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 제9번(말러)

구스타프 말러의 아홉번째 교향곡.

1 작곡 배경

1909년, 말러는 여느해와 마찬가지로 여름 휴가를 떠났다. 토블라흐에서 조금 떨어진 슬루더바흐라는 곳으로 갔지만 이 해에는 알마의 건강이 좋지 않아 알마는 치료를 위해 레비코로 가면서 말러는 혼자 남아서 작곡을 하게 되었다.

대체로 이해 여름에 9번 교향곡을 작곡했다는게 일치된 견해다. 말러가 알마와 주고받은 편지에서는 새로운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8월에 테오도르 슈필링과 주고받은 편지에서 "중요한 새 작품에 착수했으며 완전히 이 작업에 파묻혀있다"라고 언급을 하고 있어서 대체로 이 무렵에 9번 교향곡을 작곡했을것으로 보인다. 이후 브루노 발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초고를 완성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미친 듯이 빨리 썼고,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의 눈으로는 해독이 불가능할 것이다. 겨울이나 되어야 알아볼 수 있도록 깨끗하게 정리할 여유가 올 것 같다."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9번 교향곡의 초고는 거의 판독이 불가능할 정도다. 흔히 한곡의 교향곡을 작곡하는데 2년의 여름휴가를 통째로 들이는 말러의 성향을 생각해본다면 남겨진 기록과 말러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다면 거의 8월 한달만에 완성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보통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교향곡 한곡을 작곡하는데 한달여의 시간이 걸렸다고 하는데 9번 교향곡은 시간상 모차르트 교향곡의 세배분량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말러가 번갯불에 콩구워먹듯이 곡을 쓴셈이다. 다만 알마는 말러의 성향상 이렇게 곡을 빨리 작곡할수는 없기 때문에 전해 여름에 일부 스케치를 했을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초고를 미루어 본다면 정말 한달만에 미친듯이 완성했을 가능성도 높아보인다.

이후 말러는 이 초고를 가지고 뉴욕으로 갔지만 뉴욕에서는 워낙 바쁜 연주일정때문에 초고를 옮겨적을 여유가 없었고 1910년 4월에서야 유럽으로 돌아가면서 브루노 발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총보를 완성했다고 언급하고 있는걸로 보면 그때서야 곡이 완성된것으로 보인다.

말러 생전에 이 곡은 결국 초연되지 못했고 1912년 6월 26일, 브루노 발터의 지휘로 빈에서 초연되었다.

2 곡의 해석

전체적으로 대지의 노래, 9번 교향곡, 10번 교향곡 모두 이별이라는 주제로 묶일수 있는 교향곡이다. 게다가 9번 교향곡은 말러가 죽기전에 완성한 마지막 교향곡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게 해석된다.

다만 이별이라는 주제가 말러의 개인사와 엮여서 지나치게 과도한 해석을 낳는건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말러가 분명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러가 생의 마감을 느끼고 삶에 이별을 고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건 너무 과한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근래에 와서는 이별이라는 주제는 말러의 개인사와 엮여서 해석하기 보다는 은유적인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체적으로 많다. 실제로 말러는 건강에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건 아니었고 오히려 이 시점에 뉴욕에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과 뉴욕 필하모닉 협회의 지휘자를 맡으면서 60여회의 공연을 이끌었다는 점은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그래서 라 그랑쥬는 이곡의 해석을 "인간으로서는 피할수 없는 숙명에 대한 명상"이라고 보았다.

3 곡의 구성

재미있게도 대지의 노래부터 말러의 작풍은 변화를 겪었다. 장대함의 정점에 서있었던 8번 교향곡 이후 대지의 노래부터 미완성으로 끝난 교향곡 10번까지 분위기가 이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이전 교향곡들이 대단히 폭풍같고 열정적이면서 그야말로 투쟁과 난잡함등으로 묘사될수 있다면 대지의 노래를 기점으로 체념과 초월, 내면화의 분위기가 많이 난다. 이는 말러의 건강과도 무관하지 않을듯 하지만.

기법적으로도 차이가 있는데 점점 낭만주의는 물론 고전적인 음악 어법에서도 이탈하는 면모를 보인다. 기법적으로는 이미 무조주의를 실험하고 있던 쇤베르크나 베베른, 베르크의 제2빈악파의 어법을 많이 수용하고 있다.

