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명칭: 교향곡 제0번 D단조
(Sinfonie Nr.0 d-moll/Symphony no.0 in D minor)
1 개요
클래식 음악 역사상 0번이라는 번호를 단 세 작품 중[1] 하나이며, 소련 출신 현대 작곡가 알프레드 슈니트케의 초기작과 더불어 교향곡에 0번을 붙인 곡이다. 0번이라는 번호 표기 대신 독일어로 'Die Nullte' 라고 별칭을 붙여 말하기도 하는데, 사실 그게 그거다.
안톤 브루크너의 세 번째 교향곡인데, 예전에는 00번을 완성한 뒤인 1863년 또는 1864년에 쓰기 시작했고 1869년에 개정했다는 주장이 대세였지만, 음악학자 폴 호크쇼가 1983년 발표한 논문에는 1869년에 쓰기 시작했고 개정은 없었다고 밝히면서 세 번째 교향곡이라고 수정되었다. 1번의 후속작임에도 인지도는 안습.
작곡 시기는 다소 애매하게 적혀 있는 3악장을 제외하면 1869년 1월 24일부터 9월 12일까지로 기록되어 있다. 작곡하던 중에 대선배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듣고 크게 감화되었다고 하는데, 이 곡에도 기본 조성을 같은 D단조로 삼는 등 영향을 받은 흔적이 남아 있다.
전작인 1번과 마찬가지로 이 곡도 분명히 공연 의지가 있었지만, 당시 빈에서 날리던 지휘자인 오토 데소프에게 평가를 부탁하며 악보를 보여줬을 때 데소프가 "1악장 주제가 어딨습니까?" 라고 묻자 쫄아서 버로우를 타고 말았다. 그 이후 다시는 공연 계획도 세우지 않고 개정도 안한 채로 방치했고, 말년에는 '전혀 통용될 수 없는 습작' 이라고 자필보에 적어넣는 자학 스킬까지 발동했다.
2 곡의 형태
역시 4악장제. 1악장과 2악장은 소나타 형식, 3악장은 ABA' 3부 형식 스케르초로 되어 있다. 다만 4악장에서는 예전에 쓰지 않던 서주(인트로)를 붙이고 그 뒤에 빠른 템포의 소나타 형식 대목으로 가는 방법을 썼는데, 브루크너 교향곡 중 4악장에 서주가 붙는 곡은 이 곡과 5번 두 곡 뿐이다.
전작인 1번에서 한껏 불태우고 내달렸던 것이 쪽팔렸었는지, 이 곡에서는 다소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후속작인 2번에서야 나타나는 전형적인 브루크너스러움은 부족하고, 오히려 00번에서처럼 다른 작곡가들의 스타일이 우연찮게 발견되곤 한다.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이 곡에서 로시니 같이 브루크너와 한참 먼 관계인 작곡가들의 스타일까지 연관시키고 있다.
'브루크너 오프닝' 이나 '브루크너 휴지' 같은 독특한 개성도 아직은 덜 나타나고 있는 편인데, 아마 이런 점에서 1번 이전의 교향곡이라고 간주한 이들이 많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레퀴엠이나 장엄미사 등 자신이 이전에 작곡한 종교음악들에서 소재를 빌어오는 아이디어는 이 곡에서 처음 나타나고 있고, 브루크너 교향곡의 종교적인 성향을 지적하는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이정표로 취급되고 있다.
관현악 편성은 플루트 2/오보에 2/클라리넷 2/바순 2/호른 4/트럼펫 2/트롬본 3/팀파니/현 5부(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라는 전형적인 2관 편성 스펙.
3 초연과 출판
00번과 마찬가지로 사후에야 초연과 출판이 이뤄졌다.
3,4악장: 1924년 5월 17일에 프란츠 모이슬 지휘로 클로스터노이부르크에서 초연(관현악단은 불명).
전곡 최초 공연: 1924년 10월 12일에 위와 마찬가지로 모이슬 지휘로 같은 곳에서 초연.
악보는 00번보다는 훨씬 빨리 나왔는데, 아예 개정이 없었던 곡인 만큼 판본의 복잡성은 훨씬 덜하다. (사실상 하나의 판본이라고 봐도 무관하다.)
1924년 초판: 요제프 뵈스의 편집으로 출판됨. 1869년판과 크게 다른 점 없음.
1869년판: 1968년에 브루크너 전문 연구가인 음악학자 레오폴트 노바크의 편집으로 출판됨.
출판은 그럭저럭 빨리 이뤄졌지만, 원체 곡의 이미지가 습작으로 굳어진 탓에 공연 빈도는 대단히 적은 편이다. 전곡 녹음도 1950년에야 겨우 이뤄졌는데, 2차대전 중 혹은 그 후 득세한 브루크너 교향곡의 대가들로 유명한 오이겐 요훔이나 칼 뵘, 귄터 반트 같은 지휘자들은 대부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1966년에 베르나르드 하이팅크가 왕립 콘서트허바우 관현악단과 필립스에서 0~9번 세트의 일환으로 녹음한 것이 소위 메이저급 지휘자가 이 곡을 처음 음반으로 제작한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1978년에는 일본의 오사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였던 아사히나 타카시가, 1979년에는 미국의 시카고 교향악단과 브루크너 교향곡 0~9번 세트를 제작하고 있었던 다니엘 바렌보임이 녹음을 만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 이후 그들이 이 곡을 지휘하는 일은 없었다.
본격적인 리바이벌은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는데, 게오르그 솔티와 리카르도 샤이가 자신들의 0~9번 세트 녹음의 일환으로 취입한 바 있고 주빈 메타도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녹음하기도 했다. 이후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 로린 마젤, 이동호, 마르쿠스 보슈, 마리오 벤차고, 시모네 영 등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 혹은 0~9번 세트 녹음에 도전했거나 도전 중인 지휘자들도 공연/녹음 목록에 포함시키고 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어떻게 될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