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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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正閣, 1941.7.20~

북한군인정치인. 평안남도 증산군에서 태어났고, 1959년에 조선인민군입대한 뒤 복무 중에 군관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급 장교 교육 기관인 김일성종합군사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정확한 부대 언급 없이 대대장, 부군단장, 총참모부 훈련소 소장 등의 직책을 역임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장성 진급도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불분명하다.

1991년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면서 북한 언론에 공식 언급되기 시작했고, 1992년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부임한 김정일이 창군 60주년 기념으로 장성들을 대거 진급시켰을 때 3성 장군인 상장으로 승진하면서 주목할 만한 고위 장성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인민무력부 부부장으로도 임명되어 역대 부장들인 오진우, 최광, 김일철, 김영춘 등 북한 군부 최고위층 인사들 밑에서 일했다.

김일성 사망 후에도 계속 직위를 유지하면서 1998년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처음 선출되는 등 정계에도 진출했고, 2000년에는 조선로동당 창당 55주년 기념으로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대규모 열병식의 열병지휘관을 맡기도 했다. 2002년에 대장으로 진급했고, 이후에도 북한의 고위 장성이나 정치인들의 장례에서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거나 당 중앙군사위원회,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는 등 정계의 요직에 진출했다.

김정일 사후인 2012년 2월에는 차수로 진급함과 동시에 김정일훈장을 수훈받았고, 두 달 뒤인 4월에 김영춘이 인민무력부장에서 퇴임한 뒤 그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총정치국장인 최룡해, 총참모장 리영호에 버금가는 군부 최고위 장성으로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겨우 일곱 달 동안의 단기 연임 뒤인 11월 말에 황해남도의 4군단에서 군단장을 역임한 군부 내 강경파인 김격식으로 교체되었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북한 측 소식통들에 의하면 인민무력부장 재임 기간 동안 군부 내의 평이 좋지 않았거나 건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등의 설이 있다.

인민무력부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전임자인 김영춘과 비슷하게 비교적 한직인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으로 재임하고 있다고 하는데, 별다른 진급 없이 그대로 대장 계급을 달고 있는 김격식이나 차수에서 대장으로 강등당한 최룡해, 현영철과 달리 강등 소식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