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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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겨레신문 기자. 2014년까지 한겨레신문의 논설위원이었으나, 지금은 한겨레신문의 '디지털 퍼스트'라는 전략에 따라 고참 기자로서 '디지털 라이터'라는 보직을 맡아 현장에 투입되어 일하고 있다. '김의겸의 우충좌돌'이라는 기명칼럼을 온라인에 연재하고 있다.

2 생애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서 태어나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자랐다. 1982년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한 후 당시 군사정권의 탄압이 극에 달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전두환 정권에 맞섰다.[1] 1985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학생회장이 되었으며, 1985년 11월 18일 전학련 ‘민중민주정부 수립과 민족자주통일을 위한 투쟁위’ 산하 파쇼헌법철폐투쟁위원회 소속으로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 점거농성에 참여하여 구속되었다.[2] 그 후 꼬박 2년반 동안 감옥에 있었는데[3], 감옥에 있는 동안 발을 거의 안 씻었다고 한다.

1988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했으며, 정치부 기자, 정치·사회 에디터, 문화부장, 사회부장,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3 활동

진보진영의 입장에서 보수여당을 비판하고, 제1야당을 격려하는 내용의 기사와 칼럼들을 많이 쓰고 있다. 주사파통합진보당과 같은 하드코어 진보에 대해서는 '역겹다'는 식으로 비판하고, 제1야당의 통합을 저해하는 비주류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야유를 보내는 스탠스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팩트 위주의 기사를 쓸 때에는 탄탄하고 균형 잡힌, 좋은 기사를 쓰는 반면에, 정치적 주장을 강하게 드러내는 기사를 쓸 때에는 너무 오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3.1 저격수로서의 활동

2013년 4월 [[[정몽준의 핵무장론]이라는 칼럼으로 정몽준을 대차게 깠다. 정몽준 의원이 갑자기 무기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갈수록 조선업계에서의 위상이 떨어지는 현대중공업의 입장에서 군수산업만한 호재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는데, 이 칼럼은 정몽준 의원실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2015년 7월 31일에는 김무성의 아버지 김용주의 친일행적을 철두철미하게 파헤치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관련 기사 물론 김용주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내용도 그 안에 조금 들어가 있었지만, 김용주가 천황폐하를 찬양했다는 것이나 일본의 군국주의에 적극 협력하는 내용의 긴 논설을 썼다는 팩트를 아주 상세하게 전달한 것만으로도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쇼킹한 것이었다. 당시 차기 대권에 성큼 다가서는 것처럼 보였던 김무성의 입장에서는 김의겸에게 제대로 한방 맞은 격이었다.

3.2 야권통합 지지자로서의 활동

2015년 5월 31일, 더 이상 ‘호남’을 팔지 마라!는 칼럼으로 천정배, 박주선 등의 신당론자들과 새정련 비주류 의원들을 통렬히 비판했다. 물론 야권 비주류 성향의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너무 야권 주류만 편든 것이 아니냐는 이의가 제기되었지만,[4] 대다수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대한민국 언론사에 길이 남을 정도의 후련한 칼럼'으로 칭송을 받았다.

2015년 9월 11일에는 비주류도 옥상 올라가라, 문재인과 맞짱을 떠라을 썼는데, 이로써 문재인 지지자들에게서 속이 다 후련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안빠나 야권 비주류 성향의 네티즌들은 한겨레의 간판 기자로서 너무 품위 없는 기사를 쓴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2015년 9월 30일에는 '안철수가 부산에 출마해야 하는 이유'을 썼다. 이에 대해서는 안철수 지지자들이 비판적 포스팅을 하기도 하였으나,[5] 대다수 문재인 지지자들은 이에 대해 시원한 사이다맛의 칼럼이었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2015년 12월 4일에는 '문재인에게 노무현 기질이 스며들고 있다'는 칼럼을 써서 문재인에게 다시 한번 힘을 실어주었다. 이에 대해서는 '문비어천가' '문빠 팬픽'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예전 칼럼보다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문재인의 정치적 상황을 분석한 글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있었다.

