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레드삭스

(보스턴 레드 삭스에서 넘어옴)
?width=40 MLB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소속구단
45px볼티모어 오리올스
(Baltimore Orioles)
30px보스턴 레드삭스
(Boston Red Sox)
40px뉴욕 양키스
(New York Yankees)
45px탬파베이 레이스
(Tampa Bay Rays)
55px토론토 블루제이스
(Toronto Blue Jays)
100px200px-RedSoxPrimary_HangingSocks.svg.png
모자 로고구단 로고
보스턴 레드삭스
Boston Red Sox
창단1901년
연고지매사추세츠보스턴
구단 연고지 변천보스턴(1901~)
구단명 변천보스턴 아메리칸스(Boston Americans; 1901~1907)
보스턴 레드삭스(Boston Red Sox; 1908~)
홈 구장펜웨이 파크(Fenway Park; 1912~)
구단주펜웨이 스포츠 그룹(Fenway Sports Group)
사장데이브 돔브로스키(Dave Dombrowski)[1]
단장마이크 헤이즌(Mike Hazen)[2]
감독존 패럴(John Farrell)[3]
월드 시리즈 우승
(8회)
1903, 1912, 1915, 1916, 1918, 2004, 2007, 2013
아메리칸 리그 우승
(13회)
1903, 1904, 1912, 1915, 1916, 1918, 1946, 1967, 1975, 1986, 2004, 2007,
2013
지구 우승
(8회)
1975, 1986, 1988, 1990, 1995, 2007, 2013, 2016
와일드카드 획득
(7회)
1998, 1999, 2003, 2004, 2005, 2008, 2009
역대
한국인 메이저리거[4]
조진호(1998~1999), 이상훈(2000), 김선우(2001~2002), 김병현(2003~2004)
약칭BOS
홈페이지
유니폼
ALE-Uniform-BOS.PNG
1903년 월드 시리즈 우승 팀
-보스턴 아메리칸스1905-뉴욕 자이언츠
1912년 월드 시리즈 우승 팀
1911-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보스턴 레드삭스1913-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15년, 1916년 월드 시리즈 우승 팀
1914-보스턴 브레이브스보스턴 레드삭스1917-시카고 화이트삭스
1918년 월드 시리즈 우승 팀
1917-시카고 화이트삭스보스턴 레드삭스1919-신시내티 레즈
2004년 월드 시리즈 우승 팀
2003-플로리다 말린스보스턴 레드삭스2005-시카고 화이트삭스
2007년 월드 시리즈 우승 팀
2006-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보스턴 레드삭스2008-필라델피아 필리스
2013년 월드 시리즈 우승 팀
2012-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보스턴 레드삭스2014-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 개요

SI_RS_SotY.jpg
2004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팀 던컨
&
데이비드 로빈슨
보스턴 레드삭스톰 브래디

MLB의 프로야구단.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소속. 연고지는 보스턴. 원래는 보스턴 아메리칸스라는 팀명으로 창단되었으나 1908년 보스턴 레드삭스로 팀명을 바꿔 현재에 이른다.

역대 팀 성적 링크

2015년까지 월드 시리즈에서 8회, 아메리칸리그에서 13회, 지구에서 7회 우승했다. 뉴욕 양키스에 비해서는 월드시리즈 우승 횟수가 적은 편인데, 여기에는 눈물겨운 사연이 있었다. 1910년대만 하더라도 보스턴은 월드시리즈에서 4회나 우승했지만 1920년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트레이드한 후 80년 넘게 월드시리즈 우승과 멀어져, '밤비노(루스의 별명으로,'아기'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의 저주'라는 말이 생겼다.

1946년, 1967년, 1975년, 1986년에 월드시리즈에 올랐으나 안타깝게도 드라마틱하게 패배하여 '역시 밤비노의 저주탓'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4번 모두 3승 4패). 1990년대에는 동부지구 내 토론토 블루제이스뉴욕 양키스에 밀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였다.그러나 세이버 매트릭스에 거리낌이 없는 존 헨리 구단주[5]와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는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빌리 빈 단장과 더불어 메이저리그 최고의 단장이라 불리는 테오 엡스타인 단장[6][7]의 부임으로 팀이 변모하여, 2004 ALCS에서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7전 4선승제 매치에서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역사상 처음으로 3패 후 4연승을 하는 리버스 스윕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다. 그 뒤에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을 역시 피 터지는 격전 끝에 꺾고 올라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스윕시키고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함으로써 86년 만에 밤비노의 저주가 풀렸다.[8] 특히 2004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쉽 시리즈에서 보스턴의 에이스였던 커트 실링은 부상당한 발목에서 피가 배어나옴에도 불구, 분투하여 '핏빛 투혼'이라는 별명과 함께 팀 우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세간에선 실링의 피 혹은 블러드삭스로 밤비노의 저주를 풀었다고 할 정도. 다만 이는 실링의 성격으로 보아 이목을 끌기 위한 쇼였다는 의견도 존재한다.[9]

이후 2007년 다시 우승했고, 2012년에는 지구 최하위로 추락하기도 했지만, 2013년 놀랍게도 반등하여 2000년대 세번째 우승을 차지하여, 새로운 강팀으로 자리잡았나 했지만 2014년, 2015년 귀신같이 AL동부지구 최하위로 되버렸다.

2 역사

2.1 초창기 강팀 시절

1901년 보스턴 아메리칸스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였고 레드삭스라는 이름은 1908년부터 사용했다. 1903년 전설적인 투수 사이 영과 함께 첫 우승을 한 뒤 1910년대에는 1912, 1915, 1916, 1918년 네 번의 우승을 하는 등 전성기를 맞았다. 베이브 루스는 1915년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이 시기에는 타자보다는 투수로서 맹활약했다. 1919년 팀이 5할 밑으로 떨어지자 시즌이 끝나고 보스턴은 뉴욕 양키스베이브 루스를 10만불에 현금 트레이드한다.

이 때만 해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가 다시 우승하기까지 86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2.2 저주의 굴레

베이브 루스 트레이드 이후 1920, 1930년대는 시카고 컵스와 맞먹는 암흑기를 가졌다. 팀이 부활하기 시작한 것은 또다른 레전드 테드 윌리엄스가 등장하면서. 타격의 신이라고 불리는 그와 함께 팀은 상당히 좋은 성적을 올렸으나 그가 참전하러 떠날 때마다 팀의 성적은 뒷걸음질쳤고, 지구 1위를 한 것은 1946년 단 한 번. 이 때 월드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3승 2패까지 올렸으나 6차전과 7차전을 내리 패하면서 우승에는 실패한다.

칼 야스트렘스키테드 윌리엄스의 뒤를 이어 팀을 이끌었지만 1960년대는 전체적으로는 팀의 암흑기였다. 1967년 깜짝 지구 1위를 하며 다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만 이번에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3:4로 패한다. 그리고 1975년에는 빅 레드 머신으로 통하던 신시내티 레즈를 월드시리즈에서 만난다. 7차전에서 보스턴은 3:0으로 앞섰지만 6회에 토니 페레즈의 2점 홈런, 7회 피트 로즈의 동점타, 9회 조 모건의 결승타가 터지면서 7차전 경기 3:4, 월드시리즈 전적도 3:4로 다시 무릎을 꿇고 만다.

1980년대의 전성기를 이끈 것은 타자 웨이드 보그스, 마이크 그린웰과 투수 로저 클레멘스다. 그리하여 1986년에 다시 월드시리즈에 나왔고 이번 상대는 뉴욕 메츠. 시리즈에서 3:2로 앞서던 6차전 게임은 연장에 돌입하여 10회초 2점을 낸 보스턴이 5:3으로 앞섰지만, 보스턴은 2아웃을 잡아 놓고 연속 3안타를 맞고 와일드 피치로 동점을 내줬으며, 그 유명한 빌 버크너의 끝내기 알까기 실책이 나오면서 패했다. 이후 7차전도 패하면서 다시 우승 좌절.

2.3 90년대의 슈퍼스타들

90년대 팀 타선의 주축은 모 본이었다. 1995년에는 MVP를 수상한 모 본의 맹활약과 너클볼을 들고 갑툭튀한 팀 웨이크필드의 등장에 힘입어 지구우승을 했지만 디비전 시리즈에서 3패로 광탈. 이후 1996, 1997년에는 성적도 좋지 않았고 로저 클레멘스도 FA로 다른 팀에 그대로 내준다. 하지만 1997 시즌이 끝나고 댄 듀켓 단장[10]은 크게 한방을 터트리는데, NL 사이영상 위너였던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유망주 칼 파바노와 토니 아마스 Jr.을 주고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온 것이다.[11] 이어서 1997년 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스타 유격수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타선을 이끌면서 다시 팀 성적은 상승.

1998년과 1999년은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오른다. 하지만 1998년에는 디비전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게 막혔고, 1999년에는 클리블랜드를 누르고 챔피언십에 도전했으나 뉴욕 양키스에게 패배하면서 무너진다. 이 때 보스턴은 페드로 선발경기 외 나머지 경기를 모두 패하면서 시리즈를 내줬다. 패패패패 마침 이때부터 양키스가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지구 1위를 독식하고 보스턴이 이에 도전하는 구도가 짜여진다.

