濟衆院.
1 실존했던 의료기관
한국 최초의 서양식 왕립병원으로 평가되는 광혜원의 이명.
홍영식의 집 건물(現 헌법재판소 일대)에 들어선 제중원. 설립 당시의 명칭은 광혜원이었다.
1886년 구리개(現 서울특별시 을지로입구역 일대)로 이전한 제중원.
고종의 명에 의하여 1885년에 세워졌다. 최초의 서양식 왕립병원으로, 갑신정변으로 인해 국가에 압류된 홍영식의 집을 수리하여 부지로 사용했고 선교사였던 호러스 뉴턴 알렌을 고용하여 병원을 운영하였다.[1] 개원 12일만에 광혜원에서 제중원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나 일반적으로 당시의 이 의료기관을 일컬을 때는 광혜원이라 부른다. 이후 알렌 말고도 다른 의사들(주로 미국 출신)을 고용하게 된다.
이후 1897년에는 운영권이 국가에서 미국 북장로회 선교원으로 넘어갔다. 당시 일본의 국내 영향력이 세졌던 정세에서 고종이 왕립 의료기관을 일본에 빼앗기기보다는 미국으로 넘기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주장은 고종은 청나라와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어했고 이를 위해 가장 기댔던 것은 미국이었고, 일본도 청나라와의 전쟁을 승리하고 조선을 순조롭게 장악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원만한 관계가 필요했고, 이 때문에 운영권 이관을 묵인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이후 북장로회 선교회는 늘어나는 환자들을 감당할 수 없어 병원 확장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1904년에 미국의 부호 세브란스의 기부금으로 제중원은 남대문 앞에 세브란스병원으로 확장 이전하게 된다. 1905년에 고종은 선교회로부터 제중원의 운영권을 회수하였다는 주장이 있으나[2] 실제로는 제중원 건물은 이후 병원으로 쓰여지지도 않았고 의료인도 모두 없어진 상태이며 현재처럼 제중원 같은 병원 이름의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 같은 것이 있었을 리가 없던 시절에... 운영권 회수와 관련된 주장은 최근에 급조된 개념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이후 1907년에는 국립 의료기관 대한의원이 설립된다. 세브란스 병원은 우리가 아는 연세대 의료원의 모체이고, 대한의원[3]은 서울대학교병원의 과거 시설중의 하나이며 1970년대 이후 제중원이 국립이므로 서울대학교병원 측이 본인이 제중원을 계승했다고 새롭게 주장함으로 인하여, 현재 서울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간에 제중원 정통성에 대한 논란이 생기게 된다.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4]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5]
1.1 제중원 정통성 논란
서울대학교병원과 연세의료원 사이에서 현재 제중원의 정통성에 관한 논란이 있다. 양 병원에 걸려있는 2015년도 달력에는 둘 다 제중원 130주년이라고 써있다. 홈페이지도 마찬가지. 여기에 한국 현대 의학의 발상지라는 타이틀이 두 병원이 서로 제중원의 정통성을 포기하지 못하는 요소가 되었다.
서울대학교에 의하면 제중원은 분명 국립기관[6]이었고, 당시 선교회는 위탁 운영만 했지 소유권은 가지지 않았으며, 이후 고종령으로 제중원 운영권은 선교회로부터 회수되었기 때문에 연세의료원의 주장은 억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오류가 있는 주장으로서 연세대학교는 서울대학교가 1946년 개교 당시 일제가 설립한 학교들의 연속이 아닌 새로 출발하는 대학으로 시작하였고 그래서 1954년에는 세브란스의대 70주년 축하 광고까지 보내주다가 1978년부터 갑자기 국가중앙 병원으로써 가치를 되찾기 위해 과거를 거슬러 일제가 설립한 대한의원과 대한제국의 의료기관인 제중원을 역사에 편입하며 기원으로 삼고 있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서울대학교 측은 제국대학의 정체성을 계승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분명 종합대학교로서 서울대는 1946년 개교를 연혁의 시작으로 삼고 있지만, 단과대 별로는 그 시작점을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가령 서울대 법대는 1895년 세워진 법관양성소를 기원으로 잡고 있고, 사범대학은 1895년 한성사범학교를 기원으로 별도로 자리잡고 있다가 국립 서울대학교로 모여졌다고 설명하고 있는 식이다. 인용 서울대 의대도 대한의원 교육부-경성제대 의학부를 거쳐서 1946년 서울대학교로 편입되었다는 것이 공식 입장인 만큼, 서울대가 경성제대의 정체성을 계승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중원의 정통성이 이어지지 않았다는 연세의료원 측의 반박도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서울대학교가 일제 치하의 제국대학의 정체성을 완전히 계승했다 하더라도 제중원의 정체성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런 논리라면 서울대학교는 성균관대학교와도 논쟁을 벌여야만 한다.
다음은 연세의료원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세브란스 역사관
Q.서울대병원은 어떤 근거로 제중원이 자신들의 뿌리라고 주장하는가?
A. 서울대병원과 제중원의 연속성을 말해주는 사료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서울대병원은 제중원이 조선 정부의 기관으로 시작되었으므로 국립병원의 맥을 잇고 있다는 논리만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는 사실적인 연결 관계에 대한 해명 없는 자의적 주장일 뿐이다.
다시 말해 성균관은 조선왕조가, 국자감은 고려왕조가 세운 고등교육기관이므로 서울대학교의 전신이 된다는 수준의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대병원은 조선시대 의료기관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먼저 자신들의 직접적 전신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경성제국대학과의 관계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일제시대를 공백으로 비워놓고 조선시대에만 집착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2011~2012년 세브란스에서 서울대 쪽에서 내민 증거를 모두 반박하고 추가자료가 발견되면서 사실상 마무리 지었는데, 2015년에 서울대병원 측에서 갑작스럽게 통보도 없이 130년 주년 제중원 기념행사를 열고 진료비를 무료로 하는 행사를 열어, 논란이 일었으며, 세브란스측에서는 땡깡 피운다는 느낌으로 바라보는 것이 강하다.
위의 자료들은 세브란스 병원의 여인석 교수가 <제중원 뿌리 논쟁>이라는 책으로 2015.04.06에 정리하여 발간하였다.
/ 제중원 뿌리논쟁
2 SBS 드라마 제중원
자세한 건 제중원(드라마) 항목을 참고.
- ↑ 일반적으로 알렌이 고종에게 건의하여 광혜원을 설립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서울대학교병원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 ↑ 제중원의 운영권만 선교회에 넘겼지 소유권 자체는 정부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 ↑ 이토 히로부미의 식민지 의료체계 확립 계획에 따라 일본 육군 군의총감을 비롯한 일본군의관 관계자들로 구성된 대한의원창립위원회를 통해 광제원과 적십자병원을 통합하여 설립하였다.
- ↑ 시내버스 여행을 할 때 거쳐가는 그곳 맞다
- ↑ 우연히 이름이 비슷한 유형. 이 쪽은 廣惠院으로 이 원은 고려/조선시대에 공무를 보던 관리가 머무는 공공 숙박시설이었다.
- ↑ 사실은 국립이 아니고 왕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