그리고 2016년 4월 11일에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문재인은 끝내 호남판 사도세자가 되는가'라는 칼럼을 썼다. 한 마디로 문재인을 구하기 위해 완전히 팔을 걷고 나선 셈. 물론 호남이 문재인과 밀당을 벌이는 것에 대해 “호남이 그만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처지인가”라고 반문하며 던진 김의겸의 돌직구는 당시 상황에서 꽤 유효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었다.

4 기타

사진보다 실물이 더 잘 생겼으며, 성격이 대단히 꼼꼼하다고 한다. 팩트가 많이 쌓이기 전에는 좀처럼 기사를 안 쓰되 한번 쓰면 알찬 기사를 내놓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남들 같으면 스트레이트 기사 몇 개는 쓸 팩트를 조그만 상자기사 안에 꽉 채운 다음에 글을 쓴다고 한다.

기자로서는 드물게도 냉소적이지 않고 남들 욕도 잘 안 한다고 한다. 세상과 사람에 대해 결론을 유보한 채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편?

술을 잘 마시는 편인데, 술버릇이 없고, 선후배 두루 잘 어울리는 편이라고 한다. 동생들도 모두 공부를 잘 하여 원자력문화재단 팀장, 병원 원장 등의 직업을 갖고 있다고 한다.
  1. 김의겸 기자와 함께 82학번 운동권 출신으로 유명한 사람은 서울대 조국 교수와 강철 김영환 등을 들 수 있다.
  2. 총 191명(이중 여학생 56명)이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 본관 건물을 점거하고 6시간 30분 동안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군사독재정권퇴진", "외채도입 중지", "노동운동탄압 중지", "실업자구제책보장"등 20개 요구사항이 담긴 ‘시국선언문’ ‘미국에 보내는 경고장’ ‘신민당에 보내는 공개서한’ ‘군부독재처단 결사투쟁 선언서’ 등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어 ‘군부독재 타도하자!’ ‘파쇼헌법철폐하라!’ 등 7개의 현수막과 태극기 두장을 건물 벽에 붙였다. 전두환 정권은 이들을 폭력방화사범으로 몰아 전원 구속했다. 이 사건은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항거일 뿐만 아니라 군사정권에 형식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민정당에 대한 항거이기도 했다. 학생들은 이 투쟁을 통해 '군부독재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그 제도적 안전장치인 파쇼헌법을 철폐하는데 총역량을 결집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여 후일 야당과 연대한 개헌운동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3. 아무리 군부독재 시절이라고 하지만 시국사건으로 그렇게 오래 감옥에 있는 일도 드물었다고 한다.
  4. 문재인이 당권을 잡은 과정에서 경선룰이 갑자기 변경되는 등 석연찮은 점이 있었다는 점, 문재인이 간판이 되어 치른 선거는 모두 패배했다는 점, 문재인으로는 정권교체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야권 비주류와 호남이 저렇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란 점을 간과하였다는 비판이었다.
  5. 예를 들어 정치 칼럼니스트 공희준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비판하였다. "나는 한겨레신문, 그 중에서도 특히 한 매체의 얼굴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정치부 기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특이하다 못해 아예 기괴한 세계관 역시도 자신들만의 표준만 편집광적으로 고집함으로써 생겨난 현상으로 분석하고 있다. 갈라파고스가 저 깊고 넓고 거친 태평양 때문에 하등한 도마뱀들이 대장 노릇을 하는 쓸쓸하고 폐쇄적 생태계로 타의에 의해 진화했다면, 한겨레신문은 우리나라의 평범하고 평균적인 서민과 중산층의 일상적 삶이나 생각과 접촉하기를 완강히 거부한 채 자기들만의 울타리에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가두고 말았다. 서민과 중산층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참여정부를 향한 애절한 향수와 86이표 정치인들과의 끈끈한 동지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