이런 경향을 볼수 있는것이 바로 중심조성의 포기이다. 이미 6번 교향곡에서부터 중심조성이 거의 사라진 말러의 교향곡이었지만 9번 교향곡에서는 아예 중심조성이라는것 자체가 없어졌다. 전통적인 교향곡에서는 곡을 구성하는 중심조성하에서 움직이는게 보통이다. 그러나 9번 교향곡은 D장조라고 되어있긴 하지만 첫 악장이 D장조라서 그런것일 뿐, 2악장은 C장조, 3악장은 A단조, 마지막 악장은 D#장조로 시작해서 D장조와는 무관하게 전개된다. 전통적인 교향곡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상 단일한 교향곡이라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단지 중심 조성이 없을뿐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이 리듬 동기로 연결되어 있고 3악장과 4악장은 같은 삽입구를 공유하고 있다.

나중에 미완성으로 끝난 10번 교향곡에 이르러서는 말러는 드디어 소나타 형식마저도 포기해버렸다. 10번 1악장은 사실상 정해진 형식으로 파악하는것이 불가능하다. 이때문에 말러가 이후에 죽지 않고 살았다면 쇤베르크의 12음 음악에 접근했을것이라는 추정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교향곡이라는 매체 자체를 포기하지 않은 말러였기 때문에 이 추측이 옳다고 하기는 어렵다.

3.1 편성

곡의 편성은 피콜로, 플루트 4, 오보에 3, 코랑글레, 클라리넷 4, 베이스클라리넷, 바순 3, 콘트라바순,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튜바, 하프 2, 팀파니, 큰북, 심벌즈, 글로켄슈필, 트라이앵글, 현 5부로 구성된다.

3.2 악장 구성

3.2.1 1악장

1악장 Andante comodo D장조 4/4박자 확대된 소나타형식.

  • 서주

독특하게도 9번 교향곡의 시작은 대지의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작한다. 대지의 노래의 마지막곡의 마지막 부분 "ewig"[1]의 동기가 9번 교향곡을 시작하는 동기에 그대로 쓰이고 있다. 하프가 연주하는 이 동기는 동양적으로 본다면 마치 절의 지붕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소리를 연상시키는 느낌이고, 서양적으로 본다면 장례식때 울리는 조종의 울림을 연상시킨다. 말러가 왜 대지의 노래가 끝날때의 동기로 9번 교향곡을 시작하는지는 명확하게 알기는 힘들다. 어쩌면 2개의 9번 교향곡을 어필하기 위한 것일수도 있고 가장 지배적인것은 이별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사실 이 동기의 기원은 베토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6번 "이별"의 1악장에 이 동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 제시부

이 "ewig"의 동기로 연주되는 서주이후 제시부가 이어진다.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은 제1주제가 남성적이고 강건하다면 제2주제는 반대로 여성적이고 부드러운 스타일이지만 말러는 이를 역전시켰다. 제1주제가 여리고 부드럽게 전개되다가 격정적인 제2주제가 호른의 2도 하강동기를 거쳐 제1주제를 몰아내듯이 등장한다. 격정적으로 제2주제가 제시된 이후 두 주제가 얽혀서 변주되고 이후 하프가 주도하고 현과 금관이 인상적인 주제를 연주하는데 이를 제시부의 종결주제로 보기도 하고 제3주제로 보기도 한다. 이 주제는 말러 자신의 교향곡 1번 4악장의 두번째 주제를 인용한것이다. 여기서 제시부는 절정으로 치닫다가 잦아든다.

  • 전개부

팀파니의 무거운 울림과 약음기를 단 트럼펫의 연주로 서주를 연상시키는 느낌으로 전개부가 시작된다.(첫번째 동영상 6:38초부터) 전개부의 원고에서 말러는 "'오! 나의 사라져 버린 젊은 나날들이여! 오! 모두 흘러가 버린 사랑이여..."라고 적고 있다. 이부분에서 제시부의 제1주제가 어둡게 다루어지다가 하프가 분위기를 환기시켜서 정돈된 분위기로 제1주제의 변형이 나타난다. 또한 여기에는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왈츠인 "인생을 즐기자"의 주제가 인용되고 있다. 온화하게 전개되던 분위기는 점점 템포가 고조되면서 격정적으로 치닫는다. 클라이막스에서 제3주제가 금관에 의해 제시되다가 급속도로 침울하게 가라앉는다.