이후 2000년에는 트레이드로 유망주 아담 에버렛을 내주고 호타준족 중견수 칼 에버렛을 받아왔지만 지구 2위에 와일드카드는 실패. 2001년에는 8년 계약으로 강타자 매니 라미레즈를 데려왔지만, 페드로가 부상으로 18경기 선발에 그치고 노마도 부상당했으며 칼 에버렛은 역시 리그 최악의 악동답게 팀내 다른 선수들과 충돌하며 분위기를 망쳐놓았다. 노모 히데오가 깜짝 활약으로 부활하여 13승을 했으나 팀은 5할을 간신히 넘는 데 그친다.

듀켓 단장은 스타급 선수들을 트레이드, 드래프트, FA 등으로 여럿 끌어모았고 이외에도 마무리 히스클리프 슬로컴을 시애틀 매리너스에 내주고 새로운 마무리 데릭 로우와 주전 포수 제이슨 배리텍을 데려오는 등 굵직한 성공작은 많았지만, 팀의 다른 선수들은 그것을 받쳐주지 못했다. 결국 전체적인 그림이 조화롭게 되지 못한 셈. 2002년 초 존 헨리 구단주는 보스턴 레드삭스를 인수하고 바로 댄 듀켓을 해고한다.

2002 시즌에는 데릭 로우의 선발전환이 대성공. 21승 8패 2.58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외로운 에이스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지원했다. 게다가 팀 웨이크필드도 오랜만에 부활하여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163.1이닝으로 규정이닝을 소화하고 11승 5패 2.81의 호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2점대 평균자책점 투수 세 명을 갖고도 포스트시즌 진출은 실패했다. 성적이 나아져서 93승을 올리긴 했지만 당시 돌풍을 일으켰던 와일드카드1위 애너하임 에인절스를 따라잡기엔 역부족.

2.4 테오 엡스타인의 등장과 두 번의 우승

존 헨리 구단주는 2002 시즌이 끝나고 새로운 단장으로 테오 엡스타인을 임명한다. 머니볼 이론과 세이버메트리션 등 새로운 흐름을 깨우친 테오 엡스타인은 적당한 중저가 선수들(케빈 밀라, 빌 뮬러, 토드 워커)을 FA 혹은 트레이드로 영입하며 타선을 탈바꿈시킨다. 지명타자 자리에는 오클랜드 출신의 출루머신 제레미 지암비를 영입했으나, 오프시즌이 끝나가던 1월말 페드로가 다른 팀에서 논텐더로 풀린 고향친구 한 명을 추천해 추가한다. 그가 바로 데이빗 오티즈. 이러한 타선 새판짜기는 제레미 지암비를 제외한 영입파 대부분의 대성공에 기존의 매니와 노마는 말할 필요도 없고 제이슨 배리텍트롯 닉슨까지 터지면서 .491의 팀 장타율 신기록, 9명 주전 전원 10홈런 이상, 리드오프 자니 데이먼을 제외한 8명 전원 85타점 이상 등등 각종 정신나간 기록들을 세웠다.

반면 투수진은 2002 시즌의 활약을 재현하지 못한데다, 초반 집단 마무리 체제 실험이 대실패로 끝나면서 버벅거렸다. 결국 마무리로 김병현을 트레이드해온다.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여 디비전에선 오클랜드를 리버스 스윕으로 2:3으로 꺾었지만,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다시 뉴욕 양키스 앞에서 쓴맛을 본다.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끝내 호르헤 포사다에게 8회에 동점 2루타를 얻어맞았고, 팀 웨이크필드가 애런 분에게 연장전 끝내기 홈런을 맞았다. 이후 그래디 리틀 감독이 물러나고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새롭게 돌아온다.

2004 시즌은 몇몇 타자들이 부상과 부진으로 고생하면서 2003 시즌과 같은 파괴력은 보여주지 못했고 기존 투수들은 더욱 부진하여 페드로 마르티네즈도 더이상 외계인이 아니라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트레이드해온 에이스 커트 실링과 FA로 받아온 마무리 키스 풀크, 마이너에서 수련받고 오랜만에 복귀한 브론슨 아로요가 활약하며 안정되었다. 그리고 트레이드 데드라인인 7월 31일, 테오 엡스타인은 팀의 상징과도 같은 노마 가르시아파라를 보내고 올랜도 카브레라와 덕 민케비치를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한다. 트레이드의 반향은 엄청났고 보스턴 팬들은 경악했으며 전문가들은 컵스가 노마를 스틸해왔다고 생각했지만, 레드삭스는 승승장구. 98승으로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올라 디비전에서 애너하임을 스윕한뒤, AL 챔피언십에서는 역사상 최초의 리버스 스윕을 달성하며 뉴욕 양키스를 꺾는다. 상세한 내용은 2004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문서 참조. 그리고 월드시리즈에선 지난 역사 속에 보스턴의 우승 시도를 두번이나 좌절시켰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맞아 4:0으로 가볍게 스윕. 86년만에 밤비노의 저주를 깬다.

이후 2005 시즌과 2006 시즌은 조금은 부족한 성적을 낸다. 많은 기존 선수들이 FA로 팀을 나갔지만 잡지 않았다. 또한 에드가 렌테리아, 맷 클레멘트, 윌리 모 페냐, 훌리오 루고와 같은 삽질영입도 있었다. 하지만 테오 엡스타인의 중요한 초점 중 하나는 유망주 육성에 있었다. 2003년부터 관리된 팜은 2006년부터 조금씩 결과물이 올라온다. 더스틴 페드로이아, 케빈 유킬리스, 자코비 엘스버리등의 타자와 에이스 존 레스터, 마무리 조나단 파펠본 등이 빅리그에 올라오기 시작했고, 또다른 유망주 핸리 라미레즈아니발 산체스는 트레이드로 이용되어 에이스 조시 베켓과 3루수 마이크 로웰을 데려온다.

2007 시즌에는 이런 유망주들이 자리잡은 데다가 2006년 삽질했던 조시 베켓이 귀신같이 홀수해 에이스 모드로 돌아오고 마쓰자카J.D. 드류 같은 FA도 적절하게 활약하면서 96승으로 지구 우승을 한다. 그리고 에인절스를 다시 스윕하고, 챔피언십 시리즈에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로 1승 3패까지 몰렸으나 에이스 베켓이 5차전을 잡고 6-7차전 타선이 폭발하며 힘겹게 승리한다. 월드시리즈에서는 락토버 돌풍의 콜로라도 로키스를 만나 4:0으로 스윕하며 잠재운다. 2004년 우승이 단기간에 영입된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였다면 2007년 우승은 팀에서 키운 젊은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진정한 강팀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2.5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강팀으로

2.5.1 2008&2009 시즌

2008년에도 어김없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지만 하필 만난 상대가 꼴지팀의 기적이라 불린 탬파베이 레이스였던지라…2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에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2009 시즌에는 그간 열심히 털어먹었던 양키스에게 8연승 찍고도 1승 9패를 찍으며 겨우겨우 5:5를 맞추었으며,[12] 매니가 떠난 빈자리를 메꿔줘야 할 오티즈가 헤메고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온 베이는 2%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와일드 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매번 포스트시즌에서 보스턴의 밥이었던 에인절스가 되려 이번에는 보스턴을 발라버려(…) 월드시리즈 진출은커녕 챔피언십 진출에도 실패하고 말았다.[13]

타선의 노쇠화와 강력한 투펀치의 부재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2009 시즌 중에는 시애틀 매리너스의 에이스 펠릭스 에르난데스를 얻으려고 유망주 중에서 찍으셈 했지만 시애틀이 거절했고[14] 스토브리그에서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강타자 애드리안 곤잘레스 트레이드를 추진했지만 무산되었다.[15] 한편으로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에이스 투수인 로이 할러데이를 놓고 양키스와 쟁탈전 중이었지만 로이 할러데이필라델피아 필리스로 갔고 보스턴은 LA 에인절스의 에이스였던 존 래키를 영입했다.

2.5.2 2010 시즌

2010 시즌에는 아드리안 벨트레, 마이크 카메론, 제레미 허미다, 존 래키 등을 영입해 비교적 조촐하게[16] 시즌을 시작했던 터라 보스턴 팬들도 그렇고 프런트도 그렇고 이렇다하게 기대는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장기 계약을 맺었던 조시 베켓은 개털리다가 2달 남짓 DL 갔다오는 모습을 보였고, 래키 역시 팀내 최다이닝을 소화했지만 고액 FA 계약자치곤 2%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뭐, 클레이 벅홀츠존 레스터가 제몫을 해줘서 다행. 마쓰자카 다이스케 역시 이번에도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불펜진이 박살났다는 점이다. 매니 델카맨, 오카지마 히데키, 라몬 라미레즈[17], 조나단 파펠본이 단체로 삽을 푸면서 불펜이 경기를 말아먹은게 한 두번이 아니다. 이로 인해 프런트에서는 쓸만한 불펜보강을 노렸다.

타선에선 오티즈는 그래도 5월 즈음부터 살아나면서 결국 타율 2할 7푼에 30홈런-100타점을 달성했다. 일단 자기가 할 최소한의 일은 다 해줬고, 케빈 유킬리스는 출장은 많이 못했지만평소 기대치인 3-4-5를 찍으며 0.975의 OPS를 기록했다. 그리고 FA로 온 벨트레가 3할대의 타율에 5할대의 장타율을 뽐내면서 타선에 활력을 불어놓았다.

