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식

金順式

생몰년도 미상

후삼국 시대의 인물로 명주[1]를 다스리던 호족이었다.

궁예의 거병 이후 후고구려에 명주지방을 통째로 바치면서 충성을 다짐했고, 궁예 또한 김순식의 명주 지방에서의 통치권을 인정해주면서 궁예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이후 왕건이 역성혁명으로 왕이 되었을 때 왕건에게 복종하지 않고 역적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922년 7월에 왕건이 보낸 아버지인 허월대사의 설득으로 군을 물리게 되고, 이후 왕건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개성 왕씨 성을 하사받아 왕순식이란 이름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 또한 대광을 역임했는데, 지방 세력 중에서는 유일하게 최고 직인 대광을 하사받았다.

936년에는 기병 3천을 이끌고 일리천 전투에 참여해 공을 세웠으며, 명주의 호족 장군인 점과 김씨 성을 가졌다는 점 때문에 신라의 왕족인 김주원의 후손 또는 명주 군왕 계열과 관련있다고 추측되고 있다.

태조 왕건에서도 그리 큰 비중이 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위의 사실이 드라마에서도 그대로 그려지고 있다. 주로 '함부로 무시할수 없는 큰 세력권의 수장'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궁예가 명주를 공략할때 그의 됨됨이를 살펴 본 허월의 설득으로 궁예에게 명주를 바치자 비로소 궁예는 양길에게서 독립을 할것임을 천명하였다. 아예 수도를 명주로 할지 논의까지 오갈 정도. 하지만 궁예는 김순식을 존중해 주어 명주를 그대로 김순식이 다스리게 하였다.

궁예가 실정을 거듭하면서 민심을 잃을 때도, 김순식은 궁예의 후원자로 거론된다. 특히 120회 왕건의 군사정변이 일어나 피신하는 궁예가 은부와 행선지를 논의할 때, 은부가 명주(오늘날 강릉)로 갈 것을 제안하며 '명주 장군 김순식은 폐하(궁예)의 둘도 없는 충신이 아닙니까?"하는데, 궁예가 "그건 그렇지...허나 그 명주까지 갈 수 있단 말인가?"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궁예가 죽고 이후 왕건이 고려를 세우자, 김순식이 왕건이 보낸 사자의 목을 베어 왕건을 비난하는 편지와 함께 보내면서, 그에 맞서 저항해 군사를 일으키려 할 때, 동시기 반란을 일으키던 선장이나 환선길의 경우에선 놀라긴 해도 그렇게 심각하게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던 왕건이 상당히 우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허월이 그를 설득하면서 군사를 물려서 이후 한동안 등장이 없다가 공산 전투 이후 왕건에게 직접 찾아가서 충성을 맹세하는데, 그러자 큰 패배를 겪어 의기소침해져 있던 왕건이 크게 반긴다.[2] 그 영향력이 얼마인지 알수 있는 대목. 그 이후 한동안 등장이 없었다가 마지막 전투인 일리천 전투에서 김순식의 군대가 참전하는걸 거론하는 장면에서 한번 더 등장한다. 여담으로 배현경, 김락, 김언, 홍유는 이 드라마에선 처음에는 김순식 수하의 장수들이었다가, 명주성을 궁예에게 바치면서 궁예의 수하가 된다.
  1. 지금의 강원도 영동 지역, 강릉시 일대.
  2. 그 이전에 그의 아들을 왕건에게 보냈긴 했지만, 직접 찾아간건 이때가 처음이라는 나레이션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