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가요대상 대상 | ||||||
김수희 애모 (1993) | → | 김건모 핑계 (1994) | → | 김건모 잘못된 만남 (1995) | ||
김건모 핑계 (1994) | → | 김건모 잘못된 만남 (1995) | → | 김건모 스피드 (1996) | ||
김건모 잘못된 만남 (1995) | → | 김건모 스피드 (1996) | → | 임창정 그때 또다시 (1997) | ||
MBC 가요대상 대상 | ||||||
김수희 애모 (1993) | → | 김건모 핑계 (1994) | → | 서태지와 아이들 Come Back Home (1995) | ||
서태지와 아이들 Come Back Home (1995) | → | 김건모 스피드 (1996) | → | H.O.T. 행복 (1997) | ||
SBS 가요대상 대상 | ||||||
서태지와 아이들 하여가 (1993) | → | 김건모 핑계 (1994) | → | 룰라 날개 잃은 천사 (1995) | ||
50 음반 대상 | ||||||
신승훈 <널 사랑하니까> (1993) | → | 김건모 <핑계> (1994) | → | 김건모 <잘못된 만남> (1995) | ||
김건모 <핑계> (1994) | → | 김건모 <잘못된 만남> (1995) | → | 김건모 <스피드> (1996) | ||
김건모 <잘못된 만남> (1995) | → | 김건모 <스피드> (1996) | → | H.O.T. <행복> (1997) |
230px | |
이름 | 김건모(金健模) |
출생 | 1968년 1월 13일, 부산광역시[1] |
신체 | |
학력 | 화곡중학교 화곡고등학교 서울예술대학교 국악과 |
가족 | 아버지, 어머니 이선미, 3남 중 둘째 |
소속 | 미디어라인 |
본관 | 김녕 김씨 |
종교 | 개신교 |
트위터 |
목차
1 개요
난 김건모 넌 나의 90년대 너랑 있을 때 난 최고- 다이나믹 듀오, 꿀잼 中
국민 가수
한국의 스티비 원더[2]
서태지와 아이들, 신승훈과 함께 1990년대 한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레전드 3인방. [3]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데뷔 후 독특한 음색과 디스코풍 댄스곡 및 R&B곡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보기와는 다르게 나이가 상당해서 가수들 중에는 거의 고참급. 68년생이다. 이쯤되면 67년생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랑 비교해야할 정도. 다만 경력상으로는 의외로(?) 위에 열거된 90년대 레전드 3인방중에서 가장 후배다.[4]
2 가수 활동
2.1 역량
독특한 목소리 때문에 데뷔 때부터 주목을 받았고, 지금도 그의 목소리만 듣고 음색빨이라며 보컬 실력을 폄하하는 사람들도 왕왕 있다. 하지만 김건모는 본래 국악으로 음악을 시작했고, 김건모의 노래를 불러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의 노래를 완벽히 소화하기에는 힘든 경우가 매우 많다. 특히 2집 '혼자만의 사랑'의 인트로에서 3옥타브 도 음도 피아노 치면서 흔들림없이 라이브로 [5] 선보일 정도의 넓은 음역대에 뛰어난 가창 테크닉이나 특유의 음색과 창법이 더해져 국내 역대 보컬리스트 순위를 매길 때 항상 상위권에 랭크될 정도로 무시무시한 실력을 갖춘 보컬이기도 하다. 서울예술대학 재학 당시 천재로 불렸다는 증언도 있다. 그의 영혼의 파트너 김창환이 옛날에 무릎팍도사에서 회고하기를 "너무 천재적이다보니 자기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지 잘 모른다. 그는 스스로 노래 부르는 건 숨 쉬듯이 너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고 말하기도 했다. 한 때 '한국의 스티비 원더'라 불렸을 정도로 스티비 원더 모창을 정말 비슷하게 한다.[6]
레게나 소울 방면의 창법에 능하며 초기 히트곡은 소울이었으나[7] 점점 레게나 하우스 쪽으로 가다가 2000년대 들어서 소울이나 R&B로 방향을 틀었다. 신승훈과 함께 프로듀서 김창환의 대표적인 아티스트 중 하나. 피아노 솜씨도 수준급이며[8], 많은 자작곡을 가지고 있는 싱어송라이터다.
나가수 출연이나 각종 예능 활동 등으로 인해 우습게 보는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김건모 앞에서 실력으로 고개를 뻣뻣이 세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역대 가수 순위를 선정해도 언제나 순위권에 들 수 있는 실력과 커리어를 가진 가수.
자작곡 가운데에는 본인의 히트곡도 꽤 많이 들어 있다.[9] 나는 가수다에서 미션곡으로 선정되었던 미련과 사랑이 떠나가네는 둘 다 김건모가 직접 작곡한 곡이다.
다만 곡해석이나 감성적인 부분에 있어서 이따금 익숙하지 않은 커버곡에서 실패하는 모습이 보인다. 담백하거나 진솔한 느낌을 주는 서정적인 곡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기량을 과신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2.2 1~3집 : 김창환 사단, 대한민국을 뒤흔든 국민가수
김건모의 음악 인생은 '김창환 사단'의 첨병으로 국민가수급 인기를 얻은 1집에서 3집까지의 전기, 김창환을 떠나 역량있는 솔로 아티스트로 성장했던 4집에서 6집까지의 중기, 대중성의 제고를 위해 최준영과 손을 잡고 다시 반등한 7집~8집, 이후의 후기로 나눌 수 있다.
1992년 10월 무렵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로 데뷔 후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못생기고 까무잡잡한 청년이 그동안 가요계에서 볼 수 없었던 유니크한 목소리로 톡톡 쏘아지르던 모습이 TV에 비추어지자, 음반판매량이 수직상승하며 갑작스럽게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매서운 기세는 후속곡 첫인상으로 이어지며 93년 초반 가요톱텐 5주 1위 골든컵을 최초로 수상하기에 이른다. 가요계에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음색과 노래였으며, 당시에만 해도 생소했던 재즈와 소울을 기반으로 힙합, 레게가 가미된 '흑인 음악' 그 자체를 흥겨운 멜로디에 녹여내 대중음악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이 앨범은 70만장이 팔리며 신인치고는 상당히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방송 3사의 신인상, 10대 가수상, 신세대가수상을 석권하며 크게 주목받았다.
