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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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祿永
1924년 00월 00일 - 1985년 07월 10일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백우(白愚)인데, 백두산 아래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라고 스스로를 낮추는 호이다.

1924년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태어났다.

8.15 광복 후 대한독립촉성청년연맹 중앙위원직을 시작으로 1949년에는 독립촉성중앙협의회 전라남도 조직부장에 선임되었다. 그리고 1952년 목포일보 광주분실장으로서 언론계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1953년 민주국민당에 입당하여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후 민주당, 신민당, 민정당, 민중당 등에 속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라남도 광주시 을 지역구에 신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전에는 민주당계 구파 소속이었으나 이 때를 기점으로 신파로 전향하여 김대중과 가까워졌다.

1972년 10월 유신 선포 후 육군보안사령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였다. 이듬해인 1973년 유진산의 노선에 반발하여 양일동민주통일당에 입당하였다. 같은 해 치러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일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박철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에서 민주통일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민당 이필선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0년 5.17 내란 직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당하고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 이후 정치규제에 묶여 있다가 1983년 해금되었다.

1985년 신한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이영일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리고 야당 몫의 국회부의장이 되었다. 그러나 위암으로 1985년 7월 별세하였다. 별세하기 직전에도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에 노력하였다. 이후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5.18 묘역에 안장되었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71제8대 국회의원 선거 (전라남도 광주시 을)신민당-당선
1973제9대 국회의원 선거 (전라남도 광주시)민주통일당-당선
1978제10대 국회의원 선거 (전라남도 광주시)민주통일당-당선
1985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신한민주당-당선[1]
  1. 민주정의당 이영일 후보와 동반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