포수면에서는 주전 포수 빅터 마르티네스가 수비 능력에서 다소 의문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도루 저지율이 3할이 안되며, 블로킹에서도 약점이 노출되었다. 그래도 빅터는 공격형 포수라 이런게 좀 안되도 봐줄 수 있었다. 그러나 벨트레가 시즌 초반 마이너리거의 희망으로 부상하면서[18] 부상자가 서서히 늘어났고, 조시 베켓, 마이크 로웰, 제이슨 배리텍, 더스틴 페드로이아, 빅터 마르티네스 등 주전급 선수들이 단체로 부상병동에 이름을 올리는 안습한 상황이 발생했다. 마치 2009 시즌의 뉴욕 메츠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성적은 열약한 상황 치고는 잘 나왔다.

결국 올스타전 이후 레드삭스의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케빈 유킬리스더스틴 페드로이아가 나란히 시즌 아웃을 당하면서 실질적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되었다. 성적은 괜찮았다. 같은 지구에 리그 1, 2위인 레이스와 양키스가 있어서 그렇지. 전체 리그 5위, 서부지구 우승팀인 텍사스 레인저스에 비해 1승이 모자랐고, 그놈의 양키스만 없었어도 다른 지구 2위를 모두 바르고 와일드 카드로 가을야구를 할 수 있었을 성적이었다.

2.5.3 2011 시즌

보스턴 레드삭스/2011년으로.

2.5.4 2012 시즌

보스턴 레드삭스/2012년으로.

2.5.5 2013 시즌

보스턴 레드삭스/2013년으로.

2.6 흔들리는 시기 (2014~2015)

2.6.1 2014 시즌

보스턴 레드삭스/2014년으로.

2.6.2 2015 시즌

보스턴 레드삭스/2015년으로

2.7 2016 시즌

보스턴 레드삭스/2016년으로

3 이모저모

3.1 주요 선수 및 영구 결번

팀의 프렌차이즈 스타/한 때 날렸던 투수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보스턴은 영구결번에 대해 매우 엄격하다. 원래는 10년 이상 보스턴에서 선수/감독으로 있었어야 했으며, 은퇴를 보스턴에서 해야 하며,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야 한다라는 개빡센 조건을 달았다. 그래서 1996년까지[25] 단 4명만이 영구결번이 되었다.[26] 그러나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은퇴한 칼튼 피스크가 2000년에 영구결번이 되면서 '은퇴를 보스턴에서 해야 한다'는 조건은 깨졌으며[27], 조니 페스키가 2008년 영구결번 되면서 '명예의 전당 입성'도 굳이 필요 없어진 상황이 되었다. 거기에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레드삭스에서 7시즌을 뛰었으니 10년 이상 선수/감독 조건도 완화됐다. 그러니까 과거처럼 3개를 다 만족시키기 보다는 2개 정도만 달성을 하면 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레드삭스의 영구결번은 다음과 같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영구결번
1468914
보비 도어조 크로닌자니 페스키칼 야스트렘스키테드 윌리엄스짐 라이스
2627344245
웨이드 보그스칼튼 피스크데이비드 오티즈재키 로빈슨페드로 마르티네즈
  • 1. 보비 도어(Bobby Doerr): 2루수로서 보스턴에서만 15년을 뛰면서 활약했던 선수. 1986년 베테랑 위원회의 결정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타격 성적은 평범한 편이지만, 좋은 수비력을 가졌던 선수.
  • 4. 조 크로닌(Joe Cronin): 1930년대 보스턴에서 활약한 유격수. 준수한 공격력을 자랑했던 유격수였다. 감독으로도 보스턴에서 활동했지만, 지독한 인종주의자라 보스턴의 흑인 선수의 영입이 가장 늦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덕분에 놓친 선수가 저 유명한 호타준족의 상징 윌리 메이스. 그거 아니었으면 밤비노의 저주는 진작 깼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면서 영구결번.
  • 6. 자니 페스키(Johnny Pesky):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지 않았음에도 영구결번을 준 최초의 선수. 1940년대 유격수로 활약하면서 괜찮은 활약을 보여줬다. 다만, 1946년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평범한 안타를 송구받아 잠시 방심하는 사이 세인트루이스의 1루주자 에노스 슬라터의 질주로 결승점을 내준 사건으로 인해 두고두고 욕먹기도 했다. 2004년 극적인 우승 이후, 60년 가깝게 비난한 것이 맘에 걸렸는지 우측 구역을 페스키 폴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하고, 영구결번까지 주면서 과거 밑도 끝도 없는 비난에 대해 사죄한 듯.
  • 8. 칼 야스트렘스키(Carl Yastrzemski): 1960~70년대 타자들의 암흑기에 레드삭스 타선을 이끈 최고의 타자이며 바로 뒷번호에 영구결번된 테드 윌리엄스의 후계자. 미겔 카브레라가 2012년에 달성할 때까지 MLB 최후의 타격 트리플 크라운 달성자였다. 타격 실력도 뛰어났고, 훌륭한 성품을 가진 선수라서 만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23년간 레드삭스에서만 뛰며 통산 452홈런 3419안타를 기록했으며, 그린 몬스터 때문에 절대 수비가 쉽지 않은 펜웨이 파크의 좌익수로서 7번의 골드글러브를 차지했을 정도로 수비도 빼어났다. 레드삭스 역대 최초의 공식 캡틴.
  • 9. 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 타격의 신. 메이저리그 최후의 4할 타자. 제2차 세계대전한국전쟁 참전으로 한창 전성기였던 5년의 세월을 날리고도 통산 타율 0.344, 521홈런 2654안타, 1839타점이란 대기록을 남겼다. 자세한 것은 문서참고.
  • 14. 짐 라이스(Jim Rice): 최악의 투고타저 시기인 1970년대에 활약한 강타자. 통산 382홈런 2452안타를 기록했다. 1978년 리그 MVP를 기록했고, 2010년 15번째 마지막 투표에서 간신히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야즈의 뒤를 잇는 레드삭스 제2대 캡틴.
  • 26. 웨이드 보그스(Wade Boggs): 1980년대와 90년대를 풍미했던 출루 머신. 총 5번의 아메리칸리그 수위타자와 6번의 아메리칸리그 최고 출루율을 기록했으며, 그 중 4년 연속 수위타자, 5년 연속 최고 출루율을 달성하며 출루 능력 하나만큼은 역대급 선수. 더불어 3000안타 마일스톤을 최초로 홈런을 기록한 선수이며 2005년 명예의 전당에 첫 턴 입성에 성공했다. 다만 레드삭스의 철천지 원쑤인 뉴욕 양키스에 제 발로 간 경력이 있어서 레드삭스에서의 영구 결번은 사실상 받기 힘들어 보였으나 2015년 12월 21일, 레드삭스가 보그스의 26번을 영구결번 처리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 27. 칼튼 피스크(Carlton Fisk): 보스턴에서 포수로 활약하며 빼어난 활약을 펼쳤고, 이후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가서 더 원숙한 기량을 선보였으며, 신인 시절부터 양키스의 캡틴 서먼 먼슨과의 맞짱 등 미친 존재감과 리더십으로 현지 올드팬들에게는 전설적인 커맨더(Commander)로 익숙하다. 그래서 두 구단에서 모두 영구결번(화이트삭스에서는 72번)되었고,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한 MLB 역대급의 포수다. 비록 선수로서는 시카고에서 은퇴했지만 보스턴에 돌아가 프런트로 재직하고 명예의 전당에 레드삭스 모자를 쓰고 입성한 인연을 들어 영구결번시켜줬다(사실 말년에 시카고 화이트삭스 구단주 측과 굉장히 사이가 틀어져서 그런 것도 있다).
  • 34. 데이비드 오티즈(David Ortiz) : 21세기 보스턴 최고의 스타. 비록 이적생 출신이긴 하나 14년간 보스턴의 강타자 및 클럽하우스 리더로서 맹활약했으며 밤비노의 저주를 깬 것을 포함하여 3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도핑 경력에 발목이 잡히는 선수로 보스턴 팬들에게는 거의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것에 비해 타 팀 팬들은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 45. 페드로 마르티네즈(Pedro Martinez): Pedro el Grande. 라이브볼 시대 가장 압도적인 임팩트를 남긴 명투수. 그리고 명실상부한 레드삭스 최고의 투수 2000년 조정 평균자책점(ERA+)가 291로 단연 1위이다(게다가 당시는 스테로이드가 만연한 극타고투저 시대였다!). 뿐만 아니라 양키스와의 라이벌리로 굉장히 유명한 선수 자세한 것은 문서 참고.

추가적으로 현재 21번(로저 클레멘스의 레드삭스 시절 등번호. 베켓은 레드삭스에 와서 19번으로 옮겼다), 33번(제이슨 배리텍), 49번(팀 웨이크필드)은 영구결번 선포만 안했다 뿐이지 사실상의 비공식 영구결번으로서 더 이상 지급되지 않는다. 보그스의 경우에는 명전에도 입성하고 했으니 거의 영구결번이 확정적... 일 수도 있으나 선수생활 막판에 불구대천의 원수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월드시리즈를 우승하는 배신을 때렸기 때문에 영원히 불가능할 뻔했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했듯이 2015년 12월 21일에 영구결번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커트 실링이 달았던 38번도 비공식 영구결번이었으나 2013년부터 비공식 영구결번을 해제했다.