1집 때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1993년 12월쯤 2집 앨범을 발표했다. 후속작의 타이틀곡은 레게 리듬을 도입한 하우스 댄스곡 핑계. 이 곡 하나로 단숨에 '노래좋은 인기가수'에서 '국민가수'로 위상이 급상승했다. 가요톱텐 골든컵을 또 다시 차지하는 건 물론이고 1994년 초반을 사실상 그의 독무대로 만들었다. 이 시기에 발매하려던 수많은 인기가수들의 음반이 연이어 미뤄진 것은 유명한 일화 중 하나에 불과할 정도다.
1집에서 '재즈'와 '소울'을 알렸다면 2집에서는 자메이카 '레게'를 전국에 알리며 이후 1994년을 '레게 열풍의 가요계'로 만들만큼 대중음악사에 미친 영향력이 어마어마했다. 타이틀곡 핑계뿐만 아니라 후속곡 혼자만의 사랑으로 김건모표 발라드를 세상에 널리 알리며 애절한 발라드도 잘 소화한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후 앨범마다 유명한 발라드곡[10]을 매 앨범마다 남길 정도로 이후 그의 음악 커리어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앨범으로 180만장을 기록하면서 1994년 음반판매량 전체 1위를 차지했음은 물론이요, 방송3사에서 전부 대상 수상이라는 영광스러운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그의 커리어 하이는 3집이었지만, 1위와 대상 수상에 있어서는 2집의 기록이 오히려 더 많을 정도였다. 이 때 10대부터 40대까지 트렌디를 쫒는 신세대와 트로트, 성인가요를 즐겨듣는 구세대까지 골고루 인기를 얻으면서 본격적으로 국민가수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다.
거의 신드롬에 가까운 이 인기는 다음해인 1995년 2월 발매된 3집까지 이어져 공전절후의 히트를 쳤는데, 이 앨범의 타이틀곡이 바로 잘못된 만남. 이번에는 강렬한 유로비트의 '하우스' 장르를 들고 왔는데, 엄청나게 빠른 비트에 말하듯 외치는 랩과 사비의 숨쉴틈 없는 고음 폭풍이 쉴새없이 몰아쳐, 이후 90년대 말까지 전국에 하우스 열풍을 일으키는 시발점이 된 곡이었다. 이 곡 역시 KBS 가요톱텐 5주 1위 골든컵, SBS TV가요20 6주 1위,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 2주 1위라는 기록을 달성했고 KBS에서 2년 연속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잘못된 만남의 인기야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엄청났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그 외에 '너에게', '드라마', '넌 친구? 난 연인!', '아름다운 이별' 등의 앨범 수록곡들까지 많은 인기를 끌게 되면서 90년대 초중반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한국 가요계를 양분했다시피 했다.
이 당시의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1994년에는 영화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믹스'라는 제목으로 김건모가 미국 공연 도중 폭력조직에 납치됐다가 기지를 발휘해 탈주하는 과정을 엮은 코믹액션물. 미국 현지 로케까지 해가며 절반 가까이 촬영했지만 도중에 상대 여배우가 교체되고 영화 완성도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는등 잦은 마찰로 결국 엎어진 망작이다(...) 그의 여러 큼직한 흑역사 가운데 손꼽히는 사건이지만 개봉은 커녕 촬영 중에 중지된지라 천만다행으로 잊혀진 흑역사.
그 전까지 가수들은 대부분 예능 출연을 자제했지만, 당시 예능이 개그에서 토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이에 편승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3집 잘못된 만남은 골든컵은 물론이거니와 무려 260만장 이상 팔리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 되었다.[11] 그 당시 대한민국 인구가 4500만 명이었으니 단순 계산으로 할 경우 적어도 16명당 김건모 음반 1장은 사갔다는 소리가 된다. 이 대기록은 한국 기네스에까지 당당히 올라가, 가요계의 명예의 전당의 정점에 손꼽히는 앨범으로 남게 되었고, 팬들과 평론가, 대중성까지 모두 잡은 불후의 명반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하지만 1~3집까지 승승장구하며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것과는 별개로 김창환의 혹독한 프로듀싱과 사생활 관리, 김건모의 유별나게 자유분방한 성격이 부딪히며 불화가 겉잡을 수 없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성격이 둘 다 불과 같은데, 한 번 뭉쳐진 응어리가 결국 맞불로 번지며 더 이상 김창환 사단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한 리스크가 그에게 찾아왔던 것이다. 결국 3집 활동을 끝낸 직후, 그를 정상에 올려준 은인이자 가장 많이 괴롭히고 혹사시켰던 김창환과의 결별을 선언하며 그의 곁을 떠났다. 최정상에서 당당히 자신만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김창환 역시 공개적으로 그를 저격하며 섭섭한 감정을 아낌없이 드러냈지만 워낙 오래된 일이고 나중에 와서 다시 화해하면서 그 당시의 일들은 현재로서는 거의 거론되지 않는 편이다.
2.3 4~6집 : 성공적인 홀로서기, 그러나 떨어지는 뒷심
3집 활동 이후 김건모는 당대 가요계의 미다스의 손 김창환의 라인기획과 결별을 선언하며 가요계에 충격을 안겼다. 뮤지션으로서 지향점을 가지고 있던 김건모는 강력한 상업성으로 호불호가 존재하던 김창환에게서 벗어나 위험을 무릅쓰고 성장을 위한 홀로서기에 나선 것.
