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 제8번(브루크너)

정식 명칭: 교향곡 제8번 C단조
(Sinfonie Nr.8 c-moll/Symphony no.8 in C minor)

1 개요

안톤 브루크너의 열 번째 교향곡이자, 완성된 것으로는 마지막 교향곡.

규모와 길이, 악기 편성 등 외향적인 면에서 뿐만아니라 음악적 소재와 구성의 완성도 등 모든 면에서 브루크너의 최대 걸작으로 꼽힌다. 일본 등지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9번과 더불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몇 년 전 일본의 유명한 음악 사이트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과 이 곡 가운데 어떤 곡이 더 위대한지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고.

1884년 7월부터 1887년 8월 10일에 걸쳐 초고가 작곡되었다. 그러나 지휘자 헤르만 레비가 초연을 거절되면서 전면적인 개작이 이루어져서 1890년에 오늘날 연주되고 있는 형태로 재완성되었다. 1892년 한스 리히터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다만 브루크너까인 브람스와 그의 지지자인 한슬릭 등은 여전히 신랄하게 까댔다.

일부 교향곡 9번 빠[1]들은 레비가 거절 크리를 먹여서 8번의 완성이 늦어졌고 때문에 9번이 미완성으로 남았다면서 레비를 탓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레비가 거절 덕분에 이 교향곡 8번은 개정을 거치면서 환골탈태하여 진정한 걸작으로 재탄생했다. 이 곡이 개정을 거치지 않고 초고 형태로 남아있었다면 오늘날 브루크너는 브람스에 필적할 만한 대작곡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미완성 상태인 교향곡 9번이 완성되었다면 교향곡 8번을 능가하는 걸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교향곡 9번은 이미 전체의 95% 가량이 완성되어 4악장의 코다 정도만 미완성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마지막 종결이 어떻게 되었을까에 대한 궁금함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전곡에 대한 평가가 가능하다. 사실 레비가 거절하지 않았더라도 교향곡 8번이 초고 형태로 초연되었다면 대성공을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고(오늘날 초고가 거의 연주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교향곡 8번은 이후에 어떤 형태로든 개정을 거쳤을 가능성이 크다.

2 곡의 형태

고전적인 4악장제의 곡으로 보이지만, 교향곡 사상 가장 긴 곡 가운데 하나다.[2] 1악장과 2악장은 그렇다 쳐도, 3악장과 4악장이 각기 20분 대의 연주 시간을 요한다는 점이 특히 무시무시한 대목. 실제로 두 악장 모두 론도 형식과 소나타 형식이라는 고전 악식을 기반으로 극한까지 잡아늘이고 복잡하게 만든 터라, 이 곡을 처음 듣는 이들의 상당수는 대개 피곤함이나 지루함이라는 강적과 싸워야 하는 사명감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사실 1악장은 15분 내외의 길이로 브루크너 교향곡 중에서는 상당히 짧은 편이다. 또한 3악장은 브루크너 교향곡의 완서악장이 대부분 20분을 넘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특별히 더 길다고 할 수 없다. 스케르초 악장과 피날레 악장은 브루크너 교향곡 중에서 가장 긴 편이다.

3번 이후로 오랜만에 단조 조성을 사용한 교향곡이 되었는데, 그 깊이와 어두움은 예전 것들을 떡실신시키고도 남을 정도다. 특히 개정을 거친 뒤에는 더더욱 무거워졌다. 다소 뜬금없이 승리의 메시지를 안겨주면서 끝났던 초고의 1악장 코다도 개정을 거치면서 삭제되고 어둡고 조용하게 끝을 맺는 것으로 처리되면서 악장 전체를 통해 어두운 분위기가 관통하고 있다. 브루크너 교향곡 중 1악장이 여리게 끝나는 유일한 사례.