3.1.1 보사구팽?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건 레전드건 상관없이 단물만 쪽쪽 빨아먹고 대차게 버린다고 해서 안티 측에서 붙인 별명. 이렇게 희생된 대표적인 레전드가 칼튼 피스크, 지미 팍스, 데니스 에커슬리, 웨이드 보그스, 로저 클레멘스, 노마 가르시아파라, 페드로 마르티네즈등 매우 많다. 그 외에 2004 시즌 우승의 멤버들 상당수도 우승 직후 혹은 머지않아 팀을 나간다.[28] 그 외에 팀에서 꽤 오래 활약한 데릭 로우자니 데이먼, 트롯 닉슨도 보스턴은 굳이 잡지 않았다. 또한 보그스나 클레멘스, 자니 데이먼의 경우는 불구대천의 원수 뉴욕 양키스로 이적하여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팬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29] 또한 장기계약에 사인한 브론슨 아로요를 윌리 모 페냐라는 놈 하나 얻자고 신시내티 레즈에 보내버린 것도 그 예로 들 수 있다. 최근에는 2008년의 그 유명한 매니 라미레즈-제이슨 베이 트레이드가 있다. 2009-10 오프시즌에 아드리안 벨트레를 영입하고 2007 월드시리즈 MVP이자 팀 케미스트리에서 중요한 위치를 갖는 정신적 지주인 마이크 로웰을 부상 경력 숨기고 텍사스 레인저스로 보내려다 메디컬에서 걸려서 망한 것이 있다(결국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 2010년 시을 끝으로 은퇴했다). 또한 2011-12 오프시즌에 FA가 되는 클로저 조나단 파펠본이 그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받았고, 결국 현실이 되었다. 또한 빅 파피 데이빗 오티즈 역시 2011년 성적이 매우 잘 나오고 있음에도 지명타자밖에 못한다는 이유로 결별할 뻔했다.[30]

물론 이는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대우해주는 그딴거 없이 철저히 능력 위주, 성적 위주라는 식의 세이버메트릭스 중심 머니볼 스타일 협상을 고수하는 존 헨리 구단주와 테오 엡스타인 GM의 정책인 것도 있지만[31], 뉴욕 양키스 같은 보삭스 안티들에게 레전드를 대우하는 법이 없다고 매우 많이 까이는 부분이다.

하지만 표현이 좀 과장되긴 한게, 피스크-보그스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보사구팽이라 말하기 좀 뭐하다. 에커슬리, 클레멘스, 페드로, 로우, 로웰의 경우에는 하락세가 보이던 상황에서 재계약을 포기했던 것이었고[32], 데이먼은 FA 행사 당시 보스턴이 딱히 필요로 하지 않았던 상황이었던걸 감안해야 한다.[33] 물론 안티들이 이를 까는 건 그것보다도 팀을 위해 헌신했던 선수들을 그렇게 냉혹하게 대해도 되냐라는 비판이 주요 포인트이기 때문에 이전에도 까였고, 앞으로도 까일 것이다. 다만, "팀을 위해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이 정년 보장 수표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무조건 Yes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실제로 테오 엡스타인은 버리는 타임만큼은 기가 막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다만 이걸로도 실드를 칠 수 없는 피스크-보그스 건은 그야말로 최악의 선례로 남을 듯.[34]

사실 이런 것보다는 브론슨 아로요 트레이드 같은 것이 임팩트가 컸다. 2005년 맹활약을 했던 브론슨 아로요는 에이전트가 3년 20M은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물리치고, 3년간 12M이 안되는 금액에 계약을 했다. 전형적인 홈디스카운트에 노예계약. 그리고 자신을 트레이드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브론슨 아로요는 2006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트레이드 된다. 이런 상황들이 2000년대 중반에 무더기로 나왔기 때문에 토사구팽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다.

3.2 한국 선수들의 진출

014006001120010220boston.jpg
좌로부터 김선우, 이상훈, 조진호(보스턴 레드삭스)

우리나라의 이상훈, 조진호, 김선우, 김병현 등이 보스턴에서 뛰었지만 오래 뛰지는 못하고 대부분 트레이드 되거나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오히려 보스턴은 보스턴에서 부활한 노모 히데오, 일본의 괴물투수라 불렸던 마쓰자카 다이스케, 오카지마 히데키 등이 뛰뛴 적이 있었고, 2013 시즌에는 우에하라 고지와 다자와 준이치가 불펜에서 활약하며, 레드삭스는 일본과 더 궁합이 잘 맞는게 아니냐는 말도 있다.

한편, 조진호가 레드삭스에서 뛰던 시절 이 팀의 3루 주루 코치로 있던 한국계 3세 웬델 김 코치도 있었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베이스 러닝을 주문하는 스타일이라 많은 주루사를 양산하며 욕을 많이 얻어먹은 코치였다.

3.3 라이벌 관계

3.3.1 뉴욕 양키스


[35]

[몰래카메라보스턴에서 양키스 옷을 입고다니면 생기는 일]

같은 지구의 뉴욕 양키스와는 숙적, 아니 철천지 원수급의 라이벌이다. "레드삭스 팬은 딱 두 팀만 응원한다. 보스턴, 그리고 양키스와 경기하는 팀"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36]
때문에 양팀의 경기는 늘 화제의 대상이 된다. 또한 서로의 전력보강에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는데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즈 쟁탈전이 대표적이고 2002년 오프시즌 호세 콘트레라스, 2008년 겨울 미네소타 트윈스의 에이스인 요한 산타나를 둘러싸고도 쟁탈전을 벌였다(자세한 내용은 최훈 카툰을 참조하시라).

이에 대해 현지 양키팬들은 좀 반응이 엇갈리는데, 보스턴을 철천지 원수 및 라이벌로 여기는 부류, 그냥 보스턴 팬들이 양키를 적대시하니 같잖은 것들이 깝친다고 적대시만 하지 라이벌로는 여기지 않는 경우로 나뉜다. 후자의 경우는 대개 올드팬들인데 이 사람들은 클래식 시리즈 상대인 LA 다저스라든가 같은 연고인 NYC의 맨해튼에 있었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서브웨이 시리즈의 상대인 뉴욕 메츠를 오히려 더 라이벌로 쳐주는 듯. 그러나 이 팀들이 모두 NL 소속이라 실제로 한 시즌에 만나는 횟수를 비교하면 한 해 무려 18번을 맞붙는 레드삭스에 비해 한참 모자라고, 메츠를 제외한 다저스나 자이언츠의 경우 각각 브루클린과 맨해튼에 홈을 두고 있던 연고지 라이벌 시절이 말 그대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라 그 색이 많이 옅어졌다. 게다가 언론에서도 대놓고 양키스와 보스턴의 라이벌 관계를 밀고 있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어쨌거나 상호 적대적인 관계라는 것 하나만은 틀림없는 사실.

원래 양키스가 베이브 루스 이적 이후 내내 압도적인 우위를 가져갔으나 1970년을 전후로 암흑기를 맞이했고, 이후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은 양키스 우위, 80년대 중반~90년대 초반까지는 레드삭스가 우위에 있었고, 90년대 중반~후반에는 양키스가 레드삭스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21세기에는 반대가 되어 레드삭스가 양키스보다 우위에 서있는 형국이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둘 다 우승 1번을 추가한 이후 침체기에 들어서 있다.

이 두 팀이 붙을 때 심심하면 난투극이 일어난다[37]. 밤비노의 거래 이래로 두 팀간의 직접적인 트레이드는 금기였으며[38], 설령 보스턴에서 뛰다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어찌어찌 양키스로 가더라도 보스턴 팬들의 영원한 욕을 각오해야 한다.[39] 게다가 두 팀이 붙을 때 팬들의 열기는 어떠한 더비 매치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다. 두 팀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날 때는 항상 역사가 쓰여졌으며[40] 또한 그들의 관계에는 항상 그 사람이 얽혀있었다. mlb.com에서 정리한 그들의 라이벌 관계를 보시라. 그들의 지독한 인연 둘 간의 치열한 혈전 모음집

또한 서로 상대팀 약쟁이에 대해서는 엄청 비난하고 대놓고 정의구현을 한다고 하면서 자기네 팀 약쟁이에게는 관대한 면모를 보이는 이중성을 가졌다. 엠팍 등 양키스 빠와 보스턴 빠가 많은 국내 커뮤니티도 상대팀 약쟁이에게는 엄청 가혹하면서 자기팀 약쟁이에게는 이미 죄값을 치렀다, 팀에서 파이팅을 이끌어내는 건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등의 이중성으로 싸우는 건 비일비재. 게다가 명문팀이라는 자부심과 오만함까지 더해졌으니...

통산 상대 전적은 2015년 시즌 종료 시점 기준 2176경기 962승 1161패 승률 .453으로 레드삭스가 상당한 차이로 뒤져 있으며, 30개 구단 중 양키스에게 가장 많은 패배를 당했다.

3.3.2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한때 레드삭스의 가을야구 한정 대표 호구였다.

