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은 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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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2년에 벌어져서 세상을 경악시켰던 사건이자 성폭행 피해자존속살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이어진 사건.

의붓아버지에게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하던 20대 여성이 남자 친구와 함께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사건.[1]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쉬쉬했던 존속에 의한 성폭행의 문제가 공개적으로 제기되었다. 이전에는 야설에서나 있을법한 이야기로 치부되었고, 실제로 상담기관에서는 많은 사례를 접수받았으나 언론에서 공개적으로 떠오른 것은 이 사건이 최초였다.

우선 이 사건명 '김보은 양 사건' 에서 '김보은' 은 이 사건의 피고인이자 존속살해범인 동시에 성폭행 피해자라는 점을 밝힌다. 사건 당사자의 실명을 밝히는 것이 인권이나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문제로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이나 오원춘 사건처럼 당대에 상당히 이슈가 되었던 사건이고, '김보은'은 이 사건의 용의자의 이름이므로 당사자의 실명을 밝히는 것이 도의에 어긋나지는 않는다. 피고인은 현재 개명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사건 정황

김 양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었으며 어머니는 곧 재혼을 하게 되어 김 양에게 곧 새아버지가 생겼다. 드디어 나에게도 아버지가 생겼구나 하는 김 양의 생각과는 달리 의붓아버지는 어린 김 양에게 성관계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이때 김 양의 나이는 고작 만 9세에 불과하였다.

이 새아버지는 의붓딸 이외에도 여러 명을 강간한 것으로 추정되나 검찰 관계자[2]였기 때문에 그때마다 무사할 수 있었다. 훗날 김보은 사건이 터졌을 때 검찰이 그를 지나치게 재판정에서 옹호해서 문제가 되었다. [3] 덤으로 자신의 직위를 악용하여 음란물 단속시 압수한 물건을 자신이 집에 가져와서 "수사참고"를 이유로 감상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4]

심지어 이 새아버지는 김 양을 강간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았다고 하며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뉴스 라이브러리에 보면 김 양이 새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신을 같이 눕혀놓고 번갈아 성행위를 하기도 했다고 진술하는 그 당시 신문기사도 볼 수 있다. 이 당시 사회 분위기가 패륜살인에 대해 동정론이 일기는 힘든 시기였는데, 이건 뭐 밝혀지는 사실마다 쌍욕이 튀어나올 사실만 나오니 공중파고 신문언론이고 결국은 한 목소리로 동정했다.[5]

3 사건

시간은 흘러 김 양이 대학생이 되었으며 충주에 살던 김 양은 한 지방캠퍼스 대학교의 무용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드디어 의붓아버지의 성관계 강요에서 벗어나나 했더니 이제는 의붓아버지가 김 양의 행동의 자유를 간섭하기 시작했다. '너 수업시간표 좀 보자. 이 시간이 수업시간이구나. 수업시간 외에는 기숙사에 쳐박혀있어라. 그리고 주말에는 무조건 충주로 내려와라' 이런 식으로 김 양의 모든 행동을 하나하나 간섭했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김 양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으며 의붓아버지의 행동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고 남자 친구는 왜 자신과 데이트할 시간이 없냐고 자꾸 물으니 결국 김 양은 남자 친구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게 되었다.

남자 친구는 이 문제로 계속 갈등했다고 하며 처음에는 이 문제를 회피할 생각으로 군대에 입대하려고 입영신청까지 했다고. 사실 그 남자 친구는 체대생으로 덩치와 힘이 좋았다고 한다. '체대생이 아저씨한테 겁먹은 건가' 하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인게 김 양의 의붓아버지는 상기한 대로 검찰 관계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려워하는게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오랫동안 갈등하던 끝에 김 양과 함께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후 강도로 위장하기로 공모한다.

남자 친구는 범행 전날 서울 창동시장에서 범행에 사용할 식칼, 공업용 테이프, 장갑 등을 구입하여 범행장소인 충주에 내려갔다. 그 후 김 양과의 전화통화로 범행시간을 정하고 범행 당일 새벽 1시 30분 경 김 양이 열어준 문을 통하여 집안으로 들어갔다. 의붓아버지는 술에 취하여 잠들어있는 상태였고 남자 친구는 의붓아버지의 방에 들어가 의붓아버지의 머리맡에서 식칼을 한 손에 들어 의붓아버지를 겨누고 양 무릎으로 의붓아버지의 양 팔을 눌러 꼼짝 못하게 한 후 의붓아버지를 깨웠다. 덩치 큰 체대생이 누르고 있는 데다가 잠이 덜 깬 상태이니 제대로 반항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상황. 그 상황에서 '김 양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놓아주라' 는 취지의 이야기를 몇 마디 하다가 들고 있던 식칼로 의붓아버지의 심장을 1회 찔렀고 의붓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김 양과 남자 친구는 강도살인을 당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하여 죽은 의붓아버지의 양 발목을 공업용 테이프로 묶은 다음 현금을 찾아 없애고 장농, 서랍 등을 뒤져 범행현장에 흩어 놓았다. 또 김 양이 강도에게 당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김 양의 브래지어 끈을 칼로 끊고 양 손목과 발목을 공업용 테이프로 묶었다. 남자 친구는 달아나고 김 양은 양 손목과 발목이 공업용 테이프로 묶인 채 옆집에 가서 강도를 당하였다고 허위로 신고한 사건이다. 사건 당시 김 양의 나이 만 19세였다.

