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 PC 호환기종

1 개요

IBM PC compatible
IBM PC 互換機種

IBM에서 발표한 IBM PC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만든 개인용 컴퓨터 아키텍처 계열. 흔히 PC라고 부른다.

2 상세

또 다른 명칭은 x86 아키텍처로, 이 명칭은 끝에서 86으로 끝나는 인텔 CPU의 모델명 가운데 1978년에 등장한 인텔 8086 이후의 모델부터 해당된다. 2000년대 초중반부터 이 IBM-PC 전체 아키텍처의 기본 구조가 PC를 넘어서 서버나 다른 임베디드 시스템에도 쓰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x86 아키텍처"라는 이름이 공식적인 명칭이 되어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사어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90년대에 PC를 사용해보지 않았거나 당시의 PC잡지 등을 보지 않은 세대에게 말한다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64비트를 지원하는 CPU가 나오면서, 32비트라는 x86 아키텍처의 한계상[1] 4GB 이상의 RAM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AMD에서 개발한 AMD64 아키텍처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현역취급을 받고 있지만, 32비트라는 x86 아키텍처의 한계상 2038년 이후의 시간을 제대로 기록할 수 없어 컴퓨터의 시간이 오버플로우 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x86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은 걸로 보인다. 단, AMD64라고 해도 하드웨어의 구조적인 부분은 같은데다, 거의 모든 OS에서 x86 하위 호환성 모드를 지원하기 때문에(윈도우의 경우에는 WOW64) 사용자는 x86에서 AMD64로 넘어가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 듯하다. 과거 16비트에서 32비트로 넘어올 때도 하위 호환을 유지하고 넘어왔듯이, AMD64로 바뀐다고 IBM PC 호환기종 그 자체의 카테고리가 사라지고 생판 다른 아키텍처로 바뀌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아키텍처 구조가 모두 공개되어 있고, 각각의 부품이 규격에 맞게 생산되어 나오고 모듈화 되어 있기 때문에, 부품만 구비되어 있다면 납땜 같은 전문적인 과정 없이 슬롯이나 소켓에 끼워맞추고 나사로 고정하면 어렵지 않게 PC 본체 한 대가 나온다. 이 때문에 사용자가 하드웨어 지식을 조금만 익혀도 손쉽게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다. 거기다 그 부품의 조합도 수백, 수천 가지가 나올 정도로 다양하다.

그런데 사실 딱히 IBM PC에 특별히 규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회사들에서 '서로 호환이 가능'하도록 만든 결과가 이것. 하드웨어 계의 오픈소스로 봐도 무리가 아니다.

덕분에 부품을 가지고 사용자가 직접 만드는 조립컴퓨터라는 것이 가능해지고, 기성품 PC(매킨토시 계열 포함)와의 가성비 논란에서 가성비 최강으로 항상 손꼽히는 것이 이 조립 PC이다. 물론 사후지원 등 여러가지를 총체적으로 따지면 조립 PC도 기성품에 비해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2], 순수하게 부품 단가+공임(용산 기준)+OS가격을 따지면 확실히 조립 PC가 우위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1990년 이후, 전 세계의 개인용 컴퓨터는 애플사의 매킨토시 계열을 제외하고는 모두 IBM PC 호환기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마저도 애플에서 인텔 CPU를 사용하면서 기본 구조는 거의 같아졌다. 이 때문에 요즘은 윈도우가 매킨토시 계열에서도 설치되고, 맥OS도 해킹을 하면 IBM-PC 호환기종에서 설치된다. 결국 OS를 제외하면 같다. 업무용, 저개발국가용으로 널리 퍼져있는 리눅스 PC하고 다를 것이 없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스티브 잡스가 상대 진영을 끝가지 계속 'PC'라고 불러서인지 사람들에게 맥 계열 컴퓨터는 IBM 호환 PC와 대척점으로 포지셔닝 되었다.

3 특징

업무용이다.