애초에 미국의 양쪽 끝에 있던 팀이라 1년에 몇번 붙을까 말까한 사이었지만 1986년 ALCS에서 맞붙으면서 악연이 시작됐다. 당시 에인절스가 3승 1패로 우위인 가운데 9회초 5대 2라는 3아웃만 잡으면 월드시리즈 진출을 하는 상황에서 구원투수들의 불쇼로 거짓말 같은 역전패를 당하며 이후 3연패를 당하며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한 것이 그 시작. 이후 당시 경기에서 데이브 헨더슨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았던 에인절스 마무리 투수 도니 무어가 우울증에 빠져 3년 뒤 라스베가스에서 머리에 총을 쏴 자살하고 마는 비극이 발생했다.[41]

이후 에인절스가 다시 보스턴을 플레이오프에서 만나기까지는 18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고, 공교롭게도 에인절스가 플레이오프에서 보스턴을 만난 3번의 시즌중 두 번은 월드시리즈 우승까지(2004년,2007년)하는 강력한 전력이었고 에인절스 입장에서 정규시즌에는 보스턴을 잘 잡다가도 포스트시즌만 나가면 탈탈 털려왔다. 1986 시즌 포함 보스턴 상대로만 11연패를 당했으니 보스턴 팬과 기자들의 조롱이 오죽했겠는가.

거기에 2009 시즌 보스턴 에이스인 조시 베켓이 2009 시즌 초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에인절스의 영건 닉 아덴하트에 고인드립을 시전하면서[42] 에인절스 팬들의 감정을 급격히 자극, 올 포스트시즌에서 드디어 탈털 털리던 에인절스가 보스턴을 꺾으면서 좀 잠잠해지나...싶었는데 오프시즌에 팀의 에이스였던 존 래키가 보스턴으로 이적하고 "난 원래부터 보스턴 팬이었다."라는 멘트를 치면서 다시금 전투력 상승.[43]

에인절스 팬들이 이를 가는데 반해 보스턴 팬들은 별 관심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보스턴 입장에서는 양키스나 레이스쪽이 더 자주보고 힘든 상대기때문에 에인절스에 집중할 여력이 없으며, 그나마도 2010 시즌은 9승 1패로 정규시즌을 압도했고 2011년에는 초반 연패로 지구 최하위까지 몰렸지만 또 에인절스가 호구짓을 하며 4연승으로 5할 승률을 맞춰줬다.

하지만, 보스턴이 2013년 월드 시리즈 이후로 삽질을 계속하고, DTD를 시전함에 따라, 앤젤스만 만나면 무자비하게 털리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게다가 2015년 후반기 첫 4연전에 보스턴이 스윕당하면서 확인사살. 게다가 마이크 트라웃하고 알버트 푸홀스에게 멀티홈런을 얻어맞으면서 입장은 역전되기 시작한 듯.

3.3.3 탬파베이 레이스

2008년 코코 크리습제임스 실즈의 난투극, 2010-11 오프시즌 보스턴의 칼 크로포드 영입과 탬파베이의 자니 데이먼, 매니 라미레즈 영입 이래로 인터넷상에서 라이벌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라이벌리는 인터넷 상에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불꽃튀는 양상을 보였는데, 2011 MLB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 절정에 달하였다. 일부 팬들은 양키스와의 라이벌리 대신 레이스와의 라이벌리가 더 재밌다고 하는 지경.

2012년에는 애드리안 곤잘레스가 레이스전에서 반드시 홈런을 쳐보이겠다고 한 것(레이스에 대한 라이벌 의식보다는 부진하다보니 열심히 하겠다는 투였지만…)에 대한 반발로 데이빗 프라이스 등이 트위터로 반발하며 빈볼을 독려하고 맷 무어실제로 애드곤조를 맞춰버리는 등[44]

사실 양팀의 마찰에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언플을 통해 레드삭스 팬들의 신경을 자극하는 조 매든 때문이라는 보스턴 팬들의 공통적인 의견이 있다. 레드삭스는 어쨌든 빅마켓 명문 구단이고, 탬파베이는 약자 이미지가 있다보니 이를 이용한 매든의 언플로 인해 보스턴이 악역 이미지를 뒤집어쓴 면이 있다. 그리고 매든이 2014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났고, 이후 2015년 시카고 컵스 감독으로 가서 후반기 제대로 내로남불 발언을 터트려주면서 보스턴 팬들은 "그거 봐라. 우리가 말한 것처럼 매든 때문이다."라며 일제히 간증. 실제로 매든이 떠난 이후 2015년 양팀은 마찰이 일어나지 않았다.

3.3.4 필라델피아 필리스

이 외에 MLB 사무국 측에서는 2000년대 후반 들어 필라델피아 필리스인터리그 경기를 많이 잡으면서 미국에서도 퐉봑으로 분류되는 최고 진상 찌질이 팬덤끼리 라이벌리를 만들어보려 시도 중인데 정작 두 팬덤은 의외로 우승 오래 못한 흑역사라든지 공통점 등이 많고 안티 뉴욕 성향도 공유하는 바람에 서로 죽이 잘 맞아서 팬들이 웬만큼 좋게좋게 지내는 편이다. 물론 J.D. 드류라는 예외적인 케이스는 필라델피아만 가면 천하의 개쌍놈으로 대접받는다만(…) 90년대 필리스에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으로 활약한 커트 실링도 말년에 밤비노의 저주를 깨는 두 차례 우승을 이끈 공로로 페드로 마르티네즈에 준하는 대접을 받고 있고, 09년 필리스와 계약한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월드시리즈 양키스타디움 원정에서 등판할 때는 양키의 우승을 절대 두고 볼 수 없다는 안티양키 모토가 어우러지며 위대한 에이스의 마지막을 모든 레드삭스 팬들이 한마음으로 응원하기도 했다. 다만 승부에 있어서는 레드삭스가 필리스에 영 좋지 않게 발리면서 호구잡히는 인상. 그래도 조시 베켓은 레드삭스 저지를 입고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서 홈런을 때리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종료 후 조나단 파펠본이 필리스로 튀면서 보스턴 팬들은 전투력이 매우 상승했다.

3.4 구장 및 극성 팬들

3.4.1 펜웨이 파크

좌측에 크고 아름다운 펜스인 그린 몬스터로 유명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 펜웨이파크는 1912년 개장 이래 100년이나 된 유서깊은 구장이다. 자세한 내용은 펜웨이 파크 문서 참조.

3.4.2 극성 열성팬


(...)

야구 열기가 높고 역사가 오래된 구단인만큼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데, 특히 광적인 팬이 많기로 유명하며 비슷한 성향의 한신 타이거스(NPB), 롯데 자이언츠(KBO)와 함께 엮이는 경우가 많다. 보스턴 팬인 미국 연예인이 토크 쇼에 당당하게 보스턴 저지를 입고 나와 "보스턴이 최곱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막 나간다.(…)

우리에게 유명한 팬 중에는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 미국대사가 있다. 2004~05년 2년 동안 대사직을 역임하면서 두산 베어스의 홈경기에서 시구를 하는 등 야빠 성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에게 당시 레드삭스로 이적한 김병현을 소재로 드립을 쳤고, 가장 행복한 순간은 서울에서 레드삭스의 우승을 맛봤을 때였다고(…). 한편 대사직에서 물러난 2006년 말 베이징 6자 회담 당시엔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신분으로 참석하면서 일본 대표에게 "마쓰자카 다이스케 이적이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드립을 치더니, 이적이 확정되자 도쿄 회담에서 세이부 라이온즈 모자를 쓰고 나타나기도 했다. 이때 북한은 마카오 델타 아시아 은행에 2천 5백만 달러가 예금된 계좌 때문에 여러가지로 이슈가 되고 있었는데, 그는 북한 김계관 외무부상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마쓰자카 이적료가 5천 1백만이요."(…)링크 실제로 그의 유머 중에는 "우리 레드삭스는 플레이오프 못 가니까 한국야구 좀 볼까 생각한다"느니 하는 흉흉한 야구드립이 있으며, 그의 기행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정말 농담이 아니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한때 구단주로 있던 고향팀 텍사스 레인저스를 좋아하는 정도와 비교해도 차원이 다르다.

뉴욕 양키스를 이끌었던 조 토레 감독은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보스턴 팬에게 "후세인을 잡는것과 양키를 꺾는 것 중 하나만 선택하라면 양키를 꺾는 게 좋다"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코난 오브라이언 쇼에 출연한 토레 감독이 직접 밝힌 내용이다). 실제로 보스턴 팬의 응원 성향에 대해서는 "보스턴 팬들이 응원하는 팀은 2팀이다. 하나는 레드삭스, 다른 하나는 양키스가 상대하는 팀."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으며, 실제로 MLB관련 통합 커뮤니티 포럼에서 미국 한국을 막론하고 뉴욕 양키스가 다른팀과 경기에서 졌을때 보스턴 팬들이 나타나 조롱글을 다는 것이 가장 잦은 키보드 배틀 발생 사유이다. 참고로 저 양키스의 유명한 '악의 제국'이란 별명 역시 레드삭스에서 붙여준 것이다. 당장 1978년에 보스턴이 양키스에게 당한 사건을 생각하면 그저...잠시만 안구 건조 좀 시키고...