이후 변형된 제2주제가 열정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으로 전개되며 2도 하강동기와 반음계적인 하강동기를 거쳐 다시 조용한 분위기로 안정되면서 수석 바이올린과 플루트가 주도하는 제1주제의 변형이 등장하고 이후 세번째의 격정적 부분으로 치닫는다. 제1주제가 격정적 대목에서 전개되다가 매몰되어가고 "최대의 폭력으로"(mit hochster Gewalt)라는 지시하에 공이 격렬하게 울린다.(두번째 동영상 9:01) 이후 트럼본의 당김음과 팀파니의 강렬한 울림이 마치 걸어가는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약음기를 단 금관악기들과 현악기가 주거나 받거니 하다가 종이 사이사이 울리면서 이것이 장례행렬임을 보여준다.

  • 재현부

"처음과 같이(Wie von Anfang)"라는 지시어로 재현부가 진행된다. 서주를 연상시키는 멜로디에 이어 제1주제가 자유롭게 전개되며 살짝 절정으로 치달은 후 제2주제가 암시된다.

악기들이 자유롭게 카덴차식으로 연주를 진행하며 제2주제가 한번 더 등장하지만 이전의 격렬함은 사라지고 제3주제가 나오다가 호른이 석양무렵같은 느낌을 주고 하프가 뒤에서 받치면서 바뀐다. 이후 플룻이 등장해 고음에서 점점 내려오고 조용해지면서 코다로 들어간다.

코다에서는 수석 바이올린과 목관악기들이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호른이 조용히 울려가고 마지막에 현의 플래절렛로 악장이 마무리 된다.

3.2.2 2악장

2악장 Im Tempo eines gemachlichen Landlers. Etwas tappisch und sehr derb(편안한 렌틀러 템포로, 조금 서두르고 매우 거칠게) C장조 3/4박자, 트리오 + 론도 형식

말러가 즐겨 쓰던 춤곡형식의 악장으로 붓점리듬의 서주에 이어 3개의 렌틀러가 A-B-C-B-C-A-B-A의 순으로 전개된다.

A는 편안한 느낌을 주는 렌틀러이고, B는 거친 느낌의 왈츠, C는 느린 렌틀러로 A가 먼저 제시되고 B로 이어진다. B는 템포가 빨라지며 때때로 2도 하강동기를 섞어서 토속적이고 해학적인 느낌을 풍긴다. 조금 거칠기는 하지만 과격하지는 않고 이어서 C로 넘어간다. C는 온화하고 느린 느낌으로 전개되며 A의 요소도 살짝 얼굴을 내민다. 약간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다가 온화한 느낌으로 회귀하고 B로 이어진다.

다시 제시되는 B는 전개되는 느낌으로 분위기가 어두워지다가 C로 이어진다. 2도 하강동기가 크게 불어나서 1악장의 모습을 보인뒤 다시 A로 이어진다.

A는 어두운 분위기로 심각해지면서 죽음의 무도를 연상시키고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다. 밝은 동기와 어두운 동기가 서로 부딪쳐서 광란의 분위기로 가다가 B가 재현된다. B로 들어간뒤 서주의 모티브로 A로 다시 이어져 약간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다가 다시 온화한 느낌으로 점점 조용하게 내려가면서 악장이 마무리 된다.

음악학자들은 이를 A,B,C의 춤곡이 서로 갉아먹어서 나중에는 오직 해체만이 존재한다고 표현했고 브루노 발터의 경우 "댄스는 끝났다!"라는 말로 표현을 했다.