4 수사

강도를 당한 것처럼 꾸미려고 했고 그게 성공하여 영원히 미제사건이 될 뻔 했던 이 사건. 실체가 밝혀진 계기는 한 경찰관의 의문이다. '의붓아버지와 딸이 같은 방에서 자다가 당했다' 는 사실에 의문을 품었던 것이다. 보통의 경우 아버지와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딸은 같은 방에서 잠을 자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항목을 보는 여성 위키러들이나 여자 형제가 있는 위키러들, 잘 한 번 생각해보시라. 단칸방에 살지 않는 이상 따로 방을 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집은 아버지와 딸이 같은 방에서 잤던 것이다. 그것도 친아버지도 아닌 의붓아버지와.

그 경찰관은 김 양에게 슬쩍 이런 말을 던졌다고 한다.

"야, 방금 병원 응급실 가서 너희 아버지 봤는데 살아있더라?"

"안 돼!"

실제로 강도를 당했다면 '다행이다!', '만세!' 이런 반응을 보여야 할 텐데, '안 돼!' 라니. 이렇게 수사의 실마리를 잡게 되었고 사건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이런 천재를 봤나

검사나 검찰 수사관, 경찰관을 꿈꾸는 위키러는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마음가짐보다는 '뭔가 이상한데?' 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겠다. 이 사건에서 모든 경찰관들이 '아버지와 딸이 같은 방에 잘 수도 있지 뭐' 라고 생각했다면 미제 사건으로 끝날 수도 있었으니 어쨌든 씁쓸한 이야기.

5 재판

이 사건은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불러왔다. 아무리 의붓아버지라곤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인데 어떻게 아버지가 딸을 강간할 수 있느냐는 공분을 샀다. 수십 명의 변호사가 김 양의 무죄를 이끌어내기 위해 발 벗고 나서서 거대한 변호인단이 구성되었고 당연히 여성단체에서도 들고 일어났다.

당시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었다.

  • 국민학생(지금의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아이라면 모를까 대학생이라면 먹을 만큼 먹은 나이다. 어떻게 대학생 정도 나이를 먹고도 의붓아버지를 피해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저렇게 당하고도 도망가지 않았다는 건 혹시 김 양과 아버지의 관계가 내연의 관계는 아니었을까?
  • 김 양이 저렇게 당하도록 김 양의 어머니는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으며 알았다면 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못했나?

이런 의문이 제기되자 당시 명성이 높던 심리학자가 김 양과 어머니의 심리를 분석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는 이들의 심리상태가 고대 노예의 심리상태와 같다는 것이었다.

노예는 손발이 묶여있지 않고 자유롭다. 손발이 묶여있으면 일을 부려먹을 수 없으니까. 즉, 도망가려면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는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도망을 못 갔는가? 그것은 주인이 무작위로 노예를 살해하거나 심하게 폭행하는 등 지속적으로 엄청난 공포심을 주기 때문에 그 공포심에 짓눌려 도망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로 의붓아버지는 김 양과 어머니에게 지속적인 공포심을 주었다고 한다. 의붓아버지는 검찰 수사관인데 '엉뚱한 짓을 할 생각 말라. 우리나라의 모든 검찰 수사망은 내 손 안에 있다' 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이 와닿게 하려고 가끔 어리버리한 피의자를 일부러 집으로 데려와서 수사했다고 한다. 일부러 집에까지 데려온 어리버리 피의자에게 상냥하고 친절하게 수사를 진행할 리가 없다. 신나게 때려 조졌고 모녀는 그런 모습에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거대한 변호인단의 노력이 성과가 있었는지 법원은 김 양에게 정당방위의 요건 중 하나인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다고 볼 여지가 있음을 인정하였다. 지금 현재 성폭행을 당하거나 당할 위험이 있진 않지만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볼 때 언제 갑자기 일어나서 성폭행을 할 지 모른다는 논리다. 그러나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행위가 사회통념상 사회적 상당성을 결여하여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방에서 자고 있는 사람을 깨워서 살해한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하긴 어렵다는 것. 마찬가지로 남자 친구에게도 정당방위 성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는 정당방위의 현재성은 인정될 수 없고 긴급피난의 현재성만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보충성 또는 균형성이 결여되어 긴급피난도 성립될 수 없다고 한다. 소수설로 면책적 긴급피난이 적용된다는 학설이 있긴 하다.[6]

