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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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추리소설[1], 대중소설 작가.

1909-1957

평안남도 대동에서 출생했고 23세이던 1931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와세다대학에 진학했다. 원래는 법학을 전공했지만 일본 유학생활 중 추리소설에 심취하여 일본의 추리소설과 서양 고전문학들을 섭렵하며 문학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하여 1935년 일본 잡지에 일본어로 된 세 편의 단편 추리소설을 게재하기도 했다.

귀국 후 본격적으로 추리소설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36년,일본 유학시절 일본어로 쓴 소설 "추리 소설가의 살인"을 개작한 "가상범인"을 시작으로 이듬해인 1937년에는 김내성이 창조한 한국 최초의 명탐정 캐릭터 유불란 탐정이 처음 등장하여 활약하는 장편 소설 "백가면"을 발표했다. 한편으로는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조광"지의 편집과 각종 좌담회 사회를 맡았다.

1939년은 김내성에게 의미있던 해로 조선일보에 추리 연재소설 "마인"을 연재했는데 크게 히트를 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아내의 친정이 있는 함경남도 안변으로 요양을 떠났고 이곳에서 해방 이후 김내성의 히트작이 된 "청춘극장"을 구상하게 되었다.

해방 이후 김내성은 여러 편의 소설을 집필하고 라디오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1946년 한국 최초의 어린이 드라마라고 할수 있는 "똘똘이의 모험"의 기획.각본을 맡아 크게 히트를 치게 되었고 영화화까지 되었다. "마인" 역시 영화화되어 개봉했다.

1947년에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번안한 소설 "진주탑"을 집필,발표했고 1949년에는 안변 요양시절에 구상했던 "청춘극장"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청춘극장"은 크게 히트를 치게 되었지만 한국전쟁이 터져 일시 연재가 중단되기도 했다. 서울에서 피난을 가지 못하고 숨어지내던 김내성은 1951년에는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청춘극장"을 5부로 완결했다. 이듬해에 '대망'이라는 가제로 구상했던 소설 "인생화보"를 연재해 1953년에 완결했다.

1956년 "실낙원의 별"을 새로 연재 시작하였지만 1957년 연재도중 뇌일혈로 사망했다. "실낙원"은 김내성의 큰딸인 김문혜가 아버지의 구상 노트를 바탕으로 후반부를 집필해 완결했다.[2]

김내성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추리문학가로서 활동한 최초의 작가이며 일제 강점기와 1950년대에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그의 소설인 "마인","똘똘이의 모험","청춘극장","인생화보"등은 여러 차례 영상화 되었을 정도였고 여러 번 새로 책을 찍어냈을 정도로 베스트셀러였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김내성은 잊혀진 작가가 되었다. 93년KBS에서 창사 20주년을 맞이하며 여명의 눈동자에 맞서듯 청춘극장을 드라마로 만들었으나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할 정도로 참혹하게 망했고 이후로 김내성 작품에 대한 영상화는 맥이 끊겨졌다.

그러다가 2009년, 김내성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 김내성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판타스틱 최신호에서 김내성 관련 기사를 실었고 2009년 5월 판타스틱을 발간하는 페이퍼 하우스에서 김내성의 대표작 "마인"을 출간했다.

김내성의 작품들

  • 마인(1939)
  • 똘똘이의 모험(1946)
  • 청춘극장(1949-1952)
  • 인생화보(1952-1953)
  • 실낙원의 별(1956-1957, 후반부는 큰딸이 완결)
  1.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은 이해조의 쌍옥적이라고 하고 한때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이 무엇인가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김내성이 한국 문학에서 본격적으로 추리소설가로 활동한 게 최초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2. 김문혜가 후반부를 집필해 완결했지만 독자들은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고 한 사람이 쓴 소설로 생각했을 정도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