1악장 첫머리는 전형적인 '브루크너 오프닝' 이지만, 참으로 오묘하고 애매한 조성 때문에 신비스러움 보다는 으스스함을 안겨준다.[3] 이외에도 전곡에 걸쳐 '브루크너 리듬' 과 '브루크너 시퀀스', '브루크너 휴지', 오르간을 연상케하는 관현악의 음색 등 브루크너만의 개성적인 모든 면모가 총괄되어 나오고 있어서, 작곡 인생의 총결산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만든다.

브루크너는 이 곡을 쓰는 동안 지인들의 죽음 등 비보를 계속 받았고, 자신의 건강도 점차 쇠약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작곡가의 개인사가 곡의 분위기에 반영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은데, 1악장에서 예감되는 죽음의 메시지 외에 느린 3악장에서도 명상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대조적으로 사이에 끼인 2악장은 전형적인 브루크너식의 거칠고 역동적인 ABA 3부 형식 스케르초인데, 이것도 개정되면서 중간부(B)가 싹 바뀌게 되었다.

마지막 악장의 구조는 브루크너 교향곡의 모든 4악장과 비교했을 때 가장 복잡하게 짜여져 있는데, 7번과 달리 여기엔 각 주제 간의 대립 기믹도 없고 수시로 바뀌는 분위기 때문에 연주하기도 듣기도 꽤 어려운 대목이다. 하지만 브루크너의 작곡 스킬이 최대한 발휘된 부분이기도 하고, 마지막의 장대한 종결부에서는 전 악장의 주요 주제를 교묘히 짜맞춰 몽땅 등장시키는 기예에 가까운 모습까지 보여준다.

관현악 편성은 브루크너 교향곡들 중 가장 크게 짜여져 있는데, 이 곡에서부터 목관악기를 세 대씩 편성하는 3관 편성이 사용되었다. 호른은 종래의 4대에서 8대로 곱배기가 되었고, 7번에서 처음 쓴 바그너 튜바도 3악장과 4악장에서 등장시키고 있다. 특기할 만한 점은 7번 교향곡에서 호른 주자와 바그너튜바 주자가 분리되어 있었지만, 8번 교향곡에서는 5번~8번 호른 주자가 바그너튜바의 연주를 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연주회에서 호른과 바그너튜바를 각각 양팔에 들고 입장하는 네 명의 단원들을 볼 수 있다. 브루크너는 이 네 명의 주자에게 곡 중에 수시로 두 개의 악기를 교체해서 연주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3악장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심벌즈와 트라이앵글이 등장하고, 2~3악장에서는 하프까지 나온다(초고에서 하프는 3악장에서만 쓰인다). 브루크너가 교향곡에서 하프를 쓴 예는 이것이 유일하다.

플루트 3(세번째는 피콜로를 겸함)/오보에 3/클라리넷 3/바순 3(세번째는 콘트라바순을 겸함)/호른 8(5~8번 호른은 바그너튜바를 겸함)/트럼펫 3/트롬본 3/튜바/팀파니/심벌즈/트라이앵글/하프3/현 5부(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3 초연과 출판