이 업무용 컨셉트 때문에 원형 IBM PC는 빠른 속도와 미려한 텍스트 기능을 갖춘 대신 홈컴퓨터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성능인 그래픽과 사운드 기능이 동시대의 경쟁기에 비해 매우 빈약했다. 그래픽은 텍스트만 찍을 수 있는 MDA와 눈아픈 4색 표현만 가능한 CGA, 사운드는 삑삑 거리는 비프음만 낼 수 있는 PC 스피커가 전부.삐익~삑!삑!삑! 비즈니스 업무에 필요한 기능 위주로 추구하다보니 그래픽이나 사운드 같이 비즈니스와는 관계없는 기능은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대신 CPU 처리만은 고속이었다.[3]

그래픽이나 사운드 측면에서는 애플 II 정도보단 좋지만 코모도어 64MSX 같은 기종에 비교하면, 16비트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후달린다. 80년대 중반 무렵부터 나오기 시작한 16비트 경쟁기로 가면 차이는 더 벌어져 매킨토시는 말할 것도 없고, 아미가아타리 ST같은 홈 컴퓨터보다 낮으며, IBM PC로 게임을 돌리는 것은 글자 그대로 "그러라고 사준 컴퓨터가 아닐텐데!!"라는 소리를 들을 짓이었다. 그래도 꾸준히 게임은 나왔다 하지만 VGA사운드 카드가 나오면서 서서히 다른 기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의 멀티미디어를 갖추게 되었다. 486이 나온 시점에서는 CD-ROM까지 대중화되면서 미려한 그래픽과 사운드를 출력하고, 대용량 보조기억장치까지 갖춘 "멀티미디어 PC"라는 개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4 역사

PC가 처음 나온 당시는 아직 여러 회사가 제각기 별도의 아키텍처로 개인용 컴퓨터를 생산하던 시대이다. PC규격도 본래는 IBM에서 만든 업무용 컴퓨터 규격의 하나였지만 다른 회사에 아키텍처를 공개하고, DELL이나 컴팩, HP에서 마구마구 찍어내면서 사실상 다른 회사의 이종 아키텍처를 몰아내고 전세계 표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밥상을 맛있게 차려놨는데 정신차리고 보니까 정작 다른 놈들이 맛있는 건 다 처먹어버리고 힘들게 밥상 차린 자신은 찬밥 신세가 된 것을 뒤늦게 깨달은 IBM에서는 MCA(Micro Channel Architecture)라는 신기술을 바탕으로 PS/2 시리즈를 발매, PC시장 탈환 시도를 하였다. PS/2는 오픈 아키텍처인 예전의 IBM PC와 달리 클로즈드 아키텍처를 표방했지만 이미 PC시장의 주도권은 CPU인텔OS마이크로소프트 진영과 그것을 사용한 호환기종을 만드는 다른 PC 제조회사들로 완전히 넘어간 상태여서 결국 시원하게 망했다.[4] PS/2 아키텍처의 흔적이 아직도 PC에 남아있는데 그게 키보드와 마우스를 연결하는 PS/2 포트[5]VGA. 초창기의 VGA는 PS/2 머신에 회로의 형태로 내장되어 있는데 그것을 호환기기 개발사들이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비디오카드의 형태로 만든 것이 VGA 카드의 시초이다.

실질적으로 80386 시대에 IBM은 이미 이 아키텍처의 선도능력을 잃어버렸고, 인텔마이크로소프트가 아키텍처 설계의 중심이 되었다. 이른바 윈텔. 처음으로 80386 PC를 발표한 곳도 IBM이 아닌 컴팩이다. 뭐 컴팩도 결국 HP에 팔렸지만 참고로 컴팩은 IBM PC 100% 호환기종을 처음으로 내놓은 회사이기도 하다. 첫 모델의 이름은 Compaq Portable.(쓰인 CPU는 8088, 1983년에 출시)