이런 극렬한 지지가 가끔 비뚤어진 방향으로 나타나곤 하는데, 2005년 양키와의 펜웨이 파크 경기에서는 게리 셰필드가 기괴할 정도로 묘하게 생긴 우측 필드에서 배리텍의 2, 3루타성 타구를 수비하다 펜스 앞의 관중에게 펀치를 얻어맞았고[45] 그리고 그게임 이후에는 보스턴에게 펀치 셔틀을 배달해준 양키용자팬도 있다...그와 거의 동시에 옆에 있던 팬이 셰필드에게 맥주를 뿌리는 비열하면서도 비범한 병크를 저지르기도 했다.[46] 이후 매년마다 보스턴이 양키홈으로 오면 "당연히 알겠는가?"...그야말로 보복이 보복을 낳는 성전과 갈등의 연속이다. 또 양키 유니폼을 입었다는 이유로 살인사건이 터진 적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후 또 보스턴 팬에 대한 살인사건도 터졌다. 흠좀무. 이래도 저래도 매년마다 터지는 갈등은 스페인의 레알-바르샤 더비만큼이나 극렬하다. 그리고 YANKEE SUCKS에 대한 이들의 대항은 RED SUX다[47].

이러한 극렬한 팬심은 2005년에 개봉한 '날 미치게 하는 남자'에 잘 드러난다. 원작인 영국 영화 '피버 피치'의 주인공은 극렬 아스날 FC빠였으나 미국에서 리메이크하는 과정에서 가장 적절하게 매치된다고 생각되었는지 보스턴빠으로 현지화되었다.[48] 엔딩 장면에다 밤비노의 저주를 깬 2004년 우승장면을 적절히 넣은 것으로도 유명하며,[49] 크레딧 올라가면서 흘러나오는 주제가는 레드삭스 응원가인 '테시(Tessie)'.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펜웨이 파크 관중석이 매진되자 표를 못 산 팬들이 입구를 강행돌파해서 입장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왠지 용접기가 떠오르는군. 덧붙여 노래를 부른 드롭킥 머피즈[50]매사추세츠 출신들로 결성된 모태보빠 밴드이며 이후 당연히 펜웨이 파크에서 공개 콘서트도 했다.

한국에도 꽤나 팬이 많은 편인데 보빠 혹은 봑...이라고 불리운다.[51]

2008년 4월에는 보스턴 팬인 인부가 양키스에 저주를 내리기 위해 새로 완공한 뉴 양키 스타디움에 보스턴의 간판타자 '빅 파피' 데이빗 오티즈의 유니폼을 묻었던 사실이 들통나 파내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오티즈가 저주를 받아버린 듯하다. 재미있게도 오티즈의 유니폼을 파낸뒤 오티즈의 성적이 좋아졌다. 아무래도 오티즈의 야구실력까지 같이 묻혔던 걸지도.(…)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의 홈구장에 가면 항상 볼 수 있는 인간들이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레드삭스 유니폼을 입은 인간. 다른 하나는 시카고 컵스 유니폼을 입은 인간. 이 두 팀의 팬은 보스턴이나 시카고에서 멀리 떨어져서 레드삭스나 컵스의 경기는 못 보고 자기 사는 동네의 야구장을 구경하러 가도 티를 낸다. 심지어는 에인절스브레이브스의 경기를 해도 이 두 종류의 인간들을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워낙 안습의 세월이 길어서 그랬는지 시카고 컵스의 팬들과는 묘한 우호관계가 있는 듯 하다. 홈구장도 자기네 리그에서 가장 오래된 구장을 써서 그런지 서로서로 잘 해주는 편. 인터리그할 때 서로 상대방의 구장을 방문하는 경우 분위기가 꽤 화기애애한 편이다. 하지만 매년 붙는 시카고 화이트삭스 팬들과는 똑같이 안습의 세월이 길었지만 그냥 서로 싸운다. 동족 혐오? 양말 더비

한 선수가 중요한 경기에서 삽질 or 장기 먹튀짓을 하면 그 선수는 수십년 간 그들의 까임용 안주가 되며 실제로 1986년 월드시리즈에서 알까기를 시전한 빌 버크너는 2004년 우승 전까지는 펜웨이 파크에 발 하나 디딛지 못했다. 그래디 리틀도 전자에 속하며[52], 후자의 경우에는 훌리오 루고[53], 마쓰자카 다이스케[54], 존 래키[55] 등이 있다.

3.4.3 레드삭스의 유명인 팬

4 계약중인 마이너리그 구단

  • 산하 마이너리그 구단이 모두 메이저리그구단 컬러와 똑같은 navy-red 컬러를 쓰고 있다.

4.1 트리플 A

포터켓 레드삭스
Pawtucket Red Sox
창단1970년
계약년도1970년
소속리그/지구인터내셔널 리그 북부지구
연고지로드아일랜드 주 포터켓
홈 구장맥코이 스타디움

4.2 더블 A

포틀랜드 시독스
Portland Sea Dogs
창단1994년
계약년도2003년
소속리그/지구이스턴 리그 동부지구
연고지메인 주 포틀랜드
홈 구장헤드록 필드

4.3 싱글 A

세일럼 레드삭스
Salem Red Sox
창단1968년
계약년도2009년
소속리그/지구캐롤라이나 리그 남부지구
연고지버지니아 주 세일럼
홈 구장세일럼 메모리얼 볼파크
그린빌 드라이브
Greenville Drive
창단1977년
계약년도2005년
소속리그/지구사우스 애틀랜틱 리그 남부지구
연고지사우스캐롤라이나 주 그린빌
홈 구장시립 그린빌 스타디움
로웰 스피너스
Lowell Spinners
창단1996년
계약년도1996년
소속리그/지구뉴욕 펜 리그 스태들러지구
연고지매사추세츠 주 로웰
홈 구장에드워드 레라시어 파크

5 기타

보스턴 레드삭스의 TV 중계는 주로 구단주 펜웨이 스포츠 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NESN(New England Sports Network)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ESPN, FOX 등을 통해서도 볼 수 있지만, 편파중계를 들을 수 있는 곳은 역시 NESN.[60] 참고로 NESN은 EPL 리버풀 FC(녹화중계), NHL 보스턴 브루인스의 경기 중계도 맡고 있다. 보스턴의 NBA보스턴 셀틱스, MLS 팀 뉴잉글랜드 레볼루션은 Comcast Sportsnet(CSN) New England가 중계를 담당하고 있는 중.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를 추모하기 위해 레드삭스 경기에서 직접 Sweet Caroline을 부르는 닐 다이아몬드. 모 자동차 회사는 광고효과 죽였을 듯.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에 부산 갈매기가 있듯이 이들에게도 스윗 캐롤라인(Sweet Caroline)이라는 주제가가 있다. 야구와는 아무 관계없는 이 노래가 왜 주제가가 되었는지는[61] 여러 설이 존재하지만 8회말에서 9회초로 넘어갈 때면 어김없이 펜웨이 파크에 흐른다. 닐 다이아몬드가 뉴욕 브루클린 출신이라 '보스턴 팬들이 왜 뉴욕 사람이 부른 노래 부르냐?'며 까는 사람도 있긴 한데, 정작 닐 다이아몬드는 다저스 팬이다.[62]


캐롤라인 케네디가 레드삭스 경기 중 Sweet Caroline을 부르는 모습. 바로 존 F. 케네디의 딸이자 2014년 현재 주일 미 대사를 지내고 있는 그 캐롤라인 케네디다.

축구팀 리버풀 FC에서는 이 노래를 스윗 캐롤 나인(Sweet Carroll 9, 9는 캐롤의 등번호)로 바꿔 앤디 캐롤의 응원가로 부른다. 앤디 캐롤을 사 준 보스턴의 구단주이자 리버풀의 구단주이기도 한 존 헨리에게 감사함(?)을 표시하기 위함인듯. 근데 진짜 싱크로율이 甲이다...[63][64]

그 외에도 앞서 말한 드롭킥 머피즈의 테시#라든가, 60년대 개러지 록밴드인 스탄델스(the standells)의 더티 워터# 같은 노래가 주제가로 쓰이고 있다.

일부 팬들에 의하면 돈질하는 악의 제국을 응징할 정의의 스몰마켓 팀이라고 한다[65]

2014년 1월 6일, 한국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구단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였다. 이장석 대표이사의 발언(기사 참조)에 의하면, '아시아 야구 교두보 확보' 등의 목적으로 추정.

