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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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 Сахалин (사할린)[1]
일본어: 樺太 (からふと, 가라후토)[2]
영어: Sakhalin
중국어: 庫頁島/库页岛 (kùyèdǎo, 쿠예다오)[3]

사할린은 북태평양에 있는 러시아 연방의 섬이다. 면적 72,492km²의 꽤 큰 섬으로서, 러시아가 영유한 섬 중에서 두 번째로 크다.[4] 러시아의 동쪽 해안, 일본홋카이도쿠릴 열도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일본과의 사이의 해협을 라페루즈 해협[5]이라 하며 유라시아 대륙의 러시아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해협은 타타르 해협이라 부르는데[6], 가장 좁은 곳은 불과 7km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연륙교를 지을래도 충분히 지을 수 있는 넓이라는 뜻. 이곳에 스탈린 시절에 사할린 주둔군 보급도 할겸 해저터널을 뚫으려고 공사를 해서 터널 뚫기 시작한 시점에 스탈린이 죽으면서 죄수들이 사면되어서 공사를 포기했다고 하며 겨울에는 타타르 해협의 바다가 얼어 붙기 때문에 썰매를 타고 사할린섬과 러시아 본토를 오갈 수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아무르강 하구에 큰 시장이 열려 사할린 사람들이 러시아 본토에 장을 보러 오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도 사할린 원주민들은 물자를 구하러 겨울에 썰매를 타고 해협을 건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타타르 해협과 오호츠크 해 사이에 있으며, 쿠릴 열도와 함께 러시아의 사할린 주를 이룬다. 사할린 사람들이 최대도시이자 중심도시는 섬 남쪽의 유즈노사할린스크이다.

본래 북부 지방에는 퉁구스계 민족인 윌타인(ульта)과 고유한 계통의 니브흐인(Нивхи) 등이 거주했고, 남부 지방은 아이누인이 거주한 땅이었으나 19세기에 들어서 러시아와 일본이 각각 식민개척정책을 시행하여 자기 땅이라고 영유권을 주장했던 땅이다. 1855년 맺어진 러일화친조약 이후 사할린은 양국의 공동 관할구역이 되었다. 그 뒤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일본측 명칭은 가라후토-치시마 교환조약)으로 인해 쿠릴 열도 전도를 일본이 영유하는 대신 사할린은 러시아 영토가 되었다. 그 이후 러일전쟁 이후 체결된 포츠머스 강화조약에 의해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 남부는 일본령으로 편입되어 태평양 전쟁이 끝나기 전인 1945년까지 일본이 섬의 절반 가량을 지배하였으며,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붕괴한 뒤 탄생한 소련은 당시 사할린 개발에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사할린 섬의 석유 개발권을 일본에게 양도했다. 또 레닌은 사할린 영유를 로마노프 왕조의 제국주의에 의한 불법 점유라고 주장했고, 일본에게 사할린 섬 전체를 반환하려고 했지만 실행하지는 않았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이후 섬 전체가 다시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다.

일본에서 발간되는 지도에서는 북위 50도 이하의 남사할린 지역이 어느 나라의 영토로도 표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사할린과 쿠릴 열도 귀속 문제를 보류했는데, 그 직후 쿠릴 열도 분쟁이 발생하여 영토 관련 협의가 모두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남사할린이 러시아 영토임을 아직 인정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말이 그렇다 뿐이지, 쿠릴 열도와 달리 일본 정부는 이 지역에 대해서 영유권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지 않으며, 애초에 한때 자신들의 영토였던 유즈노사할린스크에 일본 총영사관마저 들어서 있기 때문에[7] 자신들의 영유권을 제쳐두고 러시아의 영유권을 묵인,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 입장과는 별개로, 일본공산당을 시작으로 일부 일본의 단체들은 북방영토에 남사할린도 포함하여 돌려달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유귀국이 사할린에 있었을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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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도의 빨간 네모 중 위의 3개는 북사할린, 아래의 3개는 남사할린이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 패망 전까지 영유했던 곳이 남사할린이었다.

북위 45~54도 사이에 위치하니 남한의 한참 북쪽에 있다. 남북한(한반도) 최북단인 온성군이 북위 43도이니까(...) 면적 72,492㎢인데 길이는 948km에 달해서 남북으로 길쭉한 형태다. 참고로 남한 면적이 100,210㎢, 남북한 합친 한반도 총 길이가 1,000km 쯤 된다. 사할린 섬은 산이 많은 지형으로서 섬의 2/3는 산지이며, 두 개의 산맥이 나란히 남북으로 펼쳐져 있다. 섬이지만 크기가 크다 보니 도 2개 있다. 그 중 팀 강은 길이 400 km 에 달하는 긴 강이다. 서울특별시-부산광역시 거리가 대략 400km쯤 된다.