결별 이후 처음으로 자기의 손으로 프로듀싱한 4집 'Exchange'는 1996년의 1996년 별들의 전쟁시기에 발매했고, 최준영, 주영훈, 윤일상 등 떠오르는 작곡가들과 손을 잡았다. 의외로 이 시기가 매우 큰 슬럼프였다고 하는데 2~3집 당시 엄청난 스케줄을 소화한데다 김창환과 대판 싸우고 나가면서 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지쳐있었던 상태였고, 워낙 큰 히트를 연이어 기록했기 때문에 주변에서 '니가 김창환 떠나서 잘 될것 같냐' '넌 김창환 덕에 뜬거지 니 능력은 제로야'라는 말을 매우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수 생활을 은퇴해야 하나하는 기로에 설 정도로 자신감을 많이 상실했으나, '내 스스로 한번 보여줘야겠다'는 독한 마음을 먹고 심혈을 기울여 앨범을 제작했다고 전해지며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매 앨범마다 변화하던 그의 음악적 성향에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신뢰감을 보내면서, 4집이 발매되자마자 타이틀곡 스피드를 비롯해서 제대로 된 활동이 없었던 수록곡들(미련, 악몽)까지 차트에 이름을 올리며 크게 사랑받았다. 앨범 수록곡들도 대중이 원하는 스타일과 자신이 원하는 음악적 방향을 적절히 섞어 많은 호평을 받았고, 김창환을 떠나도 그 스스로 훌륭한 수작을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하지만 타이틀곡에 있어서는 전작 '잘못된 만남'을 의식한 선정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는데, 실제로 매번마다 조금씩 달라지던 타이틀곡의 패턴이 스피드에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아 다소 실망감을 나타낸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워낙 전에 다져놓은 기반이 단단했던 덕분에[12] 스피드 역시도 골든컵 달성이 유력해 보였으나, 4주 1위를 달성하고 마지막 하나를 남겨놓은 시점에서 자신의 전 소속사의 신인 가수에게 밀리는 바람에 골든컵 수상이 무산된 게 매우 큰 화제가 되었고 김건모 인기의 하락세를 알리는 전환점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실제로 타 방송사에서도 3주 1위, 2주 1위에 그치는 바람에 1위 수상기록으로만 따지면 전작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성과를 거두었다.[13] 그나마 최절정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듯 160만장의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KBS에서 3년 연속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아 핑계-잘못된만남-스피드라는 최절정 전성기의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또한 그 해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최고가수상과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3년 연속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1997년 12월 발매된 5집 'Myself'에서는 최준영 대신 윤일상과 손잡으며 대중들에게 보여지는 음악적 방향도 바꾸었다. 앨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본격적인 프로듀서로서의 행보를 보여준 앨범으로, 두번째로 직접 프로듀싱했지만 이전보다 한층 진보한 재즈와 소울을 기반으로 한 흑인 음악의 색깔이 더욱 짙어지며 평단의 호평을 이끌었으나, 전작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대중성을 의식한 타이틀곡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사랑이 떠나가네'를 활동곡으로 선정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이전과는 조금 타이틀곡의 방향이 달라졌는데, 1~2집의 실험적 성향 타이틀곡, 3~4집의 트렌드에 맞춘 타이틀곡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게 5집 타이틀곡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는 '쿵짜자 쿵짝'거리는 트로트 비트를 기반으로 한 타이틀곡이었다. 사랑이 떠나가네 역시 마찬가지로 다소 올드한 느낌의 리듬이 쭉 이어진다. 갑자기 올드한 느낌의 곡들로 활동방향이 바뀐 이유는 데뷔 초~최절정기인 90년대 초중반에는 트렌디한 느낌의 재즈, 소울, 레게, 하우스 등을 바탕으로 큰 인기를 누렸지만 자신이 개척한 장르가 대세가 되면서 비슷한 장르의 가수들이 급격하게 쏟아져 나와 식상해진 감이 있었고, 김건모 본인의 나이도 30대에 접어들면서 대중가요 주 소비층인 10~20대층에선 다소 밀려난 듯한 인상이 느껴지기 시작했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핑계' '잘못된 만남'을 통해 트렌드와 완벽하게 멀어졌었던 30~40대에도 인기를 끌며 '국민가수' 타이틀을 가져왔기 때문에, 그 이름값을 바탕으로 상대적 고연령층을 타겟으로 방향을 살짝 옮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예전 3~4집만큼은 못해도 초창기에 활동한 '당신만이'와 '사랑이 떠나가네'는 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선전했고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로 각종 가요차트 1위를 쓸어담고 110만장을 판매하면서 여전히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으나, 2년 후인 1999년 9월 발매된 6집 'Growing'은 49만장에 불과한 저조한 판매량과 미비한 홍보로 대중적으로는 처절히 묻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앨범은 그의 뮤지션으로서의 리즈 시절이었다. 이미 국민가수의 반열에 올라 있던 김건모는 그가 원하는 음악을 아낌없이 이 앨범을 통해 보여주었고, 왜 그가 '한국의 스티비 원더'라는 평가를 받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앨범이었다. 비록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데에 실패했지만 평단 역시 김건모의 변신과 새로운 시도에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현재까지도 그의 최고작으로까지 평가되는 6집이 데뷔 최초로 1위곡 배출에 실패했고 밀리언셀러의 자리에서도 내려오자, 그는 고심 끝에 중대한 선택을 하게 된다.
2.4 7,8집 : 제 2의 전성기, 마지막 불꽃
2001년 김건모는 4집 때 호흡을 맞추었던 최준영과 함께 대중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7집 'Another Days...'에서 완벽히 재기하며 자신의 전성기였던 2~4집에 버금가는 반응을 얻었다. 애절한 발라드 타이틀곡 미안해요와 코믹한 댄스곡 짱가, 테크노 기반의 트렌디한 댄스곡 Double, 1964년 발표되어 70년대 인기를 끌었던 성인가요 빗속의 여인까지 크게 인기를 얻으며 앨범 수록곡의 절반이 대중들에게 사랑받아, 4집 이후 가장 큰 인기를 누리며 음악프로에서 여러번 1위를 수상했다. 앨범 판매량도 전작의 3배 가까이 뛰어올라 143만장이라는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그 해 연가(컴필레이션)와 god에 이어 최종 3위에 올라 다시금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한동안 뜸해졌던 예능계에서도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활발하게 방송활동을 하기 시작했으며 그 해 서울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14]
