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오리온스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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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부산 kt 소닉붐
서울 삼성 썬더스
서울 SK 나이츠
안양 KGC인삼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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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모비스 피버스
원주 동부 프로미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전주 KCC 이지스
창원 LG 세이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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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마스코트
엘프[1]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Goyang Orion Orions
창단1996년
구단명 변천대구 동양 오리온스 (1997년 ~ 2003년)
대구 오리온스 (2003년 ~ 2011년)
고양 오리온스 (2011년 ~ 2015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2015년 ~ 현재)
연고지대구광역시 (1997년 ~ 2011년)
경기도 고양시 (2011년 ~ 현재)
모기업오리온 (Orion Corporation)
구단주강원기
단장박성규
감독추일승
영구결번10
홈구장고양체육관 (수용인원 : 6,997명)
클럽하우스없음
홈페이지 | 페이스북 | 네이버 포스트 | 유튜브
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팀
2000-20012001-20022002-2003
수원 삼성 썬더스대구 동양 오리온스원주 TG 엑써스
2014-20152015-20162016-2017
울산 모비스 피버스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KBL 정규리그 우승 팀
2000-20012001-2002, 2002-20032003-2004
수원 삼성 썬더스대구 동양 오리온스원주 TG삼보 엑써스

1 소개

KBL의 프로농구단. 연고지는 경기도 고양시. 1997년 연고지를 대구광역시로 하는 프로농구팀으로 창단하였다.[2] 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모기업은 한때 동양제과였던 오리온제과. 절대로 동양고속(또는 건설)이 아니다. 그래서 창단 직후의 이름은 대구 동양 오리온스. 홈구장은 대구 옛 경북도청 근처에 있는 대구실내체육관을 쓰다가 2011년 고양시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고양종합운동장 내에 위치한 고양실내체육관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창단 당시 고려대학교 출신 선수들을 주축으로 했으며, 고려대의 스타이던 전희철과 김병철이 창단 때부터 팀의 중심 역할을 했다.

2 역사

2.1 대구 오리온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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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오리온스
Daegu Orions

야구로 치면 롯데 자이언츠비교가 될 정도로 꼴찌 및 하위권 경험이 많았던 팀.[3] 그러고보니 프런트들이 희대의 병크를 하나씩 터뜨린 것도 닮았다. 그나마 고양으로 이전하면서 3시즌 연속 6강에 진출하는 등 다시 중위권 팀으로 돌아갔다.

원년 시즌과 1997-98 시즌에는 전희철, 김병철을 주축으로 하여 4강에 올라가는 등 선전했다. 허나 1998-99 시즌을 앞두고 팀의 주축 전희철, 김병철, 그리고 신인 박재일을 모두 군대로 보내며 그 기간 동안은 용병빨로 때우려는 심산으로 훗날을 기약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2.1.1 전설의 32연패, 그리고 안습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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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연패 했을 때의 순위표 그 다음 1번 더 지고 연패 탈출 플레이오프 커트라인팀의 승률이 6할에 육박한다.

1998-99 시즌 반어법으로 전설을 쓰고 말았다.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다 연패 기록인 32연패를 포함, 한 시즌에 꼴랑 3승을 기록하며 시즌 3승 42패 승률 0.067이라는 프로 스포츠 사상 최악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4][5] 이렇게 된 원인은 주축 선수들의 군입대, 그로 인한 스쿼드의 약화[6]가 꼽힌다. 그나마 약해진 스쿼드를 용병빨로 어떻게든 메워 보고자 센터 그레그 콜버트, 가드 존 다지를 영입했으나, 2승을 거두고 그레그 콜버트가 야반도주해버리는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래서 부랴부랴 자바리 마일스를 데려왔으나, 원래 마일스는 가드 포지션의 선수였는데 콜버트를 땜빵하기 위해 센터 포지션에 집어넣어 마일스는 전혀 적응을 하지 못했고, 존 다지는 전설의 3점 레이업[7]으로 유명한 레전드급(...) 식물용병이었다. 거기다 국내 선수들의 기량 미달까지 겹쳐 결국 콜버트의 야반도주 이후 기나긴 32연패에 빠지고 만 것. 즉 콜버트가 있을때는 2승6패 승률 3할이라도 갔다. 그런데 2015년 NBA에서 팬들을 우롱할 정도로 아주 대놓고 탱킹을 하고 있는 팀이 생겨나 이 기록마저 깨질 위기에 처했으나 다행히 28연패에서 끝났다.

이 연패 기간에 KBL 한경기 팀 최소득점 경기를 무려 3번이나 갱신(...)하는 안습함도 보여준다.[8] 또한 이 연패때문에 공중파 시사프로그램의 메인으로 두번연속 다뤄지기까지한다.

속절없이 연패를 이어가는 동안 프런트 측에서는 어떻게든 연패를 끊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구단 관계자들은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고 팔공산 갓바위에 올라 108배를 드렸다. 박용규 단장은 팔공산 동화사에 가서 불공을 드렸으며 김홍국 사무국장은 기혼 선수들의 부인들을 따로 불러 식사대접을 하며 더욱 적극적인 내조를 부탁하기도 했다. 여기에 중국의 중거리 육상팀인 마군단이 먹었다는 특수음료를 구해 선수들에게 공급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연패 행진은 끊길 줄을 몰랐고 선수들은 패배의식에 물들어버렸다.[9] 그러다 1999년 2월 28일, 광주 나산 플라망스와의 대구 홈 경기에서 드디어 32연패를 끊었다. 당시 대구실내체육관은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한 분위기였고, 이날 입장했던 4000명의 팬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경기를 다시 전패해서 3승42패의 전설을 완성했다.

그러나 이날 경기는 전문가들한테서 상대팀인 나산 선수들이 연패를 끊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받았다. 우선 나산 선수들은 전날 LG와 치른 경기가 연장전까지 가는 바람에 체력이 많이 떨어졌고, 다른 경기와 달리 줄곧 베스트 5를 출전시킨 게 아니라 12명을 골고루 기용했다. 게다가 황유하 당시 나산 감독은 나산 선수들에게 "너희들 적당히 해라!"고 말했다고 인정했다. 관련 기사

1999-00 시즌에는 전희철이 소집 해제되어 돌아왔으나 팀은 8위에 그쳤다. 2000-01 시즌에는 김병철도 상무에서 제대, 돌아오며 재도약을 꿈꾸었다. 하지만 포인트가드 부족으로 인해 김병철이 포인트가드 포지션을 맡게 되었고, 김병철은 이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용병마저도 신통치 못하며 2년만에 다시 꼴찌.(…) 결국 2001년 1월에 최명룡 감독이 사퇴하고 김진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아 시즌을 마쳤다. 그래서 이듬해 드래프트에서 3순위를 받아, 메이저 대학 출신이 아닌 똘끼있는 가드를 지명하고 외국인 선수 드렙에선 좀 말라보이는 테크니션을 1순위로 지명하게 되는데.....

2.1.2 2001-02 시즌, 김승현과 힉스 그리고 판타스틱 5가 만들어낸 첫 우승

점프볼&농구전문기자 선정 KBL 역대 최고의 팀 1위

2001-02 시즌 전, 대구 동양의 우승을 점치던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지난 시즌 9승 36패로 리그 꼴찌였던데다 눈에 띄는 전력보강조차 없었기 때문.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똘끼있는 가드와 말라깽이 테크니션 콤비가 KBL을 초토화시키며 우승했다!

2001-02 시즌의 영상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지금은 사람들 속에서 많이 잊혀졌지만, 이 둘의 활약으로 인해 2001-02 오리온스는 KBL 역사상 최강의 임팩트를 보여줬다. 시즌 개막전에서 SK빅스에게 1점차로 아쉬운 패배를 당했지만, 이후 1라운드 8경기에서 전승을 거두면서 단숨에 선두로 치고 나선 후, 시즌 내내 선두를 독주하며 우승을 거뒀다.

