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명칭: 교향곡 제5번 B플랫장조
(Sinfonie Nr.5 B-dur/Symphony no.5 in B flat major)
1 개요
안톤 브루크너의 일곱 번째 교향곡. 브루크너 중기 교향곡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으로, 규모만 따져보면 후기의 대작인 8번과 맞먹을 정도다. 거기에 빗대서 '고딕' 이니 '중세풍' 이니 '장엄' 이니 하는 부제로 부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리 상용되는 표현은 아니다.
작곡 시기는 1875년 2월 14일부터 1876년 5월 16일까지. 하지만 3번의 대실패로 말미암아 시작된 대규모 개정 작업 시리즈에서 이 곡도 열외가 아니었고, 결국 1878년까지 다시 뜯어고쳐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고치고 나서도 초연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나마도 병림픽이 되었다.
2 곡의 형태
고전적인 4악장 형식을 취한 것은 여타 교향곡들과 마찬가지인데, 그 규모는 개요 란에도 잠깐 언급한 것처럼 굉장히 크게 확대되어 있다. 특히 1악장과 4악장에는 느린 템포의 서주가 붙고, 4악장에서는 기존 소나타 형식에 대위법 최고의 경지인 2중/3중 푸가 스킬과 금관악기 주도로 연주되는 장중한 코랄까지 더해져 굉장히 압도적인 중량감과 종교적인 분위기를 내고 있다. 특히 4악장의 폭풍간지 종결부는 천주교 등 특정 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많이들 감동할 정도.
반면 중간에 끼인 두 개 악장은 형식상으로 비교적 간소하게 쓰여져 있는데, ABA'B'A" 복합 3부 형식의 2악장은 특히 브루크너 교향곡의 느린 악장 중 절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전곡에서 가장 세속적인 3악장은 ABA의 전통적인 3부 형식 스케르초인데, 이전의 브루크너 스케르초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 시골 춤곡인 렌틀러풍이지만 템포를 빠르게 잡아 춤곡 리듬보다는 해학성을 강조하고 있다.
4악장 초반에서는 1악장의 서주와 주요 주제부, 2악장의 첫 주제가 차례대로 잠깐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것은 명백히 베토벤의 9번 교향곡 4악장에서 따온 아이디어다. 그리고 곡 곳곳에서 금관악기의 활약이 두드러지는데, 특히 4악장 종결부에서 거의 주도적인 역할을 할 정도다.
관현악 편성은 전작인 4번과 마찬가지로 플루트 2/오보에 2/클라리넷 2/바순 2/호른 4/트럼펫 3/트롬본 3/튜바/팀파니/현 5부(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4번과 마찬가지로 이 때도 처음 완성했을 때는 튜바가 없었는데, 개정하면서 추가했다.
3 초연과 출판
완성과 개정 후에도 브루크너는 이 곡의 초연 기회를 좀처럼 못잡고 있었는데, 1877년 4월 20일에 빈에서 브루크너의 제자인 요제프 샬크가 피아노 듀엣용 편곡을 만들어 공연한 것이 최초 연주였다. 하지만 원본 관현악 편성으로 연주되기까지는 더 오래 기다려야 했는데, 성사된 것은 브루크너가 죽기 2년 전이었던 1894년에 가서였다.
전곡 최초 공연: 1894년 4월 9일에 프란츠 샬크의 지휘로 그라츠 시립극장 관현악단이 그라츠에서 초연.
하지만 이 초연도 브루크너의 뜻을 많이 거스른 공연이었는데, 특히 브루크너의 제자였던 샬크가 청중들의 이해력과 호응도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곡에 엄청난 양의 무단 개정을 가해 만든 악보가 사용되었다. 게다가 브루크너는 빈에서 그라츠까지도 못 갈 정도로 건강이 안좋았던 상태라, 초연 무대에 입회하지도 못했다.
1896년에 빈의 음악출판사 루트비히 도블링어에서 초판 악보가 출간됐는데, 이 때도 샬크가 무단으로 손본 악보가 사용되었다;
1876년 미개정판: 캐나다 음악학자 윌리엄 캐러건이 2014년 현재도 편집 중이지만 미발표 상태고, 일본 음악학자 카와사키 타카노부가 빈 국립 도서관 문서고에 보관되어 있는 브루크너의 자필보를 바탕으로 편집한 악보가 2008년에 공개되었다. 다만 이 카와사키판 역시 공식 출판은 되고 있지 않다. 2008년 11월 17일에 나이토 아키라 지휘의 도쿄 뉴 시티 오케스트라가 초연했고, 공연 실황이 일본 음반사 델타 클래식스에서 CD로 출반되었다. 상술했듯이 튜바가 빠져 있고, 관악기보다 현악기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등 이후의 개정판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2악장의 템포를 매우 느리게(Sehr langsam)가 아니라 알라 브레베(Alla breve)[1]라고 지정해 훨씬 빠르게 연주하도록 하고 있다.