하지만 대중의 호응과는 별개로 활동곡인 '짱가'와 '빗속의 여인', '미안해요' 등에서 나타난 음악적인 퇴행은 음악 마니아들의 많은 안타까움을 샀다. 이전까지 흑인 음악을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길을 걸었다면, 6집에서 실패를 맛본 이후 기존 행보와 너무나 반대되는 대중적인 행보에, 이미 데뷔 10년차로서 자신의 팬층 나이대가 올라간 것까지 감안하여 30~40대의 성인 취향의 곡들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리메이크곡 두 곡을 합해도 트랙 수는 9개에 불과했고, 실제 신곡은 겨우 7개에 그쳤다. 이전 5,6집에서 15트랙까지 꽉꽉 수준 높은 곡들로 채운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완성도였고, 이 쯤되면 대중가요 음반시장의 마지막 절정기로서 대부분의 가수들이 못해도 12트랙 이상, 많으면 20트랙 가까이 채우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곡 수에 있어서도 날선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었던 '스티비 원더'스러운 음악을 완전히 버렸기 때문에, 팬들과 평단에서는 냉정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당시 MBC 음악캠프에서 문차일드의 '사랑하니까'와 1위 경쟁을 하다 패한 직후, '음반판매량이 나의 1/10에 불과한 신인 가수가 어떻게 1위를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음악방송 순위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MBC 방송출연을 일절 거부하겠다고 선언해 방송사와 큰 마찰을 빚었다. 또 연예계 최악의 흑역사 중 하나인 연제협 MBC 출연 거부 사태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며 대중적인 호감도를 크게 깎아먹었다. 이 때 저지른 사건으로 김건모는 스타병에 걸린 유아독존 지멋대로의 연예인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아직까지도 이 꼬리표로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존재할 정도로 이미지를 크게 실추하게 되었다.[15]
당장은 음악성과 인기를 등가교환한 셈이 되었지만 위에 거론된 사건들과 이후 음반 시장의 침체로 7집이 그의 마지막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그렇지만 한순간에 인기가 사그러들진 않았고 그의 대중적인 인기는 8집까지 지속됐다. 2003년 2월 발매한 8집 'History'에서는 앨범 메인 자켓에서 연탄사진을 실어 대놓고 올드 팬들을 겨냥한 듯한 인상을 주었고, 전작과 마찬가지로 애절한 발라드곡 청첩장을 타이틀로 삼았다. 누가 봐도 완벽하게 7집의 연장선상에 있는 앨범으로, '미안해요' - '청첩장'으로 이어지는 발라드 라인을 비롯하여 '짱가' - 제비로 이어지는 코믹한 후속곡에, 심지어 오래된 고전가요를 리메이크하여 행사와 나이트 위주로 인기를 끌은 '빗속의 여인' - '아파트' 라인까지 동일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테크노 기반의 트렌디한 댄스곡을 밀었던 'Double'과는 달리, 이미 댄스 장르가 사양화되던 시기였던지라 자전적 가사가 담긴 소울곡 My Son을 또다른 후속곡으로 삼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대중성을 의식한 앨범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은 앨범이었지만, 어릴적 자신이 직접 겪은 사실을 가사로 실은 'My Son'은 그가 추구했던 음악적 방향성을 다시 살린 곡으로 높은 호평을 받았다.
전작에서 MBC를 두 번이나 물먹인 전력이 있어서 어찌저찌 MBC 예능과 음악방송에 출연해서 1위 후보까지 오르는 등 선전했고 당시 KBS 뮤직뱅크에서는 순위제를 운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1위가 가능한 공중파 방송은 오로지 SBS 인기가요 뿐이었음을 감안하면 7집도 어느 정도 많은 인기와 기록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타이틀곡 '청첩장'은 공중파 1위는 하지 못했으나 케이블 순위제 프로인 '쇼 뮤직탱크'에서는 2003년 4월 5일~19일까지 3주 1위를 했으며 각종 음원 차트에서도 높은 순위에 랭크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김건모표 발라드에서도 자주 손꼽히는 명곡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 앨범으로 대략 53만장을 기록하면서 2003년 전체 음반판매량 1위를 가져가는 영광을 얻었다.
이는 앨범 발표 당해 년도에서 전체 1위를 차지한 것은 1995년 잘못된 만남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쉽게도 음반 산업의 침체가 가속화되면서 밀리언셀러 기록을 남기지는 못했으나, 김건모가 메이저에서 남길 수 있었던 '국민가수' 타이틀에 걸맞는 마지막 성적이었다.[16][17]
또한 그의 8집 앨범이 대한민국 음반 역사상 마지막 하프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이 시기가 그의 커리어에 있어서 다시 한 번 큰 전환점이 되었는데, 8집 앨범 활동을 마치고 불법 다운로드로 인한 음반시장의 악화와 방송활동을 통한 음반홍보를 통한 후배가수들과의 경쟁에 염증을 느끼고 공연활동으로만 팬들과 만날 것이라 밝히게 된다. 이 이유로 인해 폭발적인 대중적 인기와 음반 판매고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공중파에서 1위를 많이 차지하고 못했고, 결국 골든디스크 대상이 99% 확실시 되었음에도 불참하면서 수상자리를 조성모에게 넘겨주게 되었다.[18]
2.5 활동 후기
그가 방송을 중단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어느 예능 출연중 MC가 PD에게 "게스트들이 힘들어하니 좀 쉬었다하자"라고 말하자 PD가 "쉬긴 뭘 쉬어. 쉬고 싶으면 뽑아 먹을 거 빨리 뽑아먹고 보내"라는 말에 충격을 받아 방송활동 은퇴를 선언했다는 이야기를 2015년 1월 라디오 스타에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완전히 트렌드가 바뀐 음반생태에 있어 방송활동을 제하고 히트를 기록하는 것은 그 김건모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8집의 경우 그래도 일부 예능과 음악방송에서는 출연을 했지만, 바로 다음해 발매된 9집이 전작의 1/10 수준으로 판매량이 줄고 타이틀곡도 완전히 묻히게 되자 결국 방송활동 은퇴선언을 2년만에 번복하고 2005년에 방송에 복귀했다. 이후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컸던 듯...
그러나 7~8집에서 대중적 인기를 상당히 의식했던 행보와는 반대로, 방송 중단을 선언하면서 그의 음악적 행보는 완전히 극초창기 또는 6집 비견할 만한 수준으로 회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9~10집이 김건모 음악 커리어의 전성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자신의 음악적인 역량을 아낌없이 보여준 9집과 10집은 팬들과 평단에게 매우 좋은 평가를 받으며 비운의 명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직전의 7~8집 구성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여 한계를 드러내 다소 아쉬움을 남긴 사람들도 적잖이 있었던 편이다. 이 시기에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곡은, 2년만에 방송 복귀하며 대중들에게 모습을 선보인 10집 타이틀곡 서울의 달이다. 블루스와 재즈를 적절히 섞은 이 노래는 기존의 발라드&댄스로 묶일 수 있었던 그의 활동곡들과는 엄연히 차별화되는 곡이었다.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기는 커녕 인지도도 다소 낮은 장르였기에 활동 당시에는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하고 조용히 묻혔으나, 2010년대 들어서야 뒤늦게 빛을 보며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과 음원 차트, 노래방에서 스테디 셀러로 큰 사랑을 받게 되었다. 김건모 본인도 공연을 나갈 때 '잘못된 만남'과 함께 꼭 챙기는 곡 중 하나가 바로 이 '서울의 달'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던 장르의 곡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사랑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곡으로, 뒤늦게마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고 밝히며 현재도 강한 애착을 보이는 곡이다.