이 당시 오리온스의 플레이는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 신인 포인트가드 김승현은 내노라 하는 KBL 기존 가드진을 모조리 찢어버리면서[10] 스피드와 똘끼 넘치는 패싱력으로 타팀의 앞선을 무너뜨렸다. 여기에 마르커스 힉스는 빠른 스피드와 득점력을 바탕으로 김승현과 환상적인 콤비플레이를 펼쳤는데, 이후 김승현이 "피트 마이클, 아이라 클라크 등 수많은 우수한 용병과 손발을 맞췄지만 최고의 콤비는 마르커스 힉스"라고 회고했을 만큼 둘의 콤비플레이는 돋보였다.

마르커스 힉스는 쇼맨십도 대단했다. 경기 중 리액션이 상당히 큰 편이었고, 득점찬스에선 호쾌한 덩크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운동능력과 탄력이 당시 KBL 수준에선 독보적이었기 때문에 김승현과의 궁합이 잘 맞았던 것.

여기에 기존 국내선수 에이스였던 김병철과 전희철은 이전에 본인들에게 몰렸던 부담에서 벗어나 마음껏 득점포를 가동했으며, 20순위로 뽑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라이언 페리맨은 리바운드에서 독보적인 모습을 보이며 리바운드왕에 올라, 팀의 클래스를 높였다.

당시 주전 라인업이었던 김승현-김병철-전희철-힉스-페리맨은 각 포지션 별 역할과 조화가 이상적으로 구현되어 '판타스틱 5'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슬램덩크 쇼호쿠의 주전라인업과 비교하는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을 정도였다.

당시 주전 라인업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김승현(PG)전경기 출장평균 38.0분 출전12.2득점7.96 어시스트
김병철(SG)52경기 출장평균 31.1분 출전13.9 득점3점 성공률 41.5%
전희철(SF)43경기 출장평균 32.1분 출전14.8 득점4.05리바운드
힉 스(PF)53경기 출장평균 37.9분 출전24.2득점8.2 리바운드3.7 어시스트
페리맨(C)52경기 출장평균 38.1분 출전16.7득점14.9 리바운드

정규시즌을 1위로 차지한 이후 4강 플레이오프에선, 공격농구의 상징 김태환감독이 이끄는 창원LG를 만나 3승 2패로 물리치면서 (패-승-승-패-승) 창단 이후 첫 챔피언 결정전까지 올랐다.

챔피언 결정전에선 서장훈이 버티는 서울 SK 나이츠와 상대했는데, 5차전 조상현의 종료직전 극적인 버저비터 3점슛을 얻어맞고 2승 3패까지 몰렸으나, 대구에서 열린 6,7 차전을 모두 승리하면서 4승 3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대구 팬들의 열기는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었는데 대구에서 열린 챔피언 결정전 1,2,6,7차전이 모두 매진된 것도 모자라 입석표까지 모두 팔려서 당시 5,4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대구실내체육관에 경기마다 7천명 이상의 관중이 들어찼다. 당시는 인터넷예매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체육관 앞에서 밤을 샜던 경우도 부지기수였고 표를 구하지 못해 돌아간 사람도 1천명이 넘었다. 01-02시즌 챔결이 열렸던 2002년 4월 기준으로, 대구광역시를 프랜차이즈로 삼고있던 프로구단포스트시즌[11](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한 팀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대구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초로 포스트 시즌에서 우승한 팀이 바로 대구 동양 오리온스였다. 이 때문에 대구팬들이 오리온스에 가지는 애정은 생각 이상으로 대단했고 이 시즌을 기점으로 타지역 팬들까지도 상당수 끌어모아 전국구 구단으로 거듭났다.

2.1.3 그 이후의 행보

그 다음 해에는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으나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하였고,[12] 이후 2006-07 시즌까지 계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등 잘 나갔다. 그러나, 김진 감독이 떠난 2007-08 시즌, 다시 팀은 개막 2연승 후 확 죽어 버리며 부진에 빠졌고, 김진 감독의 후임이었던 이충희 감독도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사퇴하는 등 어수선한 시즌을 보내다가 꼴찌가 되었다.(하필 그 때 김승현이 흔들렸다...) 사실 전조는 4강에 나갔던 2006-07 시즌부터 보였는데, 김승현은 이 시즌부터 혹사의 여파가 나타나면서 유리몸끼를 보이기 시작했고, 나머지 선수들은 역대 프로농구에서도 가장 압도적 기량을 펼친 것으로 평가받는 피트 마이클에게 공을 몰아주기 바빴다. 오죽하면 피트 오리온스, 대구 마이클스같은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 고양에서도 그랬다면 고양 마이클스 그 결과 자유계약용병제가 폐지된 2007-08 시즌부터 김승현의 부상, 다른 선수들의 기량 저하 같은 불안 요소들이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것. 그 후 이충희 감독의 후임으로 내정된 김상식 감독 역시 성적 부진의 책임으로 시즌 도중 사퇴하는 등 2008-09 시즌도 결국 어리버리하다가 9위에 머물러, 다시 이 팀의 안습 행보가 시작되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게다가 그 와중에 김승현과 연봉 협상을 하다가 일이 틀어지자,[13]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면서 성적은 점점 더 하위권으로...(...) 결국 2009-10, 2010-11 시즌도 2연속 꼴찌로 마무리. 2007-08 시즌부터 4시즌 간 10-9-10-10(십구십십) 순위를 기록하며 이 때부터 꼴리온스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생겼다.

2.1.4 구 대구 오리온스의 막장 운영과 문제의 연고 이전

2011년 모기업인 오리온이 검찰 수사를 받았는데, 이에 맞물려 끈질기게 팀 매각설이 흘러나왔다. 그 와중에 경기도 고양시에 숙소 및 연고지를 옮길 것이라는 기사가 터졌다.[14] 프로야구팀프로축구팀(뭐?)의 인기에 밀려 관중동원 최하위를 기록하는 게 이유라는데, 당연히 프로팀의 관중동원은 팀 성적과 비례하는 것. 그 관중 동원 잘된다는 롯데조차도 비밀번호를 찍을때 사직야구장에 파리만 날렸는데, 10개 구단 중에서 팀 순위 10-9-10-10을 찍는 팀이 관중동원이 잘 될리가 만무하다.[15] 한선교 신임 총재와 함께 새롭게 거듭나려는 KBL에 연고지 이전이라는 최악의 수를 던지면서 어떤 영향을 끼칠지 우려되었다. 결국 2011-12 시즌을 앞두고 연고 이전이 확정되었다. 2011년 3월 19일 창원LG와의 경기가 대구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시설 면에서 다소 뒤떨어지긴 했지만[16]32연패 기간에도 자주 찾았던 대구 팬들의 발걸음을 결국 끊게 만든 것은 결국 오리온스의 막장 운영 때문이니 팬들을 원망할 것은 아니다.

