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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성사 저격사건에 증언하는 김동진. 뒤에는 이정재가 앉아있다.
1 개요
1955년 1월 29일 서울에 있는 극장인 단성사에서 동대문파의 이석재가 같은 조직이었으나 정치암살 명단을 폭로한 김동진을 백주대낮에 총으로 쏴버린 사건. 각색된 점이 많지만 사건 자체는 존재했다.
2 관련 매체
2.1 무풍지대
김동진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하며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그 자리에서 쏴죽였다고 법정에서 진술한다. 판사가 뭘 그리 자신하느냐는 질문에 그만큼 나는 총을 잘 쏜다며[1] 시범을 보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경찰이 보는 앞에서 담배 3 개비를 세워두고 멀리서 총을 3발 쏴서 죄다 맞추지만 그래도 일급 살인죄 미수로 징역형을 산다고 나온다.
2.2 야인시대
야인시대의 중요 사건/사고 | |||
부민관 폭탄의거 사건 | 중앙극장 습격 사건 |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 |
단성사 저격 사건 | 황금마차 습격사건 | 장충단집회 방해 사건 | |
충정로 도끼 사건 | 고대생 습격 사건 | 국회 오물 투척사건 |
반란을 일으킨 김동진이 거의 진압되어 잠적하기는 했으나, 이정재는 배신자인 김동진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고, 휘하 간부들을 시켜 김동진을 찾아내 처형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김기홍은 앞일을 예견해 지금 상황이 좋지 않고 세간이 주목하고 있으니 나중으로 미뤄야한다고 조언했으나 조열승과 임화수, 이석재 등이 "지금 김동진을 감싸는거냐?"라는 식으로 따지고 들어 김기홍의 조언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김동진을 노리게 된다.
그러나 김동진은 너무나도 철저하게 잠적해버려 찾을수가 없었고, 그러던 중 임화수는 김동진이 영화, 그것도 서부극을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단성사에서 멀쩡히 상영 중인 다른 영화들을 죄다 내려버리고 서부극 "OK 목장의 결투"와 "형제는 용감하였다."를 상영할것을 지시한다.
임화수의 예측대로 김동진은 영화를 보러 어슬렁어슬렁 기어나왔고[2], 이에 권상사가 김동진을 쏴 죽이려고 했지만 사람을 쏴본적이 없어서 못하고, 대신 이석재가 와서 영화를 보고 나오던 김동진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쏴버린다. 총에 맞은 김동진은 병원에 실려간다.
그러나 김기홍의 예견대로 이 사건은 일파만파로 퍼져 매스컴을 타버렸고, 완전히 빡쳐버린 이기붕이 이정재를 완전히 버려버리는 바람에 이정재와 이석재는 사이좋게 구속당한다.
담당검사 김윤도[3]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집요하게 수사를 하고, 이정재가 자유당에게조차 찍혀있는 상황 속에서 이석재는 살인 미수죄, 이정재는 살인 교사죄로 구속됨으로써 김동진의 치밀한 계획은 그 결실을 보나 싶었지만...
곽영주는 내무부장관을 압박해 김동진이 경찰에게 넘긴 정치암살의 증거물을 경찰이 먹튀하게 만듬과 동시에 이기붕을 협박에 가까운 설득을 했다. 그 내용인 즉 곽영주가 이기붕의 건강문제를 우려해 이기붕의 공천을 염두에 두지 않은 이승만에게 어떠한 말도 안한다고 했다. 즉 "당신이 어찌되든 나는 모르니 알아서 하쇼."라고 발을 빼겠다는 것. 이는 이기붕이 이승만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의미도 있다. 또한 권력을 한껏 이용한 압박으로 김윤도를 좌천시키고 담당검사를 교체해 이정재를 풀려나게 하고 현행범인 이석재조차도 짤막한 기간 동안 구속기소되는 수준에서 마무리지었다.
한편 김동진은 백병원에 실려가 수술끝에 목숨을 건지고, 유지광의 제안에 따라 패배를 인정하고 주먹계를 떠난다. 그렇게 이정재와 김동진의 대결에서 이정재가 승리한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이 사건은 나중에 혁명재판에서 재수사되어 이정재의 발목을 잡은 반면 김동진은 어쨌거나 엄연히 이정재의 행동대장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었음에도 이 사건 덕분에 체포 자체가 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는 주먹계를 떠날 때 이후 생애를 나레이션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대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