작곡에 다소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브루크너 자신은 이 곡에 대단히 자신감을 가졌던 것 같다. 특히 전작인 7번이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8번의 성공도 기대하고 있었다. 7번의 초연과 보급 과정에서 브루크너는 특히 뮌헨 왕립오페라의 지휘자 헤르만 레비의 지휘에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8번의 초연을 헤르만 레비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곡의 완성과 동시에 악보를 헤르만 레비에게 보냈다. 그러나 스코어를 검토한 레비는 이 작품의 초연을 거절하였다. 레비의 예상치 못한 거절로 이 작품은 대대적인 개정을 거치게 되었다. 레비의 이러한 거절로부터 촉발된 작품의 개정 작업은 결과적으로 브루크너 생애를 통해 가장 성공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볼 수 있다. 개정 후 오늘날 연주되는 형태로 변모된 이 작품은 초연부터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오늘날 브루크너 교향곡 가운데 최대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개정되기 전 초고도 브루크너 사후에 오랜 시간이 흘러 출판되었으나, 이 초고가 연주되는 경우는 별로 없으며, 흥미과 관심 유도, 학술적 의미 등으로 간간히 연주되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헤르만 레비의 초연 거절로 부터 받은 충격은 3번 교향곡의 대실패 때와 맞먹는 것이었는데, 레비는 브루크너에게 거절 편지를 보내기 전에 이미 브루크너가 받을 충격을 예상하고 브루크너가 자살을 기도할 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였다. 레비 뿐 아니라 요제프와 프란츠 샬크 형제, 페르디난트 뢰베 등 제자들까지 곡을 개정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놓는 바람에, 결국 브루크너는 곡의 윤곽을 통째로 뒤엎는 수준의 대규모 개정 작업을 시작했다. 레비로부터 촉발된 개정작업은 전작들까지 꺼내서 대대적으로 개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교향곡 4번의 1888년판, 교향곡 3번의 1889년판, 교향곡 1번의 빈 판이 모두 이 시기(1887년~1890년)에 개정되었다. 이 시기를 2차 개정파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전작들을 개정하느라 정작 교향곡 8번의 개정은 자꾸 지연되어 1889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2차 개정파동 기간 동안 이루어진 개정들은 8번을 제외하면 안타깝지만 들인 노력에 비해 그 결실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개정된 1번, 3번, 4번의 경우 이전 판본들이 더 선호되고 있다는 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때문에 전작들의 개정없이 빨리 8번의 개정을 마무리 짓고 9번을 완성시켰으면 아쉬움이 드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브루크너가 2차 개정파동 동안 전작들을 개정하면서 쌓인 노하우들이 8번의 개정과 9번의 작곡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2차 개정파동의 노력과 시간은 부질없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는 것이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개정의 결과 '곡의 형태' 항목에서 언급한 것처럼 1악장 종결부와 2악장 중간부는 아예 새로 교체되었고, 3악장에서는 6회의 심벌즈 타격이 있던 것을 2회로 줄였다. 4악장도 길이를 줄이고 지나치게 반복된다는 부분은 삭제하는 등, 전체적으로 크게 감량되었다.

그렇게 해서 1890년에 최종 개정이 끝났고, 이것을 바탕으로 초연이 이뤄졌다. 곡의 길이와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초연 무대는 7번 성공의 여세를 몰아 찬사를 받았다. 물론 브람스, 그리고 한슬리크와 칼베크를 위시한 브람스파는 여전히 브루크너를 까는데 여념이 없었지만... 브람스는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브루크너에게 8번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곡이라고 정중히 까댔다.

전곡 최초 공연: 1892년 12월 18일에 한스 리히터 지휘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로 빈에서 초연.

출판 과정에서도 브루크너의 높아진 위상이 플러스로 작용했는데, 초연된 해 하슬링어-슐레징어-리나우 출판사에서 출판할 때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인쇄비와 출판비를 전액 부담했다. 흠좀무. 물론 이것도 브루크너가 황제에게 곡을 헌정했기 때문이었는데, 헌정을 딴 사람에게 했었다면 아마 쌩깠을 듯.

1887년 초고(노바크 출판): 1972년에 노바크의 편집으로 출판됨.

1888년 단편(3악장): 1888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3악장 개정판이 더모트 골트와 카와사키 타카노부, 후안 카히스 등의 편집으로 나왔지만, 모두 미출간 상태임.[4] 1887년판과 1890년판의 과도기적 형태다. 브루크너 교향곡 3번의 1876년판처럼 느린 악장만 개정한 형태이기 때문에 앞으로 따로 연주될 기회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스판: 1935년에 로베르트 하스의 편집으로 출판됨. 1890년 판본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개정과정에서 제자들의 입김이 지나치게 들어가서 작곡가의 의도와 달리 과도한 삭제가 이루어졌다고 보고 삭제된 일부 대목을 복원했다. 복원부분은 대부분 4악장에 집중되어 있는데, 악보에 X자로 그어진 부분이 제자들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고 보아 이런 부분을 모두 복원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하스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라 하여 특히 영미쪽 음악학자들에게 집중적으로 까이고 있다. (아랫부분 참조) 그러나 모든 판본 중 예술적으로 가장 뛰어나다는 평이 적지 않아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일부 악절을 1887년판에서 복원했기 때문에 1887/90년판이라 부르는 경우도 간혹 있다. 하지만 곡 전체의 근간은 완전하게 1890년판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표기는 적절하지 않다.