대구시민들에게 비난받았던 이유는 구단 운영이 전체적으로 완전히 막장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구단 사무실·숙소·훈련장·연습장이 대구에 없고 구단 사무실은 서울특별시, 숙소·훈련장·연습장은 용인에 있었다. 이것 때문에 용인 오리온스라는 별명이 있었다.[17] 말 그대로 경기만 대구실내체육관에서 했으며 거기다 유지 보수나 시설 보강에서는 한 푼도 들이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김승현 이면 계약이 드러났고 팬과의 간담회나 싸인회 같은 팬 서비스는 전무했으며 전무후무한 32연패라는 매우 저조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대구시에서 돈을 들여 홈구장 사용료를 대폭 인하해주고 시설 보수를 해줬다. 또 32연패라는 매우 저조한 성적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대구시민들은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었으나, 결국 구단은 배은망덕하게도 제대로 배신을 한 셈이다. 당시 이전설이 나돌때 구단에서는 "검토중이다, 아직까지 결정된 건 없다" 라고 언플만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이전이 확정되어서야 이전 발표를 했는데 이것은 엄연히 거짓말이자 배신이었다. 오리온스 구단은 사실 '뜨내기 구단'으로 불릴 정도로 연고지에 애착이 없는 구단으로 평가받아 왔으며 비밀스런 구단 운영 등으로 도마에 올랐었다. 막판에는 "그래도 떠나려면 대구시민에게 예의를 갖춰 이별은 하고 가야 한다."라는 지역 언론의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도망쳤다. 그래서 '연고지를 이전했다', '옮겼다'라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도망쳤다', '튀었다', '야반도주' 등으로 비꼬는 것이다.[18]

이 때 고양시로 튀면서 한다는 소리가 문화 시설이 다소 낙후된 경기도 북부 지역에 프로 농구팀을 유치해서 활기를 불어넣어 고양시민에게 사랑받는 구단이 되겠다라고 했다.[19] 이것은 그동안 없는 돈 들여줘서 각종 혜택을 준 대구시와 진정으로 구단을 사랑해준 대구시민 팬들에 대한 엄청난 뒤통수였다. 오리온스는 고양으로 도망치면서 팬들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대구에서는 관객 수가 적었다 = 대구에서는 인기가 없었다 = 대구시민들의 관심과 사랑이 부족했다라는 식으로 은근히 연고지 이전 이유와 팀 성적 하락 이유를 전부 대구시민들에게 돌렸다.[20]부천 SK는 이에 비하면 그야말로 양반이다. 진짜 남패가 요기잉네?[21]

결국 따지고 보면 초코파이 광고를 통해 그렇게 (情)을 강조하던 오리온은 정작 대구시민들에게는 정(情)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잖아도 오리온은 농구 구단이 대구에 있으면서도 대구에 한 푼의 지원이나 환원을 하지 않아 말이 많았는데 이에 아주 실망한 팬들이 제발 꺼지라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대구시민들은 이제 오리온스에 관한 것을 모두 잊었고 이제는 그 흑역사를 기억하거나 언급하는 것조차 하기 싫어한다.[22]

하지만 오리온스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어주었고 팬들은 아낌없는 성원과 응원을 해주었다. 따라서 막장 운영을 주도한 구단 측을 욕해야지, 절대 선수들에 대해서 욕을 해서는 안된다. 어쨌든 이렇게 구단이 팬들에게 제대로 병맛스러운 크리티컬 헤드샷을 날려줌으로서 분노한 팬들에 의해 이 사건은 결과적으로 흑역사로 남았다. 당시 한 오리온스 팬은 대구·경북 인구가 500만 정도인데 열심히 투자해서 골수팬들[23] 좀 만들어놓으면 오리온 장사도 잘 될 건데... 이미 포화 상태인 수도권에 가서 뭐하자는 거냐. 거기다 스포츠에 별 관심도 없는 인구 100만도 안되는[24] 고양에 가서 뭘 하자는 건지...라는 식으로 인터뷰를 했었다.[25] 그리고 오리온스는 대구시민들에게 지금껏 사과나 감사 인사는커녕 해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

2.1.4.1 이랜드그룹과 관련된 일화

2016년 2월, 석주일이 아프리카 방송에서 전주 KCC 이지스의 연고 이전설과 관련해서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연고 이전 비화를 털어놓았는데, 이랜드그룹에서 오리온그룹에게 "너네 구단 삼. 대신 수도권으로 연고 이전 해야한다는 조건이 있어."라고 손을 내밀었고, 오리온그룹에서 농구단 매각을 위해 연고 이전을 했지만 정작 이랜드그룹이 "우리 축구단 만들기로 했음. 미안."이라며 말을 바꿔버린 것이라고 한다.

다만 이 부분에서 석주일이 오해한 건 2012년에 이랜드 그룹이 추진한 건 축구단 창단이 아니라 LA 다저스 인수였다.이랜드그룹, LA 다저스 구단 인수 참여(2012년 1월 30일 기사) LA 다저스 인수와 프로축구단 창단을 동시에 준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LA 다저스를 인수한 구겐하임 컨소시엄이 제출한 인수 금액은 21억5000만 달러, 당시 2조 2천억 원에 달했기 때문. LA 다저스 인수 실패 후 KBO 리그K리그를 저울질 했고 폐쇄적이어서 더 이상 팀 창단을 유보한 KBO 리그 대신 선택한 게 서울 이랜드 FC인 것이다.

즉, 오리온그룹이 회사 사정도 나빠지고 해서[26] 팀을 매각하려고 새 주인이 될 뻔한 이랜드의 요구에 따라 연고지를 옮겼다고 보면 되겠다. 결국 이랜드가 LA 다저스 인수에 힘을 쏟느라 무산되었긴 하지만. 물론 구단 자체가 대구에 대한 애정이 아예 없었다는 것도 생각할 필요는 있다.

2.2 고양 시대

2.2.1 2011-12 시즌 : 고양에서의 첫 시즌

이후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로고를 변경하는 등 대구 오리온스의 흔적을 모두 없앴다.[27] 그리고 엠스플에서 해설위원으로 일하던 추일승을 새로 감독으로 선임한다.[28]

이렇게 갖은 욕을 다 먹으면서 고양시로 튀었으나, 여기서도 현실은 시궁창. 2005~2007년 모비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용병 크리스 윌리엄스가 정말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나머지 선수들의 경기력은 꿈도 희망도 없는 수준. 시원하게 개막 6연패를 찍으며 1998-99 시즌 포스를 뿜어내고 있다. 이제 크윌만 야반도주하면 1998-99와 판박이 다만 개막전에 6045명의 구름관중이 찾는 등 관중 흥행 면에서는 참패는 면했다. 그 와중에 이동준이 KCC와의 경기에서 부상당하며 진짜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 했으나, 루키 최진수가 이동준의 공백을 말끔히 메우고, 김승현서울 삼성 썬더스에 내준 후 김동욱을 영입하며 김동욱 영입 후 4승 7패로 그럭저럭 팀이 정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동욱 영입 전 3승 17패로 빌빌대던 모습과는 나름 대조적.

최근에는 강한 팀 자체가 없긴 하나 그 중에서도 유독 창원 LG 세이커스에 약하다. 2006-07 시즌까지는 호각을 이루었으나, 2007-08 시즌 이후 지금까지 오리온스는 LG를 25번 만났는데 단 2번 이겼다. 2008-09 시즌 LG가 한창 부진할 때 이겼으나 결국 상대전적은 2승4패. 그 이후 전패하면서 LG전 16연패를 기록하다가, 2011년 11월 5일 드디어 연패를 끊었다. 그 후 12월 23일 LG와의 홈경기, 그 이후에도 LG전을 2번 더 승리하며 올 시즌 LG에게 4승을 챙겼다.

12월 27일 안양 KGC인삼공사 농구단과의 홈경기에서 승리하며 다시 탈꼴찌에 성공. 그리고 2012년 2월 현재, 1라운드의 대 삽질 때문에 6강은 물건너 갔지만, 크리스 윌리엄스-최진수-김동욱의 삼각 편대가 완벽하게 돌아가면서 더 이상 만만하게 볼 수 없는 팀으로 탈바꿈하였으며, 결국 5년만에 20승을 채우며 8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2.2.2 2012-13 시즌 : 잠깐 삐끗했지만, 그래도 고양에서의 첫 플레이오프 진출!

