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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 정보
이름 김정숙(金正淑)
출생 1917년 12월 24일, 함경북도 회령군
사망 1949년 9월 22일, 평양
가족 배우자 김일성,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종교 무종교
2 트리비아
일명 항일의 녀성영웅.
김일성혹부리우스의 2번째 부인이자[1] 김정일뽀그리우스의 친모이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중국으로 건너간다.
어릴 때부터 아동단에 가입하여 반일활동을 하였으며, 1933년에 공산청년단에 가입하였다. 1935년 9월에 항일유격대에 가입한 뒤 1936년 이후 김일성이 지휘하는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6사에 들어가서 김일성과 인연을 맺었다. 북한측 문헌들에 의하면 그녀가 김일성을 처음 만난 것은 1935년 3월 경이었으며, 당시 이들의 만남은 업무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이 관계는 애정으로 발전하였으며,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소련으로 갔을 때 장남 김정일과 차남 김만일을 낳았다. 하지만 1944년 태어난 김만일은 1948년 우물에 빠져 죽었는데, 이 때문에 김정일은 유일한 동생인 김경희에게 잘해주었다고 한다. 시스콘?
이후 북한으로 돌아와 1946년에 김경희를 낳았는데, 1949년 9월 22일에 넷째 아이를 낳다가 요절했다.[2]. 이때의 태아도 결국 어머니를 따라 죽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데, 김일성이 비서로 들어왔던 김성애와 바람을 피우자, 이에 김정숙이 화를 냈다고 한다.[3] 그래서 김정숙이 넷째 아이를 출산할 때, 김일성이 의사를 보내어 진료를 하려고 하자 그녀가 삐져서 완강히 거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난산으로 인해 의사 없이 아이를 낳던 김정숙과 태아는 사망했다. 그녀가 위독해지자 김일성은 현지지도를 중단하고 허겁지겁 김정숙의 임종을 지키러 왔는데, 남편에게 잔뜩 열받아 있던 김정숙은 끝내 병실 문도 못 열게 했다. 이걸 북한에서 김정숙이 김일성이 국사의 대업을 보는 것을 자신 때문에 방해할까봐 갸륵한 마음으로 열어주지 않았다고 주접을 떨고 있다.(...) 어쨌거나 김성애가 사망의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에 김정일이 김성애와 그녀의 아들인 김평일을 그토록 싫어했다는 말이 있다. 북한에선 이를 두고 김정숙이 자신의 병을 숨기고 인민들을 위해 헌신하다가 죽었으니 미리 김정숙을 돌보지 못한 우리가 죄인이다 ㅠㅠ라는 식의 프로파간다를 내놓고 있는데 이후 김일성, 김정일이 요단강 건널 때도 비슷한 레퍼토리를 썼다.
김정일은 어머니가 해산하다 죽자 평양산원을 지었다고 한다. 김성애는 김평일을 후계자로 내세우면서 김정숙을 매우 격하했는데 전국의 여성동맹에서 김정숙의 사진을 끌어내려버리고 자신의 사진을 걸었다. 하지만 이는 격분한 김정일이 계모에게 복수의 칼날을 가는 계기가 되었다. 1972~74년에 걸친 투쟁 과정에서 김정일이 김평일을 밀어내고 김일성의 후계 입지를 다지면서 '백두여장군'이라는 칭호를 받았고, 북한 전역에서 우상화 작업이 시행되었다. 김정일이 공식적으로 집권한 뒤로는 김일성-김정숙-김정일을 '백두산 3대 장군'으로 칭하고 있고, 양강도 신파군이 김정숙군으로 개명되었다. 김일성-김정일 부자만큼은 아니어도 김정숙의 생일 역시 북한에서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명절이 되어 있다.
김정일은 인터뷰에서 가장 각별하게 여기는 이가 누구냐는 질문에 잠시 고민하더니 어머니 김정숙이라고 대답한 바가 있었다.
김일성의 후처 김성애는 김정숙의 권위를 끌어내려 자신과 자신의 아들들인 김평일, 김영일의 지위를 굳건히 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분노한 김정일의 역습으로 정치적으로 완전히 실각하고 만다.
생일이 12월 24일이어서 북한 주민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이 사람의 생일을 지내야 한다고 한다. 각종 행사에도 동원된다고.
3 기타
김일성의 사촌누이 김정숙(金貞淑, 1930~)도 있다.
2015년 5월 11일 북한의 조선혁명박물관에 있는 김정숙의 금반지가 도둑 맞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국보급 문화재가 도난당한 셈. 김정은 정권에 대해 불만을 품은 자의 소행으로 여겨지고 있다.