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이름김영애(金姈愛)
출생1951년 4월 21일, 부산광역시
신체160cm[1] , 53kg
학력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
데뷔1971년 MBC 3기 공채 탤런트
가족슬하 2남
소속스타빌리지엔터테인먼트
취미볼링, 스키, 골프
특기서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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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한국의 연기자. 부산 출신, 부산 여자 상업고등학교 졸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원으로 일하던 중 지인의 제안을 받고 1971년 MBC 공채 3기로 데뷔했다.

1970년대는 미모의 신인 탤런트로 많은 인기를 모았다.[2] 1980년대 이후로는 주연보다는 여러 조연으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연기력 또한 출중하기 때문에 선역과 악역을 넘나들며 활약하고 있는 중견 여배우 중 한 명이다. 단아하고 깔끔한 동양적인 미모임에도 젊은 시절에는 현대극 위주로 나온 편이었는데, 좀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역을 맡고 있다. 오히려 사극에서 희빈, 왕후, 대비 등 높으신 분, 특히 최종 보스나 흑막으로 나올 때면 그 포스가 어마어마하다. 냉혹한 재벌 회장부터 정이 깊은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까지 두루 어울리는 전천후 배우.

2000년대 중반부터 황토팩 사업을 시작해서 크게 성공했으나, 이영돈 PD가 프로듀싱하는 KBS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에서 "황토팩에 중금속 함유"라는 보도때문에 큰 타격을 입고 사업을 접었다. 이 여파로 이혼[3]까지하고 본인도 에 걸리는 등 여러 타격을 입었으나 2007년 법원에서 유해성이 없다고 판결되어 누명을 벗었다. 다만 KBS의 제작팀은 허위보도 대해 "중금속이 있다는 보도내용은 허위지만, 그럴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판단된다며 2013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김영애 본인으로서는 매우 억울한 일이다.

여담이지만 젊은 시절 미모를 잘 지켜와서 그런 건지 황토팩 덕인지 나이에 비해 무척 고운 미모를 유지하는 여배우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연규진과 둘이서 오뚜기 라면 CF 전속모델을 한 적이 있다.

2 출연작

위에도 나와 있듯이 KBS와 법적공방을 벌였기 때문인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KBS에 출연하지 않았다. 2015년 KBS 주말극인 부탁해요, 엄마에 임산옥 역으로 캐스팅되며 복귀하는 듯 했으나 건강 문제로 인해 하차하여 그 역할은 고두심이 대신 맡았고, 2016년 주말극인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 최곡지 역으로 캐스팅되면서 뒤늦게 복귀에 성공했다.

2.1 드라마

2.2 영화

  • 1972년 섬개구리 만세 - 여교사 김선희 역 (주연) - 감독 정진우
  • 1975년 비녀 - 박근형, 제작 정진우

김영애의 영화데뷔는 감독 겸 제작자 정진우에 의해 이뤄졌다. 정진우 감독은 우진필름이란 이름의 메이저 영화사를 운영하기도 했던 영화계 거물이었으며 80년대 초 정윤희 주연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를 연출하기도 했었다.

  • 1977년 설국 - 박근형
  • 1978년 비련의 홍살문
  • 1978년 너의 창에 불이 꺼지고 - 강주희, 남궁원, 윤일봉
  • 1979년 로맨스 그레이 - 최불암, 사미자, 감독 문여송
  • 1979년 돌의 초상 ㅡ 이낙훈, 한진희
  • 1979년 누가 이 아픔을 - 박근형
  • 1979년 깃발 없는 기수 - 하명중, 송재호, 감독 임권택
  • 1981년 빙점 81 - 남궁원, 감독 고영남

김영애는 설국, 빙점 등 일본문예물의 한국화에 잘 어울리는 얼굴을 가진 배우로. 젊은 시절 박근형, 남궁원의 큼직큼직 이국적인 이목구비와 김영애의 아기자기 단아한 이목구비가 대조를 잘 이뤘다.