2012년 5월 4일, 전태풍을 영입하면서 약점이었던 포인트가드 자리마저 채우며 2012-13 시즌을 더욱 기대하게 했고, 결국 1라운드부터 6승 3패를 기록하고 있다. 2라운드에는 6연패를 포함하여 약간 삐끗하고 있지만... 결국 대박이라고 평가받던 레더가 연습경기 중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다 시즌 중 도망치는 대형사고를 쳤다. 그나마 리온 윌리엄스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김동욱, 최진수가 부상으로 결장했고 새로 뽑은 스콧 메리트가 팀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있어 남은 시즌의 전망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시즌전 다크호스로 꼽혔던 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현실. 결국 6연패를 당했으나 SK, 모비스, 전자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6팀 역시 계속 삽질을 하고 있는 덕분에 여전히 6강 다툼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3라운드가 끝났을 때 4등 인삼공사마저 연패를 거듭하면서 13승 14패로 승률 5할을 넘기지 못했다 그 후 그 6팀 중 인삼공사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이 여전히 삽질하고 있는 덕분에 6라운드에 돌입하면서 승률이 5할을 넘기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5위에 랭크되어서 치열하게 6강 싸움을 전개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지난 시즌에 비해서는 많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홈 경기에서도 그나마 성적이 나기 시작하면서 관중이 조금씩 늘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5위를 무난하게 유지하며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고, 6라운드에서 막판 4연승을 한 덕분에 더불어 간신히5할 승률(27승 27패)도 달성했다. 하마터면 5위팀마저 5할을 못 찍을뻔 했다.[* 참고로 3라운드까지는 6강 상대인 안양 KGC인삼공사를 맞아 초반 2경기를 내줬지만 안방에서 내리 2연승을 거두었다. 특히 2013년 3월 26일 경기는 고양에서의 첫 플레이오프 경기였다. 하지만 끝내 안양에서 벌어진 마지막 1경기를 잡지 못했고, 4강 진출 실패.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2.2.3 2013-14 시즌 : 올라갈 팀은 올라간다

시즌을 앞두고 팀 컬러를 보라색으로 바꾸었다.

개막전부터 나름 올스타급 멤버를 갖췄다고 생각한 오리온스였으나, 오히려 전태풍김동욱이 호흡이 맞지 않고 최진수가 개막전부터 부진하며 개막전 이후 4연패를 하였다. 그 후 저조한 성적을 올리다[29] 2라운드를 기점으로 KGC전 이후 살아나 4연승을 펼쳤다. 다만 이후 어이없는 오심 논란이 휩싸이며 서울 SK 나이츠홈 27연승의 제물이 되어버린 뒤 한풀 꺾인 모습을 보여줬다.

2라운드에는 전태풍이 어느정도 활약해 줬고 이현민도 나름 좋은 활약을 펼치고, 김승원이 어느정도 성장세를 보인 것도 있으며, 용병진인 윌리엄스와 랜스 골번은 두 선수 누구도 위압감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전태풍김동욱이 호흡이 잘 맞는다고 보기는 어려웠으며, 여전히 최진수는 살아날 기미만 보여줄 뿐 완전히 살아나지는 않았고, 김동욱은 먹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다 윌리엄스조차 작년의 훌륭한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

12월 18일 부산 KT 소닉붐과의 4:4 트레이드로 전태풍, 김승원, 김종범, 랜스 골번을 KT로 보내고 앤서니 리처드슨, 김도수, 장재석, 임종일을 데려왔다. 그 이후 KGC인삼공사의 상승세를 저지하고 모비스를 제압하면서 오리온스는 돌풍을 일으키더니 서울 삼성 썬더스와 공동 6위까지 올라섰다. 장재석의 맹활약이 가장 큰 요인. 그리고 2월 5일 KGC인삼공사의 경기를 이기면서 7연승에 성공했는데, 이 7연승은 3714일 만의 연승이다! 대통령이 2번 바뀌고 거기에 8일에는 울산 모비스87 - 67이라는 스코어로 말그대로 완파하고 4403일 만에 8연승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외에도 2013년 12월 31일부터 이어온 (역시 상대가 모비스였다.) 홈 경기 8연승도 이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후반 상승세가 꺾이면서 결국 6위로 시즌을 마감하고 3위 SK나이츠랑 6강 PO를 치른다.
6강 PO 2차전에서 3쿼터 한 때 20점차까지 앞섰지만 장재석의 개그 이후로 SK쪽에 분위기를 뺐기면서 78-80으로 대역전패를 당하게 된다. 3차전에서 리차드슨의 활약 삭발한 장재석의 활약으로 2패뒤 첫 승 SK전 8연패를 끊었으나 4차전에서 판정논란.동점까지 쫓아갔지만 코트니 심스를 막지 못하면서 결국 1승 3패로 6강 PO에서 탈락하면서 시즌을 마감했다.

2.2.4 2014-15 시즌 : 개막 8연승, 그러나 4강 진출 3연속 실패

시즌 이후 FA로 베테랑가드인 임재현을 영입했다. 시즌 전 드래프트를 앞두고 4:4트레이드 과정에서 김도수의 도핑 파문때문에 트레이드 이후 지명권의 양도 여부를 놓고 많은 추측이 오고 갔는데 KT의 1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을 받고 2라운드 지명권을 내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신인드래프트에서 기대를 모으게 되었다. 그리고 드래프트에서 1순위[30]와 7순위의 지명권을 행사하게 되면서 드래프트의 최대어인 이승현을 지명하는데 성공했다. 7순위에는 듀얼가드인 이호현을 뽑았고, 3라운드에서 성균관대 출신 빅맨 김만종을 뽑았다.

당초 메인 용병으로 1순위 찰스 가르시아를 뽑았으나, 트로이 길렌워터의 기량이 더 좋다는 소식이 시즌 전부터 꾸준히 전해졌고[31], 아니나 다를까 개막 이후 3경기 연속으로 트로이 길렌워터의 공수양면으로 맹활약 속에 연승을 달리고 있다. 개막 전 몸을 제대로 만들지 않아 성실성의 문제가 있는게 아니냐하는 의구심을 길렌워터는 연이은 활약으로 불식시키는데 성공했다. 오랜만에 오리온스에 나타난 대형신인 이승현도 좋은 활약을 보여줘 홈팬들을 설레게 했다. 찰스 가르시아마저 기대하지 않았던 외곽슛을 잘 꽂아넣고 열정적인 모습과 친화력으로 팀에 긍정적인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특히, 서울 SK 나이츠전에는 SK전 6연패를 끊어내는 승리라 팬들을 기쁘게 했다.[32] 이후 작년 정규시즌 우승팀인 창원 LG 세이커스와 포스트시즌 우승팀인 울산 모비스 피버스까지 홈에서 제압하며 5연승을 달리며 단독 1위를 달리고 있다. 10월 23일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의 홈경기에서도 2점차로 짜릿한 승리를 거두며 개막 6연승을 이어나갔다.[33] 10월 25일에는 부산 KT 소닉붐을 이기고 기어이 7연승을 달리고 있다. 게다가 10월 27일에 KCC까지 제압하면서 개막 8연승으로 2011-12 시즌 원주 동부 프로미의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10월 30일에 안양 KGC인삼공사 농구단을 이기면 최초로 개막 9연승 겸 1라운드에서 전승을 이룰 수 있었으나, 오세근이 복귀하고 이승현이 2쿼터에 파울 트러블에 걸리는 등 고전하다 결국 패배하면서 연승이 끊기고 말았다.