이제는 이미 IBM이 PC산업에서 물러나버린 상황이고, IBM PC 호환기종이 아닌 개인용 컴퓨터를 찾기 어려워져서 오히려 이런 표현을 듣는 게 어려워졌다. PC가 곧 IBM PC 호환기종인 것이 당연하게 되어서 더 이상 "IBM 호환기종"이라는 말을 붙일 필요도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심지어 최근엔 매킨토시조차 PC의 일종쯤으로 생각하는 부류가 대부분... 현재는 PPC를 버리고 인텔의 프로세서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렇게 다르지 않게 되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이미 'PC용' 아키텍처라고 부르기가 힘들어졌다. POS기ATM 등의 임베디드 기기에도 이걸 쓰고, 서버도 이 아키텍처를 쓰는 것이 대단히 많다. 심지어 아케이드 게임 기판도 이걸 쓰는 경우[6]가 있고, 콘솔 게임 머신 중 XBOX, 엑스박스 원, 플레이스테이션 4는 이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임베디드 기기라고 봐도 손색이 없다. 이 때문에 IBM-PC 호환기종이라는 명칭 대신 x86 아키텍처라는 명칭이 대세가 되어가는 중.

결국 현재 IBM PC 혹은 PC라 함은 x86 아키텍처 하드웨어에 윈도우즈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형태, 즉 윈텔을 지칭하게 되었다.

5 비영어권 국가에서의 자국어 표기 및 보급

5.1 한국

기존의 8비트 PC가 한글,한자 등 동아시아권 문자[7] 처리에 성능상 어려움이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본고장인 미국을 제외하고 16비트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이는 알파벳 위주의 문자체계를 가진 유럽에서 90년대 중반까지도 8비트 PC를 제법 많이 볼 수 있었던 것과는 비교된다.

하지만 일본보다 기술 수준이 낮았던 관계로[8] 역설적으로 기존 기술의 기득권이 약하여 IBM PC 호환기종의 보급이 상대적으로 무척 빨랐다. 거기에 한국 특유의 교육열도 한몫 했는데, 1989년에 교육용 PC를 정할 때, 학생용으로 IBM PC XT 기종을 낙점한 것[9]. 당시에 다가오는 21세기는 정보화 시대가 될 것이라 이미 예상되고 있었고, 이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배워야 한다는 인식이 특히 강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교육용 PC 사업에서 IBM-PC가 결정되자 기존의 8비트 시장은 급격하게 위축되고 그 동안 부진하던 IBM PC 호환기종 시장이 급성장하였으며, 거기에 맞춰 PC 산업이 8비트에서 16비트 위주로 재빠르게 재편되었다. 애플과 MSX 호환기종이 나눠 가지고 있던 시장은 1989년 이후 단 1~2년 만에 IBM-PC 호환기종으로 통일되었다. 물론, 이는 교육열보다는 PC 제조업체들의 로비(..)로 인해 결정된 거 아니냐는 의견도 많았다.[10]

대기업제 컴퓨터에는 한글 MS-DOS도 딸려나왔지만, 소프트웨어적인 방법으로 완성형 한글(KS C 5601)을 표시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영문판 DOS보다 메모리 점유율이 높은데다가,[11] 텍스트 모드를 후킹해서 그래픽으로 뿌려주는 방식의 특성상 속도가 약간 느리고 반응성이 떨어지는 편이어서 파워유저들은 대부분 그냥 영문 DOS를 사용했다.[12]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새 버전 DOS가 나와도 한글판 DOS는 버전업이 한두달 늦었다. 이 때문에 한국 프로그래머들은 적극적으로 자체 한글 표시가 가능한 유틸리티를 개발해[13] 일본보다는 자국어 표시에 열정적이었다. 아래아 한글이나 이야기 같은 경우는 아예 그래픽 모드를 기반으로 한글을 그리는 방식으로 처리한다[14]. 그리고 확장카드를 통해 적은 메모리로 한글을 깔끔하게 구현한 곳도 있었다.