1890년판: 약칭 1890년 노바크판. 1955년에 레오폴트 노바크의 편집으로 출판되었다. 하스가 추가한 부분을 다시 삭제하였다. 노바크는 4악장에서 X자로 그어진 부분이 제자들의 압력에 의한 것인지 본인의 의도인지 알 수 없고 어쨌거나 최종적으로 삭제하는 것을 작곡가가 동의한 것이라는 논리로 이러한 부분을 모두 재삭제했다.

1892년 출판: 요제프 샬크와 막스 폰 오버라이트너의 편집으로 간행된 악보. 브루크너의 의견 보다는 편집자들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어 곳곳에서 첨삭과 재편곡이 이뤄짐. 약칭 '샬크판', '리나우판', '샬크-오버라이트너판', 개정판(Revised version). 다른 개정판(Revised version)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는 사실상 사멸한 판본.

흔히 쓰이는 악보는 1890년 판본의 하스와 노바크의 원전판이다.

하스판에 대해서는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비판의 주요한 내용은 하스가 자의적으로 1890년 판본에 1887년 판본의 일부 내용을 결합시켰다는 것이다. 하스가 1890년판에다가 1887년판의 일부 내용을 덧붙인 것은 개정과정에서 제자들의 외압에 의해서 원치 않은 삭제가 이루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에 대한 정확한 근거는 무덤에 있는 브루크너와 제자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결국 판본의 편집은 하스의 주관적인 판단과 감각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하스의 주관적인 편집(심지어 하스는 일부를 '직접 작곡'했다.) 기준에 대해 특히 미국쪽 음악학자(대표적으로 벤자민 코스트베트와 윌리엄 캐러건)은 하스판은 쓰레기통에 버려져서 더이상 연주되지 말아야 한다, 지구상에서 그 존재를 없애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노바크판도 순수한 의미에서 1890년판이라고 볼 수 없으며, 편집 과정에서 확실치 않은 부분은 결국 노바크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결정된 부분들이 있다. 사실 노바크가 일부러 하스판과 차별시키려고 4악장에서 확실치 않은 부분까지 일괄적으로 다 삭제해버린 측면도 있는데 이 부분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어쨋든 하스판이 덜팔려야 캐러건판 등 미국 학자들이나 그 동료들이 낸 판본의 저작권 수익이 증대된다.

그러나 음악가들 중에서는 하스판의 음악성을 더 높이 쳐주는 사람이 많다. 예를 들어 1악장 3주제가 동형 반복될 때 호른의 거친 포효가 등장하는데, 이 호른의 패시지는 1887년판에서는 제시부, 재현부에 모두 등장하지만, 1890년판에서는 제시부에서만 등장하고 재현부에서는 흐름이 달라졌기 때문에 삭제되었다. 그런데 하스는 이 누락된 호른 패시지를 1890년판의 흐름에 맞게 변형하여 추가했다. 이 부분은 코스트베트 등에게 '직접 작곡'이라고 대차게 까이는 부분인데, 물론 하스가 직접 작곡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초고인 1887년판에 있었던 소재가 1890년판에서 음악적 흐름이 달라지면서 사라져 버린 것을 하스가 창조적으로 부활시켰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여기서 하스의 센스는 음악적으로 뛰어나다는 찬탄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하스가 창조적으로 변형하여 새로 적용한 이 호른의 거친 포효는 음악적 효과도 실로 대단할 뿐만 아니라, 제시부와 재현부의 수미상응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 구조적으로도 더욱 견고해졌다. 4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하스가 추가(복원)한 부분 덕분에 제시부와 재현부도 상응하게 되어 구조적으로 더욱 완벽해졌다. 게오르크 틴트너는 하스를 매우 높이 평가하여 8번 교향곡의 최고의 버전이라고 칭찬했다. 틴트너는 말년에 낙소스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을 녹음할 때 8번의 경우 하스판을 택하고자 했지만, 음반사의 요구로 1887년판을 대신 사용했다.[5] 현재 두 판본의 선택 비중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젊은 지휘자들은 '하스까'들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안전하게 노바크판을 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 때 하스를 까대는데 열을 올렸던 코스트베트는, 나중에 본인이 4번의 새로운 판본을 내놓게 될 때는 오히려 하스를 팔아먹으며 이 판본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이중적 면모를 보였고, 이 곡의 초판 개정 작업에도 브루크너가 관여했고, 개정 과정에서 편집자들과 브루크너 간의 승인 여부를 재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무단 개정판' 이라고 무조건 배척할 수는 없다고 슬그머니 입장을 바꾸었다.