국내에 유명한 보스턴 레드삭스 팬으로는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한순구 교수가 있다. 공식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 저술, 칼럼 및 인터뷰에서 레드삭스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 그러나 이준구 교수는 뉴욕 양키스 팬으로 그를 골려먹는다 강의소개
  1. 야구운영사장(President of Baseball Operations). 70년대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프런트 오피스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1988년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메이저리그 최연소 단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이후 플로리다 말린스로 자리를 옮겨 97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지휘했고 이어진 파이어세일로 2003년 우승에도 기여했다. 2001년 말부터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사장 겸 CEO 겸 단장으로 디트로이트를 지휘해 2006년 리그 우승과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지구 4연패를 이끌었다. 하지만 계속 우승문턱에서 좌절했고 2015시즌 팀이 부진하자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하고 보스턴 레드삭스의 사장으로 부임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명단장 중 한 명이다.
  2. 전임 단장 벤 셰링턴을 보좌하는 부단장으로 있다가 셰링턴 사임 후 단장으로 승진했다. 물론 실권은 돔브로스키 사장이 쥐고 있으므로 사실상 바지 단장(...)이긴 하다.
  3. 2015 시즌 도중 암 투병으로 토레이 로불로(Torey Robullo) 벤치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았으나 2016시즌부터 복귀한다고 한다.
  4. 마이너리거는 제외.
  5. 세이버메트릭스의 대부 빌 제임스를 자문역에 임명한 인물이다. 애초에 빌리 빈을 영입하려는 시도도 했고, 젊은 테오 엡스타인이 단장이 될 수 있었다는 것 부터가 존 헨리식 변혁의 시작...인데, 해외 축구팬들에게는 그런 것 없고 리버풀 FC의 2012년 현재 구단주로 유명하다.
  6. 테오 엡스타인의 취임 후 가장 두각을 드러낸 장면이 빌리 빈이 케빈 유킬리스를 3각 트레이드로 사기쳐 가려는 것을 막은 것이다. 이후 엡스타인의 행적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빅 마켓을 담당한 빌리 빈.
  7. 축덕들에겐 존 헨리는 리버풀 구단주로 유명하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리버풀의 단장(Director of Football)이 누군지 보라. 바로 현재 토트넘 핫스퍼 스쿼드 구성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대미언 코몰리인데, 이 사람은 축구판에 머니볼을 접목하려는 야망을 가진 사람이다. 축구판의 빌리 빈이라고나 할까. 오클랜드의 빌리 빈이 갑자기 토트넘 축덕질에 빠져서 정신 못차렸을 때 그를 축덕후로 인도한 양반이 바로 코몰리(…) 실제로 지금도 둘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8. '04년 월드시리즈 후 스폰서 나이키가 낸 광고는 그야말로 눈물난다. [1]
  9. 단 부상당한 발목은 사실이다. 월드 시리즈 이후로 한동안 목발을 짚고 다녔고, NFL의 뉴잉글랜드 페이트리어츠의 홈경기에 초대받아서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고 나타났을 때도 두꺼운 드레싱에 목발을 짚으면서 나타났다.
  10. 현재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단장.
  11. 댄 듀켓은 몬트리올 엑스포스 단장 재직 시절에 평범한 내야수 딜라이노 디실즈를 내주고 다저스에서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스틸해 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듀켓을 까는 사람들은 듀켓 커리어에서 페드로 빼면 뭐가 남냐(...)고 지적한다.
  12. 지구 순위는 당연히 양키스가 1등
  13. 그리고 2002년부터 플레이오프에서 만났다 하면 양키스를 발라왔던 에인절스가 이번엔 되레 양키스한테 발렸다.(…) 여러모로 징크스 파괴의 시즌인 2009 시즌.
  14. 킹 펠릭스는 시애틀과 연장계약을 했다. 근데 매리너스의 눈물나는 타선을 보는 킹은 과연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15. 케빈 타워스 단장도 빌리 빈이나 테오 엡스타인처럼 머니볼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알려져 있고, MLB에서도 유망주 보는 눈이 좋은 명단장으로 꼽힌다. 2010년 9월 애리조나 디백스로 옮겼다. 뒤에 언급할 2011 시즌을 앞둔 애드곤조 트레이드 성공 역시 케빈 타워스가 있었으면 보스턴에게는 좀더 많은 출혈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16. 옆 동네 양키스는 닉 존슨, 커티스 그랜더슨, 하비에르 바스케스 등 여러 이름값 비싼 선수들을 많이 데려왔다. 대신 기존에 있었던 자니 데이먼, 마쓰이 히데키, 멜키 카브레라 등을 정리하긴 했지만.
  17. 한국에 왔다 먹튀가 된 그 라몬 라미레즈와는 동명이인이다. 두산에 왔던 라몬 라미레즈는 보스턴 마이너에 머물렀고, 여기서 말하는 라몬 라미레즈는 여름에 샌프란시스코로 트레이드되어 그 해 우승을 맛본다. 항목도 같은 페이지에 작성되었다.
  18. 경기 도중 자코비 엘스버리, 제레미 허마이다와 3중 추돌 사고 부딪히면서 둘이 단체로 DL을 갔고, 그 사이에 빌 홀, 다넬 맥도날드 등 많은 마이너 선수들이 올라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줬다.
  19. 그래서 매년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주는 상의 이름은 사이영상이다.
  20. 보스턴 시절에 통산 94승을 거뒀다.
  21. 밑에 다시 언급되지만 미겔 카브레라가 45년만에 이 기록을 다시 세웠다.
  22. AL에서는 칼 립켄 주니어 이전에는 유일한 기록이었다.
  23. 토니 그윈이 내셔널리그를 대표하는 교타자였다면 보그스는 아메리칸리그의 대표 교타자. 그러나 양키스로 가서 우승 반지를 끼게 된다.
  24. 이 때는 약빨이 아니었다. 많은 팬들이 안타까워하는 이유 중 하나. 약 안 빨았어도 이미 최고 에이스였는데 왜 토론토랑 양키스 가서 약 빨아서...
  25. 재키 로빈슨의 전 구단 영구결번 전까지
  26. 보비 도어, 조 크로닌, 칼 야스트렘스키, 테드 윌리엄스
  27. 그러나 칼튼 피스크가 은퇴 후 선수로서 은퇴한 후 한동안 레드삭스 구단 프런트로 일했던 것을 레드삭스에서의 은퇴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28. 원래 이곳에는 04년 이후 팀을 옮긴 선수들 이름이 일일이 열거되어 있었지만, 1-2년 혹은 반 시즌 뛴 선수 하나하나를 못 잡았다고 해서 보사구팽 운운할 수는 없다. 실제로 데이브 로버츠 같은 경우는 애초에 주전 리드오프급 선수를 급하게 대주자 및 작전용을 데려온 거였고, 우승 이후 로버츠 본인이 기회가 많은 곳으로 가길 원해 파드리스로 트레이드된 케이스.
  29. 레드삭스 출신 선수들이 양키스 선수로 뛰는 것은 거의 을사오적급의 배신으로 간주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심지어 페드로 마르티네즈까지 양키스와의 계약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30. 다만 파펠본과 오티즈 건의 경우에는 전 GM이었던 테오의 유산인 랙키와 CC때문에 도저히 페이롤을 감당할 수 없는 현 레드삭스의 현실을 감안하면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마쓰자카의 부상으로 선발 슬롯까지 빈 상황에서는 더더욱.
  31. 그 결과 베테랑이자 캡틴인 제이슨 배리텍이나 팀 웨이크필드도 연봉협상에서 엄청나게 후려쳐진 헐값으로 사인하고 말았다. 심지어 배리텍의 에이전트는 그 악명 높은 스캇 보라스였는데도 겨우 $2M(…) 참고로 보라스가 외치던 말은 호르헤 포사다이었다. 밑에 나올 양키스와의 대조를 보라. 이 둘의 연봉차이가 어떠한지...레드삭스 통산 200승이 가시화되어 영구결번급의 대접이 예약된 웨이크필드 역시 $1.5M이라는 초 안습한 연봉을 받는다.
  32. 에커슬리나 로우가 후에 재기한건 사실이나 세상만사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클레멘스는 약빨이니 논외.
  33. 거기에 도루 능력 하락, 소녀어깨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도 있다.
  34. 그나마 피스크는 화해도 했고 영구결번도 시켰으므로 더 이상 앙금은 없지만 보그스는... 결국 보그스에게도 뒤늦게나마 영구결번을 안겼다.
  35. 이 사진이 원본은 아니다. 원래는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팬 사진에 보스턴 레드삭스의 엠블럼을 합성한 것.
  36. 다만 아래에서 자세히 후술할테지만 양키스 팬들은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는 편이 아니다. 명예의 전당 입성한 선수들의 수, 메이저리그에서 차지하는 팀의 위치, 그리고 월드시리즈 우승 횟수 등 양팀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레드삭스 팬들이 이를 박박가는 경우가 많은데 양키스 팬들은 "아따 고놈 거 참 성깔한번 X같네~"하는 정도인지라 어떻게 보면 김 팍새는 경우가 많다.
