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양식

輕洋食

P_King.jpg

a0008417_4af6ffc5ac766.jpg

1980~90년대대한민국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요식업소의 형태. 주로 오므라이스, 돈가스, 햄버그 스테이크 등을 취급했다. 돈가스는 두꺼운 일식 돈가스가 아닌 분식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얄팍한 돈가스다. 그리고 어느 경양식점에서나 돈가스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사장님의 인심이 푸짐한 곳이 아닌 이상 다소 실망스럽다(...). 햄버그 스테이크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계란 프라이가 올라가 있다.

꽤 역사가 오래 되었는데, 처음 들어온 것은 일제강점기이다. 1925년 경성역사 준공과 더불어 역사 내 식당으로 개점한 "그릴"이 한국 최초의 경양식당이다. 경양식 뿐만 아니라 일본식으로 재해석되기는 했지만 당시 한국에서 서양식 요리를 먹어볼 수 있었던 곳으로는 여기가 최초이다. 그릴은 해방 후 철도청이 운영을 맡았고, 경양식이 고급 먹거리로 인기를 끌던 70~80년대에는 서울역 뿐만 아니라 대도시 주요 역에도 분점을 개점했다. 그러나 경양식이 쇠퇴하면서 다시 서울역 그릴만 남게 되었고, 2004년 서울역 신역사 건설과 함께 그쪽으로 자리를 옮겨 2015년 현재까지 계속 운영 중이다.

2000년대 이후로는 패밀리 레스토랑들이 많이 등장해서, 경양식으로 대표되던 이른바 외식 메뉴의 시장을 차지하였다. 반면, 오므라이스나 돈가스는 분식으로 분류되며 간단한 식사 메뉴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금은 오므라이스나 돈가스를 외식 메뉴라고 하기도 민망해졌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음식들이 외식 메뉴로 인기가 있었다. 사실 90년대 초반에는 패스트푸드 햄버거조차도 외식 메뉴로 통했다.[1] 여러모로 패밀리 레스토랑의 전신격인 식당이다. 따지고 보면, 경제 성장기와 맞물려 음식 메뉴가 먹을 것이 많아졌기 때문에, 점점 외식 문화가 주류로 떠오르게 되면서 대한민국의 식문화가 더욱 화려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현 시대에는 외식 장소로는 레스토랑에 밀려서, 메뉴로는 김밥천국 등에 밀려서 거의 자취를 감춘 수준이다. 오므라이스돈가스분식으로 살아남기도 했지만, 좀 더 전문화, 고급화 전략의 메뉴 개발을 통해서 일반 분식 수준의 메뉴가 아니라 고급화의 길을 걷는 방식으로 생존하기도 하였다. 이 음식들은 대충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만, 전문적으로 조리를 하자면 방법도 쉽지 않고, 맛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이는 메뉴이기 때문이다.

다만, 함박스테이크의 경우 대충 만들기는 힘든 메뉴인데다가 원재료인 쇠고기가 분식집에서 취급하기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으며 또한 패밀리 레스토랑을 통해서 제대로 된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게 되면서 맛보기가 힘들어졌다. 스테이크 전문점이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판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곁다리 메뉴 정도이다.

다만, 2010년대 들어 도리어 패밀리 레스토랑 시장이 쇠퇴하고, 복고 열풍과 함께 과거 경양식풍의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많이 생기고 있고, 인기도 많이 올라가고 있다. 주요 상권이나 쇼핑몰, 백화점 지하 식당가, 제법 고급스러운 상권에 가도 옛날식으로 만들어진 햄버거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다. 물론 가격도 옛날 위상을 그대로 반영했는지 꽤 비싸다(...).

옛날에는 양식당이라고 하여 그럴 듯한 인테리어에 웨이터가 있었다. 웨이터가 주문을 받고서 "빵으로 하시겠습니까, 밥으로 하시겠습니까" 라고 묻는 장면은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재미있는 추억 중 하나이다. 빵을 고르면 모닝빵과 스테인리스 접시에 담긴 잼이 나오고(보통은 사과잼이 나왔지만 좀 고급스런 곳은 버터, 사과, 딸기잼이 한꺼번에 나왔다) 밥을 고르면 쌀밥 한 덩이와 김치, 단무지가 나왔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주식을 제공하기 전에 스프가 제공되기도 하였다.[2] 김밥천국 류의 분식점에서 돈가스와 함께 밥 한 덩이를 주는 것은 이 시절로부터 내려온 것이다.

간혹 오전에는 커피와 식사를, 오후에는 주류를 판매하는 점포도 있었다. 지금도 좀 발전이 더딘 구시가지를 가보면 이런 종류의 간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현재는 기사식당의 형태로 설렁탕이나 갈비탕, 냉면들의 메뉴를 추가한 상태거나, 학생들이 많은 학원가에서 분식 메뉴를 몇 개 더하는 식으로 애매한 정체성을 유지한 채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시를 재현한 드라마 등에서는 특별한 날 부모님이 자녀를 이런 식당에 데리고 가서 맛있는 것을 사주는 장면이 일종의 클리셰처럼 등장한다. 70~80년대 초반생(1981~84년생) 위키니트라면 어렸을 때 특별한 날 외식으로 가본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1986년생부터 1994년생까진 패밀리 레스토랑이 이 포지션을 대신했기 때문에 경양식에 대한 기억은 없는경우가 많다. 물론 경양식당 자체는 90년대 중후반은 물론 현재까지 영업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일반화는 금물.

용산역 근방의 용사의 집 양식당이나 서울역 2층 식당가의 양식당(과거 서울역 양식당이 이전한 곳)의 경우 예전의 경양식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추억삼아 찾는 사람들도 많다.
  1. 좀 더 앞선 시대로 살펴보자면, 60~70년대에는 짜장면도 훌륭한 외식 메뉴 중의 하나였다.
  2. 이 때도 크림 스프로 하시겠습니까? 야채 스프(토마토 스프)로 하시겠습니까?" 라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