오호츠크해로 인해 춥고 다습한 기후를 띤다. 쾨펜의 기후 구분으로는 Dfb ~ Dfc. 찬 바다로 인해 같은 위도의 내륙보다는 시원한 여름이 있다. 겨울은, 바다 덕에 약간 덜 춥긴 하지만 그래도 위도가 높으므로 추운 편이다. 여름 평균 최고 기온이 섭씨 21도, 겨울 평균 최저 기온이 -19도[8] 습한 기후라 여름에는 안개가 많이 끼고, 겨울에는 눈이 많다. 산에는 눈이 5미터씩 쌓이곤 할 정도다.

사할린은 석유, 천연가스, 석탄의 채굴 및 임업, 어업이 주요 산업이다. 소련 붕괴 후 석유 붐이 일어서 석유와 가스의 비중이 커졌다. 2006년에는 석유와 가스가 공업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석유와 가스 덕택에 실업률이 2%에 불과할 정도로 경제는 계속 활황이다.

3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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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사할린 섬의 수도나 마찬가지인 유즈노사할린스크의 유즈노사할린스크 역철도 교통의 중심이다. 위 지도에서 특별히 이름이 빨간색인 역.

사할린의 철도 남쪽은 일제강점기일본이 깔아놓은 철도를 바탕으로, 약간씩 연장한 것이다. 북쪽 부분은 제정러시아 말기/소련시대 지은 산업철도이다.

특이한 것은 본토의 러시아 철도광궤인 것과 달리 이 곳은 일본 철도와 같은 케이프 협궤 철도가 깔려있다. 일본이 옛날에 깔았던 철도를 갈고 닦아가며 써서 그렇다. 북쪽 부분도 제정러시아 시절부터 러시아 본토의 광궤가 아닌 700mm/762mm 협궤 경편철도로 부설된 것을 1945년 이후 단일 철도국으로 통합되면서 운영편의를 위해 남사할린와 같은 1067mm 케이프 협궤로 개궤. 단 2017년까지 사할린 철도를 광궤로 개궤해 본토와 같은 열차가 달리도록 할 개량계획이 지금 진행중이다.

과거에는 치하쿠 연락선을 통해 일본 홋카이도소야 본선 철도와 연계되어 운행했었다가 2차대전 이후 소련이 사할린을 탈환하고 일본과 소련은 적국이어서 끊어졌다. 지금은 냉전이 끝나고 일본과 정기여객선이 다시 취항하고 있지만 해운을 이용해 양국의 철도를 연계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있다. 소야해협 해저터널 건설계획이 수십년간 꾸준히 제안되고는 있지만 일본측에 비해 러시아 정부쪽은 미적지근한 반응. 사실상 일본 혼자 떠드는 소리이고 러시아는 자칫 일본이 대륙을 침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보고 거부한다. 대신 러시아에서 소베츠카야가반을 연결하는 연락선을 통해 BAM 철도와 연결, 블라디보스토크연해주만주중국쪽으로 접속시키고 있다.

그 외 일반교통은 주로 자가용과 시외버스로 이뤄지고 있으며 장거리 여객은 항공편을 주로 이용한다. 한국 인천공항과의 직항편은 아시아나 항공이 운영중.

4 민족 구성

사할린에는 한민족 재외동포(사할린 고려인)들이 상당수 살고 있다. 2002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러시아인이 주민의 83%를 차지해서 1위인데, 2위는 바로 한인 교포다. 30,000명으로 주민 수의 5.5%를 차지한다.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징용된 동포 및 그 후손이다. 태평양 전쟁이 종전되자, 일본은 한인 교포들을 버려둔 채 본국으로 무책임하게 철수해 버렸다. 일본에선 예전 자기들 땅이라고 아쉬워하면서 투자를 하고 일본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자 노력하지만(...)[9] 그 후 한인 교포의 귀환을 위한 소송이 일본에 대해 제기되기도 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1989년부터 실무자 접촉 등의 가시적 진척이 있었고, 그 후 2000년에 407세대(814명)가 귀국하는 등의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영구귀국을 희망하는, 미처 귀국하지 못한 사할린 교포들이 있다. 자세한 정보는 사할린 고려인 항목 참조.[10]

1990년 초반 사할린 언론은 2차대전 말기에 사할린 목재시설에서 일본인 관련자들이 조선인 노동자들을 도끼로 살해한 일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보도하기도 했다. 일본에선 듣보잡된 일이지만 소련 측은 이를 학살로 규정하여 미처 달아나지 못한 일본인 관련자를 잡아 재판에 세워 총살형까지 시켰다고 한다. 이게 보도되면서 사할린 내 한국계 거주자들이 일본에 대한 시위를 벌이면서 사할린 내 일본 기업에 돌팔매질도 벌어진 바 있다. 그리고 2012년에는 한국 측도 이 학살 관련을 조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리고 2012년 11월, 구체적인 증언이 확보됨에 따라 거의 기정 사실로 굳어진 상태.

