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셔츠단

Camicie Nere(이탈리아어)
Black Shirts(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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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니토 무솔리니가 1919년 3월 창설한 파시스트 당 산하의 정치깡패. 문자 그대로 조직원들이 검은 셔츠를 단복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검은 셔츠단이라는 명칭이 붙었으며[1], 공식적인 명칭은 국가 안보 의용 민병대(Milizia Volontaria per la Sicurezza Nazionale, MVSN). 훗날 나치의 돌격대의 창설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2]

2 역사

검은 셔츠단은 1차대전 직후 극도로 혼란스러웠던 이탈리아의 정국 가운데에서 탄생했다. 1차대전 당시 이탈리아는 나름대로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연합국의 전쟁 승리에 기여를 했지만, 파리 강화 회의베르사유 조약 등 전후 처리 과정에서는 티롤 일대를 오스트리아로부터 할양받은 것 이외에는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당연히 이탈리아 안에서는 푸대접에 대한 격렬한 분노의 목소리가 튀어나왔으며, 리소르지멘토 이후로 사회적으로 많은 희생을 강요받았던 농민들과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사회주의아나키즘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임박한 듯 보였던 공산 혁명의 낌새에 공포에 떨었던 이탈리아의 지주와 자본가들은[3] 1919년 3월 무솔리니를 후원하여 좌파 세력을 탄압할 준군사단체를 조직하고, 이 조직의 이름을 행동대(Squadre d' Azione)라고 붙이는데, 이것이 검은 셔츠단의 시초였다.

자신들의 이념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면서 악명을 떨쳤던 검은 셔츠단은, 빠른 속도로 팽창해나가 정규군 수준의 규모를 자랑하게 된다.[4] 그리고 이렇게 방대한 규모를 바탕으로 1922년 10월에는 쿠데타를 일으키니, 이것이 바로 로마 진군.[5] 무솔리니가 집권함에 따라 검은 셔츠단은 일개 사병 조직에서 국가의 공식 승인을 받은 민병대로 탈바꿈하고, 1930년대 중반이 되면 무려 6개 사단을 갖춘다. 무솔리니의 야망에 따라 검은 셔츠단은 스페인 내전에티오피아 침공1930년대 세계 곳곳의 분쟁에 개입했으며, 2차대전 시기가 되면 더욱 규모를 확대하여 무려 백만명의 인원이 편재된 조직이 되었으나 1943년 시칠리아 상륙작전 이후 무솔리니가 실각하면서 해산된다.[6]
  1. 짐작가겠지만 이탈리아 통일 당시 주세페 가리발디가 이끌었던 붉은 셔츠단을 모방한 것이다. 근데 붉은 셔츠단은 좌파적인 성향이었다는게 함정.
  2. 실제로 돌격대의 별칭은 갈색 셔츠단이었다. 그리고 성에 안찼는지 나치 버전 검은 셔츠단을 만들었다.
  3. 특히나 남부의 농업 지대에서는 상당수의 농민들이 지주들을 몰아내고 집단 농장을 수립하기까지 했다.
  4. 첨언하자면 무솔리니는 찬란했던 과거를 재현하기를 망상염원하면서 검은 셔츠단과 이탈리아 정규군의 편재를 현대적인 명칭이 아니라 고대 로마의 명칭으로 붙였다. 가령 중대는 100인대(Centuria), 여단레기온(Legion)이라는 식으로. 하지만 그 결과는..
  5. 사실 로마 진군 당시 검은 셔츠단은 규모만 방대했지, 화력은 정말 보잘것이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정규군이 가볍게 제압할 수 있었으나, 이탈리아의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방조로 인해 진압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6. 히틀러에 의해 살로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명목상으로는 검은 셔츠단이 재건되었으나, 단독으로 빨치산 토벌 조차 진행할 수 없는 안습한 전력을 자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