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 PC XT

IBM PC 제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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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PC XT (model 5160)

1 개요

IBM PC 5150 모델의 업그레이드판으로 1983년 3월 8일에 출시. XT는 eXtended Technology의 약자로, IBM PC의 마이너 업그레이드 버전에 해당한다. 기본 구조와 CPU는 5150 모델과 동일하지만, 램을 늘리고 하드디스크를 내장할 수 있도록 개선된 모델이다. 본격적으로 IBM PC가 시중에 보급된 계기를 만든 히트작이다.

2 하드웨어

하드웨어면에서는 전작 5150과 거의 유사한 스펙의 부품을 채용하고 있다.

  • CPU/코프로세서
인텔 8088@4.77MHz. 5150과 동일한 제품을 채용하였다. 보조 연산장치인 8087 코프로세서를 추가로 달 수 있는 점도 동일.
5150에 비해 가장 업그레이드 된 부분. 최대 640KB까지 확장할 수 있었다. 초기 리비전은 64~128KB를 메인보드에 납땜하고 256KB까지 확장 가능한 소켓을 두었고 후기 리비전의 경우에는 256KB를 메인보드에 납땜해두고 640KB까지 확장할 수 있는 소켓을 두었다. 초기 리비전의 경우 640KB까지 인식은 했지만 640KB를 설치하려면 별도의 메모리 보드를 확장슬롯에 설치해야했다.
여담으로 "램은 640KB면 충분하다" 라는 빌 게이츠드립이 PC/XT 시절에 나온 것.[1] 8비트 컴퓨터가 다룰 수 있었던 메모리가 64KB였기 때문에[2] 그 10배인 640KB면 떡을 치겠지...라는 생각에서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 8088 프로세서가 변칙적인 메모리 관리기법 없이 액세스 가능한 메모리의 양이 640KB였다. DOS 시절 내내 유저들을 괴롭혔던(?) 기본 메모리 640KB도 여기서 유래한 것.
MDA, CGA가 기본 옵션. 5150과 동일하다. 모니터도 PC 시절에 쓰던 모델을 계속 사용했다. 1984년에 PC/AT가 나오고 곧이어 EGA와 PGC[3]가 나왔는데 PC/XT도 EGA와 PGC를 별도로 장착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 사운드
PC 스피커. 변함없다. 요태까지 그래와꼬 아패로도 개속
  • 보조기억장치
기존의 360KB 5¼ 2D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1~2대를 기본으로 내장. 옵션으로 10MB 짜리 하드디스크를 달 수 있었다. 이 하드디스크의 제조사는 다름아닌 시게이트[4]. 나중에 이 하드디스크는 20MB까지 확장이 가능했다.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기본으로 내장하게 된 대신 카세트 테이프는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게 되었다.
  • 확장슬롯
8비트 ISA(XT 버스) 8개. 5150과 같은 인터페이스지만 슬롯의 수가 3개 늘어나서 좀 더 확장성을 꾀할 수 있게 되었다.
83키. PC/AT의 표준 키보드였던 84키와 레이아웃이 약간 다르다. IBM의 키보드는 주로 버클링 스프링 방식 키보드를 사용하는데 독특한 키감 덕에 의외로 마니아가 많은 편이다.

3 소프트웨어

PC-DOS 2.0이 XT와 함께 발표되었다. DOS에서 디렉토리(폴더) 구조를 처음 채용한 버전. 이후 PC-DOS 3.3까지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만을 장착한 XT 머신을 고려하여 만들어졌다. PC-DOS 외에도 유닉스도 사용 가능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AT&T에서 라이센스를 받아 1980년에 발표한 'Xenix'라는 유닉스계 운영체제를 XT로 포팅하여 내놓았기 때문이다.[5] 물론 Xenix는 특수한 용도로 쓰는 사람들이나 사용했고 일반 사용자는 PC-DOS나 MS-DOS를 더 많이 사용했다.
5150과 동일한 내용의 ROM BASIC을 내장. BASIC.COM, BASICA.COM을 사용하여 디스크 베이직과 어드밴스드 베이직을 호출하는 것도 동일하다.