아무튼 이 사할린 고려인들 덕분에 러시아에서 한식이 꽤 흥한 지역 중에 하나다. 1950년대에 러시아 사람들이 먹을 게 없어 석탄 더미 위에서 쫄쫄 굶고 있는 것과 달리 고려인들은 항상 뭔가를 먹고 있는 걸 보고 뭐 먹냐 싶어 보니 문어,[11] 명태,[12] 다시마[13] 등을 먹고 있더라고. 고려인들 입장에선 고기도 조개도 널려 있고, 산에 가면 산나물도 많은데 러시아 애들이 쫄쫄 굶는 게 이해가 안 갔다고 한다.[14] 러시아인들도 처음에는 뭐 저런 걸 먹냐는 반응이었지만, 배가 고프니 얻어 먹기도 하고, 먹어보니 맛있기도 해서 사실 원래 배고플 땐 뭐든 다 맛있다 이 시절이 러시아인이나 한인이나 밥투정할만한 여유가 있었던 시기도 아니고 한식 재료나 한식을 곧잘 먹게 되었다고 한다.[15] 가장 인기가 많은 식재는 고사리라고. 옛날에는 그냥 내버리던 문어갑오징어도 지금은 비싸게 팔린다고 한다.

5 트리비아

가끔 사하라 사막과 헷갈리는 지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하라는 더운 사막이고 사할린은 날이 추운 광야다. 둘다 사람 살기 힘든 곳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남사할린이 일본 영토였을 적에 이곳에서 하드로사우루스류 공룡의 화석이 발견되었는데 당시 학자들은 '일본의 도마뱀'이란 뜻의 니폰노사우루스라는 학명을 명명했다. 물론 지금은 이름만 일본 공룡이지 사실상 러시아 공룡이 된 상태(...).

의사이자 극작가로 유명한 안톤 체호프가 이곳의 유형지를 답사하면서 만든 보고서인 사할린 섬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사할린의 지질학, 지리학적 정보 뿐만 아니라 당대 시베리아 지역 유형지의 모습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비록 형식은 실무 보고서이지만 글 좀 쓰는 사람이 써서 그런지 딱딱한 느낌이 아니라 기행문처럼 술술 읽히므로 관심 있는 사람은 읽어봐도 좋을 듯. 한국어 역본도 소개되어있다. 여담이지만 체홉의 사할린 기행은 그의 문학관에도 큰 변화를 주었다. 기존작들은 레프 톨스토이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사할린을 여행하면서 그의 영향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이 섬 근방에서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이 일어났다. 1983년 9월 1일 사할린 서쪽 근방에서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어 269명의 승무원 및 승객 전원 사망했다. 1995년 5월에는 리히터 규모 7.5의 강진이 일어나서 무려 2천명이 죽었다.

여기에도 FC유즈노사할린스크라는 축구팀이 있다. 2014-15 시즌에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2부리그까지 승격을 했는데 당시 같이 2부리그에 소속되어 있었던 FC발티카의 연고지인 칼리닌그라드까지의 직선 거리는 약 7500km에 달한다. 그야말로 세계 최장거리 원정경기. 이 팀이 1부리그로 올라가면 모스크바에서 오자면 12시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1시즌만에 다시 3부리그로 강등당했다.

5.1 서브컬처

주로 일본의 가공전기에서는 쿠릴 등과 같이 여전히(...) 일제의 영토로 나온다. 크고 아름다운 경우에는 아예 러시아령인 북사할린까지 죄다 차지하는 장면도 있다. 반대로 일제가 발려서 꿈도 희망도 없는 전개일 때에는 일본민주주의공화국으로써 공산 일본의 일원이 되기도 한다. 물론 현실의 역사처럼 소련이나 러시아의 영토로 편입되는 소설도 있다.

