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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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金蓮子 (キム・ヨンジャ)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일본에서 활동하는 원조 한류스타.

1959년 1월 25일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계은숙이 없는 현재 한국에서 배출한 명실상부한 일본 엔카계의 여왕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중의 한 명이기도 하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한국/일본 위키백과의 내용에 더해서 작성되었다.

2 데뷔

1974년, TBC 동양방송에서 열린 '전국가요 신인스타쇼'에서 우승하였고, 같은 해 '말해줘요'라는 곡으로 데뷔했다. 1977년에는 '여자의 일생'으로 일본에서 첫 데뷔를 했다. 대박은 아니고 중박 정도를 꾸준히 쳐줬지만, 이후로는 히트곡이 없어 한일 양국에서 한동안 버로우를 탔다.

3 전성기

1981년에는 '노래의 꽃다발'이 한국의 음반 시장 최대 360만 장의 판매를 기록했다. 다만 이 수치는 공식 기록은 아니고 자체 조사에 길보드 차트까지 포함해서의 기록으로 추산되며 이런 식으로 따진다면 역대 최고의 단일 앨범 판매량은 조용필 , god, 김건모, 김연자가 아닌 길보드의 제왕. 넘사벽으로 군림하는 김란영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역대 1위가 된다.

1984년 NHK홀 콘서트 라이브가 레코드가 한.일 동시 발매를 기점으로 동년도에 '수은등'으로 한국에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1988년 전설적인 명작곡가인 길옥윤이 작곡한[1] 서울 올림픽 찬가 "아침의 나라에서"[2]로 일본에서 다시 데뷔하게 되며 개사를 하게 된 이 곡은 일본에서도 대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서울 올림픽 폐막식 엔딩 세레모니로 주 경기장에서 10만명의 관중 앞에서 노래를 하기도 했으며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의 김연자는 엔카계의 거물로 우뚝 서게 된다. 그 기세를 몰아 홍백가합전에도 출전하게 되며, 통산 3회나 출연하는 등[3]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엔카 가수 중 한 명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원래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였던 '흐르는 강물처럼'을 부르는 것을 보면 왜 일본에서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지 짐작할 수 있을 듯.

2001년에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공식적인 초청을 받고 평양에서 공연을 개최하였으며, 그 외에도 사할린, 상파울로 등 해외 각지에서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 일본에서 역시 자신의 이름을 상표로 하여 김치를 판매하는 등 한국과 관련된 활동도 많이 하고 있다.

그리고 2009년 한국에 오랜만에 컴백하여 '10분내로(이병오 작사, 이호섭 작곡)'를 발표. 한국 성인 가요계에서도 여전히 죽지 않은 김연자 파워를 보여주며 큰성공을 거둔다. 이 후 이 곡은 일본 콘서트에서도 한국어로 부르며 김연자의 대표곡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4 그 외

  • 일본에서 열리는 콘서트나 TV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자주 한복을 입고 나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덕분에 일본 극우들의 표적이 되어 갖은 협박과 핍박을 받기까지 했다. 일본 활동시 한국인이란 이유로 차별과 편견을 많이 받았지만, 오로지 실력 하나로 모든 것을 제압한 케이스다. 물론, 한복은 현재까지도 디너쇼에서 계속 입고 있다. 김연자가 입고 있는 한복 역시 특수제작된 한복으로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며, 한국의 기개를 알리기 위해서 일부러 더 화려하고 큰 자수가 박힌 한복을 입는다고 한다.
  • 특유의 맷돌 창법의 경우에는 김연자의 성량이 워낙 크기에 만들어진 창법으로, 정엽의 맷돌 창법과는 차이가 있다. 영상보기 옆에서 보고 놀라는 강민경이해리는 덤
  • 2012년 나는 트로트 가수다에 출연하여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불러 Staff가 뽑은 1위에 꼽혔다. 다른 가수들이 모두 퓨전적이고 세련된 편곡을 한 것에 반해 김연자는 그야말로 정통 트로트의 진수를 보여줬다. 김연자 특유의 폭풍 가창력과 뒷부분의 애절한 나레이션까지 최근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나는 가수다의 무대를 관광보낸다는 평가까지 받으며, 1위를 기록한 문주란 이상 가는 호평을 얻고 있다.
  • 자선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목포에 있는 고아원인 '공생원'에 '사랑의 음악당'을 건설하기 위해 자선 콘서트를 한일 양국에서 50회나 열었고, 2011년 도호쿠 대지진 때는 도전 1000곡의 우승 상금을 기부했다.
  • 남편은 재일교포 김호식(일본이름 : 岡 宏)씨'였'으며 지휘자 겸 앨범 프로듀서이며 김연자의 매니저까지 하고 있었다. 둘 사이에 자식은 없었는데 아이에 신경 쓸 시간도 없고 두 사람 다 아이에 대한 생각이 없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김연자가 가수라는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참고로 김연자와 18세 차이가 나며 김연자의 어머니와 2살차이 아버지와 7살 차이밖에 안난다고 (...) 그런데 2012년 5월 조정을 거쳐 이혼했다. 이혼사유는 남편과의 성격차이로 인한 갈등으로, 아이를 가지지 않은 이유도 남편의 강권 때문인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그간의 벌이는 남편이 관리하고 있었는데, 김연자 측에 따르면 남편 쪽에서 위자료 및 재산 분할을 일절 해주지 않았고 일본에서 잠정 은퇴한다는 식의 편지를 보내는 등 활동도 방해했다고 한다.
  • 씨름판을 보면 무조건 나오는 그 유명한 "천하장사 만만세~" 를 김연자가 불렀다. 곡명은 씨름의 노래로 1986년에 발표. 또한 1988 서울 올림픽 찬가 '아침의 나라에서'도 그녀의 노래인데 손에 손잡고가 워낙 인상 깊어서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5 수상 기록

MBC 10대 가수 가요제(1982~1984년)
한국 건전가요 대상 (1987년)
제 43 회 일본 레코드 대상 기획상 수상 (2001년)
제 36 회 일본 유선 대상 최다 리퀘스트 가수상 수상 (2003년)
제 37 회 일본 유선 대상 유선 음악 우수상 수상 (2004년)

제 38 회 일본 유선 대상 유선 음악 우수상 수상 (2005년)
  1. 패티김의 남편이였던 그 작곡가
  2. 국민 투표를 통해 서울 올림픽 주제가로 낙점된 곡이었으나, 이후 어른의 사정으로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로 교체됨. 어른의 사정이 참 재미있는게, 국민투표로 이 곡이 낙점된 이후 '촌스럽다', '세계인들이 들을 노래인데 너무 뽕짝스럽다'는 이유로 신문에서 비난여론이 쏟아져 나온것이다.그럼 국민 투표는 왜 했대? 이후 재공모를 통해 낙점된 곡이 외국 작곡가와 당시 한국에서 듣보잡이었던 코리아나가 부른 '손에 손잡고'이다.
  3. 1989년 '아침의 나라에서', 1994년 '흐르는 강물처럼'(미소라 히바리의 노래이다.), 2001년 '임진강'이란 곡으로 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