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 제6번(브루크너)

정식 명칭: 교향곡 제6번 A장조
(Sinfonie Nr.6 A-dur/Symphony no.6 in A major)

1 개요

안톤 브루크너의 여덟 번째 교향곡. 중기의 걸작 5번과 후기를 시작하는 7번 사이에 위치한 과도기 스타일의 작품이다. 동시에 브루크너의 중기 교향곡 중 가장 이질적인 곡이라는 점 때문에 종종 논란이 되고 있다. 종종 '철학자' 혹은 '철학적' 이라는 비공인 부제로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별 설득력이 없다.

작곡 시기는 1879년 8월부터 1881년 9월 3일까지. 보통 완성시키고 개정을 최소 한 번은 하는 브루크너의 교향곡 창작 스타일과 달리 큰 개정 작업 없이 마무리지은 드문 사례이기도 하다.[1] 하지만 브루크너 생전에는 초연이 부분적으로만 행해졌고, 사후 초연도 별로 영예롭지 못한 것이 되는 바람에 다소 안습인 곡.

2 곡의 형태

총 4개 악장에 소나타 형식(1,2,4악장)과 ABA 3부 형식 스케르초(3악장)라는, 브루크너 교향곡들의 그럭저럭 전형적인 스타일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형식과 구조의 보편성에 반비례해 악상이나 주제들은 예전 곡과도, 심지어 이후 곡과도 많이 다르다. 1악장에서부터 브루크너가 별로 시도하지 않던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나오고, 희미한 현의 트레몰로에서 떠오르듯이 주제가 등장하는 '브루크너 오프닝' 도 없다.

연주 시간도 70~80분 가량의 5번과 60~70분 가량의 7번과 비교했을 때 50~60분 정도로 그리 길지 않은 편이다. 느린 2악장은 4~5번에서 단조의 다소 우울한 분위기였던 것에 비하면 장조를 택해 좀 더 안락하고 가벼운 느낌으로 마무리하고 있고, 3악장 스케르초만 단조를 쓰고 있지만 오히려 더 경쾌하고 낙천적인 인상을 준다.

물론 브루크너가 이 곡에서 자신만의 기법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고, 저음 현악기로 슬그머니 나오는 1악장 첫 주제에서 예시되듯이 '브루크너 리듬' 을 여전히 적재적소에 쓰고 있다. 각 단락에서 악기 전체를 멈추게 하는 '브루크너 휴지' 도 물론 나오고 있고, 오르간을 연상시키는 차곡차곡 쌓아올린 사운드도 곡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쓰이고 있다.

다만 구성 상의 취약점에 대해 지적하는 이들도 종종 있고, 작품 자체는 낙천성과 양감을 잘 살려낸 수작이지만 선후행 작품들과의 괴리감 때문에 이 곡의 평가를 다소 낮게 내리는 이들도 있다. 게오르크 틴트너는 자신이 직접 집필한 낙소스 CD의 해설지에서 4악장의 완성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관현악 편성은 4~5번과 마찬가지로 플루트 2/오보에 2/클라리넷 2/바순 2/호른 4/트럼펫 3/트롬본 3/튜바/팀파니/현 5부(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3 초연과 출판

곡을 완성한 뒤 의외로 빨리 초연 기회를 잡았는데, 다만 개요 란에 언급한 것처럼 부분 초연이었다.

2-3악장: 1883년 2월 11일에 빌헬름 얀 지휘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로 빈에서 초연.

참고로 이러한 부분 초연 아이디어는 얀의 독단이 아니라, 브루크너 자신이 얀과 타협한 결과였다. 그 때까지도 브루크너는 제대로 성공시킨 교향곡이 없었기 때문에, 청중들에게 다소 받아들여지기 힘든 전곡 연주 대신 이러한 부분 연주라는 대안에 찬성했다.

이 부분 초연은 꽤 호응을 얻었고, 많은 청중들이 브루크너를 지지하는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한슬리크나 칼베크 등 바그너까 혹은 브람스빠 진영에서는 여전히 날선 비평으로 까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후 브루크너는 전곡 초연을 계획했는데, 얀이 악성 눈병으로 인해 사실상 실명하는 바람에 빈 필의 차기 상임 지휘자로 임명된 구스타프 말러에게 공연을 의뢰했다. 하지만 말러는 브루크너가 살아있을 적에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결국 사후 3년 가량 지나서야 전곡 공연을 성사시켰다.

전곡 최초 공연: 1899년 2월 26일에 말러 지휘의 빈 필 연주로 빈에서 초연.

문제는, 전작인 5번과 마찬가지로 이 초연 무대도 브루크너의 의지와 상관없는 말러의 무단 개정 악보로 진행되었다는 점이었다. 말러는 4번 항목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당대 연주 관례에 맞게 뜯어고치는 것을 예삿일로 했기 때문에[2] 이 곡도 상당 부분 삭제되고 재편곡된 기형적인 모습으로 연주되고 말았다. 그리고 4번과 달리, 이 6번의 말러 개정본은 총보와 파트보 모두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판 역시 1899년에 처음 이뤄졌고, 5번과 마찬가지로 빈의 루트비히 도블링어 음악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1881년 미개정판: 1935년과 1952년에 각각 로베르트 하스와 레오폴트 노바크의 편집으로 간행됨. 노바크판은 하스판에 있던 약간의 오류를 손본 정도로 마무리되어 있다. 약칭 '1881년판'.

1899년 초판: 브루크너의 제자 시릴 히나이스가 편집한 악보. 3악장 스케르초의 중간부 후반을 반복하라는 지시 외에는 1881년판과 크게 다른 점 없음. 이후 1927년에 우니베르잘 출판사에서 요제프 뵈스 편집으로 재간행됐는데, 원판의 오식을 약간 손본 것이라 큰 차이점은 없다. 약칭 '히나이스판'.

판본 문제가 무척 단순하고, 국제 브루크너 협회의 승인을 받은 하스판과 노바크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 공연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2014년 현재 히나이스판 연주로 제작된 녹음은 딱 두 가지 뿐이다). 중기 교향곡 치고는 의외로 평가와 호불호가 엇갈리는 논쟁작이지만, 인지도는 2번 이전의 초기 교향곡들보다는 나은 편이다. 그리고 브루크너의 전형성이 다소 후퇴한 점 때문에, 익숙치 않은 초심자들이 좋아하는 곡으로 꼽는 경우도 있다.
  1. 이외에 00번0번이 있지만, 두 곡 모두 브루크너 생전에 전혀 공연되지 않은 버로우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2. 말러는 당대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지휘법으로 유명했던 지휘자이다. 지금으로 치면 좀 얌전한 지휘만을 봐오던 사람이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를 본 격이랄까. 공연 역시 바그너의 악곡들을 엄청난 공연시간이 들더라도 무삭제판을 공연하는가 하면 본 사례처럼 악보를 무단 개정할 때도 종종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