5.2 일본

1980년대 당시 일본의 PC 설계기술은 미국 다음이었고, 일본어 처리와 독특한 아니메 문화와 관련되어 높은 그래픽 기능을 필요로 했으나, 업무용 컨셉인 IBM PC는 VGA카드 출시 전까지 그래픽 기능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PC-9801을 비롯한 독자적인 아키텍처의 PC들이 NEC, 샤프, 후지쯔, 히타치 등 여러 제조사에서 제조되었다. 그래서 에로게도 많이 나왔고 더군다나 80년대 중, 후반기는 일본 버블경제 전성기라서 온갖 희안한 기능으로 떡칠한 고가의 자국 기종도 잘 팔린 시기이다. 그 결과 한 제조사에서도 가정용, 업무용으로 서로 다른 아키텍처의 16비트 기기[15]를 출시하는 등 갈라파고스화의 정점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니 IBM PC 호환기종의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IBM-PC 호환기종의 도입이 매우 늦어졌다.

일본에서는 그 동안 IBM PC 호환기종 컴퓨터들은 일본어를 지원하지 않아서 인기가 저조했다가, DOS/V라는 이름의 일본어 지원 OS가 나오고 나서야 점유율을 늘려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 기종을 주로 DOS/V라고 불렀으며, 지금은 아예 "DOS파츠"라 하여 "조립용 부품"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잡았다.[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PC가 주류로 자리잡게 된 것은 윈도우 95가 나오면서 일본어가 완전하게 지원된 뒤의 일이라 한다. 당시 자국 환경에 맞춘 고유의 아키텍처(MSX, PC-9801 등)가 나온 일본에서는 이들 기종과 경쟁해야 했기 때문. 게다가 시기적으로도 거품경제가 끝났고 잃어버린 10년이 되면서 표준화된 생산방식으로 원가를 낮춰 저렴한 가격으로 수입된 동아시아(한국[17], 대만, 홍콩)제 IBM PC 호환기종에 대한 관심 또한 일본에서 PC 호환기종으로의 전환에 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1. 사실 x86아키텍처는 3가지로 나뉜다. 16비트의 IA-16, 32비트의 IA-32, 64비트의 x86-64가 있다. 좁은 의미의 x86은 IA-32를 말하고, 64비트를 나타낼 때에는 x86-64라고 따로 지칭한다. IA-64는 이름과 달리 IA-32와 전혀 다른 아키텍처라 X86으로 분류하지 않으며(x86 인스트럭션을 에뮬레이션으로 지원하기는 한다) IA-64를 채용한 아이태니엄 시리즈는 인텔의 흑역사.
  2. AS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총체적인 AS가 안되고, 부품별로 된다. 이 때문에 부품끼리의 호환성 문제로 발생하는 문제는 사용자가 직접 캐치해야 한다.
  3. IBM PC 5150/XT에 탑재되었던 8088은 8080이나 Z80과 같은 전세대 8비트 CPU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단순 연산성능만이라면 경쟁모델인 68000보다도 우월했으며 여기에 부동소수점 연산용 보조프로세서인 8087을 추가하면 그 차이는 더 벌어졌다. 다만 8087이 비쌌다보니 과학 기술 등 꼭 필요한 분야가 아니면 잘 장착하지 않았다. 현재는 콘솔화에 성공한 PC규격
  4.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PC 제조회사들에서 MCA의 대항마로 내놓은 EISA도 마찬가지로 시원하게 망했다. ISA와 호환이 되는 장점이 있지만 비싼 가격이 문제였다는 평. 결국 486 시대에는 ISA 옆에 VESA 로컬 버스를 붙이는 방식으로 버텼고, 진짜 승자는 펜티엄 시절에 나온 인텔의 PCI가 되었다.
  5. 그나마 USB에 밀려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중이다.
  6. 타이토 Type X, 세가 LINDBERGH 등등... 아니 사실상 태고의 달인 등 일부 게임에서 아직 PS3 기반 기판을 사용하는 반다이 남코 게임스를 제외하고는 전부 PC로 옮겼다고 보면 된다.
