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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擊毬.

1 개요

을 타고 기다란 격구채로 골프공만한 크기의 공을 치는 고대~중세의 전통 공놀이 스포츠이다.

페르시아에서 시작되어 실크로드를 거쳐 당나라로, 그 후 고구려신라로 전해졌다. 특히나 고려 때에 성행했지만, 조선 중후기부터 문치주의가 극단적으로 강화되어 무예를 천시하면서 쇠퇴해 현대에는 명맥이 거의 끊겼다.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말을 타고 하는 "마상격구(馬上擊毬)"와 직접 발로 뛰는 "보행격구(步行擊毬)[1]가 있다.

2 상세

무예도보통지 4권에 기록된 무예로 서양의 폴로(polo)와 비슷하며, 고려귀족들이 즐겨 하였고 여인들 또한 그 기술을 익혀 널리 말을 활용한 기마민족의 전통을 경기로써 이어지게 하는 기예이다.

고려 무신정권의 2번째 지배자였던 정중부도 격구로 왕의 눈에 들었고, 3번째 지배자였던 경대승이 어린 나이에 명종 앞에서 격구룰 시연해 2등으로 왕의 눈에 들었다.

그리고 조선 초기에 격구(擊毬)라는 이름으로 격방(擊棒)이라는 놀이가 모든 계층에서 행해졌는데, 위로는 임금부터 아래로는 평민들까지 즐겨 행하여졌다. 여기서 격구는 말위가 아닌, 평지에서 걸으며 하는 일종의 하키 형태의 놀이였다

조선 2대 임금인 정종태종에게 양위 한 후 이 스포츠를 매우 즐겼다고 나와있는데 정종 본인이 본래 무장 출신인데다가 상왕이라는 명예직으로 나와있는 상황에서 격구만큼 시간 때우기에 좋은 스포츠도 없었는듯.

그러나 1725년 이후 부터는 무과의 실기시험에서 제외되었다. 위에서 언급했듯 전쟁기술 연마의 성격이 강한 스포츠였기 때문에, 전쟁이 거의 없어지고 무예를 천하게 여긴 조선 중후기 이후 점점 사라진 기예이다.

격구가 무예가 아니라는 말이 많은데 기마무예를 중시하던 조선 입장에서는 마상재와 더불어 말을 한몸처럼 다루는 기술로써 매우 중요했으며 이를 익히는 것 역시 무예였으니 무예라고 보는 것이 맞다. 현대에 들어서는 무예의 관념이 많이 바뀌었기에 일어나는 사고의 변화일 뿐.

3 기술

여느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격구에도 많은 동작과 기술들이 존재했다. 그 중 몇가지[2] 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할흉(割胸) : 공을 격구채로 뜬 후 격구채를 말의 가슴에 곧게 대는 동작
2. 방미(防尾) : 격구채를 말꼬리와 나란히 하는 동작.
3. 수양수(垂揚手) : 원심력 등을 이용해 (쥐불놀이하듯) 격구채를 위아래로 돌리고 흔드는 동작.
4. 호접무(胡蝶舞) : 공을 공중에 던져올린 후 격구채로 받는 기술. 그 후 공을 미는 동작을 한다.

한국사에서 격구계의 메시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였다. 태조실록에 기록되어있는 이성계의 격구술을 읽어보면 그야말로 메시라고 할 정도로 진귀한 움직임들이 보이는데, 몇가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태조가 공을 운행할 때에, ..., 공이 문득 돌에 부딪혀 놀라 거꾸로 달아나 말의 네 발 뒤로 나왔다. 태조는 즉시 위를 쳐다보며 누워 몸을 돌려서 말꼬리에 부딪쳐 공을 치니...

2. 공이 왼쪽으로 빠지자, 태조는 오른쪽 등자에서 발을 빼고 몸을 뒤집어 쳐서 이를 맞히고 다시 쳐서 문밖으로 나가게 하니 그때 사람이 이를 횡방(横防)이라 하였다.[3]

4 매체에서의 등장

드라마 태조 왕건에선 신검애술이 각 팀의 주장을 맡아 즐기는 모습이 잠시 나온다. 아래의 무신에 비하면 하키같은 스포츠에 가까운 묘사로 나오는데, 작중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지며 온갖 갈굼을 당하는 신검이 작중 유일하게 진심으로 즐거운 표정을 보여준다. 해설에서는 '신검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격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라는 식으로 언급했는데, 아마 격구라는 스포츠가 상당히 오래된 것이라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4].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도 등장한다. 마상격구는 등장하지 않고 보행격구만 등장하며 세종을 비롯한 왕족들이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위나 아래의 예와 다르게 골프처럼 매우 정적이고 우아한 스포츠로 표현했다.

드라마 무신에서는 초반에 비중있게 나오는데 공놀이는 둘째치고 격구채로 상대 팀부터 때려죽이고 보는 데스매치(...)마냥 과격하게 묘사됐다. 이걸 축구로 치면 골키퍼를 때려패 최소 기절시키고 나서 마지막 마무리로 여유있게 골대에 공을 차넣는 식.[5] 격구는 스포츠인 동시에 무예이기도 하고, 말을 탄 채로 몽둥이로 쓸 수 있는 막대를 휘두르며 엉키는 매우 위험한 종목인 것도 사실이긴 하다. 극중 언급에 따르면 자기네들 도방에서만 이렇게 과격하게 하지 다른 데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언급이 나와서 극적 과장에 대한 보험을 들어놓기는 하지만, 격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오해하기 십상일 상황.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도 등장하는데 드라마 무신과 엇비슷한 경기규정으로 가긴 하지만 데스매치 수준까지는 아닌 격한 운동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격구가 들어온 시점은 고구려 후기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드라마 속에서 나오는 격구라는 종목 자체는 역사왜곡인 셈이다.
  1. 혹은 "도보격구(道步擊毬)"라고도 한다.
  2. 역사저널 그날 131편(16.07.03 방영분)에서 소개됨
  3. 글로 읽어도 이해가 안가는 위키러는 역사저널 그날 131편을 참고하면 좋다.
  4. 실제로 드라마상에서 역사성(?)을 보여주기 위해 극중 전개와 아무 관련도 없는 장면을 집어넣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박김치와 동치미가 고려 시대에도 있었다든가, 박술희가 뱀이나 개구리까지 즐겨 먹었다는 등등...
  5. 물론 전근대시대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규칙이 느슨한 편이라, 격구가 아니라도 예를 들어 축구잉글랜드에서 옛날에 하던 초기 축구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거의 패싸움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