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영주(야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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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아직 곽영주가 경무대로 진출하기 전의 모습이고 이승만의 총애를 받아 출세한 뒤에는 실제 곽영주의 사진과 흡사한 외모가 된다.

드라마 야인시대의 인물이다. 배우 남성진이 연기했다.[1]

연줄을 잡으면 절대 놓지 말라(...)는 이정재의 충고를 새겨들어 이승만 대통령의 신임을 얻음으로써 초고속 승진을 달성한다. 그 이후의 행적은 위에 서술된 대로. 이정재의 든든한 빽이 되어준 덕에 주먹패들이 빽을 믿고 이정재에게 몰려와 이정재가 동대문파를 결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 후, 이기붕이 자유당과 이승만에 반대하는 자들을 탄압하고 여러 뒷테러를 수행하기 위한 청년단, 즉 깡패조직으로서 동대문파 택하며, 이제 곽영주는 이기붕-이정재 간의 밀착관계를 중개하는 역할로서, 정치깡패 동대문파의 행패나 테러 공작 등을 경찰력을 동원해 묵인하며, 검찰 등에게도 압력을 넣으며 수사를 방해하는 건 예사요, 동대문파 조직원이 잡혀갈 때마다 증거를 조작하거나 풀어주거나 매우 짧은 형기를 살고 나오도록 만드는 등, 어마어마한 권력을 휘두르고 다닌다.

동대문파의 정치테러(야당 인사들에 대한) 계획을 폭로한 김동진을 막아버린 것도 곽영주였고, 동대문 파가 김동진을 저격하는 단성사 저격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곽영주는 총을 쏜 장본인인 이석재를 빨리 풀려나오도록 도왔다. 임화수와도 가깝게 지내며 밀착을 하게 되며[2], 임화수에게 '잘 되면 문교부 장관 자리 주겠다' 라는 떡밥을 던졌다. 여러 국가기관에 횡포를 놓으며 이정재를 돕지만, 이기붕의 지지도가 영 좋지 않자 이기붕은 결국 이정재의 이천 선거자리를 넘보고, 이정재와 동대문파는 말그대로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는 꼴이 된다. 곽영주는 이정재와의 친분 탓에 이기붕을 설득하나 결국 자유당은 이정재의 선거자리를 뺏기로 결정한다. 이 시기부터 곽영주의 영향력은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정재가 저항하자 이기붕과 자유당은 동대문파 조직들을 잡아넣으며, 곽영주는 끝내 이정재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지만, 망연자실한 이정재는 모든 걸 포기하고 주먹계를 떠난다.

임화수에게 곽영주가 장관 자리를 주겠다는 말을 했었기에 이정재가 떠난 후, 동대문파의 보스가 된 임화수는 곽영주의 권력을 이용하기 위해 자유당 편에 남아 붙는다. 하지만 4.19 혁명 등으로 인해 이승만은 해외로 도피하고, 자유당과 동대문파는 완벽하게 몰락한데다, 박정희가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후 정치깡패나 자유당 인물들을 잡아 재판하는 과정에서 곽영주 역시 사형을 선고받는다. 이 진술 과정에서 임화수가 잘못을 이정재/유지광 등에게 떠넘기다 이들 역시 사형선고를 받는 데 일조하여 마지막 (사형직전) 면회 순간에 유지광이 임화수를 구타하는 것을 말린 것도 곽영주.

실제로 이승만에 대한 충성심이 있었다는 점을 반영한 것인지, 일생의 목표가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명예롭게 삶을 마감할 수 있게 돕는것이다. 사적인 자리에서까지 이승만의 안위를 수시로 걱정하며[3] 사형당하기직전 사형장앞에서 "만세! 대한민국 만세!! 이승만 대통령 각하 만세!!!"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여담이지만 장충단집회 방해 사건 폭력 진압이 자유당 파멸의 서곡이 될 거 같다는 말을 하거나, 3.15 부정선거전에 임화수와 술자리를 하면서 자유당의 몰락을 일찍부터 예견하고, 자신이 사형당하는 당일 예감이 좋지 않다고 하는 등 자주 예언가 기질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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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의 부친인 남일우는 1부에서 하야시의 장인인 고노에로 출연했다.
  2. 임화수가 나이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곽영주를 형님처럼 모셨으며 임화수와의 자리에서 자신의 동창인 유지광을 자주 언급해 임화수의 심경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임화수는 유지광을 많이 견제하고 있었다.
  3. 심지어 이박사가 종신 대통령을 하는 대신 그깟 내각 민주당에게 좀 넘겨주면 어떠냐. 자유당이 다 해먹으려고 드니까 나라꼴이 이 모양이 난것 아니냐'며 지 잘못은? 내각제 개헌을 지지하고 수시로 이기붕과 자유당을 까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