  7. Double-Byte Charactor Set. 2바이트 문자 체계
  8. 1980년대 당시에 독자적인 PC 아키텍처를 설계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을 가진 국가는 미국,일본, 영국, 소련 등 몇 없었다.
  9. 교사용은 IBM PC AT로 결정되었다.
  10. 8비트 기종의 경우, 1987~89년 당시에 애플 II 호환기종은 삼보 트라이젬이나 효성 PC-8000 정도를 제외하면 세운상가에 있는 중소업체에서 주로 제조하였고, MSX는 한때 가전 3사가 다 뛰어들었지만 이즈음엔 대우전자에서만 만들고 있었다. 삼성전자와 금성사(현 LG전자)에서는 83년부터 각자의 8비트 모델로 교육용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이 무렵에는 시장판도가 MSX와 애플 양대 기종으로 고착되면서 밀려나버린 상황이어서 판을 한번 리셋하는 쪽이 유리했다보니 이런 얘기가 나올만 했다. 현대전자처럼 교육용 시장에 신규참가를 바라는 기업은 더더욱 말할 나위도 없다.
  11. hbios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는데 4~50kb 이상을 혼자 점유한다. 기본 메모리가 640kb이던 시절인지라 겜돌이들에겐 당연히 기피대상. 다만 hbios /u(또는 hcode /e, hbios /e, mshbios /u)라는 옵션을 줘서 재실행하면 1kb도 남김없이 깔끔하게 언로딩할 수 있어서 이를 아는 이들에겐 별 문제가 안된다.
  12. 특히 S3 Graphics계열 그래픽 카드를 쓴다면 기피대상(...)이었다. 화면이 아래로 늘어나면서 잘려나가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아예 표시가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Windows 3.1를 설치할 때 상용 한글 바이오스를 설치하고 해야 한다.
  13. 대표적으로 태백 한글 바이오스. Virtual PC에서 설치할 때 스텔스 드라이버를 로드한 뒤에 실행해야 한다. 안 그러면 흰 화면만 보이게 된다(...).
  14. 워드프로세서는 텍스트 모드로도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만 좀 더 다양한 글자 크기와 효과를 지원하기 위해 그래픽 모드를 선택한 반면, PC통신 프로그램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유닉스 터미널 환경을 똑같이 모방(Emulate)해야 하는데 텍스트 모드로는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5. 당연히 소프트웨어가 이식없이는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
  16. 대형 양판점인 요도바시 카메라나 빅카메라, 소프맙 등의 홈페이지에 가면 DOS/V파츠 또는 DOS파츠 카테고리가 보이는데, 들어가면 내장형 하드 디스크에서 최신형 CPU, 파워 서플라이, 케이스까지 몽땅 찾을 수 있다. 물론 각각의 하위 카테고리로 각 부품을 정렬할 수도 있다. 또한 컴퓨터 전문 대형 판매점인 도스파라는 DOS/V 또는 DOS/J에 "파라다이스"를 합친 이름이다. 당연히 조립용 부품과 조립 PC를 팔고 있다.
  17.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당시에 삼보컴퓨터에서 일본 소텍 컴퓨터의 최대 주주가 되면서 펜티엄2~4급 PC들을 소텍 브랜드로 일본시장에 파격적인 가격으로 출시하여 화제를 일으키면서 잠깐동안 대박을 치던 시절이 있다. 하지만 이후에 미흡한 사후 지원으로 소비자들의 클레임이 급증하게 되어 일본시장에서 우소텍, 総鉄屑이라는 조롱을 당하면서 삼보컴퓨터는 결국 소텍컴퓨터에서 자본 철수를 하여 일본 수출이 중단되고 흑역사화가 되었다. 그래도 꽤나 많이 팔린 것인지 그때 판매된 소텍 PC들이 한동안 야후 옥션 등지에 꽤나 많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