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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선수 시절#
이름 | 고원부(高元富) 吉村 元富(요시무라 모토토미) |
생년월일 | 1962년 4월 17일 |
출신지 | 일본 기후 현 |
학력 | 주쿄고등학교(中京高等学校)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입단년도 | 1981년(일본) 1986년(한국) |
소속팀 | 난카이 호크스(1981~1985) 빙그레 이글스(1986~1991) OB 베어스(1992) |
1989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 ||||
이순철(해태 타이거즈) 이정훈(빙그레 이글스)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 → |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고원부(빙그레 이글스) 김일권(태평양 돌핀스) | → |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이정훈(빙그레 이글스) 이호성(해태 타이거즈) |
빙그레 이글스 등번호 4번(1986~1991) | ||||
팀 창단 | → | 고원부(1986~1991) | → | 이종호(1993~1995) |
OB 베어스 등번호 39번(1992) | ||||
정재호(1990~1991) | → | 고원부(1992) | → | 조경택(1992~1995) |
1989년 한국프로야구 타격왕 | |||||
김상훈(MBC 청룡) | → | 고원부(빙그레 이글스) | → | 한대화(해태 타이거즈) |
1 소개
난카이 호크스(現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빙그레 이글스, OB 베어스에서 활약했던 재일교포 야구 선수. 포지션은 외야수였다. 또한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한 재일교포 출신 타격왕이기도 하다.
2 선수 생활
2.1 일본 시절
주쿄고교를 졸업하고 난카이 호크스에 지명되어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1984년 2군 올스타전에서 MVP를 수상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구단이 1군에 진입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1985년 팀을 떠나게 된다.
2.2 한국 시절
이후 장훈의 주선으로 같은 해 한국에 건너오게 되고,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하게 된다. 첫 해에는 타율 0.245, 3홈런, 33타점, 13도루로 그닥 눈에 띄는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다음해부터 3할 타율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맞는다. 특히 1989년에는 0.328이라는 고타율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찍게 되는데, 이 해 타격왕을 수상하며 재일교포 출신 야수가 최초로 시즌 타이틀 홀더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1][2] 그와 함께 골든글러브도 수상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내리막이 찾아왔고, 1991 시즌 종료 후 OB 베어스로 보내지지만 거기서도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며 시즌 중 방출되었다.
OB로 트레이드 되기 전에 김영덕 감독과의 불화도 한 몫 했었다. 난카이 호크스의 선후배간이나 한솥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부임 첫 해인 1988년부터 "낙인찍힌 사나이"가 되었으며 "시즌만 끝나면 방출"설이 나돌았었다. 이에 고원부는 "빙그레는 싫지 않지만 빙그레를 떠날 수 밖에 없다"고 시즌 중에도 이야기를 했었다고 한다.
통산 성적은 타율 0.280, 37홈런, 244타점, 52도루. 너무 빨리 찾아온 내리막이 아쉬웠던 선수 중 하나다.
은퇴 후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1994년부터 2년 동안 태평양 돌핀스 타격코치를 지냈다. 특히 1994년에는 '족집게 도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돌핀스 타자들의 타격 향상에 기여하면서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팀이 현대 유니콘스로 바뀌는 과정에서 재계약을 하지 않았고, 다시 일본으로 간 이후의 근황은 분명하지 않다.
3 여담
1988년 5월 12일 청주 MBC 청룡전에서 그랜드 슬램 인사이드 파크 호텔 그라운드 만루홈런을 기록한 적이 있다.[3]
2015년 김은식 기자가 트위터에 근황을 알렸다. # 참교육을 준비중이시다.[4]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1986 | 빙그레 이글스 | 84 | 310 | .245 | 76 | 13 | 3 | 3 | 33 | 27 | 13 | 42 | .335 | .333 |
1987 | 104 | 380 | .324 | 123 (2위) | 14 | 1 | 7 | 51 | 51 | 14 | 55 | .421 | .405 (4위) | |
1988 | 98 | 321 | .277 | 89 | 13 | 1 | 9 | 50 | 44 | 10 | 35 | .408 | .344 | |
1989 | 109 | 342 | .327 (1위) | 112 | 16 | 2 | 6 | 45 | 51 | 5 | 47 | .439 | .405 (4위) | |
1990 | 107 | 288 | .253 | 73 | 13 | 2 | 9 | 45 | 42 | 4 | 40 | .406 | .342 | |
1991 | 39 | 83 | .229 | 19 | 1 | 0 | 1 | 8 | 7 | 0 | 10 | .277 | .312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1992 | OB 베어스 | 53 | 157 | .217 | 34 | 2 | 0 | 2 | 12 | 17 | 6 | 16 | .268 | .287 |
통산(7시즌) | 594 | 1881 | .280 | 526 | 72 | 9 | 37 | 244 | 239 | 52 | 245 | .386 | .360 |
- ↑ 투수 포함 최초 타이틀 홀더는 장명부. 같은 재일교포인 홍문종은 1984 시즌 롯데에서 최다안타를 기록했지만 당시 최다안타상이 제정되지 않아 타이틀 홀더가 되지 못했다. 타자 부문별 기록 수상자(타이틀 홀더)가 아닌 기타 수상경력을 따지면 1986년 올스타전 MVP였던 김무종이 있다.
- ↑ 다만 타격왕 경쟁 과정에서 김영덕 감독이 경기장에서 계산기를 쳐 가면서 타석 출장 여부를 결정하는 모습으로 인해 언론과 야구팬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박용택보다 20년 앞선 '만들어진 타격왕' 파동 - ↑ 상대 투수는 유종겸.
- ↑ 본문에 87년 타격왕 고원부라고 되어있는데, 고원부는 89년 타격왕이다. 87년 타격왕은 장효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