3.2.3 3악장

3악장 Rondo-Burleske. Allegro assai. Sehr trozig(론도-익살스럽게. 아주 빠르게. 매우 고집스럽게) A단조 2/2박자 론도 형식

트럼펫의 외침을 현이 받으면서 3악장이 시작된다. 이때 현의 음형은 5번 교향곡 2악장의 첫 시작부분과 완전히 똑같이 진행이 된다. 전체적으로 곡이 어수선하게 들리지만 대위적으로 매우 치밀하게 진행이 된다. A-B-A-B-A-C-A의 형태로 곡이 전개가 되는데 A에서는 2중 푸가를 교묘하게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이 쉽게 "이 부분이 푸가입니다"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말러가 푸가를 직접적으로 사용한 곳에는 교향곡 5번 피날레와 교향곡 8번에서인데 두 곡이 모두 푸가를 통해서 환희를 그려내는 것과 비교하면 꽤나 독특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트리오 부분 역시 독특한데 첫번째 트리오(첫번째 B)는 레하르의 오페라 유쾌한 미망인의 피날레의 멜로디와 유사하고 두번째 트리오(두번째 B)는 3번 교향곡의 1악장을 사용하는등의 패러디를 보여준다.

세번째 트리오는 그동안 진행됐던 곡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진행이 되는데 옅은 현의 트레몰로 위에 트럼펫이 서정적인 멜로디를 연주하게 된다. 이 멜로디는 나중에 4악장에서 다시 등장하게 된다. 코다로 넘어가게 되면 곡은 정신없이 가속이 되며 1,2악장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곡이 끝이 난다.

이 악장에서 특히 주의깊게 봐야할 점은 관현악법이다. 일반적인 작곡가들과는 달리 말러는 일반적인 악기의 특성을 벗어나게끔사티스트 곡을 쓰는데 이 악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다. 앞서서 말한 트럼펫의 멜로디는 고음으로 냄에도 불구하고 여리게 연주하게끔 지시를 하거나[2] 쾌활한 멜로디를 호른 4대로 연주하게 함으로써 이질적으로 들리게 하는 등의 특징이 나타나게 된다.

3.2.4 4악장

4악장 Adagio, Sehr langsam und noch zuruckhaltend(매우 느리게 그리고 주춤하듯이) Db장조 4/4박자 론도 형식

총 마디수가 185마디에 불과하지만 연주시간은 20분대를 더 넘길만큼 매우 느리게 진행이 되는 악장이다. 현의 강렬한 멜로디로 시작되는 것은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과 유사하지만 E장조보다 단3도 아래인 Db장조로 시작되어서 좀 더 어두운 느낌을 준다. 관현악법도 클라이막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진행이 현으로만 이뤄지며 관은 부수적인 느낌이 더욱 강한 악장이다. A-B-A-B-A형태의 론도 형식이다.

앞서서 제시된 현의 도입부분이 A이며 B부분은 주로 저음역대 악기들이 주도권을 잡는다. 특히 콘트라 바순이 솔로로 나오는 등의 특이한 부분도 존재한다. 다시 A부분이 나오며 다시 나오는 B부분은 하프와 목관악기의 주도로 곡이 진행되는데 대지의 노래의 6곡의 음형과 상당히 유사한 면도 보인다. 곡은 점점 고조되어서 클라이막스 부분으로 넘어간다. [3] 클라이막스에 이어서 A부분이 다시 나온후 곡은 천천히 사그라들은 후 Adagissimo부분으로 넘어가게 된다. 바이올린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부분은 pp~pppp정도의 매우 작은 음량으로만 곡이 진행이 되며 중간중간 쉬는 부분이 나와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마지막은 ersterbend(죽어가듯이)라는 지시어와 함께 매우 조용히 끝을 맺게 된다.[4]
  1. 독일어로 영원히라는 뜻.
  2. 관악기의 특성상 고음역은 세게 부는 것이 훨씬 편하다.
  3. 번스타인의 유일한 베를린 필 지휘공연이 DG에서 발매가 되었는데, 이부분이 바로 트롬본 미스테리가 언급되는 부분이다.(DG Originals 기준 14분 45초) 원래는 트롬본 3주자가 4마디 동안 멜로디를 연주해야 함에도 단 한명도 이 부분에서 연주를 하지 않은 것이다. 나중에 그 이유가 알려졌는데, 관객중 누군가 심장마비가 일어나는 바람에 트롬본 주자들이 연주를 하지 못한 것.
  4.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말러 유겐트 오케스트라의 실황 영상을 보면 Adagissimo부분부터 공연장의 조명을 서서히 줄여나가서 곡이 끝날 즘에는 매우 어둡게 해서 공연을 끝맺은 경우도 있다. 일부에서는 작위적인 퍼포먼스라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 영상을 보면 그럴듯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