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선

1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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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必善
1928년 12월 06일 ~ 2008년 06월 19일

1928년 전라남도 광주군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광산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박흥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전라남도 광주시 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 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주시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정래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정치를 잠시 떠나 개인사업에 전념하였다.

1976년 정성태 전 국회부의장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신민당 전라남도 광주시 지구당위원장에 선출되었고 친 김영삼계에 속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통일당 김녹영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고 민주한국당에 입당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민주당 신기하 후보와 민주정의당 고귀남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광주직할시 서구 갑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 직후 꼬마민주당에 몸담았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통일국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신계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통일국민당이 신정치개혁당과 합당하여 신민당이 되고, 신민당이 다시 1995년 자유민주연합에 흡수합당되자 자유민주연합에 속하였다. 그러나 자민련이 이건개, 한호선 등 비리에 연루되었던 인사들을 중용하자 이에 반발했고 뒤이어 비례대표에서도 밀려나자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했다.

2 대한민국의 전 금융인

전두환 정권 때 제일은행장을 역임하였다.

3 대한민국의 전 시사만화가

매일경제신문에서 만평을 연재하였다. 2007년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