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1500

모 재단의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녹색 인간과는 관계 없다.



1987년의 광고.[1]

1 개요

1987년에 등장한 삼성전자8비트 컴퓨터. 삼성전자의 히트작이었던 SPC-1000의 후속기종이다. 주로 그래픽 부분에서 큰 폭의 성능 향상이 있었다. 그러나 명목상 후속기라고 하지만 실제로 SPC-1000과 호환성은 전혀 없다. BASIC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SPC-1000용 토큰으로 저장된 데이터를 SPC-1500에 맞도록 변환해서 읽어들이는 명령이 따로 있기는 한데 그게 그대로 돌아간다는 보장이 없어서 상당부분 손을 대야하는 경우가 대부분.

당대의 소위 '국산' 컴퓨터들이 대부분 해외(주로 일본) 기종의 클론이었는데 SPC-1500 역시 샤프 X1 계열의 클론이었다. 약간 다른 부분이 있어 X1의 소프트웨어는 호환이 되지 않지만 프로그램을 약간만 고쳐주면 돌아갈 정도의 사소한 차이로 실제로는 90% 이상 클론에 가깝다고 한다. SPC-1000과 호환성이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인데, 1000의 원판인 MZ-80과 1500의 원판인 X1이 같은 회사 제품임에도 원래 호환성이 없었다(...). 샤프 MZ 시리즈는 컴퓨터 사업부가, X1은 TV 사업부가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MZ 시리즈에 비해 상대적으로 '홈컴퓨터'다운 지향성이 보이는 편. 다만 SPC-1500의 외형은 X1 시리즈보다는 MZ-1500과 상당히 유사하다. 모델명까지도 흡사하지만 알맹이는 틀림없는 X1의 혈통이라는 것이 재미있는 부분.

게다가 SPC-1500이 등장한 1987년에는 이미 국내 8비트 컴퓨터 시장의 판도가 애플 II호환기종과 MSX 규격기종(특히 대우전자의 MSX2 규격기종인 CPC-300)으로 양분되다시피한 상황이라서 투입이 한발 늦었던 감도 있었는데, 원판인 X1이 일본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굳혔던 꽤 괜찮은 성능의 하드웨어였고 삼성에서도 상당히 적극적인 홍보[2]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SPC-1500은 발매시기와 소프트웨어 부족이라는 문제로 전작인 SPC-1000에 비해 상업적으로는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1989년 여름, 문교부에서 교육용 PC 사업을 추진하면서 학교 교육용 컴퓨터를 IBM PC 호환기종으로 결정하자 삼성전자는 SPC-1500 사업에서 즉각 철수했고, 사용자가 적었던 탓에 결국 현재는 상당히 잊혀진 기종에 속한다. 사용자가 많았던 애플 II, MSX에 비해 자료도 많이 남아있지 않고 에뮬레이터 등의 개발도 상대적으로 더딘 편. 심지어는 선대인 SPC-1000에 비해서도 자료량이나 기억하는 사람이나 모든 면에서 밀린다. 현역으로 활약한 기간이 만 3년이 안될 정도로 짧았던 이유도 있을 듯.

2 하드웨어

대략의 하드웨어 스펙은 이하와 같다.

  • CPU : 자일로그 Z80A(4MHz)
  • 메인메모리 : ROM 96kb/RAM 122kb
  • 그래픽 : 320*200/640*200, 8컬러.
  • 사운드 : GI AY-3-8910. 8옥타브 3채널
  • 보조기억장치 : 데이터 레코더 내장.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장착 가능.

1987년이라는 조금 늦은 시기에 시장에 나와서인지 당대의 8비트 기종들 중에서는 성능이 뛰어난 편에 속한다. 그래픽 기능도 가로 640픽셀의 고해상도에 8컬러를 사용할 수 있어 비교적 우수했으나 당대의 경쟁기였던 대우 IQ-2000(MSX2)에 비해서는 밀리는 편. 그래픽 출력에는 CGA, EGA에서도 사용한 MC6845를 픽셀 제네레이터로 이용하지만 그래픽적 특성에서는 이들과 비슷한 점은 없다.