여기서 패배한 뒤로 쭉 연패해 3연패까지 갔으나, 11월 8일 KCC전에서 이현민과 트로이 길렌워터가 활약했고, 복귀한 김동욱예상과는 달리 선전하면서 연패를 끊는 데 성공했다. 11월18일 kt와의 경기에서 이재도 전창진 인터뷰 내용중 오리온스는 이현민의 오른쪽 드리블로 파생되는 공격를 막으면 된다는 언론+심리 플레이에 말리게 된다.아직 kt가 오리온스에 작년 트레이드 때의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재도 인터뷰 중 "선수들끼리 오리온스만은 꼭 이기자고 다짐했다" 그 이후로 타팀들도 이현민과 길렌워터를 공략할 방법을 가지고 오며 상승세가 주춤하게 된다.

2015년 1월 12일 서울 삼성 썬더스와 2:2 트레이드를 단행, 이호현과 찰스 가르시아를 보내고 리오 라이온스(!!!)와 방경수를 받았다. 라이온스 효과로 14일 SK에 비록 패했지만 4쿼터 중반까지 접전을 펼치면서 좋은 경기를 펼쳤다. 그리고 중위권에서 버티다가 2월 7일 KT전을 기점으로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2월 15일 LG전에는 104득점으로 맹폭하면서 고양에서의 통산 100승을 하게 되었으며 2월 21일 울산 모비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승리하면서 3시즌 연속 PO 진출을 확정했다. SK와의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는 연장 접전끝에 패배하면서 5위가 되었고 6강 플레이오프 1,2차전은 창원에서 치르게 되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2차전과 4차전을 따내며 2년 전과 같이 5차전으로 돌입, 4쿼터 초반 17첨차까지 뒤지던 걸 겨우 따라잡아 역전을 하는 것 같았으나... 라이온스가 1점 차, 3점 차 상황에서 2번의 결정적 기회를 날려먹으며 탈락하였다. 오리온스는 3시즌 연속 6강에 진출했으나 4강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2015-16 시즌부터는 '고양 오리온 ___'로 팀 명칭을 바꿀 예정이었으며 팀명에 대한 투표를 진행했지만 여기서 예전에 연고이전으로 분노한 대구팬들의 패륜, 야반도주 드립은 여전하다 결국 '오리온스'라는 팀명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근데 문제는 그 이후... 15-16 시즌 문단을 참조.

2.2.5 2015-16 시즌 :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14년의 한을 풀다!

고양으로 옮긴 후 역대 최고의 시즌
14년만에 우승 그리고 추일승식 포워드 농구의 완성!
플레이오프에 등장한 끝판왕
시즌 시작과 끝을 화끈한 공격농구로 장식하다 고양 스테이트 오리온스

직전 시즌 종료 이후 노경석박찬성이 은퇴, 성재준이 상무 입대로 팀을 떠났다. FA대상자 및 FA영입이 없었으나, 창원 LG 세이커스와의 FA협상에 실패한 문태종을 사인 앤 트레이드 형태로 영입했다. 총액 3억 8천500만원(연봉 2억 6천950만원·인센티브 1억 1천550만원)에 1년 계약이며, 상응하는 대가는 신인 1라운드 지명권.[34] 또한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서 임대 형식으로 뛰었던 정재홍이 팀에 복귀했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는 7순위를 받으면서, 검증된 선수인 애런 헤인즈를 영입했다. 2라운드에서는 단신의 포인트가드인 조 잭슨을 선발했다. 순번이 낮았기에 만족스러운 픽이라는 평가는 나오지 않았지만, 헤인즈라는 검증되고 안정적인 능력을 갖춘 선수와 16년만에 KBL무대에 재등장하는 포인트가드 용병 조 잭슨의 조합은 큰 화제를 모았다. 추일승 감독은 문태종, 헤인즈 등의 영입을 바탕으로 다시한번 우승에 도전하겠다며 계약 마지막해인 만큼 본인이 하고 싶은 농구, 빠른 공격농구를 원없이 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시즌 전 열린 2015 프로-아마 농구 최강전에서 서울 삼성 썬더스와 중앙대학교를 연파하며 준결승에 올랐고, 준결승에서는 외국인 선수 한명이 부상으로 뛰지 못한 전주 KCC 이지스를 상대로 손쉬운 승리를 거두면서 결승에 진출했다. 애런 헤인즈 및 문태종이 여전한 존재감을 보여주었고, 조 잭슨 또한 인상적인 스피드와 공격능력을 보여주며 활약했다. 또한 자비를 들여 미국에 가서 스킬트레이닝을 받아 화제를 모았던 정재홍이 가드진에서 눈에 띄는 모습을 선보여 기대를 모았다. 결승전에서는 대학 최강 고려대와 맞붙어, 한수 위의 플레이를 선보이며 손쉽게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이승현은 모교 후배들과의 맞대결에서 참교육압도적인 기량 차이를 보여주며 대회 MVP를 차지하였다.

여러모로 큰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는 시즌이었지만, 불법 스포츠도박 사건에 장재석 포함 2명의 선수가 연루되며 시즌 전망에 빨간불이 켜졌다. 장재석은 천만원여의 불법 스포츠도박 혐의를, 또다른 A선수는 경기 정보 전달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최종 수사 결과 장재석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출장정지를 포함한 징계를 받게 되었다.

2015-16 시즌 개막 직전인 9월 10일, 설문조사로 변경 예정이었다가 팬들 결정에 의해 유지 예정이라던 팀명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로 변경하였다. 농갤러들이 작명한 이름들(...) 유상무상무 한선수선수 사토 사토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피카 피카 피카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리오 라이온스가 오리온 오리온스의 리온 윌리엄스에게 패스합니다[35]

개막 직후 동안의 오리온은 상당히 공격적인 색깔의 농구를 했다. 평균 득점은 9월 17일 기준 87득점으로 리그 1위이며, 어시스트도 19 개로 리그 2위이며, 자유투 성공률도 81.3%로 리그 1위이다. 1라운드를 마친 시점에서의 성적은 지난해와 같은 8승 1패, 다만 지난 시즌과는 다른 것이, 지난 시즌에는 길렌워터 혼자만의 활약으로 이 성적을 거두었다면, 이번 시즌은 헤인즈 외에도 문태종, 김동욱, 허일영 등의 국내선수들이 활약을 보였다는 것. 지난 시즌 2라운드부터 시작된 DTD가 길렌워터에 대한 분석이 되며 막히기 시작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미 8시즌 째를 뛰고 있는 헤인즈의 성적이 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는 데다 이승현의 부상이 그리 심하지 않아 빠른 시일 내에 복귀를 할 것이 예상되므로 지난 시즌과는 다르다는 의견이 지배적. 게다가 헤인즈, 문태종, 이승현, 김동욱 등 BQ가 높은 포워드들이 인사이드를 흔들어 놓고 허일영, 전정규와 같이 캐치 앤 샷이 정확한 선수들에게 좋은 패스를 줌으로써, 2라운드가 끝날때까지 평득 1위, 3점슛 성공률 1위의 압도적인 공격지표를 보이고 있어 고양 스테이트 오리온스라는 약 한사발 거하게 마시고 만든듯한 설레발이 그득한말을 만들어낼 정도였다. 그런데...

11월 15일 전주 KCC 이지스와의 경기에서 헤인즈가 무릎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하는 불운을 겪게 된다. 대체용병 제스퍼 존슨, 징계에서 복귀한 장재석 등이 팀에 합류했지만 헤인즈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며 팀 조직력이 급격히 무너졌고, 초반 21경기에서 18승 3패를 기록하던것과 대조적으로 곧장 서울 SK 나이츠의 7연패를 끊어주더니 12경기에서 4승 8패에 그치며 순위 역시 모비스에게 1위를 내주고 2위로 한계단 내려앉고 말았다. 12월 25일 SK전에서 헤인즈가 40여일만에 복귀전을 펼치며 반전의 기대감을 심어주는가 싶었지만, 1쿼터만에 다시 발목부상을 입어 교체아웃되고 말았다. 결국 하루 전인 24일에 출국했던 제스퍼 존슨을 바로 다시 대체로 불러들이는 웃지못할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그나마 팬들을 위로하는 것은 연일 하이라이트 필름을 찍고 있는 조 잭슨의 덩크 뿐이다(...)