  37. 배리텍vs에이로드, 페드로vs돈 짐머 등등.
  38. 이 금기는 2014년 트레이드 데드라인 시점에서 뉴욕 양키스스테판 드류를 트레이드해오면서 깨졌다.
  39. 웨이드 보그스, 로저 클레멘스, 자니 데이먼 등. 보빠들은 동굴맨을 Johnny Damon이 아니라 이젠 Johnny Demon으로 부른다. 다만 로켓의 경우엔 다른 이들과 달리 트레이드로 옮긴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에 비해 분노나 배신감보다는 슬픔(이는 톰 글래빈이나 랜스 버크먼처럼 철천지 원쑤 라이벌 팀으로 간 레전드에게 박수를 보내는 팬들의 심정이다. "에라이 죽어라" 야유하는 것보다는 "엉엉 돌아와요 ㅠㅠ"의 성격)이 더 컸으나… 로켓이 HoF에 양키모자 쓰고 갈거임ㅋ라 해서 이젠 그냥 개객기 취급. 게다가 보스턴 이후의 성적은 약빨임이 들통난데다 재판 과정에서 위증을 한 혐의로 기소까지 당하면서 명전행도 불투명해졌기 때문에 보빠들은 더욱 통쾌하다. 물론 약빨이 밝혀지기 전인 2006년에 테오가 계약을 오퍼했을 때는 로켓의 복귀를 염원하는 팬들도 적잖이 있었다.
  40. 1978년 원게임 PO, 2003-2004 ALCS
  41. 하지만 이해 플레이오프는 메이저리그 팬들이라면 다 알만한 빌 버크너알까기 실책과 그로 인한 어메이징 메츠의 우승으로 다른 이슈가 묻혔다.
  42. 그것도 빈볼시비를 벌인 후 인터뷰에서
  43. 게다가 지난 수년간 에인절스가 탈탈 털리는데 있어 1등공신(…)이 래키였던터라.
  44. 당연하지만 이후 보복성 빈볼이 있었고, 다음날에는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졌다. 바비 밸런타인, 조 매든 양 감독도 설전에 가세했을 정도로 라이벌리가 고조되는 모양새.
  45. 펜웨이 파크 라이트 필드는 펜스까지 거리가 짧지만 높이가 몹시 높은 그린 몬스터와는 달리 굉장히 깊숙하지만 펜스 높이가 지나칠 정도로 낮아서 저런 관중들의 습격이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시에는 경기가 굉장히 과열된 8회말 2사 만루 5-6 리드상황이었고 타구가 묘하게 펜스 밑을 따라 굴러갔다보니 셰필드는 밑의 공만 따라가다가 신난 관중이 휘두르는 팔(물론 다분히 의도적인 행위였고 레드삭스 팬덤 평판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악질의 행동이었다)에게 강펀치를 얻어맞았다. 안습.
  46. mms://a1503.v108692.c10869.g.vm.akamaistream.net/7/1503/10869/v0001/mlb.download.akamai.com/10869/2005/open/topplays/archive04/041405_nyabos_sheffield_conflict_350.wmv?ct1=mlb
  47. 물론 오타이나 더 강렬한 느낌을 주는 만큼 인정되고 있는 철자다.
  48. 다만 아스날 팬들은 보스턴 팬들처럼 극성스럽지는 않고, 영화 상에서 주인공의 서포팅하는 모습도 원판과 상당히 거리감이 있다. 그냥 리메이크 하면서 미국에서 잘 먹힐것으로 바꾼 것으로 봐야한다. 오히려 축구팀 중에서는 리버풀이 보스턴의 광적인 극성 팬들과 비슷하다.
  49. 원래는 당연히(?) 2004년에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할 걸 젼혀 예상하지 못해서 그냥 주인공 커플이 모두 열성 레드삭스 팬이 되어서 언젠가 올 우승의 날을 기다리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걸로 마무리지으려 했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실제 엔딩 장면을 찍으려고 배우들과 스탭들이 급하게 세인트루이스로 이동했고 실제로 월드 시리즈 도중 영화의 주인공인 드류 베리모어와 지미 펠론이 중계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었다.
  50. 보스턴 출신의 스킨헤드 펑크 록 밴드다. 현재 전세계 펑크록 팬들 사이에서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밴드중 하나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영화 무간도의 리메이크 작품인 디파티드의 테마 송 "I'm shipping up to boston"으로 한국에 잠시 알려진 바 있다. 그 테마 송은 레드삭스 클로저 조나단 파펠본의 등장음악으로 쓰이기도 한다.
  51. 2006년 이후로 야갤에서 유행한 '○○가 최악이다'에 보스턴을 넣어 합쳐진 단어. 대체로 봑이라는 별명은 해외야구 갤러리등에서 사용하는 단어이며, 이는 한국의 보스턴 팬 층이 두터운데다 하는 짓이 현지화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 이후 왁(뉴욕 양키스), 퉥 혹은 톽(텍사스 레인저스)등 다른 바리에이션도 등장했다. 그리고 이 유행어의 원조는 바로 솩(SK).
  52. 2003 ALCS 7차전에서의 투수운용이 뼈아팠다. 그야말로 월드시리즈로 가기 직전의 상황에서 거대한 삽질을 한 케이스.
  53. 그야말로 전설의 레전드. 4년간 3600만 달러 계약 맺고 부상으로 먹튀짓했으며 이도 모자라 유격수라는 선수가 필딩율이 .968-.945-.928로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지명할당되고 트레이드로 쫓겨났는데 그 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가서 하는 말이 "나는 잘 하려고 노력했는데 팀이 믿고 써주질 않았다."3년 동안 266번이나 기회줬음 할말 없을텐데? 결국 흑역사로 전락했다. 현재는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로 가서 마이너와 메이저를 오가는 중. 지금까지도 테오 엡스타인을 까는 용도로 많이 쓰이고 있는 떡밥이며, 금액도 수표 쓸때 0 하나를 잘못해서 더 써버렸다는 평(…)
  54. 연봉은 비싼 편이 아니지만 그놈의 포스팅비가…참고로 그 포스팅비 1억 불이었으면 요한 산타나를 데려올 수 있었다.
  55. 2013년 전까지 래키에 대한 평은 냉혹했다. 인터리그 게임에서는 가끔 충격과 공포의 2루타를 날려 점수를 올리는가 하면 본업인 아메리칸 리그 게임에서는 그냥 이닝당 1실점(…)으로 레삭 팬들에게 "쓰레키"로 불렸었..지만, 2013년 기적같이 회춘해서 팀이 정규 리그 1위는 물론이고 월드 시리즈 우승을 거두기까지 1등 공신이 되었다.
  56. 56.0 56.1 이 둘은 절친으로 알려져 있으며, 컴퍼니 맨을 비롯한 이들의 영화에는 레드삭스는 물론 브루인스나 셀틱스, 패트리어츠 같은 뉴잉글랜드 지역 팀의 물건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가족끼리 보기 좋은 훈훈한 영화를 많이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애덤 샌들러도 친하다. 그러나 벤 애플렉의 경우 양키 팬인 샌들러의 영화 촬영 때문에 잠시 양키 유니폼을 입었던 흑역사도 존재(…)
  57. 얼마나 팬심이 깊었으면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라는 소설을 썼을정도, 참고로 이때가 톰 고든이 레드삭스의 마무리로 활약한 때였다.
  58. 레드삭스 개막전에서 시구를 한 적도 있다. 이 장면은 영화 나를 미치게 하는 남자에도 나온다.
  59. 펜웨이 파크 100주년 기념 앨범 작업을 했고, 노래도 하나 불렀다.
  60. 전담 캐스터인 돈 오실로(Don Orsillo)는 가을엔 포스트시즌 주관방송사인 TBS에서 중계를 맡기도 한다. 여담으로 오실로는 팀 웨이크필드가 "아나운서 보이"라고 칭한 뒤 별명이 아나운서 보이로 굳어졌다고 한다.(...)
  61. 물론 롯데 자이언츠의 부산 갈매기, SK 와이번스의 연안부두, 기아 타이거즈의 남행열차도 야구와는 전혀 관계없다.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될듯.
  62. 알다시피 LA 다저스의 전신은 뉴욕 브루클린을 연고로 했던 브루클린 다저스이다.
  63. 우연인지 뭔지 몰라도 레드삭스와 리버풀의 사이엔 뭔가 공통점이 많이 있다. 수십년간 우승 못한 흑역사나, 제라드 캐러거 배리텍 같은 살아있는 레전드 캡틴들이나, 아이리쉬 팬들의 지지를 많이 받는 것이나, 팀의 운영색채 자체가 세이버메트릭스를 위시한 스탯 중시라든가. 오죽하면 리버풀 좋아하는 미국 싸커빠들은 보스턴 구단주가 리버풀을 인수했다는 소식에 제라드가 펜웨이 파크에서 시구를 할 것이라는 설레발까지(…)
  64. 미국 보스턴과 영국 리버풀, 글래스고 쪽 동네는 과거 영국 식민통치 시절 아일랜드 대기근에서 국가가 개발살났을 때 많은 아일랜드인들이 이민가서 정착한 도시들이다. 글래스고의 셀틱 FC 팀 자체가 그 역사이며, 셀틱 팬들과 리버풀 팬들은 몹시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앞서 언급된 드롭킥 머피즈의 노래들도 리버풀과 셀틱에서 응원가로 쓰여도 손색이 없는 아이리쉬풍의 노래들이다.
  65. 보스턴도 명실상부한 빅 마켓 중 하나다. 레드삭스 외에 셀틱스(농구), 패트리어츠(미식축구), 브루인스(하키)가 이 지역의 대표 스포츠팀이다. 미식축구가 아닌 보통의 축구팀(뉴잉글랜드 레볼루션)까지 포함하여 5대 프로스포츠에서 팀을 보유한 전미에서 단 8개뿐인 도시에 속한다. 경기장 수용 인원이 밀려서 그렇지(티켓 값이 MLB에서 가장 비싼 구단임에도 매진 기록을 이어오고 있다) 레드삭스도 관중수 면에서 미국 3대 빅마켓(뉴욕, 로스 앤젤레스, 시카고)을 연고로 하는 팀들인 다저스, 에인절스, 양키스, 메츠, 컵스, 화이트삭스에 전혀 밀리지 않는 인기구단이며, 양키스와 함께 하는 라이벌 구도로 전세계의 MLB 팬덤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세계구급으로 노는 팀인데 스몰마켓은 터무니 없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