게임 성능 면에서는 스프라이트 기능이 없고 하드웨어 스크롤 기능도 없어서 움직임이 많은 슈팅이나 액션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편이었으나, PCG(Programmable Character Generator)를 사용한 오브젝트 처리가 비교적 빠른 편이어서 이것으로 어느정도 벌충이 가능했다. 대신 처리 특성이 텍스트 화면에 가까운 PCG의 특성상 오브젝트의 움직임은 조금 거친 편. 사운드는 MSX의 PSG와 동일품을 사용하여 3중 화음 처리가 가능했다. 조이스틱 포트는 메가드라이브, MSX와 동일한 아타리 9핀 규격인데 MSX용 조이스틱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당시 삼성전자에게는 SPC-800이라는 MSX 모델도 있어서 동일한 삼성제 조이스틱(SJ-1500)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타사의 MSX나 재믹스용 스틱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모니터는 RGB 단자를 사용하는 전용 컬러 모니터와 컴포지트 단자(RCA)를 사용하는 컬러 모니터 및 모노크롬 모니터를 사용할 수 있었고 SPC-3000(IBM PC XT호환기종)의 모니터도 사용이 가능했다. 컬러 모니터는 가격이 비싼 편이라 대부분 모노크롬을 사용했고 그 당시의 컴퓨터들이 흔하게 그랬듯이 컬러 TV의 RF 단자에 연결해서 모니터 대신으로 쓸 수도 있었는데, RF 단자의 한계 때문에 화질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RF 출력 기능이 삭제된 저가형(이라고 해도 별로 안쌌다)모델인 SPC-1500A도 있었다.

당대 8비트 컴퓨터 중에서 SPC-1500이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미려한 한글 글씨체와 빠른 한글 처리. 삼성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SSE-1500V라는 칩셋을 이용하여 하드웨어적으로 직접 한글을 처리한 덕에 한글 처리가 다른 기종에 비해서 독보적으로 빠르고 반응성도 뛰어났다. 명조체 폰트도 당시로서는 8비트 기종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강점이었다. 한글 처리에 한해서는 당대 8비트 컴퓨터들 중에서도 최강급으로 이에 비견할만한 제품은 대우의 X-II(CPC-400) 정도였지만 X-II는 그래픽 환경에서만 명조체 한글을 출력할 수 있었고[3] 처리 구조상 SPC-1500만한 반응성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한글처리에 한해서는 사실상 SPC-1500의 판정승.

기본으로 내장된 보조기억장치는 카세트 테이프를 저장 매체로 사용하는 데이터 레코더. 전작인 SPC-1000이나 원본인 X1에서 그대로 물려받은 특성이다. 당대의 경쟁 기종인 애플 II는 내장된 보조기억장치가 없고 MSX는 읽기만 가능한 카트리지 슬롯만 내장되어있었다는 점과 비교하면 기본내장된 장치로 읽기/쓰기가 모두 가능했다는 점은 직접 코딩을 하는 사용자에게는 상당한 이점이었지만 입출력 속도가 매우 늦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팩 꽂고 전원을 켜면 바로 게임이 뜨는 MSX에 비해 게임 한번 하려면 5~10분여를 기다려야하는 SPC-1500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국딩들이 싫어했다 별매되는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구매하면 해결되는 문제지만 당시의 FDD는 컴퓨터 본체에 버금가는 가격을 자랑하는 장치였던 관계로...

후기형 모델은 MSX의 MSX Engine 처럼 단가 절감을 위해 내장된 다수의 칩들을 하나의 VLSI에 집적하였다. 모델명은 동일하게 SPC-1500/1500A지만 내부 리비전은 'SPC-1500V'라고 불렸던 듯 하다. 외형적으로 구분하는 방법은 초기형에 비해 커서키에 찍혀있는 화살표 마크의 크기가 눈에 띄게 크다. 단, 내부 기판은 1500V인데 커서키는 구형의 작은 화살표인 버전도 존재하는 듯.

