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원

이름조용원(趙容瑗)
출생1966년 9월 27일, 서울특별시
신체164cm, A형
가족2남 1녀 중 장녀
학력도쿄대학 대학원 사회정보학 박사
와세다대학 대학원 예술학 석사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 (안성캠퍼스) 학사[1]
데뷔1981년 미스롯데 인기상

1 소개

1980년대 중반의 대한민국원조 아이돌 스타이자 영화 배우이다. 이분을 아시면 최소 40대 이상

흔히 국내 인물정보 등에는 1967년생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1966년 9월 27일생이다.[2] 동국대 영문학과 교수였던 아버지 조철동씨와 초등학교 교사 출신 어머니 노영희씨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녀가 초등학교 1학년때 돌아가셨으며 어린 자신과 두 남동생을 거의 어머니가 혼자서 돌보다시피 하였다. 성정여중 3학년 재학 당시 같이 걸스카우트 활동을 하던 고등학생 언니들이 탤런트 시험을 보러 갈 때 미스 롯데 선발대회에 참여하면서 따라갔다가 방송국 직원의 권유로 즉석에서 원서를 쓰고 응모하며 KBS 8기 탤런트로 선발되었다.

참고로 강수연의 라이벌로 유명하며, 동명여고 동창으로 1966년생 동갑이다.

2 연예 활동



조용원 리즈 시절.

1980년대 중반 예쁜 페이스로 연예계를 휩쓸었던 스타로 1981년 만 15세에 미스롯데, 이후 1983년 KBS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대표작은 1984년 땡볕의 순이 역으로 대종상, 아시아영화제 신인상을 받았으며 이 때부터 하이틴 스타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3] 하지만 대학교 1학년이었던 1985년 20세의 나이에 어머니가 운전하는 맵시나 승용차를 타고 학교에 등교를 하다가 차가 가로수를 들이 박고 5m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큰 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었다. 이 사고로 얼굴에 큰 상처를 입었는데 응급처치는 산부인과 의사가 했었고 때문에 성형수술까지 받아 결국 한창 시절인 1987년 연예계를 은퇴하게 된다. 본인은 당시 얼굴도 다치고 몸도 많이 다쳤는데 하도 온 몸이 많이 다쳤기 때문에 얼굴 같은 것은 신경도 못 썼다고 회고했다. 특히 얼굴을 먼저 해줘야 하는데 병원에서 신경이 끊어지면 팔을 못 쓴다, 다리를 못 쓴다하다 보니 얼굴 피부에 대한 치료가 늦어졌고 결국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 사고만 아니었어도 아마 외모+지성으로 유명한 서울대학교 출신인 김태희를 능가했을것이란 전망이 매우 컸기에 더욱이 안타까웠다고.

1980년대 하이틴 스타 중에서도 외모는 물론 지성도 으뜸이었고 게다가 성실함과 겸손함까지 갖췄었다. 거기다 단순히 비주얼 뿐만이 아니라 연기력도 안정적이었다. 따라서 연예계가 아니라도 충분히 다른 분야에서도 성공했을 거라는게 중론이다.



1987년 게토레이 CF.

3 연예계 은퇴 이후

실제로 연예계 은퇴 후 일본에 유학을 가기도 했는데 와세다대학의 학부를 마치고 도쿄대학 대학원 사회정보학 박사까지 취득할 정도였다. ㅎㄷㄷ. 유학 직후에 환률이 폭등해서 금전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허름한 집에서 아르바이트 생활도 했다고 한다. 같은 시기에 한국에 있는 모친은 관절염으로 투병을 시작하여 마음 고생도 심했다고. 이홍렬의 책에 의하면 일본내 한인, 영화계에서 이름처럼 조용하지만 꾸준히 활동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유학을 바탕으로 오겡끼데스까 같은 일본어 교재 등 여러 책을 써 내기도 했다. 은근히 국제 무대에 관심이 있었는지 일본 유학 말고도 중국 감독하고 같이 영화를 찍기도 했다. 유릭와이의 명일천애, 이 영화는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받기도 했다. 참고로 한국어로 연기하는 부분도 제법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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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학 당시 사진이다.