계속되는 미진한 상업적 성취에 좌절한 김건모는 2008년 다시 김창환에게 돌아가 프로듀싱을 맡기는 초강수를 두며 12집과 13집을 발매하지만 시간의 수레바퀴를 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4년 10월' 3년만에 14집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앨범 작업이 늦어지며 연기되었다가 2016년 10월 쯤에 미니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다. 언제 새 앨범 나오냐고요 현기증 난단말이에요
3 사건/사고
3.1 연제협 MBC 출연 거부 사태
음악적 역량은 매우 뛰어난 가수이지만, 연제협 MBC 출연 거부 사태가 일어났을 때 사실상 실세로 나선 전력이 있어 도의적인 부분에서는 강도높은 비판을 받고 있다.
연제협 MBC 출연 거부 사태는 대한민국 대중 문화계 3대 흑역사 중 하나로 불러질 정도의 거대한 사건으로, 연예계의 부조리를 파헤친 시사매거진 2580의 방송을 정면으로 비난하여 MBC출연을 거부한 사태이다.
그것도 모자라 김건모는 연제협 MBC 출연 거부 사태 당시 후배 연예인들에게 동참하기를 강요해서 구설수에 올랐으며 실제로도 연제협 MBC 출연 거부 사태에 동참한 연예인들 중 김건모보다 나이가 많은 연예인은 한 살 위인 신승훈이 유일했다. 김건모는 GOD의 박준형보다도 2살 많다. 연제협 MBC 출연 거부 사태에서는 사실상의 실세.
이 출연 거부 사태는 연예계조차도 썩어빠진 정치계와 다를 것이 없다는 인식을 시민들에게 심어주었고, 기득권의 이미지를 주기도 했다.
이후 시사매거진 2580의 방송을 제작한 이상호 기자[19]에게 개인적으로 해명하기를 기획사가 시켜서 나간 거였다고 했다고 한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항목 참조.
3.2 무릎팍도사 및 라디오스타 출연
2007년 6월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였는데 무성의 한듯한 토크로 음주방송 논란이 있었을 정도로 이미지가 엄청나게 깎였다.[20] 꿈이 뭐냐는 무릎팍도사 전용 최종 질문에 하늘을 날고 싶다고 답해서 MC들과 시청자들의 멘붕을 가지고 왔으며,[21] 거기에 강호동을 비롯한 MC들이 이런 김건모의 생각을 알콜중독자의 망상으로 몰고가면서, 결정적으로 막판에 녹화가 끝나는 순간 "야 술 갖고와!"라고 소리치는 김건모의 목소리가 방송을 타면서 음주방송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이후 2008년 10월 이웃코너인 라디오스타에 옥주현과 함께 출연하여 자신을 배려하지 못한 강호동을 강호동이 게스트를이라는 몬데그린에 가까운 디스를 시전했으나, 옥주현과 함께 MC인 윤종신의 가창력을 돌직구 디스하였다가 다시 쌍욕을 먹게 된다. 다급해진 김건모는 이미지 회복을 위해서 A/S 개념으로 곧바로 그해 12월에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무릎팍도사에 자신을 발굴하고 키워준 작곡가 김창환과 2차 출연을 감행하여, 김건모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김창환이 중간에서 조율을 잘 해준 덕분에[22] 과거 무릎팍도사 출연때 논란이 되었던 부분들은 어느정도 풀렸으나 너무 해명에만 치중하게 되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없어서 재미없다고 욕먹고 이미지 회복에 실패하게 된다.
하지만 무릎팍도사의 경우 김건모의 문제도 있었지만 MC인 강호동의 자질 문제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중론이다. 당시 김건모도 예능 컨셉을 너무 내보인 탓에 진지한 맛이 부족했던 것도 있지만, 무릎팍도사 출연 이후 2011년 10월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하면서 진솔하면서도 좋은 토크 감각을 보여준 것을 감안한다면,[23] MC인 강호동이 너무 공격적이고 웃기는 것에 치중한 나머지 상대방을 압박하고 몰아가는 것에 김건모가 주눅이 들어 말을 제대로 못한 측면도 크다. 그리고 라디오스타 출연으로 욕먹은 것도 사실 김건모가 윤종신의 가창력을 지적하는 거 자체는 큰 논란이 없었으나,[24] 후배가수인 옥주현이 선배가수인 윤종신의 가창력 자질을 함부로 논하면서 논란이 확대되어 같이 지적했다는 이유로 싸잡아 까인 측면이 크다.
4 나는 가수다 출연
2011년 3월 20일,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선곡한 다음 최하위를 해서 하차해야 했는데, 인터뷰에서 장난 쳐서 떨어진 것 같다는 변명과 다른 출연자 및 스태프의 즉흥적인 재도전 기회 부여를 수락한 관계로 폭풍같은 까임을 받았다. 재촬영 의혹 기사 결국 23일 밤 기자회견을 통해 자진 하차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후에 라디오 스타에 나온 지상렬의 말에 따르면 '나는 가수다는 분류가 예능이다![25][26] 그러니 노래할 때 예능을 조금 섞자!'라고 지상렬 자기가 말하고 김건모가 공감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모든 일의 원흉
그리고 2011년 3월 27일 열린 2차 경연, 나가수에서 항상 여유를 보이던 김건모가 손을 덜덜 떨면서 정엽의 ‘You are my lady’를 진지하게 불렀고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나가수에서의 경험이 20년간의 가수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며 언급하기도 했는데 나가수가 매너리즘에 늘어져있던 천재를 각성시킨 것일지도.. '국민가수'라는 타이틀을 가진 김건모가 이 정도의 어그로를 끈 적은 사실 없었기에, 그에게 큰 자극이 되었을 듯. 재출연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재도전 사건은 김건모 자신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뒤를 이어 출연하게 된 김연우는 '김건모 씨를 좋아해서 함께 무대에 서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며 1차 경연에서 김건모의 노래를 편곡해 불렀다.그래서 탈락하자 재도전 드립?!
