안살도 149/40 Mod. 1935, 안살도 210/22 Mod. 1935 |
보병포 | 65/17 Mod. 1908/1913, 75/27 Mod. 1911, Obice da 75/13, 75/18 Mod. 34/35, 75/27 Mod. 1906, 100/17 Mod. 14 |
대전차포 | 블레르 47mm 대전차포, 75/32 Mod 37, 75/34 Mod. S.F. |
대공포 | 브레다 20/65, 브레다 37/54, 75/27 C.K, 75/46 C.A. Mod 34, 90/53 Mod. 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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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
중량 | 570kg (포차 포함), 109kg (본체) |
1.1 개요
이탈리아 산악병의 오랜 친구인 65mm Mod. 1913 산악포는 이탈리아의 토리노 육군 조병창(ARET)에서 1902년에 개발된 산악포로써 1910년 이탈리아 왕국군에 채택되어 1913년 전군에 보급된다 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212대의 포가 생산되며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 생산된다. 1920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생산된 Obice da 75/13 곡사포가 보급되어 대체되었으며 산악병들만 사용하게 되었지만, 이탈리아 최초 전차인 피아트 2000의 주포로도 사용되며 리비아 독립운동 당시 주력 야포로 사용하는 등 이탈리아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934년 대포를 견인할 때 사용하던 나무 바퀴를 고무바퀴로 대체하고 쉽게 분해할 수 있도록 포를 개량한다 개량된 포는 보병 3개 연대에 보급된다 그 후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 식민지 보병사단과 함께 에티오피아 고산지대에서 산악포다운 활약을 하였고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국군에게 보급되어 호평을 받는다.
1935년 이후 산악포는 점차 블레르 47mm 대전차포 로대체되어 예비 물자로 변경되기 시작하지만, 예비 탄약 재고가 여전히 많이 쌓여 있던 상태였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창고에서 나오게 되었다. 나폴리 조병창에서 719대의 포가 추가로 새로 생산되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이탈리아군이 있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사용되었다. 특히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는 가볍고 쉽게 분해할 수 있으며 사막에서도 잘 작동하는 등 특유의 이동성과 안정성으로 인해서 큰 활약을 할 수 있었다. 1942년에 성형작약탄이 개발되어 보급되고난 이후, 47mm 대전차포와 함께 대전차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탈리아가 항복한 이후 독일군은 이 무기를 노획한 후, 6.5 cm GebK-246(i) 이라는 제식 명칭을 부여하여 사용하였다. 대전 후, 코르시카 섬의 방위를 맡고 있던 프랑스군에 판매되었다.
1.2 여담
넓은 사막으로 이루어진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처음에는 산악포를 분해하고 낙타에 운반하여서 다녔지만, 이탈리아 본국에서 새로운 차량들이 보급되고 연합군에게 노획되는 차량이 늘어나면서 포병의 자주화가 이루어졌다. 대표적으로 노획한 영국제 모리스 CS8 트럭과 이탈리아제 피아트 634 트럭, AS.42 장갑차에 탑재되어 보병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출처
러시아 전선에 파견된 이탈리아 러시아 원정군단(CSIR)의 주력 야포로써 사용되지만, 대부분이 평원으로 이루어진 러시아 지형 특성상 산악포만의 특성은 무의미 한것이 였고 가벼움을 위해서 장착되지 않은 포병패 때문에 보병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파병 이탈리아군들은 이런 문제점들을 인식하여 현지에서 구한 철판을 용접하여 자체적으로 개량하는 등 살기 위해서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