4 한국에서의 PC/XT

한국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첫 16비트 컴퓨터가 바로 이 XT 모델이다. 물론 오리지널 5160은 아니고 호환기종. 1989년 문교부에서 교육용 PC를 지정하면서 학생용으로는 IBM PC/XT 호환기종을, 교사용으로는 IBM PC/AT 호환기종을 지정했기 때문. 이 사업 이전에도 IBM PC 호환기종이 업무용 목적으로 국내에 들어와있었고 세운상가의 업체들에서도 호환기종을 생산하고 있었다. 기존의 8비트 PC를 제조하던 대기업에서도 삼성전자의 SPC-3000을 비롯한 호환기종을 만들고 있었으나 보급량은 미미했다. 가격이 흉악해서... 이 교육용 PC 사업을 기점으로 국내의 개인용 컴퓨터 환경이 IBM PC 기반으로 재편되었는데 원조 5160이 1983년에 나온 것을 생각하면 꽤 뒤늦은 도입인 셈. 따라서 1989~91년 무렵에 학생 신분이었던 위키러가 PC를 구입했다면 PC/XT 호환기종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제조사가 삼성/금성/대우전자[6]였고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1개 내장돼있으며 모니터가 흑백이면 거의 빼박. 상세한 내용은 교육용 PC 사업 항목을 참조.

이 시기에 도입된 PC/XT 호환기종은 대부분 인텔 8088@8~10MHz를 채용하여 속도향상을 꾀하였다. 별다르게 좋은 부품을 채용했다기보다는 8088이 나온지가 오래되다보니 그냥 10MHz짜리 고속버전이 일반적으로 구하기 쉬웠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 그 때문에 일부 게임 소프트웨어는 지나치게 빠르게 동작하는 경우도 있어 CPU 속도를 4.77/10MHz를 전환할 수 있도록 만든 기종도 드물지 않게 보였다.

또한 이 시기에는 대기업 제품들을 중심으로 메모리를 256~512KB에서 확장할 수 없는 구조로 만든다던지 확장슬롯을 4개정도로 너프시켜버린다던지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1개만 설치한다던지 하는 원가절감책이 꽤나 성행했다. 좋게 보면 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가격을 낮추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나쁘게 보면 한국 기업의 고질병인 호갱님 등쳐먹기. 이 시기에 IBM PC 호환기종의 가격이 크게 내려간 것은 사실이나 중소기업 제품들은 대부분 대기업보다 싸면서도 XT 풀스펙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좋게 봐주기만은 어려웠다. 또한 한국에서는 미국과 달리 서드파티 제품인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가 주로 사용되었으며 이를 개조한 한글카드도 시중에 많이 나왔었다.
  1. 단, 빌 게이츠 본인은 저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부정했다. 참고
  2. MSX 등 몇몇 8비트 컴퓨터는 메모리 매퍼 기법을 통해 그 이상의 메모리를 다룰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일종의 변칙 기법이며 CPU가 한번에 액세스 가능한 주소 공간은 64KB이다
  3. Professional Graphics Controller. PGA라고도 한다. 1984년에 VGA에 필적하는 640*480*256 컬러/4096 팔레트를 사용할 수 있었던 굉장한 물건. CAD 등의 전문가용 머신에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었으나 가격이 너무 흉악해서 묻혔다. 이거 한장 가격이 PC 한대보다 비쌌다(...). 위키피디아 PGC 항목
  4. 당시 이 회사에서 내놓은 10MB모델은 5¼ 베이를 2개 차지하는 ST-412로 5MB모델인 ST-506도 있었다.ST-506의 경우 아예 인터페이스 이름으로도 쓰였다.
  5. 원래는 DEC PDP-11용이다.
  6. 대우는 대우전자와 대우통신이 따로 사업을 진행했었다. 대우통신 쪽의 모델은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던 3.5인치 FDD를 내장한 것이 특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