6 위 섬을 포함하는 러시아의 주

러시아 극동 연방관구 행정구역
프리모리예 지방하바롭스크 지방사하 공화국
아무르 주사할린 주캄차카 지방
유대인 자치주마가단 주추코트카 자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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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px-Flag_of_Sakhalin_Oblast.svg.png
V

70px-Sakhalin_Oblast_Coat_of_Arms.svg.png
사할린 주
Сахалинская область
주도유즈노사할린스크
인구487,419 (2016)
면적87,101㎢
인구밀도5.6명/㎢
시간대UTC+10
UTC+11[16]

홋카이도 : 사할린을 죽입시다 사할린은 우리의 원쑤[17]

Сахалинская область(사할린스까야 오블라스찌). 주도는 유즈노-사할린스크(Южно-Сахалинск)로 러시아에서 10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도시 중엔 두번째로 동쪽에 있다. 면적은 87,100km²로 위 사할린 섬과 쿠릴 열도를 포함하고 있다. 인구는 497,973명(2010). 인구의 86.5%는 러시아인이며, 한국인(5.3%)이 그 뒤를 잇는다. 원주민 인구는 거의 없다. 사할린 주의 서쪽과 북쪽에는 하바롭스크 지방이 있고, 서남쪽에는 프리모르스키 크라이(연해주), 동북쪽에는 마가단 주, 캄차카 지방이 위치해 있다.

6.1 항목이 있는 도시

  1. 만주어 지명 사할리얀 울라 앙가 하다(Sahaliyan ula angga hada)에서 따왔다. 흑룡강 맞은 편의 섬이라는 의미. 정확히 말하면 앞의 사할리얀은(Sahaliyan)은 '검은', 울라(Ule)는 '하천'으로 '검은 하천'이라는 뜻이라는 의미도 존재하고 있다. 러시아어를 비롯하여 서양에서 부르는 "사할린"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2. 아이누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카무이 카르 푸트 야 모시르(Kamuy kar put ya mosir)에서 따왔다. 신이 강의 하구에 만든 섬이라는 의미. 식민지에서 지명을 찍어내는 일본인들 작명센스는 알아줘야 한다
  3. 역사적으로는 당나라 때는 窟說(쿠웨), 원나라 때는 骨嵬(구웨이), 명나라 때는 苦夷(쿠이), 苦兀(쿠우), 청나라 때는 庫葉/庫野/庫頁(쿠예)로 불러왔는데, 이것들은 모두 아이누어로 사람을 뜻하는 kur와 땅을 뜻하는 il, 즉 우리 사람들의 땅이라는 의미의 Kur-il의 음역어로 본다. 쿠릴 열도의 그 쿠릴이다.
  4. 가장 큰 섬은 북극해에 있는 노바야 제믈랴 섬.
  5. 프랑스의 라페루즈 백작이 해도에 최초로 기록했으며 이때는 일본인이 홋카이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던 시기와 동시대로, 일본인이 사할린에 진출하기 전이었다. 일본인들은 사할린을 에조치의 북쪽이라는 의미에서 북에조치라고 불렀다. 이 해협을 소야 해협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일본에서 부르는 명칭이다.
  6. 일본에서는 마미야해협 이라고 부른다.
  7. 남사할린이 러시아 영토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애초에 총영사관이 있으면 안 된다.
  8. 물론 사할린은 남북으로 긴 연유로 지역차가 있다. 가령 1월 평균 최저기온의 경우 남단의 코르사코프에서는 -11.9도이나 북단의 오하에선 -21.9도에 달한다.
  9. 이 부분에서 독일 땅이었다가 소련으로 넘어간 지구 반대편의 칼리닌그라드와 비슷하다.
  10. 이러한 문제가 있어서인지 유즈노사할린스크에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한국 총영사관의 출장소가 생겨 관련 업무를 보고 있다.
  11. 그리스나 이탈리아 등 지중해를 면한 몆몆 국가들을 제외하곤 대부분 유럽인들은 질색한다.
  12. 유럽에서 같은 과 생선인 대구가 식용생선으로 대접받는 것과 달리, 유럽에서 명태는 낚시밥으로 쓰거나 고양이 사료로 썼다.
  13. 대다수 유럽인들은 해초류를 안 먹는다.
  14. 사실 러시아가 해양을 개척한건 근대의 일이고 음식 문화 같은건 여전히 육지의 농경, 유목 문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니 다양한 해물을 잘 안 먹었던 게 당연하다.
  15.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 다시마나 산나물 채집도 하러 돌아다니고, 채집한 걸 고려인들에게 되팔고 있다.
  16. 본토 이외의 쿠릴 열도 쪽의 시간이다
  17. 왜 그런지는 쿠릴 열도 분쟁 문서 참조. 일본과의 분쟁지역인 쿠릴열도 남부의 4개 섬이 이 주의 소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