2016년 새해 첫 경기였던 1월 2일 안양 KGC와의 홈 경기에서는 외곽 3점슛을 무려 13개나 성공시키며 106:78로 대승을 거두었다. 1월 6일 서울 SK와의 홈 경기에서도 외곽슛을 12개나 성공시켰고 특히 2쿼터에 30점을 넣으며 화력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조 잭슨의 경기력에 물이 올라왔다.

모비스가 주춤하는 사이에 1월 24일 삼성전 승리로 1위로 올라섰다!! 헤인즈와 허일영 등의 부상 속에서도 조 잭슨의 각성과 나머지 선수들의 분발 속에서 이루어낸 선두 탈환이다.

하지만 30일 모비스와의 1위 맞대결에서 또다시 패배하며 2위로 내려앉았다. 2월 4일 KGC전에서 헤인즈를 조기 복귀시키는 수를 썼지만 아깝게 패배, 2월 5일 KCC가 모비스를 제압하면서 오리온은 3위로 내려갔다. 왠지 지난시즌에 봤던 DTD의 예감이... 전자랜드를 이기며 한숨 돌리나 싶었지만 라틀리프가 없는 삼성에게 패하며 선두권 경쟁에서 멀어지는 모습. 그리고 모비스와의 맞대결에서 대패하며 정말로 4강직행이 어렵게 되었다. 일단 KCC와의 6라운드 경기를 잡아야 경우의 수가 남게 되었다. 하지만 KCC에게 통한의 패배를 당하며 4강 직행에 실패.[36] 뒤이은 2월 18일 동부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3위를 확정지었다. 그리고 이 날 상대했던 동부는 일찌감치 6위를 확정지은 상태여서 10년만에 6강 플레이오프에서 맞붙게 되었다.[37]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1차전부터 104점을 내면서 원주 동부를 압도하였고, 2차전과 3차전마저 가볍게 승리, 4강 플레이오프에 9시즌 만에 광속진출했다. 4강 PO에서도 울산 모비스를 상대로 3전 전승, 챔피언결정전에 광속진출했다. 두 팀 모두 걸출한 토종 빅맨과 함께 언더사이즈 빅맨으로 재미를 많이 봤던 팀인데, 효과적인 도움 수비로 페인트존의 득점을 최소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허웅, 두경민, 전준범, 송창용, 양동근과 같은 외곽 슛터들의 공격마저도 장신 포워드진들의 스위칭을 통하여 움직임을 철저하게 봉쇄하여 수비가 약하다는 평가가 무색할 정도의 발전을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수비로 일을 낸 셈. 그 결과 동부와의 6강 PO에서는 평균득점 90점대의 공격농구를, 모비스와의 4강 PO에서는 평균실점 60점대의 극과 극을 달리는 농구를 보여주며 조직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는 경기내내 주도권을 잡다가 4쿼터 막판 김민구의 연속 3점 두방으로 분위기가 넘어가며 82-76으로 석패했다. 이 날 문태종과 김민구의 신경전이 있었고 김민구의 행동이 큰 논란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이 어줍잖은 도발이 오리온 선수단에게 스팀팩 효과를 주게 될 줄은 농구팬들을 제외하고 아무도 몰랐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벌어진 2차전은 오리온이 경기초반부터 좋은 슛감을 이어갔다. 1쿼터 석연찮은 판정으로 이승현이 일찌감치 3파울에 걸리며 2쿼터 8점차까지 쫒아오는 빌미를 제공했으나, 후반전 다시 오리온의 페이스를 찾으며 4쿼터 일찌감치 가비지 타임에 들어갔다. 조 잭슨은 4쿼터에 김태홍을 상대로 인유어페이스를 꽂아버리며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왔다. 최종 스코어는 99-71의 대승. 99점의 스코어로 KBL 파이널 최고득점 기록을 경신했고, 28점의 점수차는 파이널 최다 4위의 점수차 기록이다.

홈인 고양에서 열린 3차전에서는 2차전과 마찬가지로 에밋과 그로 파생되는 공격루트를 연쇄적으로 차단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에밋은 27점을 기록하여 나름 분전했지만 에밋을 제외한 다른 공격수들을 모조리 10점 이하로 틀어막는 전략이 적중하였다. 그 결과 3쿼터에서부터 가비지 타임이 나기 시작하여 4쿼터에는 제법 봐준 끝에 KCC를 92-70으로 여유롭게 따돌렸다. 이러다보니 4강 플레이오프에서 패배를 당했지만 오리온을 세경기 평균 69점대로 틀어막은 모비스는 오히려 잘 막은게 아니냐면서 뜻밖의 재평가를 받았다(...). 2차전, 3차전에서 오리온은 3점슛 10개, 12개를 각각 성공시키며 모두가 놀랄 만한 화력을 선보였다. 하루 쉬고 열린 4차전에서 KCC는 오리온의 외곽슛을 나름대로 봉쇄하려 노력했고, 신명호가 3점슛을 무려 4개나 넣으며 14득점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했지만 파울을 지나치게 많이 저지르다 4쿼터에 신명호, 하승진, 전태풍 등 주전 선수들이 전부 5반칙으로 퇴장당하고 분위기가 급격하게 반전되었다. 결국 최진수가 4쿼터 막판 쐐기를 박는 3점슛을 성공시키며 오리온에게 승기를 가져다 주었고 결국 94-86으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이 날은 KCC가 오리온을 봉쇄하기 위해 나름 새로운 전략을 준비해 왔지만 지나치게 많은 파울 때문에 자유투를 더 내 주었고 거기에서 승부는 갈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리온이 승리하며 시리즈 전적 3승 1패가 되었다. 오리온은 우승에 1승만을 남겨두고 전주로 가게 되었다.

전주에서 열린 5차전에서 KCC는 전태풍, 김효범, 김지후 등 슈터들의 맹활약과 에밋의 득점력을 앞세워 모처럼 오리온을 압도했고, 전반전 한때 20점차 이상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후반 들어 오리온은 이승현의 외곽포가 터지고 조 잭슨마저 살아나며 3쿼터가 끝나고 4점차까지 따라잡는 저력을 보였고, 4쿼터 한때 역전까지 했지만 4쿼터 막판 송교창의 결정적인 팁인 슛을 막지 못하고 94-88로 아쉽게 패배하였다. 이날 헤인즈는 11득점 야투율 21%의 극도의 부진을 보여 5차전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그러나 고양으로 돌아온 6차전에서 120:86으로 대승을 거두며 2001-02 시즌 이후 14년만이자 연고 이전 후 첫 우승을 달성했다. 사자들은 피눈물을 흘린다 이는 역대 KBL PO 한 경기 최다득점 타이 기록이다.[38] 이 날 오리온은 KCC 선수들의 형편없는 수비력에 힘입어 코트를 휘젓고 다녔고 외곽 3점슛도 13개나 터졌다. 패스 감각이 뛰어나고 BQ가 좋은 선수들이 백도어 컷인[39]으로 페인트 존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고, 빠른 템포의 공격을 통해 내외곽을 가리지 않고 공간을 만들어내며 엄청난 야투율을 보이는 오리온 선수들을 KCC 선수들은 도지히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챔피언 결정전 MVP는 이승현이 차지하였다. 이승현은 6강 PO, 4강 PO, 챔피언전 모두 수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간간히 팀에 도움이 되는 외곽슛도 터뜨렸으며, 특히 챔결에서는 매치업 상대로 키차이가 20cm가 넘은 하승진을 공, 수 양면에서 압도하며 팀에 큰 공헌을 하였다. 하지만 챔결만 놓고 봤을 때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였던 조 잭슨이나 김동욱이 MVP를 차지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여기는 팬들도 있었다. 역시 오리온스가 우승을 하려면 승현이가 있어야 하는 건가....그때도 MVP는 승현이였다