이런 여론 때문인지 형량 자체는 일반적인 경우보다 낮게 인정되었다. 제1심에서는 직접 살인을 한 남자 친구 김진관은 징역 7년, 김보은에게는 징역 5년이 선고되었고 항소심에서 김진관 징역 5년, 김보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선고되었다[7] 다만 김보은은 다음해인 1993년 대통령 특사로 형효력상실 특별사면 형식으로 복권되었고 김진관은 역시 같은 특사로 형의 절반이 특별 감량되어 잔여기간을 보낸 후 만기 출소하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반적인 경우는 나올 수 없는 형량인데 이는 최상단의 표현처럼 김보은이 피고인인 동시에 피해자라는 것이 고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1994년 제정된 '성폭력 범죄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의 제정에 큰 영향을 주었다.

판결문은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 판결문 92도2540이 대법원의 원심 확정 기각 판결문이고, 판결문 92노1511이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문이다. 다만 고등법원의 판결문은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찾을 수 없다.

6 여담

  • 복역 이후 김보은 양과 남자 친구 김진관 군은 남자 쪽 집안의 반대로 헤어졌다고 한다.[8] 그러나 김군의 가족들은 김양을 원망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김양이 풀려나자마자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빌었을 때, 김군의 부친은 ‘네 잘못이 아니니 너무 괴로워말고 앞으로 열심히 살라’고 다독여 주기까지 했다고.
  • 그 외에도 성폭행 및 관련 피해자들에 대하여 쓴 책자에는 김부남 여인 사건이라든지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같은 내막을 다룬 책에서도 실존인물 같은 관련 사건에 대하여 자세한 내막을 다룬 책(90년대 중순에 나왔음)에서도 이 사건을 다뤘는데 이 책자에선 술취한 양아버지가 마구 화내면서 적반하장으로 연놈들을 내가 가만히 안 둔다고 윽박지르는 통에 울컥한 남친이 칼로 찔렀으며, 이 때 '이 X이...내가 누군지' 라고 소리치자 그 말에 더 울컥한 남친이 더 찔렀더니 "살려...."라는 말로 애원하다가 숨이 끊어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 형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당방위에 관련하여 중요한 판결이고 필수라고 할만큼 거의 모든 형법 교과서에 등장하는데 판결문에 정당방위에 관한 요건이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다.[9]
  • 자세한 사건의 전말과 판결문.
  1. 또는 남자 친구의 이름까지 더해서 김보은 김진관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위키백과에서는 김보은 김진관 사건이라는 표제어로 등록되어 있다. 출처: [1]
  2. 검사는 아니고 사무과장으로, 검찰조직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다. 다만 당시 5급공무원이었으며 충분히 검찰 권력을 이용할 수 있을만한 자리에 있었다.
  3. 심지어는 검사가 김 양에게 "의붓아버지와의 관계를 피고인도 즐긴게 아니냐"는 질문을 하는 몰상식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학교 성적이 우수했던 것으로 아는데, 생활은 지극히 정상 아니었나?”, “이제까지 잘 살아오다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자 살인을 결심하고 방해물을 제거하려 했던 것은 아닌가?” 등의 질문으로 몰아갔다고. 하...
  4. 요즘처럼 컴퓨터로 간단히 검색만 하면 동영상을 구할 수 있는 때가 아니라서 포르노 비디오 테이프는 거의 마약류처럼 접근이 어려웠던 시절이다.
  5. 검찰에서는 수사 초기에 근친 성폭행보다는 다른 살인 동기를 찾으려고 애썼는데 파면 팔수록 살해된 인물의 막장성이 드러나고 다른 피해자가 있을 수 있다는 상황까지 튀어나오게 됐다고 한다.
  6. 이용식,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의 몇가지 요건, 형사판례연구 제3권, 107면.
  7. 형법 제250조 제1항의 보통살인죄(의붓아버지의 경우 존속살해가 적용되지 않는다. 존속살해죄는 직계존속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인 경우에 적용된다. 의붓아버지는 직계존속의 배우자이다)가 적용되었다. 보통살인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작량감경하면 3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고 집행유예도 가능해져 실형을 살지 않아도 된다.
  8. 김 양은 결국 집행유예를 받아 감옥에 가지는 않았지만 김 군은 감옥에 갔다와야 했다. 학교폭력이든 폭력이든 살해든 그 크기와는 상관없이 일단 빨간줄이 그어졌다면 정상적인 사회생활과 취직은 사실상 날라갔다고 봐야한다. 법원에서도 남자 쪽은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사실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감형을 시켜줄 여지가 없었다.
  9. 여담으로 이때 재판관 중 한 명이 이회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