3 소프트웨어

SPC-1500은 약 3년간의 짧은 시장 수명 내내 소프트웨어 부족에 시달렸다. 가장 큰 문제는 SPC-1000과의 호환성이 없었기 때문에 기발매된 SPC-1000용 소프트웨어를 전혀 사용할 수 없었다는 것. 한편으로는 스태틱소프트, 미키소프트(구 삼미소프트), 보람소프트 등의 업체들이 기존에 나와있는 샤프 X1이나 MSX용 게임을 컨버전해서 발매하기도 했었고 삼성에서도 나름대로 교육용 소프트웨어나 업무용 소프트웨어를 준비하여 출시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 중 스태틱 소프트는 SPC-1000 시절부터 삼성의 서드파티로 활동한 회사로 다양한 게임을 컨버전하여 내놓고 독자적인 하드웨어(SPC-1500용 하드디스크 인터페이스, FM 사운드 유닛 등)를 개발하여 발매하는 등 SPC-1500에 올인했던 업체로 유저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여담으로 스태틱 소프트는 2005년 이월리서치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는 보안분야 사업을 하고 있다.

일본 본토에서 샤프 X1이 8비트 컴퓨터 3대장 고산케(나머지 둘은 NEC PC-8801과 후지츠 FM-7)라고 꼽힐 정도의 인지도를 구축했던 기종인 점을 생각하면 그 클론인 SPC-1500의 소프트웨어 부족은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측면이 있다. X1 소프트만 활발하게 퍼다 날랐어도 이 짝은 안났을 거라는 것. 이는 하드웨어 자체의 보급률과도 연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일본에서 그대로 소프트웨어를 퍼다 나를 수 있었던 애플 II, MSX에 비해 X1은 소프트웨어 수정이 필요했다는 점도 있었겠지만 근본적으로 SPC-1500을 취급하는 매장 자체가 경쟁기종에 비해 드물어서 그 적은 소프트웨어조차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지방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한편으로 X1 전성기의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플로피 디스크 매체로 나왔지만 SPC-1500는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의 보급률이 극히 낮아 X1 초창기의 테이프 매체로 나온 소프트를 중심으로 컨버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운영체제로는 CPU로 Z80A를 사용하니만큼 당대의 8비트 OS 끝판왕인 CP/M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단,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필요했는데 바로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디스크 드라이브의 보급률은 매우 형편없었다. 비싸기도 했지만 그걸로 돌릴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많이 보급되지 못했기 때문인 점도 컸다. CP/M용으로 나와있는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게임이 없어서.

삼성측에서는 '말하는 컴퓨터'라면서 음성지원 기능을 특히 강조했는데 이 음성지원 기능을 내세워 '오디콤'(audio+computer)이라는 교육용 프로그램 시리즈(중학영어, 수학 등)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실은 이 '음성지원'이라는게 오늘날의 PCM 샘플링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내장된 데이터 레코더에서 테이프에 녹음된 목소리를 재생해서 내장 스피커로 출력해주는 것이었다(...). 테이프 앞부분에 교육 프로그램을 적재하고 그 뒷부분에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순서에 맞추어 음성을 녹음해둔 다음 프로그램에서 카세트 재생을 컨트롤해서 그때그때 음성을 재생해주는 것. 진정한 의미에서 음성지원이라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당시에도 삼성의 '말하는 컴퓨터' 캐치프레이즈에는 이거 뭔가 좀 야매인데? 스러운 인상이 있었다(...)[4]

MSX와 동일한 CPU(자일로그 Z80A)를 사용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MSX1의 VDP인 TMS9918을 내장하여 MSX용 롬팩을 SPC-1000/1500에서 기동시킬 수 있는 VDP 유니트라는 일종의 컨버터가 등장하기도 했다. 소프트웨어 부족으로 목말랐던 SPC-1500 유저들에게는 나름대로 타개책이 될 수 있었다.