떨어지긴 했어도 나가수에 김건모는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는 소리도 있다. 매번 미션곡에 김건모 노래가 나온다고...그리고 김건모 노래를 미션곡으로 부르는 가수들은 박정현을 제외하면 그 경연에서 결코 좋은 등수를 얻지 못한다 카더라[27]
이후 룰루랄라로 우리들의 일밤에 컴백했다. 다만 나가수는 재도전할 생각이 없는 듯.
그런데 나는 가수다 2의 섭외를 거절했다던 김건모가 김영희 PD의 끈질긴 설득에 다시 재출연이 성사되었다. 김영희 PD가 얼마나 끈질겼는지를 알 수 있는데, 김건모의 콘서트장에 관객과 스탭들의 동의를 얻어 무대에 올라가 "나가수2에 나가게 해주세요!!"라고 팬들과 함께 외치고 그 콘서트 뒷풀이 자리를 따라가고 후에도 포장마차에서 같이 술을 마시면서 꽤 많이 설득을 했다고 한다.버틸 수가 없다!
하지만 결국 8월 경연에서 스케줄 조정에 따른 제작진과의 불화 등으로 인해 다시 자진 하차하게 되었다. 김영희 PD하고 전생의 무슨 원수를 자세한 것은 나는 가수다 2 항목의 비판 항목 참고. 그 뒤 토토가 2014년 12월 20일 방영분에서 나가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4.1 나는 가수다에서 부른 경연곡
경연 | 가수 | 매니저 | 노래 | 순위 |
첫 공연 | 김건모 | 지상렬 | 잠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 | 3위 |
첫 경연 | 김건모 | 지상렬 | 립스틱 짙게 바르고 - 임주리 | 7위 |
두번째 경연 | 김건모 | 지상렬 | You Are My Lady - 정엽 | 자진하차[28] |
4.2 나는 가수다 2에서 부른 경연곡
경연 | 노래 | 순위 |
오프닝 쇼 | 서울의 달 | |
5월 B조 |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 유재하 | 상위권 |
5월의 가수전 | 시인의 마을 - 정태춘 | |
6월 B조 | 내 마음 당신 곁으로 - 김정수 | 하위권 |
6월 고별가수전 | 다행이다 - 이적 | |
7월 B조 | I can wait forever - Air Supply | 하위권 |
7월 고별가수전 | 어떤이의 꿈 - 봄여름가을겨울 | |
8월 A조 | 서른 즈음에 - 故 김광석 | 상위권 |
8월 고별가수전 | 자진하차 |
5 디스코그래피
순번 | 앨범명 | 수록곡 | 발매일 | 음반판매량 | 비고 |
1집 | Kim Gun Mo | 이별 뒤에 그린 그림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 내가 그댈 느끼는 동안 너의 이유 오후가 있는 풍경 너와 이어진 슬픔 너를 위한 사랑 첫인상 슬픈 추억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Club Remix) 너의 이유(Club Remix) 첫인상(Club Remix)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Dance Remix) | 1992년 10월 29일 | 70만장(추정치) | 김건모 데뷔 앨범, 타이틀곡 가요톱텐 5주 1위 |
2집 | 김건모 2 | 혼자만의 사랑 핑계 서랍속의 추억 나 그대에게 준 것은 버려진 시간 어떤 기다림 언제나 기다리고 있어 사랑이란 얼굴 우리 스무살 때 첫인상(Video Land Mix) | 1993년 10월 30일 | 180만장(추정치) | 타이틀곡 가요톱텐 5주 1위, 1994년 음반판매량 전체 1위, 가요3사 대상 석권 |
3집 | Kim Gun Mo 3 | 아름다운 이별 드라마 이밤이 가면 너에게 (마음으로 하는 말) 너를 만난 후로 잘못된 만남 멋있는 이별을 위해 겨울이 오면 넌 친구? 난 연인! 그대와 함께 겨울이 오면(Bonus Track) | 1995년 2월 1일 | 260~280만장(추정치) | 대한민국 음반판매량 기네스, 가요톱텐 5주 1위, 가요대상 수상 |
4집 | Exchange kg. m4 | 피아노 선생님 (Prologue) 빨간 우산 테마게임[29] 헤어지던 날 악몽 흰눈이 오면 스피드 미련 세상풍경 My Life 방학 (Epilogue) | 1996년 5월 17일 | 160만장(추정치) | 김창환 프로듀서와 결별, 자신의 첫 셀프프로듀싱 앨범, 3년 연속 가요대상 수상 |
5집 | Myself | Intro Never, Never, Never 자유에 관하여......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이빠진 동그라미 당신만이 - Baby I Love You[30] 아침풍경 오늘처럼 이렇게 (Feat. 권진원) 이별없는 사랑 카멜레온 가지 않는 길 사랑이 떠나가네 작은 바램 Rainy Christmas[31] 독백 | 1997년 12월 1일 | 110만장 | |
6집 | Growing | 내게 다가올 널 위해 괜찮아요 (Feat. 박진영)[32] 기분 좋은 날 Say Goodbye 가재와 게 (Feat. 이문세) A Moment Mr. Flower 하룻밤의 꿈 첫사랑 부메랑 (Rap Featuring 이승주) 꼭! 버담소리 야상곡 | 1999년 11월 20일 | 48만장 | 역대 정규앨범 중 첫 공중파 1위 실패, 2집 이후 100만장 돌파 실패 |
7집 | Kim Gunmo #007 another days... | 바보 Y (Feat. CB MASS) 미안해요 짱가 정((情)) Double 빗속의 여인[33] 여름밤의 꿈[34] Goodbye Yesterday | 2001년 5월 5일 | 1,376,581장 | 2001년 음반판매량 3위, 최준영과의 합작으로 재기 성공, 그러나 성인음악에 가까운 음악으로 선회 |
8집 | Hestory | 냄새[35] 제비 청첩장 고개숙인 남자 사랑합니다 My Son 난 어떡하라고 딸기 (Feat. 싸이) 아파트[36] 불효 | 2003년 2월 27일 | 529,416장 | 2003년 음반판매량 전체 1위, 가요프로 마지막 1위와 대상, 방송은퇴 선언 |
9집 | Kimgunmo. 9 | 여자들이란 타임 잔소리 경매 사랑이 날 슬프게 할 때 흐르는 강물처럼 Mr. 빅맨 (Feat. 개리, 간디 & 주비트레인 of 부가킹즈) 장미[37] 가족 석별[38] Mr. 빅맨(Lounge House Mix) (Feat. 개리, 간디 & 주비트레인 of 부가킹즈) | 2004년 9월 3일 | 55,000장 | 유일하게 방송출연이 없었던 정규 음반 |