  • 1980년 바람 불어 좋은 날 - 안성기 유지인, 임예진
  • 1981년 미워도 다시 한 번 81 - 남우 윤일봉
  • 1981년 반금련 - 이화시, 신성일
  • 1981년 깊은 밤 갑자기 - 윤일봉, 이기선, 감독 고영남
  • 1981년 겨울로 가는 마차 - 이영하, 김진규
  • 1982년 하와의 행방 - 신성일
  • 1982년 불바람 - 임동진, 안소영

고영남 감독과 김영애의 인연은 한국영화계의 호러걸작 깊은 밤 갑자기로 이어졌다. 이후 김영애가 주연에서 조연으로 위치가 바뀌었을 때 고영남 감독의 작품 미리 마리 우리 두리에 특별출연한다.

80년대 들어서면서 전두환 신 군부 장권의 3S 정책으로 인해 한국영화계에 에로영화 바람이 불었고, 그에 따라 정윤희, 원미경, 이미숙, 이기선, 이보희, 나영희, 안소영, 선우일란 등 섹시한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들이 여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70년대 문예영화로 전성기를 맞았던 김영애 또는 하이틴 영화로 인기를 누렸던 임예진, 강주희 등의 여배우들은 예전과 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하게 되었으며 길소뜸(1985)의 이상아처럼 반강제적으로 노출연기를 하는 경우라든지 강수연, 조용원처럼 이른 나이에 서둘러 성인 연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다.[4][5]

  • 1982년 내일은 야구왕
  • 1983년 아내 - 한진희, 유지인
  • 1984년 장대를 잡은 여자
  • 1985년 장사의 꿈 - 임성민, 금보라
  • 1986년 비내리는 영동교
  • 1986년 겨울나그네 - 강석우, 이미숙
  • 1986년 이브의 건넌방 - 임동진, 나영희
  • 1987년 연산일기 -유인촌, 김진아, 감독 임권택
  • 1087년 위기의 여자 - 신성일, 윤정희
  • 1988년 미리 마리 우리 두리 - 감독 고영남

80년대 초중반부터는 조연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드라마 활동의 비중이 점차 높아진다. 1974년방영된 김수현 극본 MBC 드라마 수선화에 출연했으며 1978년 방영된 MBC 드라마 청춘의 덫에도 출연했으나 김수현 작가 극본 청춘의 덫은 시대 분위기상 드라마가 제대로 완결되지 못했고 청춘듸 덫은 이후 한차례 영화로 만들어진 뒤 심은하, 이종원, 전광렬 주연의 SBS 드라마로 리메이크되었다 1983년에 김영애가 출연했던 영화 아내는 이후 KBS2에서 유동근, 김희애, 엄정화 주연의 52부작 드라마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1982년에 방영되었던 KBS1 드라마 풍운에서 명성황후 역을 맡았으며 1990년에 방영되었던 KBS2 드라마 버전 빙점에서 영화에 이어 여주인공 역을 맡기도 했었다.

  1. 당시 기준으로는 키가 상당히 큰 편이다. 2010년대의 165~7cm 정도?
  2. 실제로 이 당시 미모는 지금 시대의 동년배 배우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오히려 성형이 보편화된 지금 연예계 사정을 고려하면 더 빼어난 미모라고 생각할 수 있다.
  3. 두 번재 결혼으로, 회사를 운영한 사장이 남편이었다.
  4. 물론 김영애도 에로성 성인 영화에 꽤 나왔다. 당시 성인 대상 로맨스/멜로 영화라면 스토리 흐름에 관계 없이 무조건 벗거나 남녀가 한 침대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와야 했다.
  5. 당시에는 아청법이나 다른 규제가 없었기 때문에 미성년자를 홀랑 벗기고 정사 연기를 시켜도 제작자나 감독이 잡혀갈 일이 없었다. 엄밀히 따지면 당시 법으로도 잡아 넣을 수 있었지만,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넘어가곤 했다. 일단 정부 시책이 3S였기 때문에, 정부 시책에 협조적으로 나온다면 월 하던 되던 어두운 시절의 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