전술했듯 샤프 X1과는 소프트웨어 호환성이 완벽하지 않았는데 한글 처리 때문인지 특히 키보드 처리 방식이 완전히 달랐다고 한다. SPC-1500의 키보드 처리는 SPC-1000의 것을 답습했다고. 그밖에도 사소하게 다른 부분이 많아 X1 소프트를 컨버전할 때 손대야 할 데가 꽤 많았다는 것 같다. 실은 본체에 달린 딥스위치 중 4번이 X1 호환 모드를 ON/OFF하는 기능이었지만 이 스위치의 기능에 대해서는 매뉴얼에도 나와있지 않다. 애초에 당시 국내에는 X1이라는 기종에 대해서 거의 알려진 바도 없었고 X1 소프트웨어도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알아도 별 의미는 없었겠지만.

4 토막상식

  • MySPC 등 에뮬레이터도 존재하고 MAME 0.170부터 SPC-1500 에뮬레이션을 정식으로 지원한다.

MAME에서 구동한 SPC-1500 번들 데모 구동 영상.
  • 번들 데모에서 Libble Rabble드루아가의 탑 BGM이 나온다. 보스코니안의 장면도 나오는 걸 보면 데모 제작자가 남코 팬이었던 모양. 라이센스 그런 거는 묻지 마시고
  • SPC-1500을 구입하면 번들로 들어있는 데모 테이프 맨 뒷부분에 '우주대작전'(Space Game)이라는 슈팅 게임이 들어있었다. 우주대작전을 소개한 포스팅 고정 화면에서 나오는 적들을 모두 쏘아 떨어뜨리면 스테이지 클리어라는 단순한 게임이지만 의외로 할만한데다 로딩시간이 짧아 좋아하는 이들이 많았던 모양.
    • 이 게임은 UPL의 1983년작 아케이드 게임 '노바 2001'의 구성을 축소해서 SPC-1500으로 구현한 듯한 게임이다. 아군 기체나 적기의 디자인도 비슷하고 8방향으로 움직이다가 특정키를 눌러 방향을 고정하는 등의 조작이 완전히 동일.
  • 이 기종을 기억하는 이들이 특이했던 점으로 많이 꼽는 것이 카세트 테이프 데크가 내장된 것과 커서키가 희한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SPC-1500의 외형 원본인 샤프 X1은 텐키 아래에 일반적인 사이즈의 키캡을 쓰는 커서키가 달린 형태인데[5] SPC-1500은 텐키를 없애버리고 커서키를 크고 특이하게 디자인했다. 얼핏 보기엔 엄청 불편해보이는 디자인이지만 막상 써보면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다.
  • X1 클론에 가까운 기종이기 때문에 SPC-1500용으로 나와있던 게임들은 거의가 다 X1용으로 나와있던 것들. 간혹 MSX용을 컨버팅한 것도 있었다. SPC-1500용 게임을 찾는 사람이라면 X1 쪽에서 찾으면 빠르다. 그런데 X1이 일본 내수기종이라 자료 찾기가 좀 빡세야지
    • 간혹 일본에선 잡지 투고작이나 공모전 소프트웨어를 합본으로 판매했던 것을 SPC-1500용으로 들여오면서 별도로 잘라서 팔아먹은 경우도 있는데 이런 부류의 대표적인 게임이 스타 비, 제프리스 2 등이다. 이런 식으로 들어온 게임들은 현지에서도 지명도가 마이너했으므로 X1 게임 중에서도 좀 찾기가 어려운 편.
  1. 광고에 나오신 김정흠 박사는 2005년 타계하였다.
  2. 각종 컴퓨터 잡지 뒷표지에 물리학자 김정흠 박사를 모델로 기용하여 매달 광고를 때렸었다!
  3. screen 9에서 64컬럼 이하를 사용하면 텍스트 모드에서도 사용가능하기는 했는데 screen9 라는게 MSX2의 공식 스펙이 아니고 대우의 현지화 확장기능이었던 탓인지 욕 나올정도로 처리가 느렸다.
  4. MSX나 애플 게임 중에는 '진짜' 음성지원이 되는 게 있긴 했으나 당시 하드웨어 수준에서는 음질이 매우 거칠었고 재생되는 음성의 길이도 짧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쪽은 야매 삼성과 달리 다들 신기해했다.
  5. 다만 이쪽도 배치가 꽤 괴악하다. ←→↓의 3키가 일렬로 있고 ↓키 위에 ↑키가 붙어있는 배치. 초대 X1의 외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