10집 | Be Like... | 남이야 서울의 달 습관 발가락 두꺼비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내게도 사랑이[39] 대충 살아요[40] 방랑 I Feel Good | 2005년 6월 16일 | 32,000장 | 2년만의 방송복귀 선언 |
11집 | Style Album 11 | Jam (Feat. 조PD) 장난감 시장풍경 허수아비 반성문 (Feat. 미료) 한량 아무 남자나 만나지마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41] SINGER | 2007년 3월 15일 | 20,000장 | |
12집 | Soul Groove | Intro (떠나지마) 언제쯤... Kiss 사랑해 (Fall In love) 하루 어색한 변명 이별이 준 선물 너를 위해서... 그러지마 아파 잘 될 꺼야 슬픈 휴식 Kiss(2008 Trend Mix) | 2008년 8월 6일 | 15,000장 | |
13집 | 自敍傳(자서전) & Best | 어제보다 슬픈 오늘 자서전(다큐멘터리) 나의 하루 숨바꼭질 남자의 인생 피아노 Sunshine Lvoer 여행 You Are My Lady 울어버려 려인 (여인의 향기) 려인 2 내 모습을 | 2011년 9월 27일 | ? | 데뷔 20주년 앨범, 베스트 앨범 2장과의 3CD 구성 |
6 수상 내역
연도 | 수상 내역 |
1993년 | 최우수 신인가수상 |
제4회 서울가요대상 10대 가수상 랩댄스부문 | |
제8회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상 본상 | |
KBS 가요대상 10대 가수상 | |
1994년 | 연예영화신문 신세대가수상 |
제5회 서울가요대상 랩댄스부문상, 대상 | |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상 대상 | |
KBS 가요대상 대상 | |
KBS 가수상 최고히트곡상 | |
MBC 한국가요제전 최고인기가요상 | |
1995년 | 제22회 한국방송대상 남자가수상 |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상 대상 | |
KBS 가요대상 대상 | |
TV저널 올해의 스타상 최우수상 (가수 부문) | |
문화체육부장관 표창 | |
한국최고인기연예대상 대상 | |
1996년 | 제7회 서울가요대상 10대 가수상 |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상 대상 | |
KBS 가요대상 대상 | |
제3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청소년 가수상 | |
KMTV 가요대전 대상 | |
MBC 한국가요제전 최고인기가요상 | |
1998년 | KBS 가요대상 작곡상 사랑이 떠나가네 |
제13회 골든디스크상 본상 | |
2001년 | 제12회 서울가요대상 대상 |
제16회 골든디스크상 본상 | |
제35회 가수의 날 올해의 남자가수상 | |
SBS 가요대전 프로듀서 선정 최우수 가수상 | |
KBS 가요대상 청소년 선정 최고 인기상 | |
MBC 10대 가수 가요제 본상 | |
2008년 | 제16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신세대가요 10대 가수상 |
2011년 | 제2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 |
7 기타
소문난 애주가. 극단적인 예로 어떤 인터뷰에서는 담배는 끊을 수 있지만 술은 못 끊는다고 하였고, 세바퀴에 출연했을 때 부부싸움의 기술이라는 코너에서 상대역인 한성주에게 오빠 나 그럼 성형수술 포기할 테니까 오빠도 술 끊어. 라는 말에 단번에 그냥 수술해 라는 말을 할 정도...
대한민국 해군 연예병[42] 출신으로, 해군홍보단에서 근무했다.
와우저이기도 하며, 드레노어의 전쟁군주 발매기념 파티에 초대가수로 나와 잘못된 만남을 불렀다. 여기서 본인의 실제 캐릭터를 백댄서로 세우기도 했다.(...)영상 제목이 압권다른 구도 영상. 인남캐 사냥꾼을 플레이하며, 레이드보단 전장을 즐긴다는 듯.
클래시오브클랜의 유저이다.
2014년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에 출연해서 실력검증(?)용 노래방 기기 점수 측정에서, 유일하게 한번에 100점을 받으면서 실력이 변치 않음을 보였다. 다만 노래방 기계 점수는 그냥 랜덤타는 것이라서 의미가 없다 막 부른 유재석도 점수가 높았다 또한 같은 프로에서 김건모가 드라이 리허설을 한다는 것이 프로그램 내에서 화제였는데 그가 전성기일 때는 리허설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빠서 오자마자 노래부르고 사라졌다고 한다. 어쨌든 90년대 가요계를 휩쓴 끝판왕 중 한 명 답게 본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 "잠 못드는 밤 비가 내리고", "사랑이 떠나가네", "잘못된 만남" 총 3곡을 부르면서 관객들 및 시청자들을 열광시켰다. 특히 잘못된 만남에서 대기실에 있던 무도 멤버 및 가수들이 총출동, 단체 댄스를 추면서 대미를 장식한 장면이 압권. 공연 끝나고 하하의 가게에서 뒤풀이할때 회식값 절반을 냈다고 한다.오오 건모형 오오
콘서트나 무대때에는 굉장히 예민해지고 짜증도 많이 낸다고 한다. 특히 콘서트의 경우 자신의 음악적 기질까지 더해서 스탭들을 굉장히 많이 갈구는듯(..). 2016년 8월 라디오스타에서 경리가 김건모의 콘서트 당시 백댄서 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김구라가 "그때 많이 힘들었죠?" 라고 묻자. 경리가 바로 "네 힘들었죠.." 라고 얘기하기도.
여담으로 KBS에서 방영되었던 만화 원피스에서 남자 단역으로 우정출연한 적이 있다고 한다.
KBS 2TV 원피스 19화 가수 김건모 - 남자 3 役
- ↑ 자란 곳은 강서구 화곡동이다.
- ↑ 김건모를 대표하는 수식어이다. 뛰어난 싱어송라이터라는 점, 실제로 피아노를 연주하며 공연을 이어가는 모습들이나 한미 양국에서 알앤비풍의 음악 장르를 상징하는 국민가수라는 점에서 상당히 흡사하다.
- ↑ 익히 알려졌듯이 잘못된 만남은 한국 대중음악에 역사적인 기록을 올렸고, 그 외에도 히트곡이 즐비하다. 작곡가 윤일상은 자신의 책 <나는 스무살이다.>에서 김건모가 음악적 능력에 있어서서 조용필 다음으로 대단한 상상을 초월하는 가수라고 평가했다.