1878년 개정판: 1935년과 1951년에 각각 브루크너 전문 연구가인 음악학자 로베르트 하스와 레오폴트 노바크의 편집으로 출판됨. 현재 이 곡의 연주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판본들이다. 하스판과 노바크판 사이에 큰 차이점은 없고, 노바크판은 하스판에 있던 약간의 오류를 손본 정도다. 약칭 '1878년판'.
1880년 개정판: 1878년판 완성 후 2년 뒤에도 개정 작업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2014년 현재까지 이 판본에 대해 아무도 손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실질적으로 개정된 것이 없거나 극히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1896년 초판: 프란츠 샬크가 편집해 출판한 악보. 4악장 후반부를 상당 부분 삭제하고 전곡에 걸쳐 전면적인 첨삭과 재편곡을 행함. 플루트를 세 대로 늘리고 4악장 종결부에 별도의 금관악기 주자들과 트라이앵글, 심벌즈를 첨가하는 등 제대로 무단개정크리를 남발함. 약칭 '샬크판'.
이 곡도 9번과 마찬가지로 1896년 이후로는 거의 샬크 편집의 초판만으로 연주되었지만, 하스판이 1935년에 나오면서 샬크판은 아오안이 되었다. 그나마 국제 브루크너 협회의 공인 개정판이 나왔음에도 끝까지 고집을 피우며 초판을 사용한 한스 크나퍼츠부슈 정도가 이런 흐름의 반대편에 서 있었고, 그 외에는 레온 보트스타인이나 노구치 타케오같이 이 판본의 쓸데없는 가치를 강조하며 재평가를 시도하는 극소수의 지휘자들 정도만이 이 판본을 사용해 공연하거나 녹음하고 있을 뿐이다. 임헌정의 지휘로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개최한 브루크너 교향곡 연속 연주회에서도 이 곡의 연주에서 샬크판이 채택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실적인 문제로, 금관이 하도 강조되다 보니 실제 연주에서 금관 삑사리가 가장 튀는 오점으로 남는 곡이기도 하다. 금관 주자들은 (물론 밸브와 슬라이드라는 천금같은 옵션이 있기는 하지만) 입술과 호흡의 압력을 이용해 음과 강약을 조절하는데, 이렇게 대곡에서 오랫동안 시달리다 보면 마지막에 힘이 딸려서 오히려 대미 장식에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샬크가 4악장 종결부에서 금관악기 주자들을 두 배로 증편한 까닭이 여기에 있는데, 물론 무단 개정 작업 자체가 병맛이긴 해도 실제 연주에는 꽤 쓸만한 아이디어라서 지금도 종종 채택되는 대안이다. 이럴 경우 금관은 호른 8/트럼펫 6/트롬본 6/튜바 2라는 대편성이 되는데, 하스판을 택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폴크마르 안드레에, 노바크판을 택한 오이겐 요훔의 경우에도 4악장 후반부에서 이 발상을 연주에 차용했다. 요훔은 자신이 이 곡을 여러번 지휘한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연주에서 적용할 수 있는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원래 편성의 금관 주자들이 4악장의 거대한 코다에 앞서 악장 후반부에 쉬도록 하여 체력을 보충하는 동안 증원된 금관군이 대신 본곡을 연주하도록 하다가 코다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같이 연주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 최초로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을 지휘한 이동호도 하스판을 택하면서도 아예 거의 모든 악장에서 이 스펙으로 연주하도록 했다.
2007년 8월 16일에는 브루크너가 학생이자 교사, 오르가니스트로 재직했고 지금은 묘지 역할까지 하는 장크트 플로리안 수도원의 도서관 지하실에서 이 곡을 재즈로 편곡한 것이 'Bruckner V Improvised' 라는 타이틀로 공연되었다. 흠좀무. 장크트 플로리안에서 주최한 음악제인 '제1회 브루크너타게(Brucknertage)' 의 공식 프로그램으로 편성된 콘서트였는데, 편곡과 색소폰, 밴드 리더는 토마스 만델이 맡았고, 퓨전 재즈 그룹인 '템포러리 아트 오케스트라' 가 공연했다. 이들은 같은 라인업으로 2009년의 3회 행사 때 7번의 재즈 버전을 두 번째로 선보여 ㅎㄷㄷ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 4박 기준으로 지정된 리듬을 2박 기준으로 연주하라는 지시. 당연히 속도는 두 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