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척(金尺)이란 대한민국의 옛 전설에 나오는 신비한 도구다.
1 설명
신라의 초대 지도자 박혁거세가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지는 일종의 자.
이것으로 사람을 재면 죽은 사람을 살리고 병든 사람을 고칠 수(흠좀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중국에서 사신이 와서 빼앗아가려 하자 이를 땅에 파묻고 주변에 무덤을 여러 개 만들어 감춰버리고(조조?) 이후 다시 못 찾았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이 얽힌 곳이 경주시 금척리 고분군. 경주 삼기팔괴 중 삼기의 하나로 금척을 꼽는다.
2 조선시대의 금척담
여기까지만 하면 그저 설화의 일종인데, 조선에 이르러 그 이름이 다시 등장한다.
태조 이성계가 꿈에서 신인에게 금척을 받은 뒤 왕이 되었다는 내용의 노래를 태조 2년 정도전이 만들어 바쳤으며 이 노래를 몽금척(夢金尺)이라 한다. 원래는 악가로 창제된 고취악(鼓吹樂)이었는데 세종 때 아악(雅樂)으로 개조하였고 성종 때 당악정재(唐樂呈才)로 만들어져 궁중 음악으로 삼았다 한다.
현대에 재현된 몽금척 음악과 정재(무용)
그 외에 용비어천가와 장편 서사시 〈몽수금척송병서 夢授金尺頌幷序〉, ≪죽지사≫의 〈몽금척〉, 고종 때의 〈금척대훈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금척의 이야기가 나타난다.
이러한 금척의 왕권으로서의 상징은 다음 설화에서 단적으로 드러나 있다.
조실부모하고 고생하며 자란 어떤 머슴이 어느 날 큰 꿈을 꾸었다. 꿈 자랑만 하고 내용 이야기도, 일도 하지 않자 화가 난 주인이 관가에 고발했다. 결국 상급 관리들을 거친 뒤 임금 앞에 가서도 꿈의 내용을 말하지 않으므로 화가 난 왕이 투옥시켜 머슴은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 머슴은 우연히 감옥 안에 들락거리는 쥐를 죽이게 되었는데, 다른 쥐가 자 같은 것을 물고 와서 죽은 쥐의 가로 세로를 재니까 죽었던 쥐가 되살아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빼앗았다. 마침 임금의 딸이 죽을병에 걸려 백약이 무효라는 소문을 듣고 자청하여 그 자로 공주를 살렸으므로 부마가 되었다.
중국의 천자가 그 소식을 듣고는 자기의 딸도 살려 주기를 청했으므로 역시 살려 준 뒤,[1] 그 머슴은 두 나라의 부마가 되었다. 머슴은 두 부인의 시중을 받으면서 비로소 자기가 꾸었던 꿈의 내용[2]을 이야기하였다.
조선의 계속되는 금척 이야기는 신라 시대부터 면면히 전해내려오는 왕권으로서의 상징물인 금척을 이용해 왕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훗날의 대한제국 시대 최고 훈장의 이름은 여기에서 따온 금척대훈장(金尺大勳章)이었다.
물론 환빠들은 그런 거 없고 민족 대대로 내려오는 천부인적 물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 고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