- ↑ 신승훈이 1990년에 데뷔했고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이 1992년 3월 발매, 김건모 1집이 1992년 10월 발매되었다.
- ↑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직접 확인해 보자
- ↑ 단순히 목소리나 창법 때문이 아니다. 그만큼 역량이 받쳐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 스티비 원더 모창은 상당히 어렵다.
- ↑ 물론 『혼자만의 사랑』, 『아름다운 이별』 등과 같은 발라드 히트곡도 적진 않았다.
- ↑ 대표적인 곡이 작곡과 편곡을 맡은 '미련'
- ↑ 이런 부분은 당대의 라이벌인 신승훈과 비슷한 면이 많다.
- ↑ 3집 아름다운 이별, 4집 미련, 6집 버담소리, 7집 미안해요, 8집 청첩장
- ↑ 또한 토토가 이후 잘못된 만남은 발매된 지 20년이 지난 2015년에 뮤직뱅크에서 4위까지 들었다.
- ↑ 1집 후속곡 '첫인상', 2집 타이틀곡 '핑계', 3집 타이틀곡 '잘못된 만남' 모두 가요톱텐 골든컵을 달성했다. 특히 2집 핑계와 3집 잘못된 만남은 공중파에서 여러 번 1위를 한 상태였다.
- ↑ 다만 이 때 MBC와 SBS는 1995년 하반기부터 각각 3,5주 연속으로 제한했다.
- ↑ 이 대상이 큰 의미가 있는 게 당시 김건모를 제외하고는 대상을 받은 가수가 god 밖에 없었다.
- ↑ 참고로 2000년 대 음악캠프 순위제는 음반 판매보다는 대중들의 인기로 1위를 가리는 형식이었다. 2000년 대의 1위 선정기준은 리서치 투표+거리 투표+ARS 투표+인터넷 투표였기 때문에 팬덤이 많은 가수들이 1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2001년 9월 1일 방송부터는 대중투표를 갤럽 리서치만 운영하고 음반판매점수와 방송출연점수를 강화했다.(참고로 2000년 대 점수가 10만점까지 간 데 비해 2001년 하반기부터는 가요톱텐의 점수와 비슷해졌다)
- ↑ 사실 그럴 수 없었던 것이 2002년 이후로는 음반판매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2002년에도 밀리언셀러는 나오지 않았으나 전체 판매량을 비교해볼때 밀리언셀러 앨범만 제외하면 2001년과 비슷했다. 반면 2003년에는 2002년에 비해 80만장 이상 음반판매량이 떨어졌다.
- ↑ 밀리언셀러는 1990년대에도 흔한 일이 절대로 아니었으며 실제로 음반판매량을 보면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가수는 한 해의 2~3팀 될까말까이다.
- ↑ 조성모는 당시 <피아노> 를 타이틀 곡으로 한 5집 <가인> 으로 39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2003년 음반 판매량 3위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2위 이수영의 경우 앨범이 8월에 발매되어 12월에 들어서 조성모 앨범판매량을 추월했고, 골든디스크 음반판매량 집계 기준은 2002년 12월~2003년 11월까지였다. 따라서 김건모가 불참, 이수영이 역전 직전의 상황에서 3위였던 조성모가 정말 운 좋게 간신히 수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조성모가 수상소감으로 방송에서 은퇴하셨지만 이제 콘서트장에서 그를 열렬히 사랑해주시기 바란다고 아쉬운 마음을 표한 적이 있다.
- ↑ 국민학교 동창 사이라고
- ↑ 여담이지만 무릎팍에 출연해서 이미지 안좋아진 처음이자 마지막 케이스라고. 문희준의 경우와는 완전 반대의 케이스다.
- ↑ 다만 김건모도 나름 이렇게 생각한 이유가 있었다. '꿈'이라는건 말 그대로 실현 불가능것 것을 상상하는 것에 불과하고, 인생에서 이루고 픈 것은 보통 '목표'라고 정의하는 차원이라고 발언 당시 자신의 생각을 함께 밝혔었다.
- ↑ 김건모가 조리있게 자세히 풀어내지 못했던 부분들을 김창환이 적절하게 잘 덧붙여주었다.
- ↑ 다만 이때는 나는 가수다 논란을 겪은 터라 김건모도 나름 가벼운 컨셉을 버리고 자중한 측면도 있다.
- ↑ 김건모가 윤종신보다 데뷔는 늦긴 했어도 연배도 윤종신보다 많아 거의 동료개념에 가깝고, 가창력은 완벽히 넘사벽이기에 가창력을 지적하는거 자체가 시청자 입장에서는 적어도 거슬려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김건모는 오랫동안 예능감을 잘 발휘 했기에 농담으로 그런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 ↑ 후에 힐링 캠프에서 밝혔는데 예능인데 뭘 그리 기를 쓰고 하냐고
- ↑ 원래 김건모는 콘서트에서 저런 장난을 자주 쳤는데 본인이 말하듯이 이건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간과했으며 결과적으론 잘못이라 사과했다.
- ↑ 물론 김건모 노래를 부르고 그 경연에서 좋은 등수를 얻지 못한 가수가 그 라운드에서의 탈락했냐 안했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관계자측 말에 따르면 박정현의 첫인상은 2위 정도라고 한다.
- ↑ 순위가 공개되지 않았으나, 3위라는 말이 있다.
- ↑ 동명의 MBC 코미디 프로그램 '테마게임' 주제곡
- ↑ '이치현과 벗님들'의 곡 리메이크
- ↑ 타블로의 작사 데뷔 곡
- ↑ 과거 그의 백댄서였던 박진영이 프로듀스 겸 랩 피처링에 참여한 트랙.
- ↑ 신중현의 곡 리메이크
- ↑ 김현식의 곡 리메이크
- ↑ 임기훈의 "알리나"라는 곡을 리메이크
- ↑ 윤수일의 곡 리메이크
- ↑ 사랑과 평화의 곡 리메이크
- ↑ 홍민의 곡 리메이크
- ↑ 함중아의 곡 리메이크
- ↑ 당시 같은 소속사였던 Double K가 샷아웃으로 참여한 곡이다.
- ↑ 양희은의 곡 리메이크
- ↑ 국방부 직할의 육군 연예병사와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