초고인 1887년 판본을 사용하는 소수의 지휘자도 나오고 있는데, 대부분 레비의 비판으로 촉발된 개정이 '브루크너 자신의 의지로 행해진 개정 작업이 아니다' 는 견해를 보이는 인물들이다. 엘리아후 인발과 상술한 게오르크 틴트너를 비롯해 시모네 영,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 등이 초고를 채택한 녹음을 발매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1887년 판본을 지휘하는 이들은 세간의 이목을 끌려는 의도가 커보인다.

구세대 지휘자들은 몇몇 판본을 절충하여 지휘하였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경우, 리나우판(샬크판)과 하스판을 뒤섞은 것에 자신의 견해를 반영한 첨삭까지 추가한 아햏햏스러운 악보를 공연에 사용하기도 했다. 칼 뵘, 칼 슈리히트도 하스판, 노바크판을 섞은 판본으로 연주하였다.

2002년에는 어떤 센스쟁이 편곡자가 1악장 초반부와 4악장 종결부에 만인의 생일축가 Happy Birthday to You를 버무려 충공깽의 결과물을 내놓기도 했다.

이 교향곡의 대표적 명연으로는 세르주 첼리비다케와 뮌헨필의 연주(EMI) 그리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빈 필의 연주(DG)를 꼽는다. 첼리비다케의 연주는 긴 호흡으로 여백의 미를 최대한 살리면서 장중하게 한 발짝씩 내딛는 연주라면 카라얀의 연주는 템포의 긴장감과 집중력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완벽에 가까운 구조미를 보여준다. 이 외에도 여럿 연주가 있고, 그중 EMI에서 발매되었던 1949년 프루트벵글러 연주도 좋은 연주이지만 지금은 구하기가 영 쉽지가 않다[6].

  1.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은 여타 브루크너 교향곡들과 다소 다른 경향의 곡이기 때문에 비브루크너 애호가들 중 이 작품만 선호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다.
  2. 좀 빠른 연주는 전곡을 70분 대에서 끊기도 하지만, 세르주 첼리비다케 같은 느린 연주로 유명한 지휘자는 100분이나 끄는 경우도 있다.
  3. 맨 처음 호른이 길게 끄는 음이 F음인데, C단조의 기본 코드 구성음(C와 Eb, G) 모두에 해당되지 않아 처음 듣는 사람들은 다소 어리둥절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4. 카히스 편집의 총보는 웹에서 pdf 파일 형태로 입수할 수 있다. http://www.abruckner.com/Data/Documents/B8-Adagio.pdf
  5. 이를 들어 흔히 틴트너가 하스판 만을 선호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틴트너는 그 이전인 1982년에 캐나다 국립 청소년 관현악단을 지휘해 1887년판의 북미 초연을 행한 바 있다. 4번의 초판도 난삽하다고 하스판을 택한 틴트너가 음반사의 요구 만으로 8번의 초판을 골랐다고 보기는 힘들다.
  6. 도시바 EMI에서 의사 스테레오로 변환한 음반이 90년대 초중반에 조금 수입되었던 적이 있고, 이후 Testament에서 재출반 되었던 적이 있다. 물론 지금은 검색해도 안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