2.2.6 2016-17 시즌

FA자격을 얻은 문태종, 허일영, 김강선을 잔류시켰고 김민섭은 SK로 팀을 옮겼다. 이에 따른 샐러리캡 확보 목적으로 이현민, 방경수 <-> 박재현의 트레이드를 단행하였다. 외국인선수 헤인즈와 조 잭슨 모두에게 재계약을 제시했지만 잭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향후 5년간 KBL선수자격정지처분을 받게 되었다. 가드진 중 한호빈, 박재현이 군문제로 17-18시즌 후반까지 자리를 비우므로 신인드래프트, 외국인선수 선발 등에서 가드진 보강이 당장 절실해졌다. 1군급 가드가 정재홍, 김강선 외에는 없고, 이마저도 포인트가드는 정재홍 혼자다. Aㅏ.....건주야 잘 커다오 ㅠㅠ
그리고 시즌을 앞두고 다시 유니폼의 색을 빨강색으로 바꿨다. 드래프트에서 울산 모비스와 함께 4순위까지 전부 지명하며 대인배 구단이란 찬사를 듣고있다.

3 그 외

유독 외국인선수와 인연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 외국인선수 잔혹사의 대표적 팀으로 인식되곤 한다.[40] 대표적으로는 32연패 시절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다 그대로 숙소를 이탈한 콜버트, 강백호먼 제러드 호먼, 최악의 뇌사 용병 폴 뮐러, 30분 뛰고 무득점 신화 MC 매지크 등이 있다. 그래도 마르커스 힉스바비 레이저, 피트 마이클 등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 용병들도 많이 있다... 지만 현실은 시궁창. 시즌 도중 도망친 콜버트, 시즌 개막 전 도망친 리 벤슨에 이어 2012-13 시즌 전체 3순위로 뽑은 테렌스 레더가 무리한 계약조건을 내세우다 시즌 도중 이탈하는 사건을 저질렀다. 이리저리 외국인 선수로 잡음이 많은 듯. 그나마 외국인 선수를 잘 뽑기로 유명한 추일승 감독 부임 이후로는 용병 잔혹사는 없어진 편이다.

3.1 두산 베어스와의 평행이론

오리온스는 실업시절 동양제과 농구단 시절부터 두산 베어스가 우승하면 그 다음 해 봄에 반드시 우승하는 법칙이 존재한다.

95년 10월 OB베어스 한국시리즈 우승 → 96년 4월 동양제과 농구단 코리안리그 및 남녀종별선수권대회 우승
01년 10월 두산베어스 한국시리즈 우승 → 02년 4월 대구 동양 오리온스 KBL 파이널 우승
15년 10월 두산베어스 한국시리즈 우승 → 16년 3월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KBL 파이널 우승

그리고 2016 한국시리즈에서 두산베어스가 우승이 확실시 되는 가운데,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도 2017년 봄에 우승이 가려지는 16-17 KBL 프로농구에서 우승이 가장 확실시 되고 있다. 이쯤되면 흠좀무할 정도의 평행이론

4 사건 사고

4.1 김승현 이면계약 파동

  • 2009년 김승현이 이면 계약 등의 문제로 인해 당시 심용섭 단장과 갈등이 있었고 결국 오리온 구단의 이미지가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사태로 FA 규정이 병신같이 바뀌게 된다.

4.2 고양시로의 연고이전

  • 2011년 거듭되는 부진과 부실한 인프라 때문에 대구광역시에서 고양시로 야반도주하였다. 결국 대구에 사는 오리온 팬들은 분노하였고 오리온 제품 불매운동을 하였다. 이로 인해 출범 후 모기업과 연고지가 바뀌지 않은 팀은 창원 LG 세이커스가 유일하다.[41] 사실 자세한 내용은 이미 위에 나와있다.

4.3 김도수 금지약물 복용 사건

  • 2014년 김도수가 금지약물 양성 판정으로 9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 금지약물 복용 사건은 2011년 서울 SK 나이츠 소속이던 손준영 이후 3년만에 일어났다.

4.4 조 잭슨 재계약 거부 및 5년 자격정지 징계

  • 오리온이 조 잭슨에게 재계약을 요청했지만 조 잭슨은 재계약을 거부하고 중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KBL은 조 잭슨을 규정위반으로 5년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으며, KBL 팬들은 연맹을 맹비난하였다.