배우 변우민이 조용원과 만난 썰을 풀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조용원이 너무 일찍 연예계에 데뷔하게 돼서 힘들어 죽고싶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변우민은 그녀를 말리려고 거짓말로 6개월 시한부라고 구라를 쳐 줘 죽으면 안된다고 하고 자신은 거짓말을 맞추려 멀쩡한 몸을 놔두고 학교를 휴학했었다는 훈훈한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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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주 은퇴한 건 아니라서 일본 유학 후에도 1996년까지 영화나 드라마에 간간히 출연했으며 1997년 뮤지컬 제작자로 전향했지만 실패했다. 그 외에 1988년 후반과 1989년 초반에는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여자 MC를 잠시 맡기도 했다.[4] 90년대 중후반에는 EBS의 영화정보 프로그램인 '시네마 천국'의 진행을 수년간 맡기도 했다. 카메라를 똑바로 처다보면서 특유의 프랑스어틱한(...) 발음으로 영화 해설을 하고 있으면 그것이 참으로....

2000년 10월에 영화 주간지 '씨네버스'를 창간하기도 했다.

4 근황

가장 최근인 2011년 지인의 말에 의하면 국내에 돌아와 비즈니스 활동을 준비 중이며 방송연예 콘텐츠 제작자가 될 예정이라고 했다. 다만 결혼은 계획이 없다고 했다. 한창 나이에 불운의 여배우가 되었지만 새로운 꿈에 계속 도전하는 그녀의 자세를 보면 대단하다고 감탄할 만 하다.

2016년 4월 22일에 방영한 MBN 아궁이에서는 은퇴 이유가 3번의 교통사고 때문이라고 한다(...)#

이 기사에서는 안나와있지만 윤태섭 기자의 말에 의하자면 2015년 연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병원에 있었다고 한다(...)자세한 내용은 48:00분에서 부터.

5 출연 작품

  • 드라마
    • 광장(1985)
    • TV소설 사랑(1987)
    • 욕망(1997)
    •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1988) - 지혜 역
    • 만날 때까지(1999)- 인혜 역
    • 3일간의 사랑(2000)
  • 영화
    • 내가 마지막으로 본 흥남(1983)
    • 신입사원 얄개(1983) - 준희 역
    • 열 아홉살의 가을(1983) - 다이 역
    • 땡볕(1984) - 순이 역
    • 불타는 신록(1984) - 윤시내 역
    •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1984) - 이화 역
    • 여왕벌(1985)- 정희 역
    • 여자의 반란(1985) - 현주 역
    • 먼 여행 긴 터널(1986) _ 황혜옥 역
    • 고속도로(1987) - 미옥 역
    • 사노(1987)
    • 키위새의 겨울(1987) - 수희 역
    • 그것은 우리도 모른다(1988)
    • 사랑의 종합병원(1993) - 정선주 역
    • 정글 스토리(1996) - 약사 역(특별출연)
    • 명일천애(2003) - 수에란 역
    • 라디오 스타(2006) - 본인 역[5]
  1. 중앙대의 연극영화학과는 1980년대 안성캠퍼스로 내려갔다가 2007년에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따라서 1980년대 부터 2007년 이전 까지 중앙대의 연극영화학과 학생들은 안성캠퍼스 소속이었다.
  2. 지금도 이를 입증하는 고등학생 시절의 인터뷰 기사가 남아있다. 또한 실제로 그녀는 중앙대 85학번이기도 하다.
  3. 70년대에는 이영옥, 임예진이, 그 뒤로는 이상아, 최수지등 하이틴 스타로 활약을 했다.
  4. 1985년에 첫 방송해서 1997년 폐지된 인기 버라이어티이자 오락 프로그램으로 1991년까지 남자 MC를 맡았던 이덕화부탁해요~로 유명하다.
  5. 직접 출연은 아니며 과거 MBC 10대 가수왕 시상식이 나오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