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양동(서울)

서울 강서구법정동
염창동등촌동화곡동가양동마곡동
내발산동외발산동공항동방화동개화동
과해동오곡동오쇠동

加陽洞 / Gayang - dong

1 개요

서울특별시의 강서구의 법정동이다.

2 역사

역사는 무려 백제 때부터 올라간다. 한강 서부지역은 온조왕의 형인 비류가 나라를 세운 미추홀에 해당되기 때문. 정확히 말하면, 강서구, 시흥시, 인천광역시 일대가 이 때는 미추홀로 불렸던 것. 강서구는 제차파의현으로 불렸다는 삼국사기(권 제37잡지 제6지리) 백제 한산주편의 기록이 있으니, 최초의 지명은 제차파의였던 셈.

통일신라시대 때는 공암현, 고려시대 말기에는 양천현, 조선시대 초기에는 금양현, 중종 때는 금천군, 인조 때는 양천군이였다가 숙종 때 들어서 양천현으로 환원되었다.

조선시대 명의인 구암 허준의 출생지이기도 하며, 양천 허씨의 시조이자, 고려 개국공신 중 한 명인 허선문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허선문은 김수로왕의 그 유명한 허가바위, 광주바위가 가양2동에 있다. 따라서, 가양2동이 원래 가양동의 중심지였는데, 조선 왕조 때부터는 양천현의 중심이 가양1동이 되었다. 양천현의 관아가 가양1동에 있었으니까.

구한말(1895년, 갑오개혁)에는 인천부의 속군으로 양천군 향교동, 고양동, 가마동, 성재정리, 군내면, 공암리, 남산면 등촌리, 염창리의 일부 지역이 되었다.

가양동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1914년에 가마동의 '가'와 고양리의 '양'이 합쳐서 가양동이 된 것이다. 1914년 3월 1일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가양리로 불렸다. 1963년 1월 1일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양동출장소 관할의 양천동사무소에 소속되었다. 1968년부터 양동출장소가 폐지되었고, 영등포구 가양동이 되었다. 1970년 5월 18일부터는 양천동사무소가 가양동사무소로 개칭되었고, 1977년 8월 1일부터 영등포구에서 분구된 강서구에 소속되어 강서구의 법정동이 된다.

1993년 4월 1일에는 강서구 조례로 인해, 가양동이 가양 1, 2, 3동으로 분동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