5 선수단

2016-17 시즌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선수단
감독 추일승
코치 김병철, 조상현, 임재현, 윤유량
가드 1.박석환 2.오데리언 바셋 6.정재홍 7.전정규 9.성건주 15.조효현 24.이승규 55.김진유
포워드 4.문태종 5.최진수 8.김도수 11.허일영 13.김동욱 21.김강선 22.조의태 25.장문호 32.애런 헤인즈 33.이승현
센터 31.장재석 41.이호영
  1. 프로 두번째 시즌부터 지금까지 생존해계시는 최장수 마스코트. 연고이전이후 모든걸 바꿨지만 이 마스코트는 그대로 뒀다.
  2. 한국에서 프로 농구 창설 원년 이후 모기업과 연고지가 변경되지 않은 유일한 팀이다. 그러나....
  3. 전설의 1998-99 시즌부터 2000-01 시즌까지 10-8-10위, 2007-08 시즌부터 2011-12 시즌까지 10-9-10-10-8위.
  4. 이때 시즌경과는 3연패-2연승-32연패-1승-7연패. 참 쉽죠?
  5. 참고로 시즌 최다 패 기록은 2005-06 시즌 전자랜드의 46패. 54경기로 전환된 이후의 기록. 물론 최저 승률로 따지면 얄짤없다.
  6. 당시 오리온스의 라인업은 신인 정락영, 기아 출신으로 은퇴를 눈 앞에 두었던 이훈재 같은 타 팀에서 후보급인 선수들이 주전으로 나왔다.
  7. 3점슛라인에서 레이업을 시전했다.(...)
  8. 59점=>57점=>55점 일정하게 2점씩 갱신. 현재는 이 기록은 안양 KGC인삼공사가 갖고 있으며(41점) 공교롭게도 KGC는 그 시즌 우승했다.
  9. 당시 감독이던 박광호 감독도 스트레스로 꽤 고생했고 박 감독의 딸도 중학교 졸업식에서 담임선생님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우리 친구의 아버지를 위해 격려의 박수를 쳐주자"라는 말에 울음을 터뜨릴 정도였다.
  10. 당시 포인트가드 중 김승현을 견제할만한 가드는 신기성 정도였는데, 그 신기성은 당시 군복무중이었다
  11. 삼성 라이온즈가 최초로 우승한 1985년은 따지고 보면 리그 우승이지, 포스트시즌인 한국시리즈 우승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리온스가 우승한 2002년에 삼성 라이온즈KS 우승을 차지하며 대구 프로 스포츠의 리즈 시절을 맞았다.
  12. 이 챔피언 결정전 5차전에서 그 유명한 사건인 잃어버린 15초가 터졌고, 이 사건이 사실상 우승의 향방을 바꾸게된다.
  13. 샐러리캡 제도를 피해서 연봉 이외에 엄청난 액수의 뒷돈을 지급하는 이면 계약을 체결했는데 나중에 돈을 줄 수 없다고 발뺌했다. 김승현이 이 사실을 폭로하자 협회는 김승현만 징계하면서 팀을 감싸고 돌았다. 그러나 2011년 김승현은 구단과의 재판에서 승소했다.
  14. 사실 오리온스는 경기도 고양시로 연고지 이전을 추진하면서 대구시를 배제한 채 고양시와 체육 시설 이용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할 장소와 시간까지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상황인데도 오리온스 관계자는 "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정도의 말만 했다. 그런데 오리온스는 연고지 이전을 위해 이미 전 해부터 먼저 고양시에 접근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15.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2007년부터 시작된 비밀번호 직전 시즌까지 대구 오리온스의 인기는 KBL 최고였다. 한때 같은 지역 야구팀 삼성 라이온즈의 인기를 앞지를 정도로. 제아무리 수도권으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해도 추일승 감독 취임 이후 플레이오프 진출, 챔피언결정전 우승 등 성적이 나지 않았더라면 과연 관중 몰이가 되었을까? 실제로 같은 고양시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축구 팀인 고양 자이크로 FC는 종교 성향 논란을 넘어서 막장 성적과 매끄럽지 않은 팀 운영으로 K리그 33개 구단 중 독보적인 관둥 동원률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16. 새로 생긴 고양실내체육관의 시설이 좋은 반면 대구실내체육관이 워낙 낡긴 했다. 그렇지만 대구시는 오리온스를 배려해서 체육관 사용료를 10%만 받았으며 34억원을 들여 체육관 개보수까지 다 해줬다. 따라서 대구시는 오리온스한테 지원을 할 만큼 다 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7. 원년 창단팀이면서 그동안 서울에 있는 구단 사무실, 용인에 있는 숙소·훈련장·연습장을 쓰고 있었다. 2010년 9월에야 연습장과 훈련장을 대구로 옮겼는데 사실 용인에 있던 시설을 사용할 수 없게 된 내부 사정이 작용한 탓이 컸다. 그나마 구단 사무실도 여전히 서울에 있었고 결정적인 것은 1년 뒤 냅다 도망쳤다.
  18. 이 당시 어떤 대구 골수팬은 KBL 원년부터 연고이전 직전시즌까지 모아뒀던 모든 어센틱 유니폼들을 전부다 칼로 갈기갈기 찢어놓고 그걸 오리온스 사무실에 택배보낸 인증을 올린다. #
  19. 수도권 지역으로 간 것도 그렇지만 오리온스가 고양으로 도망가면서 대구·경북 지역에는 프로농구 구단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배구단이 구미에 있긴 했지만 대구시민들은 겨울 스포츠를 즐길 권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20. 타 팀의 경우 구단 매각 등의 우여곡절이 있었기 때문에 연고지 이전의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오리온스는 원년부터 팀명과 연고지가 바뀌지 않았던 팀이었지만 지역에 애착도 없었고, 여러 막장 운영으로도 모자라 연고지 이전 사유를 전부 대구시와 팬들에게 떠넘기고 고양으로 내뺐으니 배신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21. 응원해준 팬들을 탓하면서 관중수 부족 드립치며 도망갔단 것만 놓고 비교하자면 북패와 비슷하다. 심지어 이쪽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더불어 리그 수위를 다투던 인기팀.
  22. 모 대구 팬의 말에 의하면 "그동안 K리그에서 연고지 이전했다고 북패, 남패, 패륜을 입에 담는 걸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그 축구팬들의 마음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었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23. 사실 오리온스의 막장 운영 때문에 지친 수많은 골수팬들이 떠나갔고, 그나마 남아있는 골수팬들은 그냥 연고지 구단 버프나 그저 악에 받쳐서 계속 응원하는 것 뿐이었다. 어쨌든 제대로 투자해서 서비스를 향상시켜 골수팬들을 다시 모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24. 다만 이 인터뷰로부터 3년이 지난 2014년 8월에 고양시 인구수가 100만명을 넘긴 했다.
  25. 한마디로 말하면 95만 고양시민을 위해 500만 대구·경북 시도민들을 외면한 셈이다. 대구·경북 지역의 유일한 농구단으로 남아 팬들을 유치하는 것이 더 이득일 터인데 4팀씩이나 연고지가 있는 수도권·레드 오션에 제 발로 뛰어들었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
  26. 보유하고 있던 영화 및 미디어 사업사를 팔았고, 편의점 사업 등도 모두 매각했다.
  27. 이미 대구 시민의 관심은 안드로메다 너머로 갔었다. 다만 지금도 홈페이지나 기사(특히 2002시즌 우승 등 대구 연고시절을 다룬 기사)에 비난글과 야유글이 가끔 올라오기도 한다.#
  28. 사실 추일승이 오리온스 감독이 된건 고양으로 이전하기 전의 일이다.
  29. 시즌 초반엔 관중 흥행도 저조했다. 11월 23일 경기 이후에야 드디어 관중수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30. 오리온스는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은 적이 없었다. 이제야 한을 푼 셈.
  31. 센터진이 취약해 키가 큰 가르시아를 먼저 뽑았고, 길렌워터의 경우 관심은 있었으나 트라이아웃 때 체중이 많이 나간 상태여서 불성실한 선수로 판단해 안 뽑을까 생각하던 찰나에 길렌워터가 추일승 감독을 보고는 "열심히 할테니 꼭 뽑아달라"고 애원해 마음이 흔들렸다고 한다.
  32. 저번 시즌에 오심 논란은 물론 이기고 있던 경기 버져비터 맞고 패배하는 등의 악몽이 있어서 이번 승리의 의미가 매우 컸다.
  33. 그 전까지 개막 6연승은 4번이 있었는데 그 중 3번은 정규시즌 우승을 달성했다.
  34. 그런데 오리온으로부터 넘겨받은 1라운드 지명권에서 LG가 6순위에 뽑히는 바람에 이 트레이드의 승리자는 고양 오리온이 되었다. 그리고 이 드래프트 결과로 인해 농갤에서는 거상 추일승이라면서 추감독을 찬양했다(...)
  35. 이 두 선수는 오리온스에서 뛴 경력이 있으나 정작 2015-16 시즌 현재 둘 다 오리온스에 없다(...).
  36. 이 경기는 이후 엄청난 논란에 휩싸이게 되는데, 경기 다음날 아침 I Love NBA 커뮤니티의 한 회원이 3쿼터 3분 56초를 남기고 24초 동안 샷클락이 멈춘 상태였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몇 시간 후 여러 기자들을 통해 공론화되면서 시끌벅적해졌다. 이에 KBL은 규정상 재경기는 없다고 일축했다. 막판까지 승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접전이었던걸 감안하면 저 24초의 나비효과가 어떠했을지는 단언하기 힘들며, 예전 2003년 결승전 때 샷클락 오류에 이어 또 이런 일을 겪게 된 오리온팬들의 분노는 엄청났다. 승자인 KCC도 '리그 스폰서라 모종의 혜택을 받은거 아니냐'며 온갖 비아냥에 시달려 이겨도 찝찝한 상황.
  37. 참고로 2005~2006 시즌은 2015~2016시즌과는 반대로 동부가 3위, 오리온스가 6위를 거두며 만났다.
  38. 이전에 서울 삼성이 2001년에 기록한 바 있다.
  39. 초반에는 그 안습한 BQ를 자랑하는 장재석이 백도어 컷인을 3개나 주워먹었고, 3,4쿼터에는 조 잭슨의 패스 한 번만으로 골밑이 아예 찢어발겨졌다.
  40. 5명 중 2명을 외국인으로 쓸 수 있는 프로농구의 경우는 야구나 축구보다 외국인선수가 전력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2쿼터에만 외국인선수를 1명만 출전시킨 것을 이후 3쿼터로 확대하고, 2009-10 시즌 부터는 2명 보유에 1명 출전으로 규정이 바뀐 상태.
  41. 사실 LG는 첫 시즌인 97~98 시즌에 경남 FC처럼 경상남도로 연고지를 하고 있어서 마산, 창원, 진주 등의 지역에서 순회경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